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事(촌사)
양경우(梁慶遇(1568~)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점(子漸), 호는 제호(霽湖)·점역재(點易齋).
조선 중기 남원 출신의 의병장이며 문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아버지 양대박과 아우 양형우와 함께 의병 활동을 하였다.
유집으로 『 제호집(霽湖集)』이 있다.
탱자나무꽃 핀 울타리 낮은 사립문 닫아두고
枳殼花邊掩短扉 지각화변엄단비
새참 내간 시골 아낙네 한참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네
餉田邨婦到來遲 향전촌부도래지
부들 멍석에 곡식을 말리고 띳집 처마 밑이 조용한데
蒲茵曬穀茅簷靜 포인쇄곡모첨정
병아리는 짝을 지어 무너진 울타리 밖으로 나가네
兩兩鷄孫出壞籬 양량계손출괴리
*
枳殼花(지각화): 탱자나무 꽃.
餉田(향전): 들밥, 새참.
到來遲(도래지): 돌아오는 것이 더디다(늦다).
蒲茵(포인): 부들로 짠 멍석
曬穀(쇄곡): 마당에 멍석을 늘어놓고 곡식을 말리다.
兩兩(양량): 쌍쌍, 두 마리씩..
鷄孫(계손): 닭의 손자가 아니라 병아리를 말함.
이 시를 읽다 울컥,
큰 탱자나무에 노랗게 열매가 익어가고,
가시덤불 속으로
참새나 굴뚝새와 박새는 찔리지도 않고
그 속에서 논다.
농번기에는 하루 두세 번 새참을 해서 밭으로 논으로 나간다.
텅 빈 집에는 암탉과 병아리들,
오늘은 그들이 집주인이다.
병아리들이 줄지어 무너진 울타리 밖으로 나간다.
내가 살았던 60년대 흔한 농촌 풍경이다.
집에는 병아리를 품고 있는 닭그림이 있는데
지금은 닮은 닭도 병아리도 볼 수 없다.
세월이 흐르면 가축도
제 모습을 잃고
인간이 요구하는 대로 변한다는 것이 , 서글프다.
오직, 먹는 음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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