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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실의 바보들>
- 안근모 (어바웃어북, 2014)
Chapter 6. 유로존의 독자노선…… ‘내부 재균형’
- 2013년에 횡행했던 유로존 붕괴 시나리오는 2014년부터 사라짐. 주변국(PIIGS) 경제는 회복 중이었고 재정수지는 안정화, 경상수지도 개선.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를 사수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뒤를 받치고 있었다.
위기 원인은 미국과 비슷했지만, 유로존의 경제를 돌려놓은 처방은 미국과 정반대. 미국은 화폐 증발을 앞세운 팽창정책을 통해 경제를 떠받친 반면, 유로존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식의 긴축정책으로 문제를 시정. 미국이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하는 확대균형을 꾀한 것과 달리 유로존은 수요를 줄이는 축소균형을 추진.
유로존의 해법 역시 부작용이 있었다. 축소균형 정책은 만연했던 인플레이션과 경상수지 적자를 해결했지만, 실업대란과 정치적 불안을 낳았고 디플레이션의 유령이 떠돌기 시작했다.
1) 독이 된 축복…… 대수렴 경제의 후유증
1999년 세계총생산의 20%, 국제무역의 30% 차지하는 유럽 대륙의 국가들이 단일통화 ‘유로’를 사용하기 시작. 단일통화는 유럽국가들을 괴롭혀왔던 환율 변동 문제를 단번에 해결. 회원국끼리 고정환율 사용함으로써 역내 무역이 급성장, 환전 비용이 없어지고 환율 변동에 따른 불확실성이 사라진 결과.
거대 단일통화 경제권이 창설됨에 따라 국제 투자자금도 몰려옴. 채권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었고,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시장금리는 빠른 속도로 떨어짐. 통화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투자 불확실성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데, 그 중심에는 건전한 통화정책의 상징인 독일이 있었다. 유로존은 창설 때부터 독립적인 중앙은행과 건전한 재정정책을 강조했으며, 이는 유로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여줬다.
유로존 창설 당시의 희망은 수렴(convergence)이라는 단어로 상징화. 상대적 가난했던 주변국의 기대감이 컸다. 통화제도가 유로로 통일되면서 삶의 질도 독일 수준으로 수렴될 것으로 기대됐다. 가시적인 수렴은 이자율에서 나타남. 주변국은 전에 누리지 못했던 저금리의 혜택을 만끽. 유로존 회원국들은 모두 한 나라처럼 여겨지게 됐고, 주변국은 독일과 거의 같은 이자율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됨. 독일보다 2배의 이자를 물어왔던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금리가 이전의 1/2이하 수준으로 떨어짐. (그리스 국채이자 20%-> 4%)
주택시장이 가장 뜨겁게 반응. 낮은 금리 자금이 풍부해지면서 빚을 내서 주택을 사려는 수요가 폭발. 집값이 뛰어오르자 수요는 빠르게 증가. 스페인의 집값은 2007년까지 만 6년 만에 2배 상승. 저금리와 주택시장 열기로 경기가 달아오르고, 실업률이 떨어지고 임금이 급등. 경기 활성화되면서 재정수지도 급격히 개선. 단일통화 유로가 내려준 하늘의 축복. 주변국 정부들은 각종 복지혜택을 신설. 주변국 국민들은 하루아침에 유럽 최고 부자나라 독일의 국민이 된듯했다. But, 축복이 독이었고 엄청난 재앙이었음.
단일통화로 바뀌면서 유로존 내부 가격경쟁은 더 심화. 한 나라의 소비자들은 자국과 타국에서 물건이 몇 유로에 팔리는지 쉽게 비교, 가격 차이에 따라 무역 흐름이 급격히 바뀜. 그 사이 주변국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급격히 사라져감. 부동산 중심으로 내수열기가 이어지면서 독일보다 15-20%나 쌌던 스페인, 이탈리아, 아일랜드, 포르투갈의 단위노동비용이 유로존 창설후 대대적 상승. 반면 독일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등의 개혁 조치로 노동비용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주변국의 비용경쟁력이 완전히 사라져감. 주변국의 수출은 대폭 위축되고 수입은 대폭증가.
주변국 정부들의 정책도 문제. 대외 경쟁력 저하로 실업이 증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해고를 어렵게 하고 실업수당과 사회보장을 확대. 이것은 주변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더 악화. 주변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대대적으로 확대.
2) 무너져 내린 ‘수렴 경제’ 신기루
수출의 악화는 결국 내수로 부메랑처럼 돌아옴. 가계소득이 쪼들리자 천정부지로 치솟던 집값이 꺾이기 시작. 주택담보대출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집값이 추락하기 시작. 은행부실이 폭발적으로 증가, 주택시장으로 자금 공급이 끊기면서 폭락 소용돌이에 빠져듬.
부동산 붐이 사라지자, 정부의 세금 수입도 격감. 반면 부동산 붐 당시에 확대했던 정부의 복지지출은 그대로. 정부 재정도 적자로 돌아서고, 국가부채도 빠르게 증가.
재정위기 상황에 직면할 경우 일반적인 정부는 중앙은행을 동원. 미국이나 일본의 양적완화정책이 대표적. 그러나 주변국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중앙은행이 없었기 때문. 유로존 어느 나라에도 자국의 필요에 따라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동의 유럽중앙은행(ECB)가 있었을 뿐. 그리고 유럽의 규약은 ECB로 하여금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 무역적자에 대응해 자국의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일이 불가능해진 것과 같은 이치로, 주변국들은 재정위기에 속수무책.
3) 유로존 프로젝트의 구조적 문제
유로존 재정위기는 경제 여건이 서로 다른 나라들이 똑같은 화폐를 사용하는데 따르는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냄. 유로존 17개 회원국들은 저금리라는 수렴 경제의 혜택을 얻는 대신 환율정책과 통화정책을 포기해야만 했다. 따라서 이들 나라가 사용할 수 있는 거시정책은 ‘재정’밖에 남지 않았다. 유로존 창설 당시에 GDP 3% 이내 재정 적자와 GDP 60% 이내 국가부채라는 건전성 기준을 설정했으나 지키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단일 통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정을 비롯한 다른 부분들의 경제 여건들이 서로 비슷해야 하지만 빈틈이 너무나 많았다.
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가난한 주변국과 잘 사는 북유럽의 갈등은 깊어짐. 프랑스 등 주변국은 독일이 위기를 이용해 유럽을 지배하려 한다고 비난하며 조건 없는 지원을 요구. 독일 등 북유럽은 주변국이 북유럽 국민의 세금과 저축만 탐낸다고 비난하며 무조건적인 지원을 거부. 갈등이 심해지는 사이 위기는 계속 전염.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희생양이 될 것으로 거론.
결국 ECB가 나서야만 했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국채를 시장에서 매입하겠다고 선언.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행위는 금지된 일이었고, 독일의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국채매입과 새 ECB 총재의 마리오 드라기는 1조 유로 규모의 장기 대출 프로그램 도입했으나, 오히려 심각한 후유증. 스페인과 이탈리아 은행들이 ECB에서 빌린 돈으로 자기나라 국채를 사들이자 그 기회를 틈타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들 국채시장에서 대거 이탈. 가뜩이나 부실한 스페인과 이탈리아 은행들은 역시 부실한 자기 나라 정부의 채권을 산더미처럼 떠안고 말았다.
4) “GREXIT” vs. “무엇이든 하겠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스페인도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탈리아는 유로존에 남아있는 것보다 탈퇴하는 게 경제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분석 보고서도 나왔다. 이탈리아까지 탈퇴하면 유로존은 붕괴하고 말 것. 그럴 바에는 차라리 독일이 유로존을 탈퇴하는 게 낫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으며 퍼져나갔다. 독일이 빠지면 유로화 가치는 대폭 절하될 것이고, 그러면 남아있는 유로존 국가들의 무역 경쟁력은 동시에 대폭 개선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2012년 7월 런던 하계 올림픽 컨퍼런스에서,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선언. “유럽의 정치적 자본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ECB는 유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무엇이든’이란 화폐의 증발을 의미한다. 스페인이 은행 구제금융을 요청한 지 1달 만의 일. <르몽드>지와 인터뷰에서도, “유로존이 와해 될 것이라는 애널리스트들의 시나리오는 유로존에 투자된 각국의 정치적 자본을 도외시한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ECB에게는 어떠한 금기도 없다”고 말함.
드라기 총재가 말한 ‘정치적 자본’이란 경제통합에 투입된 의지와 노력을 의미. 전쟁으로 점철된 유럽 대륙의 역사를 평화적으로 되돌리는 작업. 누군가 유로존에서 탈퇴하고, 이로 인해 유로존이 와해된다면 유럽은 정치적 군사적 갈등과 대립이 지배하는 과거로 돌아가고 말 것. 유로 화폐는 17개 국가들을 한데 묶는 ‘정치적’ 장치.
다음 날 메르켈 독일 총리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긴급히 전화 접촉. 두 정상은 성명서에서 “양국 정부는 유로존을 방어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할 용의가 있다. 유럽의 기구들 역시 자신들의 책무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밝힘. 드라기 총재의 “무엇이든 하겠다” 선언에 대해 유로존 양대국 정상들이 정치적 비준을 해준 것. “ECB가 정부에 돈을 빌려줘서는 안 된다”는 규약은 이제 유보됨. 그리고 1달 뒤 ECB는 재정위기 국가의 국채를 무제한으로 사들일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OMT)을 의결
이 선언들은 유로존 재정위기의 흐름을 완전히 되돌려 놓음. 유로존 국가들은 이제 미국이나 일본처럼 화폐 발행으로 재정을 지원해 주는 중앙은행을 갖게됨. 재정위기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됐고 주변국 국채시장은 빠른 속도로 안정. 중앙은행의 무제한적 발권력을 이겨낼 수 있는 투기 세력은 없기 때문.
5) 처방전으로 강요된 실업, 빛과 그림자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에게는 여전히 혹독한 재정 긴축과 경제 개혁의 과제들이 부과. 구제금융을 받은 스페인이나 잠재 위기국가였던 이탈리아 역시 자발적 개혁의 형식으로 똑같은 체질 개선 작업을 진행.
OMT는 유로존의 구제금융 ‘실탄’ 문제를 해결해 줬을 뿐, 유로존 특유의 위기 극복 방식을 바꾼 것이 아니었다.
유로존의 해법은 미국과 달리, 재정 지출을 대폭 줄이고 세금을 인상하는 강력한 긴축정책을 요구. 근로자 해고를 용이하게 하는 한편, 독과점 보장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해 경쟁을 촉진하는 개혁 프로그램을 부과.
복지 지출을 대폭 줄이고 세금을 인상하자 경기가 급랭하고 실업이 급증. 스페인의 실업률은 8%->26%로 증가. 실업자가 넘치자 임금이 추락. 단위노동비용이 2009년과 비교 7% 떨어짐. 그 사이 독일의 단위노동비용이 상승하면서, 스페인과 독일의 노동비용 격차는 다시 벌어짐. 독일에 대한 스페인의 경쟁력이 다시 높아짐.
노동자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지만 기업들은 숨통이 트였다. 주변국 경제에 통화가치 평가절하와 똑같은 효과가 나타남. 수출경쟁력이 살아나고 수입품 수요는 대폭 줄어듬.
유로존 위기 해법은 경쟁력이 저하된 나라의 임금을 삭감하는 형식을 띤다는 측면에서 ‘내부 재균형’이라고 부름. 통화가치의 평가절하를 통해 외부를 상대로 균형을 되찾는 방식과 대비. 하지만 유로존의 이런 노선은 전통적인 외부 재균형 방식보다 정치적 위험이 따름.
통화가치를 절하하면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지 않고도 대외 경쟁력이 높아짐. 수입물가는 상승하지만 일자리와 명목임금은 유지되기에 크게 반발하지 않음. 반면, 내부 재균형은 실업이 증가하고 명목소득이 하락하기 때문에 강력한 반발이 부딪힘. 주변국에서 시위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
Chapter 7. 아베노믹스, ‘불가능한 삼위일체’에 도전하다
희망찬 일본의 2014년. 경제가 살아나고 물가도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 규모가 쪼그라 들었던 20년간의 잃어버린 시대를 뒤로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라는 기대.
다시 총리직에 오른 아베가 경제 회생 정책을 강력하게 가동. 아베노믹스라는 별칭의 새 정책은 화폐를 대량으로 발행해 물가를 띄우고, 재정 지출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성장을 촉진.
1) ‘잃어버린 20년’과 아베노믹스의 돌풍
일본 GDP는 2013년 1분기 약 474조 엔, 1994년전 1분기 보다 4.2%작았다. 소비자물가 수준은 19년 전보다 1.6% 낮았다. 20년간 경제가 성장은커녕 뒷걸음질. 그사이 국가부채는 GDP의 83%에서 230%로 증가. 1980년대 말 거품경제가 붕괴 이후, 정부가 재정지출을 학대해 경기를 받쳤으나, 성과 없이 빚만 늘어남.
1980년 레이건 정권은 재정 적자를 확대하는 정책,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 막기 위해 연방준비제도는 공격적 금리 인상. 미국 금리가 급등하자 달러화 가치는 급상승. 1980년부터 5년간 달러화의 실질실효환율은 50%가 급등. 미국 수출 기업이 아우성.
1985년 9월 뉴욕의 플라자호텔에 모인 G5 재무장관들은 달러화를 제외한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 영국 파운드, 프랑스 프랑을 일제히 ‘평가절상’하기로 합의. 달러화는 평가절하. 1년쯤 지나자 달러는 엔보다 40%나 떨어짐. 엔화가 폭발적인 강세를 보이자 이번에는 일본 기업들이 아우성. 1986년 수출이 감소하고 수입은 급증. 결은 일본은 부양책으로 대응, 정부는 재정 지출을 대폭 확대하고 일본은행은 화폐 발생을 대폭 늘렸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일본 경제는 다시 급성장. 호황은 1990년까지 이어짐. 엔고를 앞세워 일본 투자자들은 미국을 다 사들일 듯이 해외 자산 쇼핑.
거품은 영원히 지속 될 수 없었음. 주식과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경제가 갑자기 냉각. 1992년은 잃어버린 20년의 원년. 민간 설비투자가 10% 이상 격감, 도매물가 3.8% 하락. 정부가 공공투자를 16%나 늘렸지만 경기를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
2012년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종식시키겠다고 공약한 아베가 선거에 승리. 공격적인 화폐 발행. 단순한 양적완화 뿐 아니라 일본정부에 보다 장기간 돈을 빌려주고, 그 통화가 시장에 보다 장기간 유통되도록 방치하는 조치. 양적 질적 완화정책.
아베노믹스의 효과는 환율에서 신속하게 나타남. 달러-엔 환율은 80엔 수준에서 반년 만에 103엔대로 급등. 이 기간에 닛케이지수는 80% 폭등. 급등한 환율이 수출기업들의 실적을 끌어올려줄 것이라는 기대감 덕분.
환율이 뛰면서 수입물가가 솟아오름. 증시와 함께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소비도 증가. 경제성장률이 뛰어올랐고 소비자물가상승률도 높아짐.
2) 불가능한 삼위일체
천정부지로 맹위를 떨치던 아베 트레이드는 2013년 5월 23일 급제동. 닛케이지수가 7.3% 폭락. 밤사이에 미국 연준 의장이 올해 안에 양적 완화를 줄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혀 미국 금리가 대폭 뛰어오르자 일본의 금리도 함께 상승한 탓. 이후 16거래일 동안 엔 환율은 8% 이상 떨어지고, 닛케이지수도 20% 이상 폭락.
당시 트레이더들은 경제학의 전통 명제인 불가능한 삼위일체를 떠올림. 자본시장 개방과 환율, 독립적 통화정책 3가지 모두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론.
아베노믹스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기 위해 화폐를 증발하고 시장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통화정책 수행하니 엔화 가치의 하락을 피할 수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 물가 상승은 채권의 실질 수익률을 떨어뜨린다. 투자자들은 일본 국채를 기피하게 되고 팔고 나가게 됨. 이렇게 되면 엔화 가치는 더 떨어짐. 그것을 일본 경제재생담당상이 엔저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에 민심이 나빠질 것을 우려, 제동을 걸겠다고 말했던 것. 그렇다면 달러-엔은 더 이상 오르기 어렵고 따라서 일본주가는 정점에 도달한 셈.
엔화가 절하되어야만 물가가 오를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더 이상 엔화 절화를 원치 않는다면 아베노믹스의 최대 목표인 디플레이션 탈출은 불가능해진다. 일본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면서도 엔화환율을 절하하지 않고자 한다면 남은 수단은 자손의 해외 이탈을 통제하는 것뿐이다. 이는 불가능한 일.
3) 아베겟돈의 공포
일본은행이 국채금리 급등세 막기 위해 적극적인 공개시장조작에 나섰고, 이는 엔화의 절하를 다시 용인하겠다는 신호로 읽혔다. 달러-엔 환율은 다시 100엔선 위로 올라섰고 닛케이지수 상승세를 되찾았다.
그러나 아베 정부의 지지율은 추락. 반민주적 법률(특정비밀보호법) 입법 강행, 물가 상승하면서 국민 불만, 소득세율 인상 계획. -> 임금인상 유도로 돌파.
금융시장에서 일본은행이 다시 구원투수 기대. 소비세 인상으로 경기가 위축되면 돈을 더 풀어서 경기를 띄울 것이라는 예상. 경기가 더 살아나 준다면 아베노믹스의 정치적 기반도 보존. 일본은행이 돈을 더 푼다면 엔화 가치는 더 떨어질 것. 여기에는 큰 위험, 수입물가 지속 상승과 한국과 중국 등의 주변국들이 본격적으로 반발할 가능성. 국채시장이 왜곡되고 자산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하는 등 금융불안이 심화될 소지.
아베노믹스의 성패는 일본 국채를 대량 보유하고 있는 국민들의 비이성적 애국심 또는 비이성적 안전 추구 행위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Chapter 8. 재닛 옐런, 왕좌에 오르다
벤 버냉키는 1930년대 대공황을 연구한 최고의 학자.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1년 전에 연준 의장직 맡게 됨. 전대미문의 금융시장 파국에 버냉키 의장은 천문학적 유동성을 투입 진화에 나섬. 준비된 소방수로서, 1930년대와 같은 실물경제의 대공황은 비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버냉키는 장기간의 저성장과 고실업, 디플레이션의 압력만큼은 퇴치하지 못함.
2014년 재닛 옐런이 연준 의장직을 맡게됨. 통화정책으로 실업을 퇴치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을 감수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 반대로 물가를 잡기 위해 고용을 희생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강한 반감.
1) 인플레이션은 인도주의 정책이다!
일반적으로 물가와 고용은 상충하는 관계.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고용 희생이 불가피하며, 고용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는 물가가 상승하기 쉽다. 대부분 정부와 중앙은행은 물가와 고용을 적정 수준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경제 운영. 그러나 이는 운이 좋을때에나 해당하는 일. 둘 중 하나를 희생해야 하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기가 있기 마련.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이어진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물가상승)에서는 폴 보커 의장은 이때 물가안정을 위해 고용을 희생.
그러나 앨런의 생각은 달랐다. 물가가 목표치 위까지 높아진 상황에서도 더 오르도록 놔두는 것이 때때로 현명하고 인도적인 정책이 된다고 주장. 고물가와 고실업에 동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물가보다는 고용안정에 힘써야 한다는 것.
물가안정 목표제는 연준이 추구해야 할 다양한 궁극목표는 도외시한 채 오로지 1가지에만 매달리도록 하는 제도라고 그녀는 비판.
2) “물가를 희생시켜서서라도”…… 전도(顚倒)된 폴 볼커
옐런은 볼커와는 정반대로 완전고용을 위해 일시적으로 물가안정을 희생시키려 했다. 아울러 연준의 미래 물가 및 고용 목표에 대해 대중이 이해하고 신뢰해야만 효과가 있다고 말함. 그 구상이 ‘포워드 가이던스’인데 연준은 2012년 12월부터 실업률 6.5%와 물가상승률 전망 2.5%를 제로금리 정책이 추구하는 목표로 제시.
옐런의 통화정책은 연준의 이중 책무인 고용과 물가를 균형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달랐다. 거기서 고용에 방점. 폴 보커의 인플레이션 파이팅과 동등한 스탠스와 강도로 실업 파이팅에 나서야 한다는 것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