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 장지동성당 연가(牆枝洞聖堂 戀歌) 4 - 부부(夫婦), 부부(不否) / 정연혁 신부
발행일2021-03-14 [제3235호, 3면]
소시민들이 모여 사는 우리 본당에서 부부들 이야기를 듣는 것은 여느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흥미진진합니다. 부부 역할이 사회적으로 변화된 것은 제가 쓰지 않아도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남편은 바깥에서 아내는 집에서의 역할이 강조되었다가, 이제는 맞벌이에 육아와 가사를 같이 하는 다양한 세대가 우리 지역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두서없이 몇 가지 어록을 소개합니다. “아이고, 살긴 몇 십 년을 살았어도 모르겠어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사는 것이지요.” “신부님, 저도 할머니인데 삼식이 밥해주는 것은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는데 그는 전혀 이해 못 해요. 방에 들어가서 컴퓨터하고 하루 종일 지내다가 호령만 하네요.” “더 늦기 전에 이혼을 하려고 친구들에게 물어봤더니 그러데요. 고놈이 고놈이니 그냥 있는 놈 키워서 사는 것이 낫다 하네요.” “그때는 몰랐는데 없으니 그 사람이 제 큰 대들보였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이런 수많은 부부들의 이야기 가운데 저에게 짜릿한 결정적인 한 마디. “어휴, 저도 신부님처럼 속 편하게 혼자 살 걸 그랬나 봐요.”
사실 신부인 저보다 결혼 생활을 하는 분들이 더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시리라 생각합니다. 결혼 생활을 직접 하시면서 부부가 겪어내는 삶은 종합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부부의 삶을 가로지르는 마음과 감정의 선은 그 두 분만의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고유한 부부의 삶을 서로 나누는 자리들에서 제가 상상하지 못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시기 때문입니다.
부부들의 삶을 보며 가끔 아이러니한 것이 있습니다. 신나게 남편 흉을 보다가 전화가 오면 목소리가 달라지는 부인들, 저와 술잔을 짱짱 부딪히다가도 시계 보고 주섬주섬 일어나는 남편들…. 그분들이 저와 계실 때 했던 배우자에 대한 숱한 뒷담화는 사실은 뒷담화가 아니라 팔불출이라는 것을 들키기 않기 위한 연막전술이었다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물론 힘든 부부들도 많이 계시지만 평생을 같이 살아가는 분들에게 ‘배우자’는 끊임없이 서로 ‘배우자!’라고 하며 서로를 사랑해가는 과정이고 그것 때문에 행복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모든 시간을 넘어선 노년 부부가 서로 힘든 몸 의지하며 미사 오시고 걷는 것도 돕고 하는 것을 보면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부부(夫婦)는 ‘아닌 것을 아니라 하지 않는’ 부부(不否), 모든 삶의 경로에서 그 숱한 어려움들을 넘어서고 헤쳐 나가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부부들을 보면 그렇게들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삶에 원숙해진 어느 날에는 살아가는 지혜와 인생을 넉넉히 관조하는 너그러움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시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하늘로 돌아가시나 봅니다.
같이 있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는 부부들….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인 생명과 사랑을 ‘그 어떤 것도 아님이 아니니, 모든 것은 그런 것이고, 사랑에 따라 그 이상의 것’이라는 삶의 고귀한 지혜와 확신으로 보여 주시는 부부들…. 부부들께 감사합니다. 모두 많이 사랑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정연혁 신부(제2대리구 장지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