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에서
김지명
대기실에 들어선다. 언제나 오가는 사람이 많아 대기실은 항시 붐빈다. 어디서든 대기실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역뿐만은 아니다. 공항이나 버스터미널 여객선 터미널 게다가 병원 등 대기실은 언제나 복잡한 곳이다. 병원 같은 곳엔 계절에 변함없이 늘 북적거리지만, 공항이나 국제선 터미널은 계절과 요일에 따라 수효의 차이가 크다. 역에는 월요일이라서 그런지 유동인구가 아주 적다. 아마도 경기불황으로 사람들은 여행을 자제하는 모양이다. 주말이나 휴가철이면 대기실이 만원사례지만, 평일이라 유동인구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다양한 만남에서 울고 웃는다. 열차가 도착했다는 신호로 많은 사람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그중에서 내가 기다리는 친구도 함께 있기를 바랐지만, 보이지 않는다. 마중 나와 기다리던 한 사내가 만남의 반가움에 양팔 벌려 연인을 반기더니 대중들 앞에서 부끄러움도 없이 포옹한다. 젊은 연인들은 많은 사람이 모인 대기실에서도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장거리이동에 쌓인 피로도 잊은 듯 환한 웃음보이며 즐거운 수다 속으로 빠져든다. 대기실에서 연락이 끊임은 연인과 우연한 만남에서 이산가족을 상봉하듯 눈물도 흘린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지는 것이 부부의 인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눈물도 돌아서서 보이지 않게 훔친다. 이별하는 사람은 손을 흔들다가 한순간을 참지 못하고 고개 돌려 손수건을 적신다. 눈물짓는 모습을 보면서 떠나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로 믿음의 눈물을 흘린다. 울지 않으려고 앞니를 깨물었지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은 참을 수 없다. 눈물은 서로를 의지하며 믿는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우리의 생활이 샛강이 흘러가듯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멀리서 찾아와 즐거움을 함께하면서 많은 추억을 가지고 떠난다. 웃음과 그리움을 남기고 미련 없이 떠나는 이별의 부산정거장이다.
부산역에서 통장에 추억을 저장한다. 생활의 흐름을 경험하는 과정을 하나의 추억으로 만들어 저장한다. 만나고 헤어지는 터미널에서 다양한 모습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다. 오가는 사람들은 다양한 추억을 저장한다. 가슴에 저장하는 사람, 손 전화기에 담아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입술에 그리움을 심어놓은 연인의 발걸음은 아주 무겁다. 고개 돌려 또 다른 곳으로 바라보면 편안히 자리에 앉은 중년 아저씨가 무작정 기다림에 취한 모습이다. 만남의 기쁨도 없고 기다림의 그리움도 없으며 더구나 헤어짐의 슬픔은 더더욱 없다. 막연히 앉아 누구를 기다리는 게 아니다. 삶을 즐기며 세월에 끌려가는 노숙자다.
옷은 사람의 날개다. 내 곁을 스쳐 가는 사람의 얼굴보다 옷이 더 우아하다. 만남에서 먼저 상대의 옷이 눈에 들어온다. 계절에 따라 생김새에 맞추어 입는다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체질에 맞게 입은 모양새가 제각기 다르다. 옷은 계절을 민감하게 알리지만, 개중에는 전혀 아닌 사람도 눈에 든다. 제멋에 산다는 사람이라 누가 어떤 차림이라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소슬바람에 머플러를 목에 걸친 사람도 있고 건강을 자랑하려고 짧은 티를 입은 사람도 보인다. 노루 다리처럼 쭉 빠진 아기씨의 허벅지를 자랑하는 핫팬츠도 현대인들의 패션이다.
대기실은 희비뿐만 아니라 빈부도 보인다. 보내고 만나는 모습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빈부다. 특히나 여자들의 가방이나 옷에서 현저하게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목걸이나 구걸이 팔찌 등 여자들의 사치품에서 빈부가 보이다. 여행하는 사람 사업에 쫓기는 사람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대기실이다. 기다림을 저장하여 만날 때 많은 행복을 찾는 대기실에서 다양한 모습이 보인다.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날 때 십 년 전이나 다름없다는 둥 고생이 많아 주름이 많다는 둥 다양한 남을 보면서 나의 삶을 뒤 돌아본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병원에서 보이지만, 여행을 즐기기 위해 잠시 머무는 대기실은 건강이 넘친다.
세상의 흐름이 보인다. 여자들의 치마가 짧아지면 흉년이 밀려온다는 뜻이다. 치마가 길고 후기치마처럼 넓게 퍼지면 풍년이 온다. 오가는 사람들의 선물 보따리가 많으면 풍년이지만, 없거나 작으면 심한 불경기다. 나들이객들의 의상에서도 느낄 수 있다. 역 대기실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기다림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남자들은 돈을 먹기 위해 바쁘게 노력하지만. 여자들은 낭비를 위해 사치에 취하는 모습도 대기실에는 흔하게 보인다. 역으로 오가는 사람들은 항시 바쁘게 움직인다.
양복 차림은 사내들의 멋이다. 늘씬한 청년이 환한 양복에 밝은 넥타이는 환영이나 파티에 가거나 연인을 만나러 나온 모습이다. 검은 넥타이를 매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를 보면 먼저 간 친구들이 생각난다. 주위에는 병원에 누운 친구, 땅속에 누운 친구가 이렇게 좋은 세상의 모습을 보지 못하여 안타깝기 그지없다. 양복은 말 그대로 서양에서 들어온 옷이다. 외국으로 나갈 때 양복을 즐겨 입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막연히 기다리고 있을 때 친구가 나타났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 못 하는 게 젊음이 있다는 느낌인지 눈시울이 뜨겁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이국으로 떠난 후 생각마저 잊었는데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난다. 친구가 먼저 보았는지 멀리서 손을 흔들고 다가온다. 악수보다는 서로가 양팔을 벌려 포옹하고 등을 다독인다. 친구와 잠시 대기실에 앉아 서로의 안녕과 지난 삶의 이야기가 길어진다. 업무상 고국에 들러 사업을 설계할 계획이라고 한다. 수십 년을 혈육처럼 가까이 지내왔는데 서로의 행로가 달라 헤어진 고향 친구다.
계절마다 다르다. 계절의 변화를 현저히 느끼는 부산역 대기실이다. 의상을 보면 계절을 느낄 수 있으며 이곳 대기실은 여름이 가장 붐빈다. 바다에서 피서하려고 해운대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부산 사람이야 바다를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지만, 내륙인은 휴가를 즐기려고 해변의 도시로 몰려든다.
대기실에서 친구와 함께 부산역을 떠나면서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노래한다. 20161021
첫댓글 좋은글 감상합니다.
고맙습니다.
운영자님 수고 많습니다.
항시 건강하십시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