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봉진 崔鳳鎭 (1917 - 2003)】 "광복군 총사령부 인면전구공작대(印緬戰區工作隊) 파견"
1917년 12월 17일 전라남도 보성군(寶城郡) 벌교면(筏橋面) 칠동리(七洞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印緬戰區工作隊) 활동 시 사용하던 최상철(崔相哲)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일제의 억압을 받는 생활에 염증을 느껴 중국으로 이주를 결심하였다. 1939년 중국 허난성(河南省)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원 김용주(金容珠)·박영진(朴永晋)과 접선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으로 가서 당시 나월환(羅月煥) 등의 주도로 결성된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가입하였다. 이후 전방공작대원으로 일제 점령지 후방에 침투하여 유격전과 지하연락망 구축, 일본군 정탐, 동지 초모(招募) 등의 임무에 종사하였다. 동시에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인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홍보하고,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1940년 9월 중국 국민당이 한국인 청년간부 육성을 위해 편성한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 특과총대학원대 한청반(中央戰時幹部訓練 第四團 特科總大學員隊韓靑班)에 입소하여 간부후보생 교육을 받았다.
1941년 1월 1일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한국광복군에 가입하여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재편되자 제5지대원으로 복무하였다. 1942년 5월 한국광복군이 2개 지대로 통합될 때 제2지대에 소속되었다. 당시 일본군은 전선을 태평양과 동남아시아로 확대하고 1942년부터 버마 일대를 침공하여 남방전선을 형성하였는데, 한국광복군 총사령 이청천(李靑天)과 주인도(駐印度) 영국군 동남아전구 총사령부 대표 콜린 맥켄지(Colin Hercules Mackenzie)는 충칭 주재 영국대사관을 통해 합동작전을 교섭하였다. 그 결과물인 한·영 군사 상호 협정(韓英軍事相互協定)에 따라 신체 조건과 어학 능력을 충족하는 한국광복군 정예들을 인도·미얀마 전선으로 파견하기로 하였다. 1943년 6월 한지성(韓志成)·문응국(文應國) 등과 함께 인면전구공작대 대원으로 선발되었다.
1943년 8월 29일 인도의 캘커타(Calcutta)에 도착하여 영국군 특수작전행정부(Special Operations Executive, SOE)의 특수공작·대적선전 전술교육을 이수하였다. 1944년 2월부터 송철(宋哲)·이영수(李英秀)와 함께 델리·캘커타에서 일본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투항을 권고하는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는 등 후방 공작활동에 종사하였다. 이후 치타공(Chittagong)에 집결하여 재정비를 거친 뒤 1945년부터 일본군에 점령되어 있던 버마 지역을 탈환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김상준(金尙俊)·이영수와 함께 만달레이(Mandalay)를 수복하기 위한 부대에 편성되어 일본군을 대상으로 선전전·심리전을 전개하고, 일본군 포로 심문, 일본군 문서 번역·해독 등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미얀마 현지에서 영국군과 함께 일본군 포로 처리 임무를 수행하다가 9월 10일 충칭(重慶)의 임시정부로 귀환하였다.
이후 한국광복군 신분으로 국민혁명군을 도와 중국 내 일본군의 무장해제 작업 및 관할 내 치안 유지, 한국인들의 신변 보호 및 귀국 절차 원호를 담당하였고, 1946년 6월 다른 제2지대원들과 함께 제2지대장 이범석(李範奭) 인솔하에 상하이(上海)를 경유하여 국내로 귀환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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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원 단체 사진(1943. 8. 29,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최봉진) [판형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