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세미나/간담회 )
정형선 교수 초빙 '현안을 짚다'
의료계 현안 ㅡ 의대생, 의사 정원조정
11.9 목 4.30 -6.00
세종 kdi 회의실 (444호)
일반비공개.
inviteed /pre-confirmed only
세미나후 간단한 뒤풀이
의대 정원 대폭 늘려야 한다
연세대학교 정형선 (보건행정학)
‘의대정원 늘려야 한다’. 2010년 본인이 한겨레신문에 썼던 칼럼 제목이다. 의사인력이 과잉이라는 의사들의 주장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있던 보건의료 학계와 정책담당자들은 이러한 칼럼에 적지 아니 놀랐다. 2000년대 초에 연간 3,500명 수준이던 의대 입학생이 2007년까지 3,058명으로 감축된 직후였기 때문이다. 2012년, 보건경제정책학회는 다시 의사부족 문제를 학술대회의 주제로 다뤘다. 의대 증원이 드디어 정책 아젠다로 올랐고, 보건복지부는 이를 검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의사단체 회원들은 성명서 등을 내면서 반발했고, 정부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 뒤로 의대 정원은 요지부동이었고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이었다. 그러는 사이 병원의 버팀목이던 인턴, 레지던트의 공급이 줄어들면서 병원은 여기저기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급속한 인구고령화로 의료수요는 급증했고, 살만해지자 피부미용과 성형은 남녀노소의 관심사가 되어갔다. 의사부족은 차츰 전방위적인 현상이 되었다. 일부 전문과목들은 전공의가 지원을 안 해서, 일부 지역은 필수진료를 해줄 의사가 없어서, 큰 병원은 수술할 의사가 모자라서, 보건소는 공중보건의사 구하기 힘들어서 난리가 났다. 기초의학과 감염병 분야에, 의과학과 의료정보 분야에 의사가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는 것은 이에 비하면 사치다. 기존의 의사들은 몸값이 오르니 표정 관리에 바쁠지 몰라도, 간극을 메워야 할 수련전공의들은 살인적인 연속 근무에 몸과 마음이 지쳐갔고, 3분 진료에 주눅이 든 환자들은 눈치 보여서 의사 선생님에 제대로 된 질문 하기가 두렵다.
의사 부족의 난맥상이 계속되자 2020년 드디어 정부는 의대정원을 4백명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의협, 전공의협의회, 공중보건의협의회는 역시 반발했다. 거리까지 나서겠다고 했고, 의대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겠다고 했다. ‘사다리 걷어차기’. 나는 이미 올라가 있으니 남들은 올라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한심하게도 정부는 다시 두 손 들었다. 코로나 상황을 핑계 삼았지만, 앞으로 의대증원 논의를 의정협의를 통해서 하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증원 반대를 집단 이익으로 하는 단체의 허락을 받아서야 증원 정책을 하겠다는 완벽한 항복 선언이었다. 그 뒤로도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 의사부족을 알리는 소식은 간단없이 보도되었다. 코로나 상황이 호전되자, 다수 국민의 비등한 여론을 의식한 정부는 의대 증원의 칼을 다시 뽑았다. 이번에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도 분명한 의지를 갖고 의대 증원을 추진하는 듯하다.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해묵은 반대논리가 다시 울려퍼진다. 처음에는 OECD통계나 추계연구의 결과를 폄훼하거나 심지어 엉터리라고 강변하다, 버티기 힘들어지자 각종 억지 명분을 들이대며 반대한다. 총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고 분포가 문제라든가, 앞으로 인구가 줄기 때문에 의사가 남아돌게 될 것이라든가, 의대정원이 늘어나면 의사의 질이 떨어진다든가, 의사들은 ‘유인수요’를 창출하니까 많아지면 국민의 부담이 늘어난다든가 등등이다. 과연 그럴까?
첫째, 우리나라의 인구 천 명당 ‘임상의사’ 수는 한의사 빼면 2.2명이다. OECD 평균 3.7명의 절반을 갓 넘는 수준으로, 터키와 함께 꼴찌를 다툰다. 우리의 의대졸업생 수는 한의사를 빼면 인구 십만당 6명으로 OECD 평균 14명의 절반도 안 된다. 인구 대비 의사배출 인력이 줄어드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 2007년에 3,058명까지 줄인 결과가 몇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도 모자라서 아우성인데, 갈수록 그 격차는 벌어진다. 보건의료제도의 핵심은 의사인력이다. 우리나라의 의료법은 어느 나라보다도 특히 의사에게 모든 결정과 판단의 권한을 주고 있다. 의료서비스, 간호간병서비스, 의약품과 치료재료의 처방은 기본적으로 의사가 한다. 의사 인력이 적정하게 공급되지 않으면 의료제도는 멈춰서고 국민의 의료접근성은 제약된다.
둘째, ‘총량’ 부족의 통계를 부인하기 힘들 때 의대 증원 논의를 피하는 수단으로 가장 많이 동원되는 수사가 ‘분포가 문제이지 총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의사 수는 ‘총량도 부족하고 분포는 더 문제’라고 하는 것이 맞다. 전문과목 간의 분포와 지역적 분포는 중요하다. 하지만 분포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총량이 늘어야 한다. 의사 총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필수의료와 취약지역에 의사들이 안 가도 해볼 도리가 없다. 우리나라와 같이 인력에 대한 정책 수단이 의대정원 외에 별로 없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전문과목 선택과 개업장소의 선택은 개인에게 맡기고 있다. 의사 총량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분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서 흐르는 것은 부인한다고 부인되지 않는다. ‘낙수효과’를 애써 부정하고 싶어 하지만, 이는 엄연한 세상 이치다. 독일은 보험의사의 지역쿼터라는 강력한 배분력이 정부에 있음에도, 의사 총량도 배가하고 있다. 독일처럼 지역별로 보험의사가 할당되어 있다면 그나마 균형배치를 시도해볼 수도 있겠지만, 배분권도 없는데 배출은 절반도 못하고 있으니 해결방법은 없다. ‘균형’을 논하기 이전에 ‘총량’이 문제인 것이다.
셋째, 우리 국민의 의료수요는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 급속한 고령화로 만성질환자도 늘고 의료수요는 급격히 팽창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1인당 연간 17회 외래진찰을 받는데, 이는 OECD 평균 6회의 세 배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의사는 1인당 연간 6천명 이상의 환자를 본다. OECD 평균 1천7백명의 서너 배다. 앞으로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인구고령화와 개인 의료수요의 증가에 비하면 그 영향은 미미하다. 의사 수는 부족하지만, 의사 개개인이 열심히 일해서 국민의 의료접근성을 유지시켜주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서 컴퓨터의 진료기록 읽기에 바쁜 의사선생님에게 질문 한번 제대로 못 하고 나올 때의 씁쓸함은 우리 사회의 업보요 지난 20년 정책실패의 대가다. 누구를 원망하랴. 이러한 잘못된 정부 정책을 용인한 우리 국민의 짊어질 몫이다.
넷째, 의대정원이 늘어나거나, 지역할당제를 하면 경쟁 약화로 의사의 질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뜻있는 의사들은 의사 업무 수행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마음’이며 높은 ‘시험성적’은 아니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의학을 이끌어가는 소수의 인원은 전국적인 수재이면 좋겠지만 전국의 의사가 모두 수재일 필요는 없다. 이러한 수재들을 모두 흡수하지 못한다고 해서 입학생의 ‘자질’을 문제시한다면, 지금의 중견 의사들은 상당수가 의대생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들이 입학할 당시의 의대는 수재들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현장의 개원의사나, 피부미용에 주력하는 피부과 의사나, 쌍꺼풀 수술을 하는 성형외과 의사가 되기 위해서 전국의 수재가 달려들 필요는 없다. 현재와 같은 전국 상위의 시험성적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초래한다. 의대의 높은 입학성적은 입학생이나 그 부모들의 기대수준을 불필요하게 높인다. 의사의 소득은 국민 일반과 환자의 부담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높으면 안 된다. 소득이 기대만큼 높지 않았을 때 이들이 느끼게 될 상실감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전국적 수재가 의대에 몰리게 되면 그만큼 자연과학, 공학, 기타 사회의 적재적소에 투입될 인력들이 부족해진다. 이는 사회적 손실이다. 의대 증원이 논의되자 이공계 인력이 의대로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는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의대선호현상은 의사인력의 과소배출로 의사들의 몸값이 올라가면서 가속화되었다. 당장 의대 못 가서 이공계로 갔던 1-2천명이 의대로 빠져나간다고 전체 이공계가 얼마나 더 흔들릴 것인가. 이미 의대 선호현상은 벌어져있는 현실이다. 처음 몇 해 정도 영향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대 증원이 계속되면 과열은 차츰 완화될 것이다.
다섯째, 의사 수를 늘리면 안 되는 이유로 의사협회는 ‘의사유인수요’ (physician induced demand: PID) 이론을 내세운다. 의사는 공급자면서 동시에 환자의 대리인이 되어서 의료의 수요를 결정하니, 불필요한 의료수요도 창출할 수 있고, 그러니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비가 높아져 환자의 부담이 는다는 얘기다. 이것은 의사들 선도해야 할 의사협회가 할 주장은 아니다. 의료비가 많이 드니 의사를 부족하게 놔두라는 주장이겠으나, 세상은 거꾸로 작동하고 있다. 의사가 부족하니 의사에 대한 보수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이는 다시 의료서비스 수가에 반영되어 가격의 상승과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높인 것이 지난 20여 년 ‘환산지수 계약체계’의 모습이었다. PID를 의사 수 억제 주장의 논거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PID는 의사인력이 과잉일 때 문제가 된다. 의사인력 자체가 부족한 우리와 같은 상황에서는 의사의 증가는 필요한 의료수요를 충족시킨다. 이를 F. Carlsen(1998)은 ‘가용성 효과(availability effect)’라고 불렀다.
의사 과잉을 걱정하지 말라. 의과대학 출신에게 적합한 일은 환자 보는 것만이 아니다. 제약회사, 연구소, 보건소도 의사인력을 필요로 한다. 워낙 희소가치를 누리다보니 웬만한 연봉으로는 모시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의사 인력의 희소가치가 불균형적으로 커지게 되면 사회의 인력 배분에 왜곡이 생긴다. 요즘 1% 상위권에 들지 못하면 의대에 들어갈 수 없다.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의대 선호를 야기하는 사회체제는 한참 잘못된 것이다. 의사 업무에 필요한 소양을 갖추는데 1% 안에 드는 머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의대로 가는 머리의 상당수는 원래 뛰어난 과학적, 공학적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하다. 의료의 오남용이 없도록 하되 필요한 의료서비스는 받을 수 있도록 의료인력의 수급을 맞추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의료정책의 역할이자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