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쓰는 칼럼에 올렸던 글입니다
반말이라 죄송하군욥 -_-;
나는 라면을 아주 좋아한다
무엇보다 좋고 싫음을 떠나 일주일에 식사대용으로 5~6 그릇은 먹게된다
얼큰하고 간편하며 가격도 싸다
개인적으로 식료품에 점수를 준다면 계란, 우유와 더불어 3대 "완전식품"이라고
쳐주고 싶을 정도이다
가끔 라면을 먹다보면 도대체 이 라면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것이 미치도록 궁금해 질 때가 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라면이라는 식품을 개발하게 했는지 못 견디도록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름대로 라면에 대해 조사해 보았더니 라면은 나까무라 겐조 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의 한 군인에 의해 개발되었다
1938년 조선의 영토를 놓고 청과 러시아와 대립하던 일본은 자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전투를 해야했고 보급물자는 당연히
제대로 보급될리가 없었다
그래서 식량과 전쟁물자, 무기등은 거의가 약탈과 탈취로서 채워졌다
신의주 부근의 628부대 소속이었던 보급관인 나까무라 중사(당시 32세)는
혹독한 날씨속에서도 견딜수 있는 따뜻하고 영양많은
전투식량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규슈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알린
규슈식 매운 우동을 만들어 팔던 경력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밥이나 빵으로 만든 전투식량이 아닌
밀가루 면을 사용하여 개발한것이 라면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부숴지지 않게 찬물에 담가 반나절을 불린 면에 부패하지 않도록
소금을 치고 그대로 펴서 건조시키면 딱딱한 면이 되었고
고춧가루와 간장을 섞어 진득진득하게 만든 소스를 굳히면 나중에 물에 풀어서
또 먹을수가 있었다
나까무라 중사가 개발한 이 전투식량은 신의주 지방의 일본군부대에
보급되었으며 병사들은 이것을 들고 다니며 약 1주일에서 열흘간의
전투를 수행할수 있었다고 한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나까무라는 고향인 규슈로 돌아왔으나
아비는 이미 고인이 되어있었고 규슈우동가게는 온데간데가 없었다고 한다
나까무라씨는 도쿄의 신주쿠 거리로 이사를 하고 그곳에
"겐조라면" 이라는 우동가게를 차리고 자신이 만들었던
전투식량을 개량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게 이른다
규슈식 매운 우동 국물에 갓 뽑은 면을 말아넣은 이 라면은 사쿠라과자회사에 의해
인스턴트 식품이 되기까지 약 4년간 40만 그릇이 팔렸다고 한다
하루에 약 273그릇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팔려나간 것이다
이로부터 약 10년 뒤인 1956년 한국의 농심은 라면 개발에 착수하고
해피라면과 쇠고기라면을 시판하여 일본의 라면 사업계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다
불행히도 이 엄청난 식품의 개발을 해낸 나까무라씨는
1968년에 돌연 사망하였는데 어느 가부끼 극장 화장실 안에서
어린 미소년과 동성연애를 하던 중에 뇌졸증으로 손쓸 겨를 없이
죽었다고 한다
그가 죽고 그의 젊은 아들인 료 겐조는 겐조라면 체인점을 형성해
일본 전국에 300여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신촌에도 겐조 라면집이 작년인가 하나 생겼다)
나까무라씨의 아들인 료에게는 요리사적인 재능보다
사업가적인 기질이 더 있었던게다
가끔 라면을 먹다보면 도대체 이 라면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것이 미치도록 궁금해 질때가 있다
난 이것이 너무나 궁금해서 앞서 말한 나까무라씨와 라면 이야기를 지어내었다
모두 거짓말 이었다...정말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