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과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이
함께 기획한 전시가 있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이라는 전시 제목으로
유럽 미술과 예술에서.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에 대해
걸작을 소장한 왕과, 걸작을 만들어낸 작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빈 미술사 박물관 대표 소장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이라 해서
오스트리아를 두 번 여행하고도 가보지 못했던
빈 미술사 박물관 작품들을
이렇게도 보게 되는구나 기뻤다.
고종께서 오스트리아랑 수교 맺기 잘 하셨네
안 그랬으면 내가 언제 그 나라까지 가서 보고 오겠어.
친구에게 장난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라 간 친교를 맺는 ‘수교’ 본래의 뜻과는 달리
우리가 오스트리아와 맺었던 수교는 조금 서러운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130년 전 (전시를 시작한 2022년 기준)
이중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동아시아에 구축할 새로운 거점으로 조선을 선택하고
이양선(異樣船)을 끌고 이 나라를 찾아왔다.
그때 조선은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며
1892년 조선과 오스트리아는 조.오 수호통상조약을 맺는다.
그것은 오스트리아의 압박에 따른.
최혜국 대우, 치외법권 인정 등의 조항이 들어 있는
불평등 조약이었다.
1882년 미국과 맺은 조.미 수호통상조약도 그랬듯이
오스트리아와의 불평등한 조약을
고종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맺은 것이다.
고종은 수교를 기념하기 위해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에게 조선의 갑옷과 투구를
선물로 보냈다.
갑옷과 투구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수집품으로 등록되어
빈 미술사 박물관에 보관되었다.
전시를 보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다.
친구와 함께 합스부르크 왕가의 예술품들을 감상하며
화려하고도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감탄하고
알고 있던 내용들이 빨리 떠오르지 않아, 어렵게 머리에서 끄집어내어
눈앞의 작품과 일치시켜보려 애쓰기도 하면서
그 감동의 느낌들을 가슴에 끌어안고
마음은 마냥 부풀어 올라 풍요로웠다.
좀처럼 접하기 힘든 바로크 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근친혼이 빈번했던 가문이어서
황당한 촌수로 얽히기도 한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마르가리타는 엄마의 동생인 외삼촌과 결혼했다.
엄마의 아버지가 남편의 아버지이기도 하니
외할아버지가 시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엄마가 남편의 누나이니
엄마가 시누이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정서로는 참으로 민망한 가족관계가 되어버린다.
전시의 마지막 작품은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갑옷과 투구였다.
예술품들을 감상하느라 들떴던 기분이 숙연해졌다.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외교를 통해서라도 세워보고자 했던
애타는 고종의 절박한 심정이 전해지는 듯해서
오기 전 이미 내용을 알고서 마주했음에도
새삼 서글픔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조선의 자주권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동아줄이든 잡아보고 싶었던, 잡아야 했던
초라한 고종의 심정이 느껴져서
기개 넘쳐 보여야 할 갑옷과 투구가 애닯게 내게로 다가왔다.
한 젊은 청년이
갑옷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오랫동안 그 앞에서 자리를 떠날 줄 몰르고 서있었다.
그 시선은 감상을 넘어 그 갑옷에 서려있는 사연을 읽고 있는 것일 거라고
내 맘대로 짐작하였다. 고종의 울며 겨자 먹기 불평등 조약.
전시장 관람을 마치고 친구와 걸으며 내가 말했다.
이번 전시가 있었음이 감사한 것은
많이도 보고 싶었던
벨라스케스의 마르가리타 공주의 모습도
얀 브뤼헬의 화려한 꽃다발 그림도
주피터와 머큐리가 등장하는 루벤스의 작품도,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지만
무엇보다도
130년 만에 고국을 방문한, 고종의 갑옷이 갖고 있는 역사의 한 부분을
알게 된 것이었다고.
나는 그렇다고.
첫댓글 보관을 참 잘 했네요.
좀이 쓸고 자연 부식이 있을텐데
금방 만든 옷 같습니다.
촬영도 생생하게 잘 하셨습니다.
행사에 입는 옷 같아요.
전장에서는 너무 얇아 보입니다.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에 머물다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무기를 막아내기에는 너무 얇아 보였습니다.
합스부르크의 철제 갑옷을 보고 난 후라서
우리 갑옷이 너무 약해 보였고
그래서 더 애닯게 느껴진 것도 같습니다.
지언님~ 감기 빨리 뚝 떼어내세요.
슬픈 역사에
왕은 얼마나 애닯았을지..
고종께서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셨을까 생각이 듭니다.
솔휘님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반갑습니다.
수필방에 자주오시고
좋은 글도 보여주세요.
@헤도네 네네 고운밤되세요
조선말기의 애달픈 사연이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만,
여하튼, 함스부르크 왕가와 비교가되니,
마음 상하지만,
600 여년을, 유럽을
주름잡던 왕가도
무너졌네요.
그래도 그들이 남긴
문화 예술은 찬란하였습니다.
헤도네님, 덕분에
잘 읽어습니다.
일본의 강화도 조약을 비롯해서
서구 열강들의 함포사격에 시달리며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억지로 맺은 수호통상조약들이었지요.
교과 과정에서 배웠을 텐데 오스트리아는 기억나지 않아
전시 관람 오기전 미리 찾아보기로 알았습니다.
오스트리아 너마저도... 였답니다.
조선 말기를 어렵게 보냈던 비운의 황제 고종을 생각하면 서글프고 애처롭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불평등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던 절박합을 범인이
어찌 알겠습니까 마는 백성들 모르게 눈물도 많이 흘리셨을 것으로 압니다.
오스트리아는 걸출한 예술가를 배출한 문화 강국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예술작품을 전시한다고 하니 한 번 가봐야 하겠습니다. 고종의 선물도 보고싶고요.
역사적 배경과 함께 자상한 소개 감사합니다.
일본과 서구 열강의 압력에 시달리던 역사를
다시 찬찬히 되짚어 보면서 고종이 너무 안스러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단 하루인들 마음이 편한 날이 있으셨을까 생각들었습니다.
전시는 3월 15일까지인데
예매 티켓은 다 매진되었습니다.
당일 티켓을 구해야 하니
가시기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통화 한 번 해보시고 가세요 화암님.
아 지금도 하고 있네요.
물론 정략결혼이야 필요악이라 어느 왕조나
왕가에도 있었지만, 합스부르크 왕가는 유난히
심했어요. 그래서 근친혼의 부작용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왕가이기도 하구요.
넘넘 좋은 작품들 눈호강 제대로 하셨겠어요.
그러게요. 고종은 일본을 비롯하여 동서양에서
완전 동네북였어요.
헤도네님 덕분에 전시회 이야기도 듣고
더불어 고종의 서글프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이야기를 들을 수있어서 넘넘 감사드립니다.
고종의 수난을 생각하면 참 마음 아프죠.
가마로 피신한 아관파천
아내가 살해당한 을미사변
그것을 목격하고 독살 불안증에 시달려
본인 앞에서 계란을 깨주거나 통조림을 따주어야 드셨다지요.
무능한 고종이라 말들 해도
강대국들 힘 앞에 누군들 무슨 수가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전시는 원래 3월1일까지 예정이었는데 연장해서 3월15일까지 한다네요.
예전 오파상을 할 때, 영국 공급자 손님이 '너희 나라는 일본 차가 없는 세계 유일의 나라'라고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절치부심, 아픈 역사를 잊지않고 온 힘을 다해 여러 분야에서 극일을 했고, 이제 경제 문화 군사 분야에서 세계의 으뜸 국가로 우뚝 서고 있습니다. 정치가 양극화를 넘어서고 통일을 이루어낸다면 우리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천명은 다 해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고종의 갑옷 선물을 보며 여러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올랐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선물인데
압력에 못 이겨 억지로 맺은 불평등한 수교를 기념해 보낸
선물이라 하니
갑옷이 어찌나 처연해 보이던지요.
이제 겨울이 끝나가니 빙판의 위험도 없어지고
마음자리님을 위한 봄이 오는 것 같습니다.
봄의 기운 듬뿍 받으며 하시는 운전은 왠지 덜 힘드실 것 같습니다.
제목의 의미를 읽어가며 알게 되고
덕분에 역사 공부 잘 했습니다.
벨라스케스 루벤스보다 우리 갑옷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은 한마음 일 것 같습니다.
질 읽었습니다.건필 유지하시고 행복하세요.
조선이 서구 열강의 압박으로 억지개항 했던 것은
다들 아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한 번 되짚어 보자는 의미로 글 썼습니다.
늦게 읽어 댓글은 안 썼지만 ‘모자’ 게시글 잘 읽었습니다.
한스님 서정적이고 순둥하신 것 같아서 다혈질 많은 한국에서
어찌 잘 적응하실까 했더니
모자 상인에게 잘 되받아 치셔서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한스님 파이팅~ ^^
고종의 외교 선물로 오스트리아에 갔던 갑옷과 투구가
다시 돌아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저는 지난번 한국 방문때 처음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을
갔었습니다 . 그곳과 가까운곳에서서 10년도 더 넘게
살면서 왜 가보지 않았을까 . 생각을 했습니다 .
외국 관람객이 많은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
덕분에 또 배워 갑니다 .
어머나!!! 아녜스님~^^
저도 그랬습니다.
갑옷을 바라보는데 많은 생각
많은 이야기가 읽혀졌습니다.
마침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 있어서
고종이 예우 받은 느낌이 들어
고종의 영혼이 위로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요.
강대국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조국을 떠나
130년 만에 방문한 조국이 이렇게 강대국이 되어있어서
갑옷도 편안하게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갈 것 같았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평안하세요.
여러가지를 떠올리게 하는 글입니다
그래서 빈약해 보이는 갑옷과 투구가 처연하게 보이기도 하구요 당시의 시대상을 보는것 처럼 ~
고종,
무당의 말을 귀담아 듣고는 왕궁 대문간에 솥단지를 묻었다는
대한제국의 임금과 신하들 - 당시의 어리석은 상황을 살필때마다 서글프다는 생각을 하고는 하지요
그 갑옷을 선물하게 된 역사적 배경
앞서 전시되어 있어서 보았던 400년 더 일찍 만들어진
막시밀리언 1세의 견고하고도 예술성 뛰어난 철제갑옷과 비교되면서
처연해 보이더군요.
고종, 답답하신 나랏님이셨지만 그 수난을 생각하면 연민이 생깁니다.
단풍님~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헤도네님 미리 공부 많이 하고 전시회를 가셨군요.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강한 힘과 경제력 부럽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부귀영화가 허망하다는 생각도 하였어요
저도 그랬답니다.
권력도 부귀영화도 영원한 것은 없으니
그 빛나던 가문의 허망함이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