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칭다오 한국인 도우미 마을(칭도마)
 
 
 
 

친구 카페

 
등록된 친구카페가 없습니다
 
카페 게시글
[사랑방]자유로운 이야기 스크랩 [사진] [퇴촌일기] 53. 시대를 앞서간 천재여류시인 허난설헌 묘를 찾아서
知止 추천 0 조회 274 07.12.02 09:27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퇴촌일기] 53. 시대를 앞서간 천재여류시인 허난설헌 묘를 찾아서

 

許난설헌 묘!

 

퇴촌에 허난설헌 묘 이정표가 붙었길래 소주 한 병을 사들고 허난설헌 묘를 찾았습니다.

허날설헌(초희)은
1. 300여편의 시를 남겼다.
2. 조선시대 여성으로써 깨어있던 여성이었다.
3. 27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4. 여자 태어난 것을, 조선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김성립이 남편이었다는 세 가지 恨으로 여긴 여자였다.
5. 동생이 허균(홍길동전 저자)였다.
6. 허씨집안은 당시 동인으로써 오빠들이 판서를 지냈다.
7. 그녀의 시는 유언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남겨 놓았으며 임란을 맞이하여 명나라 군대가 오면서 중국으로 전해졌다.
8. 중국 문헌 15곳에 시 등 기록이 올라있다.
9. 한국에서는 그녀를 폄하시키려 노력했다.
10.한많은 여인, 시대를 못만난 여인이었다.

묘소 제일 아래에는 허난설헌 혼자 묻혔으며
그 옆에 두 자녀의 작은 무덤사이에 핀 제비꽃 무리가
그녀의 묘를 더욱 애처롭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남편 김성립의 묘가 후처와 함께 있으며
맨 위에는 안동김씨인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묘가 있습니다.

무덤을 찾아 쓸쓸한 마음으로 잔을 한 잔 올려봅니다.

너무 할 말이 많은 관계로...
너무 생각이 많은 관계로...
애닯다고 표현하기조차 애닯기에... 
 

그녀가 가졌던 첫번째 恨은 여자로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400년전에 이를 문학적 언어로 표현해내는 재주를 지녔다는 점이지요. 

 

그녀가 가졌던 두번째 恨은 남편 김성립과 결혼한 것이라 했습니다.

이 부분은 동문선에서 발행한 김성남 교수의 허난설헌 책자를 참고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안동金氏 문중과 개인적으로 대립할 생각은 없답니다.

 

그녀가 가졌던 세번째 恨은 조선시대에 태어난 것이라 했습니다.

여성의 시각에서 볼 때

여성문제, 결혼문제, 사회구조는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조선시대라면 중국의 明나라와 같이 폐쇄적인 사회의 대명사이기에 시대를 잘못 만났다는 그녀의 말에 공감이 갑니다.

그녀의 시를 읽다보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도 여기에서 나올 것입니다.  

 

더구나 자녀 둘을 잃었습니다.

피어보지도 못하고 진 꽃들에 대해 그녀의 오빠가 남긴 비문도 슬픈데

어머니로써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묘소아랫단에 있는 아이들 묘소에 쓰인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시대를 앞서간 한 여인이 27세에 세상을 뜨기前까지 모진 풍파를 겪은 것이 생각나서일까요?

 

당대에 허씨 집안은 깨어있던 집안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허난설헌, 그녀의 동생 허균, 오빠 허봉 등은 조선시대 문인들에 의해 철저히 배격되었지요. 

가진자일수록 잘해야 되는 이유일 겁니다. 

 

허난설헌의 묘는 강릉에서 이리로 옮겨 온 것입니다.

출가외인이기에 허씨 집안이 아닌 안동 김씨 문중에 의해서 옮겨진 것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사회의 모순을 대변하고 있는듯합니다.

민주주의와 일부일처제가 인류 최대의 이상적인 제도는 아니니까요!

 

앞을 가로지르는 중부고속도로상의 수많은 차들!

이럴줄 알았다면 소주 두 병을 갖고 올 걸 그랬습니다.

술은 못하지만 제 안에도 술을 마시고 싶은 때는 있나봅니다. 

 

비문이 저를 생각하게 만들고 퇴촌자체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퇴촌의 退가 물러날 퇴자를 쓰는 것에 저는 만족합니다.

사람은 살다가 한 걸음 아니 두 걸음이상 물러나 세상을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늦은 가을, 막걸리 한 병을 들고 허난설헌의 墓를 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漢민족이 아닌 恨의 민족이 우리 아니던가요.

오셔서 쌓인 恨을 푸시고 가시지요.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人生, 한 번 살다가면 그만인데

恨을 품고 그 다리를 건널 필요는 없지 않나요?

 

오세요! 退村으로!

그리고 있는 恨, 없는 恨을 푸시지요.

받아주는 이 없으면 저라도 들어 드릴께요.

 

모든 恨 다 남겨 놓으시고 행복하게 사시길 바래요.

웃으면서 기쁘게, 하고 싶은 일하시면서...... <知止>  

 

* 찾아오는 길 :
퇴촌면사무소에서 정지리, 원당리, 무갑리 입구에서 廣州방향으로 1Km정도 가다가 고속도로 전 좌측으로 600m,
고속도로 밑으로 들어가 바로 우회전하면 200m 죄측전방에 묘소가 보입니다.

 
다음검색
댓글
  • 07.12.02 16:40

    첫댓글 사씨남정기 나 난허설 ..그리고 여러 여성 선조들에 깨어 살았던 삶의 자료들을 보면서...가깝게는 엄마들의 세대가 할머니들의 세대가 여성이라는 여자라는 이유로 ...가슴에 恨 을 가지고 살았던 안타까운 세월들이 조선 그리고 근대 현대 지나고 또지나~ 지금 내가 살아 숨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보이게 보이지 않게 ...전해오는 女子의一生 툇마루에 앉아 집안 걱정으로 자식문제로 길게 내쉬던 할머니의 ~또그 할머니의 한숨이 위엄이 느껴지 그런 아침입니다...!!!

  • 07.12.02 11:22

    일부 일처에 가족 제도에살면서 일부 2~3 처를 봐 내야만 했었던 할머니들~의 ~삶 그아들이 아버지의 에너지를 그대로 답습받아 힘들게 했을 며느리의 가슴을 한숨으로 진정시키고 달랬어야만 했던 (보고도 못본척 듣고도 못들은척..등등 지혜의 한계.. )파워가 있을것같으면서도 어찌해볼수없었던...할머니의 영향력 ..가문을위해 자식에게 자식에게 ~ 恨 에 사랑을 보냈던 조선에 여인들 그 자식들이 꽃피지 못하고 그대로 시들어가는 것을 봐야 했던것은..말이나 글로 할수 없는 언어 도단에 恨....한국에 가면 쏘주 한잔 부어 허씨 부인의 ~가슴을 달래고 내가 마시고 존재가 마시고...공중에 떠있는 한 들이 마시고....

  • 작성자 07.12.02 11:20

    언제든지 오시기 바랍니다. 쓸쓸히 와인 한 잔 기울이시죠.

  • 07.12.03 10:19

    갑자기 임제의 싯구절이 생각납니다. 황진이 묘앞에서 썼지요.'청초 우거진 골에/자는다 누웠는다/홍안은 어디두고/백골만 뭍혔나니/잔 잡아 권 할 이 없으니/이를 설워하노라~'....-_-

  • 작성자 07.12.03 10:53

    월요일 아침! 슬픔을 드렸나 봅니다.

  • 07.12.03 22:08

    잘지내시는 느낌으로 매우 반가움 전합니다. 에궁 봄까정 기다려야 볼수잇남요?

  • 작성자 07.12.04 08:19

    선배님! 인연은 하늘의 뜻인가 합니다. 오늘은 영하 10도. 청도도 추울텐데 다뜻하게 지내세요. 봄이야 살다보면 오는것이겠지요.

  • 07.12.05 22:46

    가끔 지나다니면서 '한번 가야지.' 했던 곳입니다. 일러주신대로 찾아가 보겠습니다.

  • 작성자 07.12.12 10:47

    가시면서 들르시기 바랍니다. 차 한잔은 대접해야지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