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할머니의 묵주신공 / 오선주
발행일2021-03-14 [제3235호, 3면]
할머니 방에는 성모님과 초 두 개 그리고 할머니의 묵주가 항상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었다.
어린 시절, 명절 때마다 할머니 댁에 가면 모두 시끌벅적 놀고 있을 때 할머니는 그 시끄러움을 뒤로하고 무언가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셔서 주문을 외우듯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셨다.
호기심과 두려움에 나는 할머니께 다가가 “할머니 뭐해?”라고 묻자 할머니는 “묵주신공 한다”고 답하셨다. 첫 영성체 이후 묵주신공이 묵주기도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명절 때 할머니가 밖으로 나가시는 것을 목격하면 조용히 따라 나가서 같이 묵주기도를 바쳤다.
그 후로 명절 때가 되면 나는 늘 할머니의 묵주기도 파트너가 되었다. 할머니는 방에서 묵주신공 전에 꼭 성모상 옆에 있는 저금통에 동전을 넣으시고 촛불을 켜셨다. 그 옆에는 꼬불꼬불한 글씨로 가족을 위한 할머니 기도가 적혀 있었다. 그런 할머니의 기도는 내가 로마에서 10년간 학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까지 이어졌다.
어느 일요일 새벽이었다. 시뻘건 불이 우리 집을 덮쳤다. 할머니가 촛불을 켜고 묵주기도를 하시다가 그 초가 넘어졌는지 이불에 옮겨붙으면서 불이 난 것이었다. 자고 있는 아들을 깨우기 미안해 나름 꺼보려 하시다가 오히려 크게 불이 번진 것 같았다. 119에 신고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구급차로 이송하며 이리저리 뛰면서, 난 처음으로 하느님과 성모님을 원망했다. 가족들에게 사고 소식을 알리던 중 의사이신 셋째 작은아버지께서 침착하게 “화상 환자가 있느냐”고 물으셨다. “없다”고 답하는 순간,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갑자기 성당으로 달려갔고 저녁 미사에 참례했다. 영성체 시간에 잠시 동안 하느님을 원망했던 죄송스러운 마음과 함께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알았다. 이 모든 것이 다 할머니의 기도 덕분이었다는 것을.
할머니는 당신이 ‘많이 못 배워서 할 줄 아는 기도가 묵주신공뿐’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당신의 기도가 부족하고, 더 좋은 기도를 못해 우리 가족에게 늘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런 할머니께서 이제 하느님께 가시려고 준비를 하시는 듯하다. 그렇게 할머니의 기도는 나에게 가장 큰 용기였고 위로였고 버팀목이었다.
할머니의 묵주신공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가장 위대한 기도였다.
오선주(루치아·제1대리구 진사리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