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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세라세라] 11
S#1. 레스토랑 (밤)
꽤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레스토랑이다.
태주와 은수, 마주 앉아 있다.
은수 : 왜 갑자기 이런 델 온 거예요? 부담스럽게.
태주 : 밤새 동생 병간호 하려면 영양보충 좀 해야 할 거 아니야.
은수 : 영양보충은 삼겹살이 최곤데.
태주 : 동생은 계속 병원에 있는 거야?
은수 : 좀 지나면 통원치료해도 될 거래요.
태주 : 그건 좀 위험하지 않아?
은수 : 입원비도 만만치 않고... 의사 선생님도 당장은 괜찮을 거라니까.
태주 : .....(은수를 본다)
은수 : 왜요?
태주 : .....(시선 돌린다)
은수 : 무슨 일 있어요?
태주 : ...난 네가 고생하면서 사는 거 보는 게 싫어.
은수 : 내가 무슨 고생을 하는데요?
태주 : 소녀가장에 아픈 동생까지 두고 있는 게 그럼 호강이냐?
은수 : 호강까진 아니래도 고생이랄 것도 없죠.
태주 : 말귀 못 알아듣네. 난 지금 일반적인 시각으로 말하는 거잖아.
은수 : (웃는다) 괜찮아요, 이런 거 익숙해요, 난.
태주 : 그 익숙하다는 게 더 싫어.
은수 : !... 그래서요?
태주 : ?
은수 : 싫어서 뭐요? 그럼 아저씨가 호강시켜 줄래요?
태주 : 가능하다면 그래주면 좋지.
은수 : (웃는다) 마음이라도 고마워요.
태주 : 진심이야.
은수 : 안다니까요.
태주 : 나도 싫어. 이렇게 사는 거.
은수 : !?
태주 : 지지리 궁상으로 한푼 두푼에 벌벌 떨며 아픈 네 동생 병수발하며 살고 싶지 않아.
은수 : 누가 아저씨더러 내 동생 병수발 하래요?
태주 : 직장 다니면서 월급 쪼개가며 어떻게 꾸역꾸역 살 수야 있겠지. 근데 그거 너무 앞이 안보이잖아.
은수 : 왜 앞이 안보여요?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요.
태주 : 그거야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그런 거구.
은수 : 아저씬 선택의 여지가 있구요?
태주 : .....
은수 : ! (확 감이 오는) .....차혜린... 그 여자 얘기예요?
태주 : 널 전혀 도울 수도 없으면서 그냥 넋 놓고 있어야 하는 내가 견디기 힘들어. 자신 없어, 난.
은수 : 빙빙 말 돌리지 말아요. 제대로 똑바로 말해요!
태주 : 그래서... 감당할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여기서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해.
은수 : !
태주 : 혜린이랑 결혼할래.
은수 : !
태주 : 혜린이랑... 결혼해야겠어.
은수 : .....(충격으로 잠시 멍하니 태주를 보다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물컵을 들어 마신다)
태주 : .....
은수 : ...역시...그거네요.
태주 : .....
은수 : 그 여자가 결혼하재요?
태주 : 응.
은수 : 그 말 듣고 금세... 하긴... 재벌가 사위 놓치기 아깝긴 하겠다.
태주 : 미안해. 이거 밖에 되지 못하는 놈이라서.
은수 : 그거 밖에 되지 못하는 놈 좋다고 한 나도 똑같죠, 뭐.
태주 : .....
은수 : 미안하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어. 당신과 나 사랑이라는 게 딱 이 정돈 걸.
태주 : .....
은수 : 그리고... 내 인생이 앞이 안 보이는 인생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태주 : .....
은수 : (태주를 본다) 사람이...어떻게 그래요?
태주 : .....
은수 : 앞이 보이는 인생, 그래요, 잘 살아봐요.
은수, 일어나 나간다.
S#2. 근처 길
은수,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간다. 큰 충격으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듯 멍한 얼굴이다.
S#3. 레스토랑 앞 / 태주의 차 안 / 근처 길
차에 타는 태주. 심난한 마음을 다잡고 시동을 건다.
차를 출발 시키는 태주.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은수의 뒷모습이 보인다. 은수를 보자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곧 외면하고 은수 옆을 지나간다.
은수, 지나쳐 가는 태주의 차를 본다. 걸음을 멈춘다.
망연히 서서 멀어져가는 태주의 차를 본다.
S#4. 은수네 오피스텔
오피스텔에 들어서는 은수. 방 안의 불을 켜자 너저분하게 정리되지 않은 살림들이 늘어져있다.
은수, 대강 물건들을 치우고 싱크대로 향한다. 설거지가 꽤 쌓여 있다.
손을 걷어 부치고 설거지를 시작하는 은수. 문득 눈물이 난다.
쓱 닦고 마음을 다잡고 계속해서 그릇을 씻는데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난다.
입에 꾹 힘을 주고 참으려 하지만 점점 오열이 되어 간다.
S#5. 백화점 사무실, 준혁의 사무실 (다른 날, 낮)
준혁, 놀란 얼굴로 혜린을 본다.
준혁 : 갑자기 무슨 소리야?
혜린 : 뭘 그렇게 놀래? 샤샤를 월드 백화점 자체 브랜드로 흡수시킬지 아니면 계열사 브랜드로 하는 게 좋을지 의견을 묻는 거야.
내가 백화점에 들어온다고 샤샤를 공중분해 시킬 순 없잖아.
준혁 : (불안한 시선으로 혜린을 본다)
혜린 : 왜 그런 눈으로 봐? 묻고 싶은 거 있으면 말로 하지.
준혁 : 결혼하기로 한 거야?
혜린 : 응.
준혁 : 그 자식이 한다고 했단 말이야?
혜린 : 왜, 못 믿겠어?
준혁 : 니들 제정신이야? 그 개차반 같은 자식은 그렇다고 쳐. 넌 뭐야, 그런 자식이랑 결혼 해서 제대로 살 수나 있을 거 같아!
혜린 : 그 자식, 저 자식 하지 마. 그 사람에 대한 오빠 감정 별로인 건 알고 있는데 이제 진짜로 우리랑 한 가족 될 사람이야.
그러니까... 그 사람한테 제대로 예의 좀 갖춰주기 바래.
준혁 : .....(못마땅한 듯 혜린을 노려본다)
혜린 : (가방 챙기며) 샤샤 처리 문제, 오빠 조언 기다릴께. (나간다)
준혁, 책상 위에 있던 서류들을 집어 던진다.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S#6. 혜린네 집 거실 (밤)
혜린과 태주, 차회장이 소파에 앉아 있다.
혜린 : 여성 의류 쪽이 좋겠죠. 제 전공이니까. 게다가 샤샤도 계속해서 유지시킬 생각이구요.
차회장 : (태주에게) 넌 준혁이랑 얘기해 봤냐?
태주 : 아직입니다.
차회장 : 내가 지시 내려놨으니까 곧 움직이게 될 거다. 일단은 준혁이 밑에서 총괄적인 업무를 배워 봐.
배울 게 많을 거야, 준혁이한테.
태주 : (약간 불편한) 네.
혜린 : 그리고 결혼식 말인데요...
이때 윤여사가 다과를 들고 다가오며.
윤여사 : 약혼식 먼저 해.
혜린 : 엄마, 그런 형식적인 걸 뭣하러...
윤여사 : 형식적인 거 해야 돼. (태주에게 못마땅한 시선 보내며) 네 결혼 뭐하나 내세울 거 있니?
그럴수록 격식이라도 차려야 내 낯이 설 거 아냐.
혜린 : 요즘에 그런 격식 차리는 사람 없어. 그런 거 격식 축에도 안 낀다, 엄마.
윤여사 : 넌 이 엄마 말 좀 한번 쯤 들으면 어디 덧나니?
태주 : 하겠습니다.
윤여사/혜린 : !
태주 : (혜린에게) 그게 뭐 얼마나 귀찮다고 고집 부려? 어머님이 원하시잖아.
혜린 : .....
태주 : 날짜 잡아 주시는 대로 약혼식 먼저 올리겠습니다.
혜린 : 대신 너무 크게 요란 떠는 건 싫어, 엄마.
윤여사 : 딸자식 키워 하나 소용없다니까. 지 엄마 말은 귀뚱으로 듣더니 어떻게 강서방 말 한 마디에 금세 맘이 바뀌어.
혜린 : (방실거리며 태주의 팔을 안는다) 좋은 걸 어떡해. 서운해도 할 수 없어. 엄마.
그리고 엄마도 이미 이 사람 매력에 넘어간 거 아냐?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강서방, 강서방 하는 거 보면.
윤여사 : 아니, 내가 언제... (태주와 눈이 마주친다)
태주 : (피식 웃는다)
윤여사, 눈꼴시다는 듯 노려보고, 차회장도 흐뭇한 듯 웃는다.
S#7. 혜린의 집 앞
나오는 혜린과 태주.
혜린, 다정하게 태주의 팔에 매달려 있다.
혜린 : 우리 엄마 한동안은 가끔씩 당신한테 미운 소리 하실 거야.
태주 : .....
혜린 : 딸자식 아까워하는 엄마 마음 이해해 줄거지?
태주 : (씩 웃으며) 내가 이뻐 보이면 그게 비정상이지. 난 너네 어머니 솔직하셔서 오히려 더 편해.
혜린 : (태주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자기가 돌아와서 너무 좋다.
태주, 멈칫하고 혜린을 본다. 혜린도 태주를 본다.
태주 : (웃으며 부드럽게) 들어가.
태주, 차에 올라타고 출발한다.
혜린, 웃으며 그를 배웅한다.
S#8. 新태주의 오피스텔
들어서자마자 불도 켜지 않은 채 자켓이며 넥타이 등을 귀찮은 듯 벗어 던져놓는 태주.
다리를 바닥에 걸친 채 침대에 털썩 드러눕는다. 공허한 기분이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농구공이 태주의 발에 닿는다.
태주, 발로 공을 까닥까닥 하더니 일어나 앉아 통통 공을 치다가 가볍게 벽을 향해 던진다.
공이 또르르르 굴러온다. 고개 숙인 채 굴러온 공을 손가락으로 만지는 태주.
그렇게 오래도록 고개 숙인 채 조용히 눈물을 삼키고 있다.
S#9. 은수네 오피스텔 옥상
미끄럼틀에 앉아 있는 은수. 고개 들어 농구 골대와 태주가 앉았던 벤치를 본다.
벤치에 앉아 은수 눈치를 보며 공을 통통거리다 도망가던 태주의 모습이 떠오른다.
은수, 피식 웃음이 난다.
싱가폴에서 태주가 은수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태주의 모습이 떠오른다. 행복했던 순간이다.
은수, 미소를 짓고 있는데 눈물이 또르르 떨어진다. 우는지 웃는지 모르는 얼굴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S#10. 은수의 오피스텔 (다른 날, 낮)
은수, 빨래를 개고 있고,
경진은 옆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며 돈 계산 중이다. 수첩에 뭐라 꼭꼭 눌러쓰기도 하면서.
경진 : (수심에 찬) 아유 이걸 어쩌나... 그동안 너랑 나 열심히 모아둔 걸로로도 해결이 다 안된다. 뭔 놈의 병원비가 이렇게 비싼지...
은수 : 적금 깨기로 했어요. 그러면 얼추 맞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경진 : 그래도 그걸 깨버리면..... (은수 눈치 보는) 근데 요즘 그 사람 왜 안 오니?
은수 : !
경진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도 뻔질나게 오는 거 같더니... 많이 바쁜가 보지?
은수 : (담담하게) 이제 안 올 거야. 헤어졌어요.
경진 : ! 아니, 벌써?
은수 : 네.
경진 : 뭔 소리야? 사랑한다며, 그것도 엄청나게 사랑한다며? 결혼까지 한다고 하지 않았어?
은수 : 근데 그렇게 됐어.
경진 : 그러니까 왜 그렇게 됐냐구?
은수 : (피식 웃는) 연애하다 깨지는 게 뭐... 엄마도 많이 해봤잖아.
경진 :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 사람 너, 많이 생각하는 거 같던데... 그거 아니었어?
은수 : 아니었나 봐.
경진 : (퍼뜩 생각 미치는) 우리 이렇게 살아서 싫다니? 궁상맞게 병원비며 수술비며 걱정하고 그러니까 싫대?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래, 언제는 두손 두발 다 들고 도와줄 것처럼 그러더니...
은수 : 그게 아니라...
경진 : ?
은수 : 정말로 사랑하는 여자가 있대요.
경진 : 뭐?
은수 : 나 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다는데 어떡해. 보내줘야지.
경진 : 누구? 혹시...그 재벌딸?
은수 : .....
경진 : 내 이럴 줄 알았어. 처음부터 믿기지가 않았다니까. 아 미쳤다고 재벌딸 놔두고... (은수를 보고 말을 멈춘다. 입을 만지며)
아이고.. 이놈의 입은 그냥... 그런데 무슨 놈의 애정전선이 그렇게 수시로 바뀐다니?
이때, 초인종이 울린다.
경진 : 누구야?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은수, ‘누구세요?’하며 현관문을 열자 집주인여자(경찰서씬에 나왔던)와 두명의 남녀가 들어온다.
집주인 : (남녀에게) 이리 들어오세요.
은수 : 무슨 일이세요?
집주인 : 무슨 일은, 집 보러 왔지.
남녀, 집안을 둘러본다.
집주인 : 이만한 가격에 이렇게 깔끔한 데도 없어요. 교통편도 좋지.
또 여기 관리실 양반들이 얼마나 건물 관리를 꼼꼼하게 해준다고.
은수와 경진,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본다.
남자 : 이사는 언제라도 올 수 있는 겁니까?
집주인 : 아, 그럼요. 좋으실대로 언제든지 할 수 있어요.
여자 : 여기 사는 분들이 있으신데.
집주인 : 아유, 이 사람들은 금방 나갈 거예요. 그 쪽에서 계약서 도장 찍고 날짜만 박아주면 딱 맞춰드릴 테니까 걱정 마시구.
여자 : (남자에게) 겉에서 보는 것보다 집은 깔끔한 거 같다.
집주인 : 아이구 두말 하면 잔소리라니까? 일년 전에 집안 수리도 새로 싹 해서 이 건물에 있는 집 중엔 아주 최고예요, 최고.
남자 :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은수와 경진에게) 구경 잘했습니다.
남녀, 나간다.
집주인 따라 나가다가 은수를 돌아본다.
집주인 : 날 풀리니까 이제야 집 보는 사람들이 오네. 이제 종종 올 거야.
은수 : ...예...
집주인, 나간다.
은수와 경진 걱정스런 눈길로 서로를 바라본다.
경진 : 엎친 데 덮친다구...아후..애까지 아픈데 이게 웬일이야, 우리 이제 길바닥에 나앉는 거니?
은수 : .....
S#11. 부동산 소개소
은수, 초조한 얼굴로 앉아 있다.
업자 : (부동산 기록들을 살펴보며) 그만한 돈으로는... 아, 참 나...
은수 : 전혀 없는 건가요?
업자 : 원하는 조건은 불가능하구요, 방 한칸에 재래식 부엌이 딸린 게 있긴 한데 이것도 아무리 월세라 해도 보증금이 500은 되는데.
은수 : .....
업자 : 이 동네에서 구하는 건 그 가격으로 어렵고 아예 변두리 쪽으로 알아봐요, 아가씨.
은수 : 다른 동네엔 있을까요?
업자 : 거야 아가씨가 알아봐야 하겠지. 나야 뭐 알겠나.
은수 : .....(난감하다)
이때, 은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액정을 보면 준혁이다.
은수, 마음이 무겁다.
S#12. 카페
카페에 들어서는 은수. 멀찍이 준혁의 모습이 보인다.
은수, 애써 밝은 표정으로 무장하고 준혁에게 다가가 앉는다.
은수 : 상무님이 여기까지 웬일이세요?
준혁 : .....
<시간 경과>
종업원이 차를 내 주고 간다.
준혁 : 정직원 심사 결정이 났어요. 그 소식 알려주려구요.
은수 : .....
준혁 : 축하해요. 이제 회사에서 은수씨 얼굴 계속 보게 됐네요.
은수 : (웃는다) 와, 잘 됐다. 그 얘기 하러 오신 거예요?
준혁 : .....사실은 핑계고, 한번 만나고 싶었어요.
은수 : .....
준혁 : .....얘기..., 들었어요.
은수 : 네.
준혁 : (은수의 얼굴을 본다) 괜찮아요?
은수 : 네.
준혁 : .....
은수 : (가볍게 미소) 저 이렇게 될 줄 아셨죠?
준혁 : !
은수 : 상무님이 그러셨잖아요. 나 불행해졌으면 좋겠다구.
준혁 : 은수씨, 그 말은...
은수 : 내 마음 가는대로 끝까지 달려봤기 때문에 아쉬울 것도, 후회할 것도 없어요.
전에 상무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 인연이 여기까지구나... 그게 정답인 거 같아요.
준혁 : .....
은수 : 그렇게 생각하니까 별로 불행하지 않아요. 살만해요.
준혁 : 다행이네요.
은수 : 네. 이제 열심히 일해야죠. 다시 일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상무님.
준혁 : .....
S#13. 백화점 명품샾 몽타쥬
태주와 혜린, 쇼핑 중이다.
- 시계를 고르는 태주와 혜린.
- 쥬얼리샾에서 예물을 고르는 태주와 혜린.
- 옷을 고르는 태주와 혜린.
태주와 혜린, 다정하게 서로의 물건들을 골라준다.
S#14. 고급 파티복 샾
예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 있는 태주.
혜린이 다가서서 거울 안의 태주를 본다.
혜린 : 잘 어울린다. 아무나 소화하기 힘든 옷인데.
태주 : 너무 요란한 거 아니야?
혜린 : 자기는 화려한 게 잘 어울려. 이걸로 하자.
태주, 탈의실로 들어가고 혜린 걸려있는 드레스들을 살펴본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태주가 나온다.
혜린 보고 있던 드레스를 태주에게 보여준다.
혜린 : 어때? 약혼식 드레스로는 너무 심플한 거 같지?
태주 : 괜찮은데 뭐.
혜린 : 아까 입었던 게 더 나은 거 같지 않아?
태주 : 응.
혜린 : 지금 생각이나 하고 말하는 거야?
태주 : (장난스레 웃으며) 너 워낙 훌륭한 외모의 소유자잖아. 다 잘 어울려. 그러니까 네 취향에 맞는 거 골라.
네 드레스 고르다가 밤 꼴딱 새겠다.
혜린 :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태주 : 칭찬이야. 나 이만 가 봐도 되지?
혜린 : 내 거 아직 고르지도 않았잖아.
태주 : 너 하는 거 봐선 오늘 하루에 절대 불가능하거든. 일단 후보작들 골라놓고 난 다음에 나 불러.
계속 이러다간 내 머리 쥐나겠다.
혜린 : 약속 있는 거야?
태주 : 어. 선배 형 만나기로 했어.
혜린 : 정말 담에 와서 꼭 봐주는 거지?
태주 : 알았다니까. 간다.
나가는 태주.
혜린, 가는 태주를 보다가 다시 옷을 본다.
S#15. 바 (밤)
태주와 호영,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호영 : 너 진짜 나쁜 새끼다.
태주 : .....
호영 : 강태주 너 지금껏 똥 폼 잡은 거였어? 백화점 딸 버리고 은수씨랑 결혼까지 생각한다고 한 지가 언젠데...
야, 이 자식아... 나 그때 네 놈한테 살짝 감동까지 먹었던 거 알아?
태주 : 쇼윈도우의 물건들을 구경 밖에 할 수 없는 처지랑... 그걸 다 가질 수 있게 된 처지랑은 다르잖아.
호영 : 뭐?
태주 : 꿈에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왔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거야.
호영 : 너 원래 이런 놈이었냐? 타에 모범이 되는 놈은 아니었어도 적어도 비인간적인 놈은 아니었잖아.
태주 : 그래, 나 나쁜 새끼야. 내가 언제는 좋은 새끼인 적 있었냐? (술을 마신다)
호영 : (술 마신다) 아후... 이거 내가 괜히 울컥하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태주 : 나란 놈을 잘 아니까... 내가 어떤 놈인지 너무 잘 아니까 이러는 거야.
호영 : ?
태주 : 은수랑... 그렇게 있다간 얼마 못가 도망쳐버릴 놈이야, 난. 끝이 너무 뻔하잖아. 끝이 뻔한 거, 차라리 처음에 자르는 게 나아.
호영 : .....하긴 사람 사는 게 다 그렇긴 하지... 은수씨랑 그 쪽이랑 워낙 차이가 극과 극이니까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근데 왜 이렇게 기분이 씁쓸하냐.
태주 : 형 보자고 한 건... 부탁 좀 하나 하려구.
호영 : 부탁? 무슨 부탁?
태주 : 아무리 나쁜 놈 부탁이라도 꼭 들어줘야 돼. 이런 말 할 사람 형밖에 없어서 그래.
호영, 의아한 얼굴로 태주를 본다.
S#16. 백화점 사무실 복도 (다른 날, 낮)
게시판에 인사발령 공고가 붙어 있다. 몇몇 직원들 공고를 보고 있다.
지나가던 태주, 공고를 본다. 영업기획팀 차장으로 태주의 이름 석자가 써 있다.
MD사업부 책임이사로 차혜린 이름이 있다.
태주, 무표정한 얼굴로 이름을 확인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간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막 타려는데 이미 타고 있던 준혁과 마주친다.
태주, 할 수 없이 엘리베이터에 탄다.
S#17. 엘리베이터 안
준혁과 태주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태주 : 영업기획팀으로 발령 났습니다.
준혁 : 그래서?
태주 : 앞으로 보기 싫어도 자주 볼 거 같다구요.
준혁 : 난 네 얼굴 보기 싫으니까 내 눈에 띄지 않게 꺼져 있어.
태주 : .....저한테 계속 이런 식으로 하는 거 좋지 않을 텐데요.
준혁 : (태주를 본다) 넌 뭘 먹고 살아서 그렇게 뻔뻔스럽냐?
태주 : !.....아버님께서 형님께 많이 배우라고 하십니다. 어른 말씀 듣자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뻔뻔스러워질 수 밖에 없어요.
준혁 : (기가 막힌 듯 피식 웃는다) 그래.., 너 그 집 사위 돼서 좋겠다.
태주 : !
엘리베이터 문 열리고 준혁, 내린다.
태주 열 받는 걸 억누르고 따라 내린다.
S#18. 동, 복도
태주, 준혁의 뒤로 떨어져서 대회의실 쪽으로 걸어간다.
S#19. 동, 대형 회의실
백화점 임원들이 모여 있다. 임원들 사이로 최이사의 모습도 보인다.
차회장과 혜린이 상석에 앉아 있다.
잠시 후, 준혁이 들어서고 뒤이어 태주가 들어온다.
태주, 차회장에게 목례하며 혜린이 옆에 앉는다.
모두 모인 듯 하자 차회장, 혜린과 태주와 함께 단상으로 간다.
차회장 : 네, 여러분 오랜만에 뵙네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여러분들 모이라고 한 건, 이번 인사 이동에서 좀 특이한 사항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간 샤샤라는 단독 브랜드로 꽤 튼실한 사업체를 경영했던 제 여식이 이번에 우리 월드 백화점
MD사업부 구매담당 이사로 여러분과 함께 일하게 됐습니다. 부족한 거 있더라도 예쁘게 봐주시고 많은 도움 주세요.
혜린 : 안녕하세요? 차혜린입니다. 지금까지 제 경험을 잘 살려서 구매 분야에서 좋은 성과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차회장 : 이 친구는 아마 다 아실 겁니다. 지난 몇 달간 마케팅 부에서 일했던 친군데 이번에 영업기획팀 차장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식 같은 친구라 여러분들이 더더욱 아껴 주셨으면 합니다.
태주 : 강태줍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수를 치는 일동.
준혁과 최이사의 시선이 마주친다.
S#20. 백화점 사무실, 영업기획팀
준혁과 태주 사무실로 들어와 영업기획팀 쪽으로 걸어간다.
앞장서 가던 준혁, 상무실로 휙 들어가 버린다.
직원들 의아한 듯 들어간 준혁 쪽을 보고 뻘춤하게 서 있는 태주를 번갈아보는데
태주, 직원들을 향해 인사한다.
태주 : 이번에 영업기획팀으로 발령 난 강태줍니다.
부장 : 어, 그래요. 자리는 저 쪽이에요.
태주 : (앉으려는데)
부장 : 상무님이랑은 인사.., 한 거죠?
태주 : 네...그럼요.
자리에 앉는 태주. 팀원들을 본다.
팀원들, 약간 불편한 기색들이다.
태주, 아무렇지 않은 듯 컴퓨터를 켠다.
S#21. 동 사무실B, MD 사업부 1팀 회의실
혜린, 팀장과 얘기 중이다.
혜린 : 계속해서 패션관계 일을 해왔지만 규모가 큰 사업은 처음이라서요, 팀장님께서 저 좀 많이 도와주셔야 해요.
팀장 : 겸손한 말씀이시네요. 워낙 실력 있는 분이라 익히 소문 들었습니다. 저희 팀원들도 기대 많이 하고 있습니다.
혜린 : 너무 티 나게 접대성 멘트 하신다.
팀장 : (당황하는) 네?
혜린 : 농담이에요. 부탁한 팀원들 기록부는...?
팀장 : (서류철 내놓으며) 여깄습니다. 새로 취임하시는 이사님께서 팀원들 기록부까지 챙긴다고 해서 모두들 긴장하고 있습니다.
혜린 : (서류철 열어보며) 업무를 시작하려면 같이 일할 사람부터 먼저 파악해야죠. 뭐든 사람이 기본 아닌가요?
팀장 : 아..예..그렇죠.
혜린, 대충 넘겨보며 훑어보다가 멈칫한다. 신입명단에 ‘한은수’라는 이름이 있다.
혜린 : 신입이 들어오네요.
팀장 : 예, 이번에 채용될 사원들이 각 부서에 대거 배치됐습니다.
혜린 : (찜찜하다)
S#22. 동, 준혁의 사무실
사무실에 들어서서 테이블에 앉는 혜린.
준혁, 힐끗 보고 그냥 업무를 한다.
혜린 : 사람 와도 아는 척도 안하니?
준혁 : (컴퓨터에 시선 둔 채) 무슨 용건이야?
혜린 : (일어나 준혁에게 다가간다) 오빠 기분 좋을 거 없다는 거 알지만 이런 식의 태도는 좀 아니지 않아?
오빠랑 나, 이제부터 계속 얼굴 보고 일할 사람이거든?
준혁 : 그 말 하러 왔어?
혜린 : 한은수가 내 팀에 배속됐더라.
준혁 : 그래서?
혜린 : 다른 데로 돌려줘.
준혁 : (고개 들어 혜린을 본다) 무슨 말이야?
혜린 : 생각을 해봐. 내가 어떻게 걔랑 일을 해.
준혁 : 그건 내 소관 아니야.
혜린 : 오빠가 바꿀 수 있잖아.
준혁 : 넌 백화점에 일하려고 들어오는 거야, 놀려고 오는 거야? 네 개인적인 감정으로 직원 인사처리까지 관여할래?
혜린 : 오빠, 정말 몰라서 이래?
준혁 : 너네 팀 지원한 건 한은수씨 의지고, 그걸 받아들인 건 회사 결정이야. 한은수 본인이 와서 이의 신청하고 바꾼다면 모를까
네 마음대로 될 일 아니야.
혜린 : .....
준혁 : 얘기 끝났으면 나가 봐.
혜린 : (준혁 노려보며) 오빠 꼭 심통 부리는 걸로 보이는 거 알아?
준혁, 기가 막히다는 듯 보는데 혜린 나간다.
준혁, 다시 업무를 보려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번호를 보고 약간 어두워지는 준혁. 반갑지 않다.
준혁 : 네, 최이사님.
S#23. 고급 룸싸롱 (밤)
들어서는 준혁. 안내하는 직원을 따라 룸으로 향한다.
S#24. 동, 룸
룸에 들어서는 준혁.
여자들의 술시중을 받고 있던 최이사가 반갑게 맞이한다.
최이사 : 어, 그래. 거기 앉아라.
최이사가 눈짓하자 여자들 나가고 준혁, 자리에 앉는다.
준혁 : 요즘에 자주 뵙습니다.
최이사 : 왜 싫으냐? (준혁에게 술을 따라주며) 너하고 한잔 하고 싶어 불렀다.
준혁 : (잔을 받으며 씁쓸하게 웃는다)
최이사 : 오늘 아주 가관이더라. 그깟 인사이동 가지고 임원들 소집해서 북치고 장구칠 일 있냐? 차회장도 그 양반 호들갑도...
어쨌든 혜린이까지 들어왔으니 앞으로 월드 백화점 분위기가 많이 바뀌겠어.
준혁 : 그렇겠죠.
최이사 : (준혁을 본다) 넋 놓고 있으면 안되겠다, 너도.
준혁 : !
최이사 : 아무리 능력 있는 놈이라도 이런 경우는 좀 불안하지.
준혁 : 저한테 자꾸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최이사 : 말 했잖냐. 네 놈이 좋다고. 널 보면 말이다, 꼭 날 보는 거 같거든.
준혁 : 그래서 저한테 그런 사진을 보내셨습니까?
최이사 : !? (본다)
준혁 : 월드 백화점의 과거를 알면서 차형민 회장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인물은 흔하지 않으니까요.
최이사 : (말없이 준혁을 본다)
준혁 : ...덕분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와 차회장님 관계를 멀어지게 할 의도시라면
그만 두십쇼. 제게 차회장님은 여전히 고마운 은인이시고, 존경하는 분이거든요.
최이사 : 영리한 줄 알았더니 영 어리석구나, 너.
준혁 : !
최이사 : 아직도 기억을 못하는 게냐? 그렇게 단서를 줬는데도?
준혁 :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이사 : 네 아버지 사고 당시, 그 현장에 네가 있었다.
준혁 : !! 뭐..뭐라구요?
최이사 : 차회장이 네 은인일 것도 없어. 난 차회장이 널 거둔 진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
준혁 : !...무슨 말씀입니까?
최이사 : 그 날, 그 건물에서 네 아버지와 차회장이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 사고가 난 거야.
준혁 : !
최이사 : 네가 그 때 뭘 봤는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날 하루의 기억을 몽땅 까먹을 만큼 충격적이었다는 거지.
준혁 : !
S#25. 동, 복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준혁. 화장실로 들어간다.
S#26. 동, 화장실
준혁, 세면대의 물을 틀어 얼굴을 적신다. 너무 뜻밖의 사실에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거울을 본다.
<인터컷>
- 건물에서 뚝 떨어지는 준혁의 부친.
떨어진 부친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 준혁, 고개 들어 건물 위를 바라본다.
S#27. 지수의 병실
은수, 지역정보지의 전월세란을 살펴보고 있다.
지수, 힐끗 은수를 본다.
지수 : 집 언제 나가는데?
은수 : (지역정보지에 시선 둔 채) 아직 계약한 사람은 없는 거 같은데 요즘 부쩍 집 보러 오는 사람들이 늘었어.
지수 : (조심스레) 언니...
은수 : 응?
지수, 태주에 대해 뭔가 묻고 싶지만 차마 묻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이때 경진이 물병을 들고 들어온다.
경진 : (은수를 보고) 넌 왜 아직도 안가고 있어?
은수 : 엄마가 들어가요. 나 아직 출근 전이라 병원에 계속 있어도 괜찮아요.
경진 : 아 됐어. 병원잠이 얼마나 사람 몸 상하게 하는데. 번갈아 해야 너도 나도 안 지쳐. 뭐 해? 빨랑 가지 않고.
은수, 정보지를 가방에 챙겨 넣으며 일어선다.
S#28. 은수네 오피스텔 복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은수. 복도를 따라 걷다가 멈칫한다.
은수집 앞에 준혁이가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것. 꽤 술을 마신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준혁에게 다가가는 은수.
은수 : 상무님.
준혁 : .....
은수 : 상무님!
고개를 들어 보는 준혁.
은수, 준혁의 슬픈 얼굴에 멈칫한다.
은수 : 왜 이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준혁, 말없이 은수를 포옹한다.
은수 : (저항하며) 이러지 말아요. 상무님, 이러지...
준혁 : 잠시만... 잠시만 이렇게 있을께요.
은수 : .....(동작을 멈춘다)
준혁 : 무시무시하게... 끔찍할만큼... 세상이 싫고...화가 나고...분해요.
은수 : !
준혁, 잠시 후 몸을 떼고 은수를 본다.
은수,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준혁을 본다.
은수 : 상무님...
준혁 : 은수씬 화나지 않아요?
은수 : !
준혁 : 분하고 억울하지 않냐구요.
은수 : ! 무슨 말 하는 거예요?
준혁 : 나한테 와요.
은수 : !
준혁 : 나한테 와요, 은수씨.
은수 : (뒤로 비켜서려는데)
준혁 : (은수를 잡는다)
은수 : 상무님 왜 이래요.
준혁 : 싱가폴에서의 일은 없었던 일로 해요. 그냥 나쁜 꿈 한번 꾼 걸로 하자구요.
은수 : !
준혁 : 변한 거 없어요, 은수씨랑 나.
은수 : 있었던 일이 어떻게 없었던 일이 돼요? 그리고 난...
준혁 : 강태주를 사랑한다구요?
은수 : ! (침착하게 준혁의 손을 뗀다) 상무님 많이 취했어요. 돌아가세요.
준혁 : 어차피 처음부터 나 이용했던 거잖아요.
은수 : !
준혁 : 알고 속아줬던 거예요, 나도.
은수 : .....
준혁 : 그러니까 계속 이용하라구. 누구한테 이용당하는 거, 난 그런 거 익숙하니까.
은수 : ! .....(잠시 준혁을 보다가 단호한 얼굴로) 이런 얘기 하고 싶지 않아요. 돌아가세요.
은수, 집으로 들어간다.
준혁, 허탈한 듯 문에 기대어 선다.
S#29. 은수네 오피스텔
문 앞에 서 있는 은수. 마음이 복잡하다.
S#30. 백화점, 회의실 (다른 날, 낮)
은수를 포함한 10여명의 신입사원들이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다.
직원이 신입사원들에게 안내용지를 나눠주고 있다.
교육 : 지금 배부되고 있는 용지에 각자의 부서 배치 내용이 있을 겁니다. 희망 부서에 배치 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텐데,
자기가 원하던 부서가 아니라고 해서 지레 실망하진 마세요. 3개월 근무 후 희망부서 재신청이 가능하구요,
회사가 인정하는 특별한 경우라면 수시로 부서 이동은 열려 있습니다. 인턴생활을 통해 회사의 기본 방침은
이미 다 알고 계실테니 더 이상 설명은 안하겠 습니다. 각 사원들은 자신이 배속된 부서로 가시기 바랍니다.
신입교육은 각 부서별로 부서 성격에 맞게 진행될 겁니다. 같은 동료로 일하게 돼서,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신입사원들 박수를 치고 서로들 담소하며 자리를 떠난다.
은수, 자리를 챙겨 일어나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은수, 액정을 보고.
은수 : 상무님...
S#31. 동, 준혁의 사무실
은수가 들어선다.
준혁, 자리에서 일어나며 테이블 쪽으로 간다.
준혁 : 앉아요.
은수 : (앉는다)
준혁 : 발령 난 부서는 맘에 들어요?
은수 : 네. 운 좋게도 제가 지망했던 부서예요.
준혁 : 운이라기보다는 실력이에요.
은수 : .....
준혁 : 미리 얘기해줘야 할 거 같아서 그러는데...
은수 : ?
준혁 : 혜린이가 은수씨가 들어갈 MD 사업본부 구매담당 이사로 들어와 있어요.
은수 : !
준혁 : 괜찮겠어요?
은수 : .....
준혁 : 당분간은 어쩔 수 없지만, 부서 이동 신청이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은수 : 아니예요.
준혁 : ?!
은수 : 저 패션쪽 MD 일 하고 싶어했잖아요. 그 일을 배울 수 있는 제일 좋은 부서에 배속 받았는데, 이런 기회가 어딨어요?
준혁 : ...그렇죠.
은수 : 상무님이 그러셨잖아요. 회사가 애들 장난하는 데냐구. 일 생각만 할래요.
준혁 : .....
은수 : 그 말씀 하시려고 부른 거예요.
준혁 : 네... (망설이듯) 아니... (은수를 본다)
은수 : (준혁이 얼굴을 보는 게 불편하다)
준혁 : 어제 일...말인데요...
은수 : 없었던 걸로 할께요. 잊었어요, 벌써.
준혁 : 기대고 싶었어요, 은수씨한테.
은수 : !
준혁 : 그 때 생각나는 사람이 은수씨 밖에 없었거든요.
은수 : .....
준혁 : 술 취해서 그런 건 미안해요. 그런데... 그 때 한 말 진심이에요.
은수, 준혁을 본다. 두 사람의 아련한 시선이 마주친다.
은수 : (시선 피하며) 저 이만... 근무하러 가야 되는데...
준혁 : .....
은수 : (일어나서 돌아서려다가 준혁을 본다) 진심인 거 알아요.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기엔 제가 상무님한테
상처를 너무 많이 드렸어요. 저같은 애한테 마음 쏟지 마세요, 상무님.
준혁 : .....
은수, 목례하고 나간다.
S#32. 동, 사무실
태주, 직원 몇 명과 담소하며 사무실로 들어온다.
태주, 웃으며 뭐라 말하는데 이때 은수가 상무실에서 나온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다.
태주의 얼굴에서 순간 웃음이 사라진다.
은수, 시선 피하며 애써 아무렇지 않게 태주 옆을 지나쳐 간다.
태주, 자리에 앉는다. 마음이 착잡하다.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S#33. 동, 사무실B, MD 사업부, 혜린의 사무실
혜린, 통화 중이다.
혜린 : 나 점심 좀 사주라구. (웃으며) 알았어. 이따 봐.
혜린, 전화를 끊는다. 사내 전화를 든다.
혜린 : 신입사원 한은수씨 왔어요? 내 방으로 좀 오라고 해요.
혜린, 초조해진다.
잠시 후, 은수가 들어온다.
은수, 당당한 시선으로 혜린을 보며.
은수 : 안녕하세요?
혜린 : 앉아요.
은수 : (앉는다)
혜린 : (소파 쪽으로 다가와 앉으며) 우연 치곤 이건 너무 하네요, 그쵸?
은수 : 우연이라고 할 순 없죠.
혜린 : ?
은수 : 예전부터 패션 MD쪽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부서를 지원한 거구요. 차혜린씨... 아니, 차이사님이라고 불러야죠.
차이사님도 패션관계 일을 하셨으니까 백화점에 들어온다면 이 쪽 부서로 오는 게 당연한 거구요.
혜린 : 내가 여기 들어올 걸 알았단 건가요?
은수 : 아뇨. 사실 백화점으로 들어왔다는 것도 좀 전에 알았어요.
혜린 : 그래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쳐요. 그래도 어쨌든 좀 싫긴 하죠?
은수 : 편하진 않아요.
혜린 : 솔직해서 좋네요. 다른 부서로 이동 신청해요.
은수 : 왜요?
혜린 : 편하지 않다면서요?
은수 : 세상에 편하게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구요. 저 그렇게 배부른 사람 아니예요.
혜린 : 이동 안하겠다는 거예요? 나랑 얼굴 맞대는 거 괜찮아요?
은수 : 괜찮진 않은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예요.
그리고... 전 일개 말단 직원인데 차이사님 같은 분이랑 얼굴 맞댈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혜린 : 허... 은수씨 보면 볼수록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은수 : .....
혜린 : 내가 이 말까진 안하려고 했는데요, 말 나온 김에 한번 물어볼께요.
은수 : ?
혜린 : 꼭 이 백화점에 입사를 했어야 했어요? 준혁 오빠도 그렇고... 강태주씨도 있는데?
은수 : 먹고 살려면 어쩔 수가 없어요. 차이사님 같은 분은 그런 거 모르겠지만.
혜린 : !
은수 : 얘기 끝났으면 일어나도 돼죠?
혜린 : .....
은수 : (일어나 고개 숙여 혜린에게 인사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차이사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은수, 나간다.
S#34. 동, 사무실B
은수, 혜린의 방에서 나오는 순간 다잡고 있던 마음이 풀어져 왠지 서러운 기분이 든다.
하지만 곧 표정을 밝게 하고 자리에 앉는다.
S#35. 백화점 내 일식집
태주와 혜린, 식사 중이다.
혜린, 몇 번 먹는 듯 하더니 밥 맛 없는 듯 젓가락을 놓는다.
태주, 혜린을 본다.
태주 : 회 먹고 싶다더니 왜 벌써 내려 놓냐?
혜린 : (물 마시며) 기분이 좀 그래.
태주 : (먹으며) 그 놈의 기분,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갔다 하기는.
혜린 : 한은수 내 부서에 배치됐어. (태주를 본다) 알고 있었어?
태주 : !.....아니. 너한테 처음 들어.
혜린 : 기분 안 좋아. 왜 이렇게 엮이냐구, 자꾸!
태주 : .....
혜린 : 부서 옮기라고 했더니 절대 싫대. 걔 무슨 심리야? 다른 데 취직자리라도 알아봐 주던지 해야지...
태주 : 냅둬.
혜린 : ?
태주 : 네가 다른 일자리 구해주면, 부서도 안 옮기겠다는 사람이 꽤나 네 말대로 하겠다.
혜린 : 그럼 나보구...
태주 : 본인이 괜찮다잖아. 왜 네가 안달해? 넌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는데 가만히 보면 어리석기가 이루 말할 수 없더라.
혜린 : 뭐?
태주 : 너 이 백화점 오너 딸이잖아. 힘들면 그 쪽이 더 힘들지 네가 더 힘들겠냐?
혜린 : .....
태주 : 그 쪽이 괜찮다면 넌 더 괜찮은 척 해. 너 자존심 강하잖아. 약한 모습 보이지 말라구.
혜린 : 당신은 괜찮아?
태주 : 괜찮아.
혜린 : 정말?
태주 : 응.
혜린 : 난 불안해.
태주 : (혜린을 본다)
혜린 : 솔직히 말해서 불안해.
태주 : 나 이미 선택 끝났거든. 다 끝난 일 가지고 괜히 사람 들쑤시지 마. 다들 괜찮다는데 왜 너 혼자 난리야?
혜린 : ...정말 당신 믿어도 돼?
태주 : (혜린을 본다)
혜린 : 믿어도 돼냐구.
태주 : 너 왜 이래. 서로 다 잊기로 약속한 거 잊었어?
혜린 : .....(불안한 시선으로 태주를 본다)
태주 : (단호한) 없었던 일이야. 아무 일도 없었어.
태주, 여유 있게 식사한다.
혜린, 물컵을 꼭 쥐고 여전히 불안한 시선으로 태주를 바라보다가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S#36. 지수의 병실 (밤)
경진, 수건을 챙겨 들고 병실에서 나오는데 마침 들어오던 호영이 경진을 본다.
호영, 경진에게 다가가며.
호영 : 어머니!
경진 : ?
S#37. 동, 구내식당
식사를 하는 호영과 경진.
경진, 놀란 얼굴이다.
경진 : 그게 뭔 말이야? (목이 탄 듯 물을 마시고) 그게 말이 돼?
호영 : 말이 되느냐 안되느냐, 그걸 따질 땐 아닌 거 같은데요, 어머니.
경진 : 내가 아무리 팥쥐 엄마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짓을 하나.
호영 : 그게 그렇게 나쁜 짓은 아닌 거 같은데요.
경진 : 내가 지금까지 우리 은수한테 못할 짓을 쪼끔 많이 했거든? 그래두 그 은수 착해빠진 것이
다 이해하고 보듬고 왔어, 이 이 못난 에미를. 그런데 아마 그건 용서 못할 거야.
호영 : 그러니까 은수씨 모르게 해야된다는 거죠.
경진 : 전에도 그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은수 걔 난리를 치더라구. 그 순한 것이 돌변 하는데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이건 그냥 연애도 아니고 결혼까지 하려던 사람이잖아. 사람이 가장 깊게 상처받는 게 (가슴을 치며) 이거, 이거거든.
특히나 사랑. 내가 그런 짓 하면 우리 은수 나자빠져. 다시는 나 안보려고 할 거야.
호영 : 어머니, 생판 모르는 사람 도움도 받습니다. 일단 사는 게 급선무죠.
경진 : 아니 싫다고 갈 땐 언제고 지금 와서.... (생각난) 그때 괜히 전세값을 물어봤나...
호영 : 예?
경진 : 혹시 그거 땜에 도망간 건가...
경진, 혼란스러운 듯 생각에 잠긴다.
S#38. 은수네 오피스텔 복도
경진, 침울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몇걸음 걸어가다가 화들짝 놀란다.
집주인이 여자 한명과 은수네 오피스텔 앞에 서 있는 것.
집주인 : 분명히 이 시간에 집에 있겠다고 했는데...
경진, 재빨리 숨으려 하지만 집주인, 이미 봐버렸다.
집주인 : 알구 저기 오네. 아줌마! 빨리 와요, 빨리.
경진, 할 수 없이 다가온다.
S#39. 은수네 오피스텔
집을 둘러보는 집주인과 여자.
경진, 시무룩한 얼굴로 빗자루질을 하고 있다.
집주인 : 괜찮죠? 깔끔하죠, 아주.
여자 : (경진에게) 살아보니까 어떠세요? 살기 편한가요?
경진 : 아유 건물도 워낙 낡은데다가 시내 한복판이라 공기도..... (집주인의 부릅뜬 눈과 마주 치자) 건물은 낡았는데,
이 집은 1년전에 리모델링 한 거라 살기에는 아주 끝내주지요. 교통도 편하고.
여자 : 네..., 구경 잘했습니다.
집주인과 여자, 나간다.
경진 빗자루를 집어 던진다.
경진 : 이대로 길바닥으로... (한숨)
은수(e) : 변두리 쪽으로 가면 방 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S#40. 지수의 병실 (다른 날, 아침)
은수, 지수의 가습기 통을 설치하고 있다. 지수는 침대에 누워 있다.
경진, 눈이 동그래져서 은수를 본다.
경진 : 변두리?
은수 : 알아봤는데 잘하면 보증금 없이 달세만 받는데도 찾을 수 있대요.
경진 : 그런 집이 오죽하겠어?
은수 : 발 뻗고 잘 수만 있으면 됐지, 뭐. 엄마랑 나랑 직장 다니는 건 좀 힘들겠지만 어떡해요, 방법이 없는 걸.
경진 : 우리 지수는? 저 몸도 성치 않은 걸 냄새나는 골방에 가둬두라구?
은수 : (지수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다) .....냄새가 왜 나요? 우리가 살기 나름이지.
지수 : 우리 지여사 또 아픈 딸 핑계 대신다. 그렇게 우는 소리 하면 은수한테 금이 나와, 은이 나와. 은수 좀 그만 볶지 그래?
경진 : 아니 저 기집애는, 내가 언제 은수를 볶았다 그래? 네 걱정 하는 거 아니야, 지금.
지수 : 나 괜찮거든. 발 뻗고 잘 수만 있으면 돼, 나두.
경진 : .....(속상하다)
은수 : (착잡한) 할 수 없잖아요. 형편대로 살아야지. 저 출근할께요. (나간다)
경진, 나가는 은수를 속상한 듯 본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다.
S#41. 백화점 매장
은수, 한 매장의 인테리어와 구조 등을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
촬영 후, 매장 직원에게 인사하고 나오는 은수. 수첩을 보며 이리저리 체크하고는 매장들을 둘러본다.
샤샤매장이 보인다. 내키지 않지만 매장으로 들어간다.
S#42. 동, 샤샤매장
은수와 직원.
은수 : 신입인데요, 매장환경과 인테리어에 대해 보고서 올려야 되거든요. 협조 좀 부탁할께요.
직원 : 촬영만 하면 되는 거예요?
은수 : 네.
직원 : 하세요.
은수, 촬영을 몇 컷 찍는데 이때 태주의 음성이 들린다.
태주 : 혜린이한테 얘기 들었죠? 샤샤 브랜드 이전 문제 때문에 그러는데...
은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멈칫한다.
은수, 이내 시선 돌리고 촬영을 한다.
태주 : (계속 말을 잇는다) 입점 기간 동안 매출실적표 이번 주까지 나한테 올려줘요.
태주, 매장을 떠난다.
S#43. 동, 엘리베이터 앞
태주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막 타려는 순간 다가온 은수를 보고 멈칫한다.
태주,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데 은수가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다시 열린다.
엘리베이터에 타는 은수.
태주, 은수의 행동에 당황스럽다.
S#44. 동, 엘리베이터 안
꽤 긴장한 태주와 달리 은수는 말짱한 얼굴이다.
은수 : (싹싹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태주 : .....(한참 침묵하다가) 혜린이랑 일하는 거 괜찮아?
은수 : 아직까지는 별로 얼굴 마주칠 일이 없었어요. 신입교육기간이기도 하고.
태주 : ...지수는...어때?
은수 : 많이 좋아졌어요. 곧 퇴원할 거 같아요.
태주 : 다행이네.....어머니는 안녕하셔?
은수 : (태주를 보며) 강차장님.
태주 : (은수를 본다)
은수 : 걱정해 주시는 건 고마운데 개인적인 질문은 삼가해 주셨으면 해요. (씩 웃으며) 제가 조금 불편하거든요.
태주 :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태주, 나간다.
은수, 태주의 뒷모습을 야속한 듯 보고 있는데
몇걸음 걸어가던 태주, 갑자기 참을 수 없다는 듯 되돌아오며 닫히려는 엘리베이터 문을 잡는다.
은수, 태주를 본다.
태주 : 그렇게 나 보면서 웃으면서 얘기하지 마.
은수 : 왜요?
태주 : 보기 싫어.
은수 : 신입교육 때 직장 동료와 고객들에게 항상 웃는 얼굴 하라고 교육받았는데요. 제가 잘못한 건가요?
태주 : !
은수 : 그리고 강차장님. 신입사원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반말 하시는 거 아니죠.
태주,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은수를 보며 할 말이 없어진다.
태주, 엘리베이터 문에서 손을 떼는데.
은수 : 참 늦었는데, 승진 되신 거 축하 드려요.
태주 : !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S#45. 동, 준혁의 사무실
생각에 잠겨 있는 준혁. 전화기를 든다.
준혁 : 최이사님 자리에 계신가요? ...내가 지금 뵙겠다고 전해 드려요.
준혁, 자리에서 일어난다.
S#46. 동, 최이사 사무실
자리에 앉는 준혁.
최이사 : 네가 먼저 날 찾을 때도 있구나.
준혁 : .....(씁쓰레하게 웃는다)
최이사 : 좀 미안하구나. 괜히 잘 살던 놈 휘저어 놓은 거 같아서.
준혁 : ......
최이사 : .....난 네가 내 편이 됐으면 좋겠다.
준혁 : .....
최이사 : 그래서 네 의사를 알고 싶어.
준혁 : .....내용을 알아야 결정할 거 아닙니까.
최이사 : 강태주라고 했나? 혜린이랑 결혼한다는 놈, 차회장이 아주 노골적으로 밀어붙일 모양이던데.....
단언컨데 그런 식으로 죽 쒀서 개 주는 꼴은 면할 수 있을 거다.
준혁 : 그러니까... 제가 받을 수 있는 이익이 뭡니까, 구체적으로.
최이사 : 최근 몇 년 간 백화점 주식을 끌어 모으고 있다. 하지만 아직 차회장에 대적하기는 좀 그렇지.
그래도 네가 이사회 마음만 돌려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
준혁 : .....
최이사 : 지금 너, 허물만 최고 경영자 아니냐.
준혁 : .....
최이사 : 네가 도와만 주면 속 알맹이까지 채워주겠다. 월드 백화점이 네 것이 되는 거야.
준혁 : .....
준혁과 최이사, 긴장된 시선이 오간다.
S#47. 동, 사무실 B, MD 사업부
은수, 업무를 보고 있다.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은수 : 상무님..... 네, 그냥 열심히 하고 있죠, 뭐.
S#48. 동, 준혁의 사무실
준혁, 창가에 서서 핸드폰 통화 중이다.
준혁 : 오늘 밤에도 동생 병실에서 지내요?
은수(f) : 아뇨. 오늘은 엄마 차례예요.
준혁 : 잘됐네요. 나랑 저녁 할래요? .....오늘이 내 생일이거든요. 그런데 기억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요.....
은수씨라도 축하 좀 해달라구요. (웃으며) 그래요. 고마워요.
전화 끊는 준혁. 쓸쓸한 얼굴로 창 밖을 바라본다.
S#49. 고급 레스토랑 (밤)
은수와 준혁, 식사를 하고 있다.
은수 : 죄송해요, 선물도 준비 못하고.
준혁 : 너무하네요. 생일이라고 미리 선포까지 했는데.
은수 : 이왕 하는 거 좋은 거 해드리고 싶었는데 생각할 시간이 너무 없었거든요.
준혁 : 좋은 거 뭐요?
은수 :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냥 생각나는대로 사서 드리고 싶진 않았거든요. 다음에 제가...
준혁 : 괜찮아요. 생일이라는 거, 어차피 거짓말이니까.
은수 : 네?
준혁 : 그 핑계 아니었으면 은수씨가 나랑 이런 데이트 하겠어요?
은수 : .....
준혁 : 기분 나빠요?
은수 : 왜 그런 거짓말을 하세요?
준혁 : 난 원래 생일 같은 거 안 쇠요.
은수 : ?
준혁 : 마지막으로 쇤 게 17년 전인가... 그 날 아침 아버지가 손수 미역국을 끓여주셨어요.
은수 : 되게 다정한 아버님이셨구나.
준혁 : 맛은 굉장히 없었어요..... 바로 그 날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은수 : !
준혁 : 생일 쇠고 싶은 마음 당연히 안 나겠죠?
은수 : .....
준혁 : (씩 웃는다)
은수 : 왜 웃으세요?
준혁 : 이런 얘기 한 거 처음이라서요. 입에서 꺼내면 마음 아플 거 같아 안했는데 이상하게 은수씨한테 얘기하는 건 담담하네.
은수 : 미안해요.
준혁 : ? 뭐가요?
은수 : ...그냥...나까지 상무님 아프게 한 거 같아서...정말 미안해요.
준혁 : .....
S#50. 은수네 집 근처 길
나란히 걸어가는 준혁과 은수.
준혁 : 그 때 그 길이네요.
은수 : .....
준혁 : 그 날 한 말 생각나요?
은수 : ?
준혁 : 그냥 눈 감고 수십번 수백번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희미해진다구.
은수 : .....
준혁 : 취소할께요. 안 그런 것도 있더라구요.
은수 : .....
준혁 : 그만 두자, 그만 두자, 아무리 마음 속으로 다짐해도 희미해지지가 않아요, 은수씨가.
은수 : .....
준혁 : 은수씬 나한테 그런 사람이에요.
은수 : .....
준혁 : 내 옆에 있어줘요.
은수 : 상무님...
준혁 : 꼭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싫지만 않다면 그렇게 해줘요.
은수 : 저는 상무님이 왜 저한테...
준혁 : 따뜻해요.
은수 : ?
준혁 : 누군가한테 따뜻함을 느껴본 건 은수씨가 처음이에요. 그래서... 그냥 옆에 두고만 있어도... 내 몸이 다 녹을 거 같아.
은수 : .....
준혁 : 기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것도 처음이에요. 난 내가 아주 강한 놈인 줄 알았거든요.
은수 : .....
준혁 : 은수씨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잘 모르겠는데... 요즘 자꾸 휘청 거려요. 누가 좀 잡아줬으면 좋겠어.
은수 : .....
준혁 : (은수를 본다) 휘청거리지 않게 은수씨가 나 좀 잡아줘요.
은수 : !
준혁 : 사랑해요.
은수 : ....
S#51. 병원 카운터 (다른 날, 낮)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은수.
병원 직원, 컴퓨터를 눌러보며 확인해 보더니.
직원 : 환자분 성함이 한지수씨 맞죠?
은수 : 네.
직원 : 입원비 이미 완불 됐는데요.
은수 : 네? 그럴 리가요.
직원 : (컴퓨터 화면 보며) 분명히 어제 날짜로 완불된 걸로 나오는데, 뭐 착각하신 거 아니예요?
은수 : !
은수, 의아한 얼굴로 돌아선다.
S#52. 지수의 병실
지수, 사복을 입고 경진, 짐을 싸는 등 퇴원준비를 하고 있다.
이때, 은수가 들어선다.
은수 : 엄마, 병원비 엄마가 냈어요?
경진 : 어? 어... 내가 말 안했나? (뭔가 찜찜한 얼굴이지만 애써 내색 않는)
은수 : 엄마가 무슨 돈으로...
경진 : (은수 시선 피하며) 서울 인심 박하다박하다 했는데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더라구. 우리 미용실 주인 있잖니.
우리 사정 듣더니 하도 딱했는지 돈을 융통해 주더라구.
지수 : (은수에게) 엄마가 보기보단 아주 성실한 직원이었나 봐.
경진 : 이 엄마 능력을 인정한거지. 월급 짜다고 욕도 많이 했는데 그 서운한 맘이 싹 가시는 거 있지.
은수 : 정말 너무 고마워서 어떡해요?
경진 : 어떡하긴 뭐. 너랑 나 열심히 벌어서 갚아야지. 자, 가자. (지수를 부축하며) 얘얘얘, 천천히. 애가 조심성도 없이.
S#53. 은수네 오피스텔
오피스텔에 들어오는 은수와 지수 경진.
은수와 경진, 지수를 눕힌다.
경진 : 그래도 이렇게 걸어 들어오니 얼마나 다행이야.
지수 : 엄마, 나 너무 중환자 취급하지 말아줘. 기분 별로야.
경진 : 너 또 괜히 팔딱거리고 그러지 마. 그럼 다 도로아미타불 되는 거 알지?
지수 : 아, 알았다니까. 미용실이나 나가세요.
경진 : (은수에게) 그럼 엄마 다녀 온다?
은수 : 다녀오세요.
경진, 나간다.
은수, 병원에서 가지고 온 짐들을 정리한다.
지수,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다가.
지수 : 신입사원이 벌써부터 월차내도 되는 거야?
은수 : 응.
지수 : 찍히지 않아?
은수 : 좋은 회사거든.
지수 : (망설이다가) 내가 계속 궁금했는데 참았거든.
은수 : 뭐가?
지수 : 그 아저씨랑 깨졌다며.
은수 : .....
지수 : 갑자기 왜 그렇게 된 거야? 둘이 좋아 죽을 땐 언제고.
은수 : 그 사람 결혼한대.
지수 : (벌떡 일어나며) 뭐! (가슴을 잡는다)
은수 : 야, 너 또... 흥분하지 말랬지. 몸도 조심히 움직이고.
지수 : 흥분할 말을 하니까 흥분하지.
은수 : 괜찮아?
지수 : 응.
은수 : (지수를 눕힌다)
지수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결국 그 재벌딸이랑?
은수 : 응.
지수 : 언니 또 버림 받은 거네. 이번엔 완전히, 제대로.
은수 :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 좀 나쁘다. 그냥 보내줬다고 해. 그 여자가 더 좋다는데 뭐 어쩔거야.
지수 : 남의 말 하듯 하네. 그게 인간이야?
은수 : ...인간이니까 그러지.
지수 : ? 근데... 너 왜 이렇게 멀쩡해? 예전에 채였을 때랑은 좀 다르다?
은수 : 정신 차린 거야. 정신이 번쩍 깨였어.
지수 : 무슨 말이냐?
은수 : 사랑이라는 게 난 아주 굉장한 건 줄 알았거든. 근데 별 거 아니더라구. 모든 걸 다 쏟아부을 만한 가치는 없다는 걸 알았어.
그러기엔 너무 불안정해. 신뢰도 안가고.
지수 :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은수 : 그 땐 좋은데, 좋을 땐 한 없이 좋고 세상이 꽉 차는 거 같은데... 어느 순간 펑하고 사라져. 남는 거 하나 없이.
지수 :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뭐야?
은수 : 한마디로, 사기라는 거야.
지수, 의아한 눈으로 은수를 본다.
은수, 차분하게 짐을 정리한다.
S#54. 백화점 대형 회의실
임원진들이 모여 있다.
혜린, 스크린에 등장하는 명품 브랜드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혜린 : 현재 입점 타진 중인 뫼르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유럽의 상류층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세계 최고 명품 브랜드로 급부상한 제품입니다. 국내의 다른 유명 명품 브랜드 제품과 달리 눈에 띄는 로고나
특징적인 디자인이 없어, 그야말로 알아보는 사람만 알아보는 제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준혁 : 뫼르쏘의 가격대가 다른 명품 브랜드에 비해 상당한 수준이라고 하던데 국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혜린 : 우리나라 국민들의 명품 수요는 가히 세계적이죠.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준혁 : 그건 너무 추상적이네요. 예쁘니 잘 팔리겠지, 하는 식의 안일한 생각이에요. 좀 더 시장 규모 파악을 구체적으로 해보세요.
혜린 : ...네, 알겠습니다.
준혁 : 제품 단가가 너무 비싸서 일정 기본 수량을 확보해서 백화점 매장에 배치시키는 건 수지 면에서 위험하지 않나요?
혜린 : .....(당황하는) 그건...
태주 : 주문 판매 방식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매장의 규모부터 미니 코너 정도로 하는 겁니다.
재고량 없이 단 몇 개의 샘플과 카달로그로 고객들에게 선을 보이고 주문을 받아 본사에서 제품을 하달 받는 건 어떨까요?
준혁 : 명색이 명품샾인데 미니 코너는 너무 갚어치가 떨어져 보일 수 있을텐데?
태주 : 명품샾인데 미니 코너라면 희소성의 느낌도 더 강하겠죠. 물론, 작더라도 아주 고급스럽게 꾸민다는 전제 하에.
혜린 : (태주의 자신감 있는 태도가 뿌듯하다)
준혁 : (혜린에게) 국내 고객들의 반응 조사는 어떻게 할 겁니까. 워낙 고가라 무작정 입점하는 건 위험할 거구요.
혜린 : 패션리더로 알려져 있는 유명연예인을 섭외해서 일반인에게 자연스럽게 선보이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거에 저희 팀원들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반응을 살펴보고 본격적인 입점 단계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준혁 : 좋아요. 그럼 그 결과 나오는 대로 보고해 주세요. 이만 마치죠.
불이 켜지고 사람들 회의석상을 빠져 나간다.
혜린, 태주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몇마디 주고 받는다.
준혁이 지나쳐 가려는데.
혜린 : 오빠.
준혁 : ?
혜린 : 나 처음 무대에 서는 건데 너무 신랄한 거 아니야?
준혁 : 그 정돈 보통이야. 다 그렇게 해.
혜린 : 중간에 태주씨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망신당할 뻔 했잖아.
준혁 : 그러게 더 철저하게 준비하던가. (가려는데)
혜린 : 오늘 저녁 가족 모임 늦지 마.
준혁 : 늦을 거야. (태주에게) 아버님한테 말씀 드렸지?
태주 : 네.
준혁 : 이따 저녁 때 봐.
준혁, 나간다. 혜린과 태주 입구 쪽으로 걸어가며.
혜린 : 준혁 오빠 당신한테 어때?
태주 : 뭐가?
혜린 : 일하기 불편하지 않아?
태주 : 불편하면 네가 네 오빠 떼내줄래?
혜린 : 그러고 싶은데, 워낙 막강한 상대라.
두 사람, 피식 웃는다.
S#55. 호텔 가족 만찬룸 (밤)
차회장과 윤여사, 태주와 혜린이 식사하고 있다.
윤여사 : 난 아무래도 약혼식 장소가 맘에 안들어. 적어도 유니온 정도는 돼야 되지 않니?
혜린 : 급하게 날짜 잡느라 그런 걸 어떡해? 그 정도도 괜찮아. 얼마나 호화롭게 한다구.
윤여사 : 별 자랑할 것도 없는데 호화롭기라도 해야지... 하는 것마다 다 맘에 안들어.
차회장 : 새로 발령난 부서는 어떠냐?
태주 : 얼마 안돼서 잘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별 어려움 없습니다.
차회장 : 가장 총괄적인 업무를 보는 곳이야. 준혁이가 도움 많이 줄 거다. 배울 점 많을 거야.
태주 : 예...
윤여사 : 근데 준혁이 얜 왜 함흥차사야?
차회장 : 늦는다고 했어. 바이어 접대 있다고 했던가?
태주 : 예.
차회장 : 약혼식 올리는대로 태주 넌...
이때, 노크 소리와 함께 준혁이가 들어선다.
준혁 : (고개 숙이며) 늦었습니다.
차회장 : 그래, 여기 앉아라.
준혁 : (문쪽을 향해) 들어와요.
곱게 정장을 차려 입은 은수가 들어선다.
갑작스런 은수의 등장에 경악하는 태주와 혜린.
윤여사 : 아니, 그 아가씬 누구니?
준혁 : 전에 말씀 드렸었죠? 교제하고 있는 사람 있다고. (은수에게) 인사드려요.
은수 : (다소곳이 고개 숙이며) 처음 뵙겠습니다. 한은수라고 합니다.
고개를 드는 은수. 태주와 혜린 쪽을 여유 있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은수의 여유 있는 시선과 태주의 충격 받은 얼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