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고명재 요즘 걷다 보면 뒤꿈치에 호박꽃이 핍니다 종종 발자국 위에도 핍니다 여기서 종종은 시간이 아니라 확신의 리듬감 시를 쓸 때 발끝에 울리는 종소리 종종 꽃집에 들러 묻고 싶었죠 여기 도라지꽃 있나요 감자꽃은요? 그런 걸 파는 꽃집이 하나쯤 있다면 꽃집 이름이 스웨덴어로 Zong Zong이라면 시를 써서 꽃집에 건네줍니다 고구마를 한 다발 안겨줍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공회전입니다 광대뼈 위로 구황작물이 영글어 가는데 우리도 아름다움을 앓는다고요 외로움, 파꽃을 오래 들여다보는 것 가족력, 가지꽃의 선명한 보라 의외성, 고추꽃의 순결한 백색 누가 휴먼시아에 사는 기분을 물어봤을 때 당황하라고 강황꽃을 내밀어버렸죠 무꽃이 얼마나 우아한지 아세요 나도 피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고 지우개 대신 꽃이 달린 연필을 줘요 그럼 시를 쓰다 망설일 때도 향기가 날 텐데 행갈이가 분갈이로 거듭날 텐데 양지에 앉으면 시가 쑥쑥 솟아날 텐데 네가 쓴 시에서는 다리가 보여 허들이 있다면 허들을 감아 넝쿨을 믿어 지우지 말고 오이꽃을 마음껏 터뜨려 가슴을 쭉 앞으로 내밀면 육상이라고 초인종이 급하게 울려댑니다 밖을 보면 꽃을 달고 감자가 왔네? 너 당신 당돌 진솔 솔직한 사람 나 심장 울퉁불퉁 샛노란 사람 “종종”하고 말하면 입술이 펴요 그대로 입 맞추면 자유입니다 —계간 《백조白潮》 2023년 겨울호 --------------------- 고명재 / 1987년 대구 출생.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현재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