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냐면] 구자범에게 지휘봉을 돌려주라! / 김상봉 |
사필귀정이란 말도 있지만 때로 정의의 여신은 너무 늦게 그 저울을 들고 나타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 4월에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전 경기필 지휘자 구자범의 연관검색어를 조작했던 사람들이 지금에야 붙잡혔다 한다. 사연인즉 여러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구자범을 음해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그의 이름만 치면 자동완성기능을 통해 변태니 어쩌니 하면서 명예훼손 글로 자동적으로 이동하도록 한 것인데, 사이버사령부나 국정원만 댓글공작을 하는 줄 알았더니 보통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당시 이를 발견한 구 지휘자가 4월에 이미 수사의뢰를 했는데, 여러 달 뒤 경찰이 범인들을 잡고 보니 그 일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경기필 단원들이라 한다. 최근 <고발뉴스>의 보도를 통해서도 5월에 있었던 구자범 성희롱 파문이 일부 단원들에 의해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거니와, 이런 보도들이 사실이라면 이번에 기소된 사람들을 비롯해 경기필의 일부 단원들이 4월에 인터넷 공작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뒤에 5월에는 오프라인 언론 매체를 통해 구 지휘자를 성희롱범으로 몰아 음악계에서 영구히 추방하고 매장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것이 틀림없는 일로 보인다.
도대체 까닭이 무엇일까? 한 단원이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에 따르면, “구자범 선생님처럼 실력 있고 단원들을 아끼고 자기 사리사욕 챙길 줄 모르는 지휘자는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는데 그런 사람이 왜 그렇게 미움을 받게 된 것일까? 고발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또다른 단원은 “구자범씨는 지휘자로 부임해 온 이후, 경기필의 레퍼토리를 … 국내에 공개되지 않은 교향곡 등으로 교체했으며, 이 때문에 고강도 연습이 이어지자 일부 단원들은 ‘외부에 레슨 나갈 시간이 줄어든다’며 크게 반발했었다”고 증언했다 한다.
그가 아직 경기필에 몸담고 있었을 때 내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이 지휘자라면 69점짜리 단원을 내보내고 71점짜리 단원을 영입해서 조금씩 교향악단의 소리를 더 좋게 만드시겠어요, 아니면 그냥 모든 단원들을 다 데리고 서로 격려하면서 화음을 만들어가는 길을 택하시겠어요?’ 다소 난감한 질문이었으나 나는 잠시 생각한 뒤에, 나라면 단원들을 그렇게 경쟁을 시켜 상시적인 불안감 속에서 연주를 하게 하는 것보다 다소 서툴더라도 서로 신뢰하면서 인간적인 화음을 만들어 내는 길을 택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는 안도의 한숨 비슷한 소리를 내더니,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지휘자로서 그게 늘 어려운 물음인데 저도 선생님하고 생각이 같아요” 하고 화답했다.
나는 구 지휘자를 아끼고 사랑한다. 하지만 그 까닭은 그가 100분이 넘는 교향곡 악보를 외워서 지휘하기 때문도 아니고, 교향악단 단원들에게 노동조합을 만들라고 종용하기 때문도 아니며, 운동권도 아니었다면서 5·18 30주년 기념연주를 기획할 만큼 역사의식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우리 시대에 그토록 섬세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인간, 성찰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소중히 지켜주어야 할 가치가 있는 예술가인 것이다. 그 성찰은 언제나 건강한 인간성에 토대를 두고 있었고 온전한 인간성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 도구화되어 가는 우리 시대에 음악까지 허울 좋은 예술의 이름으로 인간을 수단화하고 살인적인 경쟁 속에서 인간성을 파괴하는 길을 걷는 것을 스스로 거부했던 것이다.
그 신념에 따라 그는 광주에서도 경기도에서도 단원을 내보낼 수 있는 지휘자의 권력을 단 한 번도 행사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가 단원들에게 요구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연주에서의 성실함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단원들을 철저히 연습시켰고 또 단원들 스스로도 더욱 열심히 연습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일부 단원들은 그 요청에 대해 비열한 모함으로 응답했다. 단지 그들이 레슨을 해서 부수입을 얻을 시간이 줄어든다는 이유 때문에! 그런 비천한 소란에 직면해 구 지휘자가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사표를 던지고 떠나버린 것은 참으로 그 사람다운 일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원래 그는 진리를 구하는 철학도가 아니었던가!
이런 현실을 보면서도 여전히 나는 69점짜리 연주자도 그것 때문에 해고당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당연히, 연주자에겐 연주뿐만 아니라 레슨도 중요한 교육적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예 본말이 전도되어 아름다운 연주보다 레슨을 해서 버는 돈이 더 좋기 때문에, 연습 많이 시키는 지휘자를 몰아낼 궁리나 하고 있는 연주자들이라면,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회개하고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 그대들에게 눈곱만큼이라도 자유인의 긍지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첫댓글 음악을 생으로 하시는 단원분들 목소리를 듣고싶네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시는 초심을 잃지 않으시길 바래요..
구지휘자님의 연주를 넘넘 고대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런 진실이 밝혀져서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드네요...
네..코난님..정말 다행이죠..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성찰, 그리고 그에 합당한 절차가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처벌 문제가 아니라 진실 규명과 진심어린 대화와 소통...아, 넘 소원한 기대일까요?
세상에 아직도 정의라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든 것이 원래의 자리를 되찾고 순리에 따라 흘러가는 사회가 될거라 믿습니다. 진실이 규명되고 억울함이 벗겨져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가라얀님의 진심 가득한 목소리가 얼마나 큰힘이 되는지 모른답니다..감사해요.*^^*
" 아름다운 연주보다 레슨을 해서 버는 돈이 더 좋기 때문에, 연습 많이 시키는 지휘자를 몰아낼 궁리나 하고 있는 연주자들이라면,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회개하고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
매우 공감하는 한 구절입니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진단한...속이 다 시원한 글이네요.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으세요!
경기필의 해당 단원들은 이 소리들을 듣고 있을까요?
경기필 연주회 때 우리가 환호하고 찬사해 마지 않았던 일부 단원들은 한낱 악기를 연주하는 기능인에 지나지 않았는지 ...
이 사태를 보면 볼수록 씁쓸한 마음뿐입니다.
저도 기립에.... 브라보....많이 했는데요..-.-
십 여 년 만에 다시 뵌 김상봉교수님~서울에서 변방의 대학까지 금요일밤마다 세미나에 오셨어요.
그분의 목소리라면 자다 깨어나도 일어나서 따를 겁니다.
저도 조금이나마 필력이 있다면, 영혼어린 글을 쓰고 머리띠 묶고 나서고 싶은 심정이니까요.
가슴을 울려 주시네요.
뜨거운 가슴으로 저도 외치고 싶어요.
구지휘자님의 음악을 돌려주세요. 이해타산없이 정직하고 뜨거운 심장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아, 하늘나리님의 감성 멘트는 정말 밤하늘의 별빛과도 같아요..
이해타산없이 정직하고 뜨거운 심장..저 역시 공감 백배해요..
다시 열정적인 연주를 듣고 싶어요,,,ㅠ
맞아요..내일님~동두천 고사리손들을 위한 청소년음악회에서도 열정어린 연주 아낌없이 다해주셨던
구자범지휘자님과 경기필단원이었어요..제가 청소년음악회에서 감동을 받을 줄 정말 몰랐답니다.그것도 동두천에서 말이죠..에휴...내일님과 함께 연주회에 발 동동 구르며 입장하였던 그때가 새록새록 기억나네요..
그나저나 내일님~어찌 지내시나요..뵌 지 넘 오래되었네요..에궁~~ㅎ
@사랑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 함 올라오셔야죠....언제 오시죠? 코심 말1?
@내일 네.아마 그쯤 될 거 같아요.정말 뵙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