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의 대상인 싱글과 사회적 사실로서의 혼자 살기는 다르다. 화려한 싱글에는 리얼리티가 없다. 독거노인에게는 삶의 판타지가 없다. 젊고 잘생긴 남자가 아니라 늙고 추한 남자가 요리책과 인문서를 사는 모습을 마주할 때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보면 된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사월의책)는 리얼리티가 없기에 일장춘몽에 불과한 싱글과 하루가 다르게 메말라 가는 노인의 피부처럼 한순간도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를 허용하지 않는 막막한 인생의 양 극단 사이에 서 있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사회학의 힘을 빌려 근거 없는 판타지를 숨 막히는 리얼리티로, 불안한 리얼리티는 달라진 삶의 모습을 기대하는 판타지로 바라보며 균형을 맞춘다.
이 책은 혼자 사는 사회의 도래를 담담하게 사회적 사실을 받아들인다. 독일에서 유학한 저자는 가족 구성은 잠시 보류했다. 가족으로부터의 분리가 우연이었던 만큼이나 결혼 보류도 대단한 ‘주의’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렇게 ‘혼자 사는 삶’을 시작했다. 1인 가구라 부르기엔 거창하고 자취라는 단어로 부르는 게 낫다. 노 교수는 “혼자 사는 삶은 때론 자유롭고 어떤 때는 처량하다”고 썼다.
학창 시절에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반지하 방에서 혼자 자취를 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비집고 조각난 햇볕이라도 들어와 주면 감사했다. 바퀴벌레는 참을 수 있었다. 집을 비운 어느 날 창문으로 좀도둑이 들었다. 알루미늄 방범창은 맥없이 끊어져 있었다. 어질러진 방을 치우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의 그 찜찜함이라니. 방을 통째로 빨아 헹구고 싶었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빨리빨리 진행된 근대화의 상징인 한국의 경우, 모든 분야에서 압축적 변동의 흔적이 나타나는데 가족 형태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급격한 노령화, 저출산 경향과 더불어 한국의 가족 형태도 눈에 띄게 압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
-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저자는 ‘혼자 살기’의 삶이 가진 의미들, 그 다양한 고통과 즐거움의 문제들을 이 책에 담았다.
불과 30여년 전인 1980년 한국 사람의 절반 정도는 5인 이상으로 구성된 가구의 구성원이었다. 2인 가구(대부분 자녀가 없는 부부가구)는 5인 이상 가구의 20% 정도에 불과했다.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4.8%라서 사회적으로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할 만큼 소수였다. 그 이후 변화의 방향은 명확하고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5인 이상 다인 가구는 2012년에 전체 가구 중 7.2%로 축소되었다. 반면 1인 가구는 급증했다. 2012년에는 무려 25.3%로 늘어났다.
2035년엔 어떨까. 이 책은 “장기추계를 살펴보면 더욱 극적인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 20대인 사람이 40대가 되면 1인 가구는 전체의 35%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때쯤이면 1인 가구는 자녀 없는 부부가구나 자녀가 있는 부부가구와 같은 핵가족조차 제치고 가장 많은 가족의 형태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혼자 살기의 거짓과 진실을 일러주는 대목이 재미있다.
첫 번째 통념은 ‘1인 가구의 증가는 결혼을 늦추는 젊은 세대의 증가 때문이다’인데, 1인 가구의 확대는 젊은 세대가 아닌 노인 인구에서 가장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두 번째 통념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야말로 역시 1인 가구 증가의 주범이다’인데, 사실은 다르다. 노 교수는 “향후 1인 가구 중 미혼가구 구성비는 점차 감소하고 배우자 별거, 사별 및 이혼가구 구성비는 증가하는 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한다.
세 번째 통념은 ‘1인 가구는 가족이 없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지만 2010년 남성의 17.5%는 배우자가 있음에도 1인 가구를 구성했다. 숱한 ‘기러기 아빠’를 떠올리게 된다. 2035년이면 배우자가 있음에도 1인 가구를 구성하는 남성 비율이 더 높아져 전체 남성 1인 가구의 27.3%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될 전망이다.
네 번째 통념은 ‘결혼을 하면 혼자 살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이다. 이 또한 틀렸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부부가 함께 사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끝없는 결혼과 이혼, 재혼으로 인해 가족관계는 더 이상 안정적인 둥지가 아니요, 수시로 흔들리는 사건의 현장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련되고 능력도 있는 화려한 싱글’이라는 게 다섯 번째 통념이다. 노 교수는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리다”고 썼다. 그렇게 살 수 있다면 혼자 사는 걸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런 삶을 사는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이 경우에 속하는 사람은 전체 1인 가구 중에서 아주 예외적인 사례라고 이 책은 말한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싱글의 모습은 화려하지만 혼자 사는 것이 늘 그렇게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