두산베어스의 네번째 우승을 바라보며...
여덟살이던 1982년 프로야구가 시작됐고 내가 사는 대전에는 OB베어스가 있었기에 형과 나를 포함한 주변의 소년들은 OB베어스의 팬이 됐고 대전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가 끝난후 박철순, 신경식, 김우열, 김경문, 김광수, 유지훤, 선우대영 등등 선수들의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1985년 OB베어스가 연고지를 서울로 옮겼지만 내가 좋아하는 팀은 베어스)
소년들에게 투수 박철순은 우상, 영웅이었고 큰 키에 다리를 찢으며 1루로 오는 공을 잡아내는 신경식이 박철순 다음으로 인기가 있었다.
1982년에 OB베어스 어린이회원 이었던 형이 가지고 있던 회원수첩과 OB베어스 야구모자, 점퍼, 티셔츠는 소년들에게 그 어떤 명품 보다 빛났다.
그래서 나도 1983년에는 형을 따라 OB베어스 어린이회원에 가입했고~
1982년 박철순을 비롯한 선수들의 노고와 투혼으로 OB베어스는 한국 프로야구 첫번째 우승팀이 되었고 우승을 확정짓는 경기를 티비로 지켜보던 우리가족이 환호했던 기억 아니 추억이 있다. 나는 기뻐서 팔짝팔짝 뛰던 여덟살 소년 이었다.
그후 1980년대 후반에 OB베어스는 플레이오프전에서 번번이 해태타이거즈에게 져서 한국시리즈에 올라가지 못했고 1990년대 초반에는 거의 꼴지에서 맴도는 암흑기를 맞이했다.
애타게 기다리던 OB베어스의 두번째 우승은 내가 스물한살 이던 1995년에 이루어 졌다. 전해 1994년에 윤동균 감독의 선수체벌을 비롯한 잘못된 리더쉽으로 선수들이 이탈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OB베어스는 거의 끝난것 처럼 보였다.
당시 서울라이벌 LG트윈스가 이광환 감독과 서용빈, 유지현, 김재현, 이상훈의 신바람야구로 우승을 한후 최고 인기구단으로 자리매김 한것과는 정반대로...
그러나 1995년 시즌을 앞두고 영입된 덕장 김인식 감독은 특유의 친화력과 믿음의 야구로 선수들을 융화시켜 팀을 안정시켰으며 과감한 공격야구로 OB베어스를 정규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으로 진출시켰다.
당시 1995년 8월 31일에 군에 입대한 나는 아침마다 내무반별로 1부씩 보급되는 국방일보를 통해 OB베어스와 LG트윈스의 피말리는 정규리그 1위싸움을 확인해야 했다. 아침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전투경찰로 차출되어 2주간의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간 충청북도 충주의 중앙경찰학교에서는 아침마다 매점에 진열된 스포츠신문을 통해 OB베어스와 롯데자이언츠의 한국시리즈 결과를 확인했으며 OB베어스의 승리를 담고 있으면 신문을 사서 읽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OB베어스의 두번째 우승은 충주 중앙경찰학교에서 스포츠신문을 타고 내게 다가왔다.
특히 1982년 첫번째 우승이후 허리와 아킬레스건의 잦은 부상으로 선수생명이 끝난듯 보일때 마다 투혼으로 재기해 선수생명을 위태롭게 이어가던 박철순이 OB
베어스의 두번째 우승을 위해 마지막 불꽃을 불사르던 해 였다.
훗날 티비에서 본 두번째 우승후 OB베어스 단장을 끌어안고 엉엉울던 박철순의 모습은 베어스 팬의 마음 그 자체였다.
1999년 두산베어스로 팀이름이 바뀌었고 덕장 김인식 감독의 선굵은 공격야구, 믿음의 야구는 한층 성숙해져 두산베어스는 명문구단, 인기구단의 반열에 올랐다.
2000년 현대유니콘스와 펼친 한국시리즈에선 3패뒤에 3연승을 이뤄 시리즈를 7차전 까지 끌고가 아깝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1번 정수근, 2번 안경현, 3번 우즈, 4번 김동주, 5번 심정수가 배치된 막강 타선은 타팀 투수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2000년 시즌이 끝난후 심정수가 현대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된게 아쉬웠지만 심정수 대신 트레이드 되어온 심재학이 2001년 시즌에 날라다니며 세번째 우승에 일조했기에 위로가 됐었고~
2001년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들어간 스물일곱살의 새내기 직장인 였던 나는 배워야할 업무가 많았기에 학생때 처럼 야구를 볼수 없었다. 한국시리즈 역시 회사에서 야근을 하며 회사티비로 잠깐 잠깐 봐야만 했다. 암튼 두산베어스는 세번째 우승을 했고~
이후 두산베어스의 감독이 김인식 감독에서 김경문 감독으로 바뀌고 김경문 감독은 재능있는 신인 선수들을 발굴, 육성해 두산베어스를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지만 항상 한국시리즈에서 고비를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러야만 했다.
특히 아쉬었던 때가 2007년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였다. 먼저 2연승을 하고도 노회한 김성근의 벽을 넘지 못해 내리 4연패를 하면서 우승을 SK와이번스에게 넘겨 줘야 했던...
그리고 김진욱 감독 시절 3승 1패로 앞선 상황에서 내리 3연패를 하면서 우승을 삼성라이온즈에게 넘겨 줬던 2013년 한국시리즈.
두산베어스는 최강의 팀을 만들고도 용의 눈에 점을 찍지 못한 미완의 용으로 남아 있다가 2015년 마침내 화룡정점 용의 눈에 점을 찍어 날아올랐다.
세번째 우승 이후 14년의 기다림.
부상투혼 정수빈과 양의지, 돌아온 에이스 니느님 니퍼트, 새로운 대표 3루수 허경민, 오랜 세월 손시헌에 가려 백업생활을 하다가 용이 되어 날아오른 천재 유격수 김재호 등등 모든 두산베어스 선수들을 포함한 올시즌 땀흘린 10개 구단 감독, 코칭스탭, 선수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첫댓글 잘읽었읍니다.
우승을 하니까 좋내요~^^*
그렇죠~^^
5차전 중앙석(네이비)에서 우승 장면을 직관했습니다. 3번의 준우승을 직관으로 보고 나서 우승장면을 보니 더 감격적이더군요.
용석손권님 부럽네요. 5차전 예매도 실패하고 야구장앞에서 가니 암표나 양도표도 없어서 그냥 집에서 봤네요. 역시 우승하니까 좋더라구요.
1995년으로 기억됩니다.
일곱살 아들, 네살된 딸과 함께 암표로 전광판 옆에서 신문지 깔고 응원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랬던 아들녀석이 여친과 응원하면서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해주더라구요.
집에서 티브이 보다가 정수빈 선수가 홈런칠때는 눈물이 핑 돌더군요.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기에 감동이 더한듯 싶네요.
이런 모습을 자주 봤으면 합니다.
두산 화이팅!!!
82년 초등학교 4학년때 프로야구가 생겼고,
서울에 살았지만 부모님이 충청도라는 이유와
집근처에 ob맥주 공장이 있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4,5,6학년을 ob공장에서 어린이회원에 가입했던일과
82년 전기리그 우승과 코시우승이후에 받았던 곰돌이 유리컵...
지금은 울아들이 두산평생회원으로 가입시켜 그 아들회원증으로 두산경기 할인받고 있는나...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