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음이 변하시거든 언제든지 돌아오세요.
항상 엄마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무궁무진한 우리집이니까요."
아빠를 꼭 빼닮은 딸아이, 자라면서
특유의 유머감각까지 닮아가는 모습이 싫지 않은애다.
지난 주말 오후-
장마비가 주적주적 내리는데도 여행길을 고집하는
못말리는 母子를 딸아이는 그렇게 배웅하고 있었다.
영 못마땅해 하는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방학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던 여행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고집했던것은
아직 어릴때 아이들과 함께 국토를 순례하는 것이었다.
해외여행은 못시켜주더라도 우리강산, 조국의 산하를
가슴에 품고 자라게 하고 싶었다.
녀석이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였는데 시나브로 남한땅은
대부분 섭렵한 느낌이다. 남도의 해상공원으로 닿는
마산, 충무, 그리고 진해쪽만 빼고는....
엊그제 여행지였던 강릉에서의 일이다.
문학기행을 하는사람이면 빼놓지 않는 곳, 허균의 생가에
아들을 위해 다시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머리가 나쁜듯한 녀석을 위해
먼저 생가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초당두부집에 들어갔다.
모두부와 전골로 아침식사를 하고
허균의 생가로 향하면서 ...
"아까 먹은 초당두부의 유래가 어디서 온지 아니?"
"글쎄요."
"여기 시비를 자세히 읽어봐.
홍길동전을 쓴 허균 선생의 아버지 호에서 유래된거라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초당'은 당대 문장가였던 허엽선생의 호다.
허엽의 집안이 문장가문으로 버금이었음은 이 고장의
유래에서 미루어 짐작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허균과 허난설헌이 당대 최고 시인이었던
이달에게서 문학을 수학하게 된것도
아버지 허엽의 공으로 돌리고 싶은 사람이다.
아무튼 문학에 대한 남다른 소질과 재능을 가졌던
이 가문은 불세출의 문인들을 거출했고
그들의 숨결을 찾는 이들이 쉼없이 이곳을 찾아오리라.
그리고 오늘 우리도 그들틈에 끼어든 방문객이 되어
수백년전 두 남매가 거닐었을 숲길을 아들과 함께 거닐며
그들을 얘기해주고 있다.
한가지 뭔가를 확실하게 학습시킨듯한 뿌듯함으로
차에 올랐다.
경포호를 지나면서 아들에게 묻는다.
"서현아! 아까 우리가 먹은 두부집이 뭐였지?"
"초당두부요?"
"그래..."
그럼 그 초당의 유래가 어디서부터였는지 얘기해줄수 있겠지?"
"글쎄요...."
순간, 다시 밀려드는 상실감에 경포호를 바라보며
생각나는 사임당의 시 한수를 읊어댔다.
"산첩첩 내 고향 천리련마는
자나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줄기 바람
........................
(한숨 푸욱! 발림넣고)
언제나 강릉길 다시 밟아가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 할꼬"
"에구 다 외우고 계시네"
징그럽다는듯이 나를 바라보는 아들녀석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여행은 항상 그랬던것 같다.
엄마는 열심히 얘기했고 아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던듯
함께했어도 낯선대화가 오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곤충박물관의 사슴벌레 하늘소 나비 잠자리는
이미 수년전부터 백과사전으로 녀석의 머리속에 적재하고
학습관을 들를까 하는 내 제안보다는
풀꽃나라네 '테리'랑 더 놀았음 하는 바램이 있다.
이런 녀석을 위해 할 수 있는일은 마냥 달리는 것이다.
오후햇살에 그림자 드리운 여름산과 강원도 협곡을
쉼없이 달리는 계곡들.....
여행길 내내 비가 와서 목적한 설악산행은 수포로 돌아갔고
아쉬움만 가득안고 빗길 대관령을 넘었는데
한줄기 햇살이 좋은징조를 예감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서울로 향하던 핸들을 진부에서 돌렸다.
굽이굽이 오대천을 보다가 한켠에 자리를 깔았다.
잠시 할얘기를 잃어버린듯한 두 모자의 맥없는 미소를
강물에 흘리고 왔음을 남편은 짐작이나 했을까?
'여행은 계획대로 잘 되고 있나?'
메시지가 들어왔다.
'계획대로 되는거 아들과 동행한다는 사실 빼고는
아무것도 없음.'
'원래 계획대로 되는건 아무것도 없음. 되도록 노력하고
만들어 가는게 리더의 역할인게야'
'그래, 니 잘난거 알고 살았시유'
남편과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녀석의 엄마를 찾아주었다.
"야! 일어나자.
이제부터 신나게 드라이브하는거야. 서울까지..."
"네에 엄마!
그랬다. 오류는....
나는 여전히 녀석을 한 그루 '적송'쯤으로 착각하며
언젠가는 낙랑장송으로 자라주길 기대했다는 것이다.
여행은 그런 내 오류들을 점검하고 바로잡는다.
그리고 그것들이 아직 못다한 여행을 마무리해야 하는
당위성이기도 하다.
첫댓글 멋진 엄마....!!!!!
부러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