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서 민원봉사실에 앉아 있어보면 세상은 요지경 별 희한한 사람들이 다 온다.
. 휠체어에 앉아 들어오는 사람 . 개를 끌고 들어오는 사람 . 외국에 살고 있는데 시간 내서 서울을 왔다고 하며 으시대는 사람 . 물 먹을 데 없느냐 화장실은 어디냐 ? . 국민은행이 어디냐 법원이 어디냐 ? . 숨이 넘어갈것 같은 노쇠한 사람이 겨우 겨우 걸어 들어오는 사람 . 영화배우나 가수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직원들이 싸인을 요청하기도. . 세금을 이렇게 많이 받아 먹는데가 어디 있느냐고 고함을 치는 사람등 별의 별사람이 다 온다. 하긴 경찰서와 세무서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이 좋을리야 없지만 말이야.
내 나이 내년이면 우리나이로 80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평생에 지금까지 조그만 맹장수술을 받아 본것 외에는 큰 수술을 받아 본 적이 없고 특별한 큰 사고도 없이 그냥 그냥 넘어 왔다.
단지 느지막하게 사업인가 뭔가 한다고 한 20년 가까이 하다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가족들을 엄청 고생 시킨것이 마음에 걸린다. 근본적으로 나 자신을 살펴보면 사업을 할 재목이 못 되는데 겁없이 사업에 달라붙었다가 이런 망신을 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주위에 친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는걸 보면서 그나마 어느 정도 회복하여 세상 살아가는 걸 보면 인생 참 알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하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 새벽의 고요한 적막속에서 나는 점점 더 작아지기도 하며 거인이 되기도 하고 내가 내 자신에게 이방인이 되어 서먹서먹하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알베르도라고 하는 의사는 이미 일흔 고개에 들어 육신은 쇠퇴했지만 마음은 조금도 늙지않고 이따금 사랑의 불길이 타오른다고 했는데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갈댓잎 서걱이는 소리가 어둠속에 스산하게 묻어오는 봄밤이다. 202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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