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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고후5장9절)
바울은 세상의 시민 법정에서도 무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하늘을 찌를 듯 당당한 분입니다. 다만 세상의 눈에는 무명인사요 죽은 자 같은 존재감이요 그들에게는 잘못된 인생으로 치부가 되는 분입니다. 이토록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있으나 마나 보나 마나하는 사람입니다. 자존심이 바로 인간의 목숨인데 얼굴을 드러내고 이름을 높이는 게 인생살이의 인지상정인데 그게 안 되니 처음엔 참 갑갑하고 안타깝죠. 사실 성공이라는 미명하에 기독교가 세상 속으로 무한질주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범은 죽으면 가죽을,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기는 것이라는 말처럼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하나님을 마음껏 이용해 먹지 않습니까?
인간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죄인이고, 또 구원을 위해 그 계명을 지킨다고 덤벼 이중 죄인이 되듯 하나님을 몰라서 불신자이고 하나님의 이용해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여 1계명을 위반하는 죄인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사람으로 거듭나 그 하늘을 섬기고 사는 사람은 하얗게 변해 갑니다. 하얀 언어,하연 얼굴, 하얀 행동, 하얀 존재로 투명해져 갑니다. 교만이니 겸손이니 하는 논쟁의 때는 아직 자신의 이야기들을 할 때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느니 마느니 할 때까지는 아직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도가 어쩌고저쩌고 할 때까진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성경을 아느니 마느니 하는 동안에도 그 지식으로 자신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새 언약의 영의 직분, 사람을 살려내는 일꾼들은 어느새 이름이 없습니다. 얼굴이 없습니다. 세상에 계급이 없습니다. 선을 긋거나 울타리를 만들지 않습니다. 무명입니다. 그럼에도 온 세상의 영혼을 비추는 태양과 같은 마음을 가집니다. 나 하나님 앞에선 이 정도야, 하나님이 날 인정하셔 이래 뵈도 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종이야 하는 항변도 없습니다. 당연히 그리스도 안에선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 새 노래를 부를 존재이죠. 언제나 그 생명 안에서 길길이 뛸 대단한 신분이지요. 세상의 질시나 조롱 따윈 개 짖는 소리 정도일 뿐이지요.그러나 표현할 마음도 이유도 없이 묵묵히 투명해져 갑니다. 자신의 이름이나 목숨이나 시민들의 평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절대로 육체대로 계산하지 않으니까요. cafe.daum.net/3lmis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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