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 제주의 역사(歷史)를 바꾼 역사(役事)가 시작된다.
제주도민들의 숙원이었던 급수난 해결을 위한 어승생 수원지 개발이 시작된 것.
‘어승생(御乘生)’이란 명칭은 어승마(御乘馬)에서 유래됐다.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1652년)에는 “어승생 오름은 제주 남쪽 25리의 거리에 있다. 그 산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둘레가 100보나 된다. 예로부터 전하기를 ‘이 오름 아래에서 임금이 타는 말이 났다’고 하므로 그렇게 불린다”는 기록이 나온다.
정조 21년(1797년) 산 밑에서 용마(龍馬)가 태어나 조명검 목사(牧使)가 임금에게 바치자 어승마로서 ‘노정’이라는 벼슬을 하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67년 4월 21일자 제주신문은 ‘본도 개발의 대도약’이라는 제목으로 어승생댐 건설 대역사를 보도했다. ⓒ 제주일보
1966년 6월 20일 제주도의 개발에 관심이 컸던 박정희 대통령은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정우식 당시 도지사에게 당장 33만 도민에게 급수할 수 있고, 축산과 농업용수로 쓸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한라산 계곡의 물을 막아 수자원으로 이용하는 자신의 구상을 메모지에 직접 스케치했다.
호텔 메모지에 사인펜으로 그린 이 구상도는 한라산 계곡의 물을 막아 수자원으로 이용한다는 내용이었고, 이것이 바로 제주도 수원개발 기본 구상도였다.
이 구상도는 어승생댐 건설 계획을 구체화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개발사업은 급속히 추진돼 1967년 4월 20일 기공식이 거행됐다.
당시 제주신문(제주일보)은 ‘본도 개발의 대도약...어승생댐 기공’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온도민의 숙원인 급수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23만7천명의 도민에게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1백40정보의 수리불안전답과 목장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어승생 용수시설공사와 성판악 간이급수시설공사 등 제주도 수자원 개발 기공식이 20일 상오 11시 시민회관에서 김윤기 건설부장관, 박경원 체신부장관, 정우식 지사를 비롯한 도내 각 기관장과 지방유지 그리고 시민학생 등3천여명이 입추의 여지없이 장내를 메운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되었다”고 전했다.
제주신문은 또 “20일 기공을 본 제주도 수자원개발사업은 67년부터 69년까지 3개년 간 6억6천8백만원을 투자하여 고지대에 위치한 어승생과 성판악 수원을 개발하여 어승생 수원으로부터 제주시 애월면, 한림읍 지역에 급수하고 성판악 수원으로부터 남원면과 표선면 지구에 급수함으로써 주민 생활용수는 물론 농업용수도 공급하는 대규모 사업”이라고 보도했다.
어승생 수원지 개발은 구구곡과 Y계곡의 물을 자연유하식 도수로 7.6㎞를 통해 저수지로 끌어들여 10만t 저장 할 수 있도록 했다.
▲어승생 저수지에는 현재 통합정수처리시설이 설치돼 도민들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고 있다. ⓒ 제주일보
어승생 수자원 개발공사는 1968년 들어 하와이를 다녀온 박 대통령이 제주도 개발에서 물 문제의 시급함을 들어 연내 완공할 것을 지시하고 예산을 대폭 지원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편 어승생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이해 6월 24일에는 일제검거령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체포된 폭력배들이 국토건설단이라는 이름으로 공사에 투입됐다.
이들 국토건설단 1진은 제주에서 검거된 39명을 포함해 210명으로, 이후 2진과 3진 510명이 투입됐다.
이들은 어승생댐 공사장과 제2횡단도로(1100도로) 건설현장에 투입됐다가 빈번한 집단 탈주 등 말썽을 부리다 4개월만에 해체됐다.
어승생 수자원 개발공사는 계곡에 둑을 쌓아 수원을 모으는 취수원시설, 취수원에서 저수지까지 물을 공급하기 위한 도수로 공사, 8000평 면적에 10만6000t의 물을 채울 수 있는 저수지 댐공사, 저수지에서 각 지선에 연결하기 위한 48㎞의 송수관로 공사, 226㎞에 이르는 지선관로 공사로 나뉘어 진행됐다.
1969년 9월에는 저수지 축조공사가 끝났고, 그 해 10월12일 산천단에서 통수식이 열렸으나 완공된지 며칠 후 저수지 바닥이 터지는 등 2차례 재시공 과정을 거쳐 1971년 12월10일 준공돼 지금의 어승생 수원지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어승생댐 공사는 총 12억원이 투입돼 착공 4년 7개월여 만에 결실을 맺었다.
공사가 완공된 후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넓고 크다’는 뜻의 ‘한밝 저수지’라는 휘호가 지금도 어승생 저수지에 표석으로 새겨져 있다.
어승생 수원이 원수를 공급하면 지선별 간이 여과시설을 통해 정수를 공급했는데 시설이 노후돼 효과가 없음에 따라 2005년 8월부터 2006년 12월22일까지 68억원을 투자해 저수지 내에 통합정수처리시설을 설치, 맑은 물을 공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