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하 수상’ 하니 좋아하던 것들도 흥미가 없어진다.
덩달아 시공(時空)의 영역마저 벼룩이 낯짝처럼 쪼그라진다.
앞으로 내가 자리할 곳도 그러할 것이다.
만나는 사람이 없으면 만나고픈 사람이라도 있어야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나는 지금 자꾸만 왜소해지는 ‘나’의 실체와 마주하고 있다.
타의에 의해 고도(孤島)에 유배된 채 멍하게 허공만 응시하다 홀로 인적 없는 겨울산을 찾는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애써 부인하면서.
안국산(安國山 344.3m)은 칠서면 회산리와 대산면 대사리의 경계로 두 마을의 뒷산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불렸던 이름이고, 임란(壬亂)전까지는 안곡산(安谷山)으로 불렸다.
이 산에는 산성(山城)과 봉수대(烽燧臺)가 설치되어 각지로 봉화통신(烽火通信)을 보냈다.
임란 시 안곡산에 포진한 조선군에 의해 왜군이 퇴각당하자 그때부터 나라를 안정케하였다하여 ‘安國山’이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지역민들은 ‘安國山’으로 부르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형도에도 ‘安國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더욱이 ‘한국전쟁’때는 미군과 인민군이 치열한 접전을 벌려 인민군을 전멸시키자 이를 안국 산신의 영험이라 믿고 있다.
이 산 정상부에 봉수대(烽燧臺)와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의 산성 흔적이 칡넝쿨에 덮여있다.
산성의 둘레는 대략 400m이며, 중앙 정상부 높이 3m·직경 2m의 우물같이 생긴 석축(石築)이 봉수대다.
‘안국산 봉수대(安國山烽燧臺)’는 전국 봉화로(全國烽火路)로서는 여섯 번째의 간봉(間烽)으로 창원 성황당(城隍堂)에서 받아 영산(靈山) 소산(所山)에 전한다.
북쪽으로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고, 창원 북면에서 창녕·고령까지 시계(視界)에 들어온다.
특히 이 산성은 칠원과 함안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데다 함안 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으니 봉수대로 최적지이다.
이산은 옛 함안보다 칠원현에, 대산면보다 칠서면에 더 속해 있다.
그래서인지 안국산 산불초소에는 칠서면에서 파견한 산불지기가 칠서면 임도에 차를 대놓고 올라와 근무 중이었다.
처음 올라선 ‘고종산(鼓鍾山 130.2m)’은 신라시대에 건립된 ‘평림사’란 대사찰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북(고鼓)’과 ‘종(鐘)’이 매일같이 울렸다고 지어진 이름.
이 산엔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 ‘고종 산성(鼓鍾山城)’이 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지나쳤지만 조선 총독부가 발행한 ‘조선 고적조사보고’에는 ‘대산리 산성(代山里山城)’으로 기술되어 있다.
삼국 시대 아라가야의 테뫼식 산성으로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으며, 둘레는 200m 정도로 소규모란다.
안산은 아주 흔한 이름이다.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어 감히 ‘안산(安山)’으로 명명했다.
이는 ‘안국산(安國山)’의 ‘氣’를 오롯이 받아 나라의 안위를 그르치지 않기 위함이다.
오늘 환종주 코스에 두 안산이 있으며, 서쪽 가까이에 또 다른 안산이 두 개가 더 있다.
귀인봉(貴人峰 258.1m)은 산 아래에서 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라는 풍수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고종산과 안산을 지나면 화개 지맥(華蓋枝脈)에 올라탄다.
화개 지맥은 낙남정맥(광려산)에서 北분기하여 남강·낙동강 합수지점인 대산면 장포마을까지 뻗어나간 34.3km의 산줄기다.
‘닭재(鷄峴)’는 칠서면과 대산면의 경계로 안국산 북쪽의 귀인봉으로 가다 만나는 고개다.
칠서면에 지네가 많아 폐사될 지경의 절이 있었는데, 대산면에서 닭을 가지고 가서 지네를 없앴다고 한다.
이때 닭을 가지고 넘어간 고개가 닭재라는 전설.
코스: 댓질버스정류장-고종산-(도로)-송정산표석-안산-안국산(산불초소,봉화대)-닭재-귀인봉-안산-(대사일반산업단지)-댓질버스정류장(댓질교)
궤적.
큰 지도
약 11km에 5시간 정도.
고도표.
<산길샘>
화개 지맥.
미리 준비한 표지기. "福 받으시라."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 산 221-1'을 입력하여 '댓질교' 30m 떨어진 '뎃질정류소'에 차를 댔다. 댓 질 이가? 뎃질이가?
능선 끝자락을 바라보다 100여m 이동...
블록 계단이 놓여진 산길을 오른다.
쉽게 오를 수 있었으나...
초입 능선에서 사람의 손길들이 느껴지더니...
아주머니의 음성이 크게 들려온다.
"아저씨, 어데서 오는데요?"
이 아주머니는 내가 어디서 오는 게 궁금한 게 아니라 자기 밭(사유지)으로 올라오는 것을 막고 있는 거다.
"저~ 고종산 가는 데요."
"여~ 길 없어요." 아주머니는 재차 길을 막는다.
"우짜겠능교?"하며 두어 발자국 뿌적뿌적 벗어나니 "저 위에 우리 아저씨 지키고 있어요."한다.
"죄송합니다." 하자 "다음부터 이리 올라오지 마세요."라며 마지못해 비켜선다.
움막과 조그만 밭뙤기가 있을 뿐이지만 자기 밭으로 길이 나는 것이 탐탁치 않았으리라.
작은 오름을 하자 무덤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제법 뚜렷한 길이 내려서고 있었다.
어디로 난 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사유지를 피하고 싶으면 이리로 오면 좋겠다.
댓질교 건너 펜스 옆 계단으로 오르면 될 듯(?).
오솔길에서...
묵묘가 있는 지점으로도 올라올 수 있을 듯.
잡목과 덩쿨이 우거진 고종산에서...
삼각점을 확인하고...
정확한 안내판을 확인한다.
그리고 준비해간 표지기를 걸었다.
고종산에서 내려서면 다시 비닐 움막.
야트막한 야산 억세와 덩쿨이 우거진 방향의 석주가 선 우측(남쪽)으로 꺾어 든다.
무덤들이 줄지어 선 낮은 산자락.
이내 마을의 민가가 보이고...
민가 뒷쪽 비닐하우스가 있는 밭으로 내려선다.
돌아보는 내려온 길.
큰길에 나와 뒤돌아본 모습.
그리곤 두 번째 산인 안산을 오르는 동선을 짚어본다.
능선 끝자락의 묏자리로 오를 계획.
우측 과수원 임도로 조금 들어가자...
'송정산과수원' 표석이 세워져 있다. 송정산은 어느 산을 말하는지?
묏자리가 있는 능선 끝자락에 접근하자...
이번엔 '송정산성지'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조성중인 가족묘원인 듯.
능선을 오르자 안산. 준비해간 표지기를 걸다 그제사 '송정산(松亭山)'이 안산을 말하는 지 알았다.
수더분한 오솔길.
이장묘를 지나...
얼마안가 묵묘가 있는 지점에서 화개지맥에 합류한다.
화개지맥을 따르다 좌측 잡목사이로 보이는 빼꼼한 봉우리는 귀인봉(?).
고도를 높히며 걷노라니 얼마안가 우뚝한 산정에 산불초소가 하늘을 받치고 섰다.
그 옆에 우물처럼 움푹 파여진 웅덩이가 자료에서 말하는 봉수대.
봉수대 아래로 되내려가 보았더니 정상부위를 빙 두르는 석축이 있다.
초소 옆의 삼각점.
안내판을 확인한다.
통화중인 산불지기와는 눈인사만 나누었고, 나는 이제 뻥 뚫린 사위를 황홀한 마음으로 바라볼 것이다.
눈 가는 동쪽으로 함안 창원의 내로라하는 산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무릉 작대 천주 백월을 위시하여 그 위성봉까지.
한 화면에 다 나오지 않아 동영상을 찍었고...
파노라마로도 잡았다.
일일이 다 헤아릴 수 없어 산불초소 근무자에게 자세히 물어보았더니 잘 모른다는 대답이다.
남쪽 멀리 무학산이가, 긴가민가다.
초소 근무자와 하직인사를 나누고, 건너편 반듯한 산길로 무심코 내려섰다.
의외로 길이 좋은 건 근무자가 동쪽 칠서면쪽 임도에 차를 대놓고 오르내린 덕택이다.
조금 내려서다 - "아 참, 표지기." - 깜빡 잊고 표지기를 걸지 않고 내려선 것을 알았다.
그래서 헥헥 되올라가...
초소 옆 나무에 외톨이로 걸었다. "아저씨, 떼 내지 마세요."
그리곤 또 헐레벌떡 바쁜 걸음을 하였다.
그렇게 바삐 내려서다 이번엔 "가만있자, 이 길이 맞나?" 하고 확인을 하니 "아뿔싸~"
북쪽으로 가야 하는데, 동쪽으로 쫓아 내려갔으니 또다시 되올라가야 한다.
동쪽으로 난 길은 산불지기가 오르내린 길이라 반듯했으니 의심도 하지 않았던 것.
그래서 다시 되올라가 무덤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되올라가 북쪽 능선으로 길을 잡은 뒤 뒤돌아보는 산불초소.
조금 진행하자 낙엽쌓인 내리막에 둥근 원목계단이 놓여져 있다.
진행 방향 정면에 솟은 봉우리는 귀인봉이고, 나는 닭재에 내려서는 것.
나무들이 식재된 곳에 움막이 들어서 있고, 철망 울타리도 쳐져 있으니 사유지인 듯.
나는 움막까지 내려와...
좌측 능선으로 올라탔다. 철조망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철망을 벗어났으니 사유지 안으로 들어왔다 나간 것.
우측으로 아까부터 보아왔던 칠원면과 작대산. 더 뒤는 천주산.
시간을 확인하니 낮이 짧은 동지 때임을 감안하더라도 여유가 있다.
그래서 맥꾼들의 표지기 옆에 흔적도 남긴다.
멧돼지 목욕탕.
뜬금없는 '봉화산 등산로' 푯말.
푯말이 가리키는 꼭대기에...
귀인봉이 있고...
표지판과 줄이 매여져 있어 준비해간 표지기를 걸었다.
그리곤 셀프.
조금 진행하니 운동기구가 놓여져 있고...
더 내려가자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거슬러 다시 고도를 높히니...
생김새가 똑같은 쌍둥이 나무가 나란히 자라고 있어 카메라에 담는다.
좌측이 날등이지만 길따라 올라오니 무덤.
더 오르니 또다른 안산이다. 두 번째의 안산에 오른 셈.
한마음산악회 표지기와 함게 준비해간 표지기를 걸었다.
이 길은 100미터 대의 화개지맥. 작은 안부에 잘 관리되고 있는 부부묘가 있고...
그 20여m 위에 봉분에 나무가 자라고 있는 묵묘가 있다. 이 지점이 좌측으로 꺾어지는 곳.
곧 개활지로 빠져나오면 바로 앞에 도로.
도로 우측에 윗배골이고, 나는 도로 좌측으로 내려갈 예정. 절개지 축대 전봇대 위로 화개지맥은 계속 이어진다.
도로에 내려서서 돌아본 모습.
내려가는 곳에는 '대사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나는 이제 아스팔트를 따라 터벅터벅 자동모드로 전환한다.
차량회수를 위하여 '댓질교'로 가면서 좌측으로 고종산을 쳐다본다. 중간의 나즈막한 곳에 움막과 밭이 있다.
댓질교를 건너면 도로 건너 휀스 옆으로 계단이 놓여져 있어 길이 있을 듯했다.
밤 늦게 아파트 계단을 걸어 오르면 아무리 조심해도 발자국 소리가 크게 들린다.
'저벅 저벅'
내 발자국 소리에 내가 놀랜다.
오늘은 산길을 홀로 걸었다.
인적없는 산, 낙엽쌓인 오솔길에선 자연의 소리가 크게 들린다.
'서걱서걱'
내 발자국 소리에 귀기울이고 걷노라니, 저만치 '후다닥' 고라니 한 마리 뛰쳐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