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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바울의 복음 전도
사도행전 13:13~39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성령께 보내심을 받은 이방인의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지금의 튀르키에 중남부 항구 도시 버가에 도착한 후에 내륙 깊숙이 올라가서 비시디아 지방의 안디옥 성에 도착하여 복음 전도를 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사도 바울이 초창기 전도 여행을 하면서 전한 복음의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 일행이 전한 복음의 내용에 대하여 함께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믿는 신앙의 핵심 내용을 다시 한번 다지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는 13절과 14절에서 사도 바울 일행이 구브로에서 떠나 밤빌리아 버가 항구에 도착하였다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는 여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브로는 지중해 바다의 세 번째로 큰 섬나라였는데, 그곳에서 바나바와 바울은 그 섬의 총독 서기오 바울을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는 귀한 열매를 맺은 바 있습니다. 이제 바나바와 바울은 마가 요한을 수행원으로 삼고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배를 타고 지금의 튀르키예 곧 터어키 남중부 항구인 버가 항구까지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후에 그들은 상의하고 기도한 후에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출발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제법 큰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버가에서 머물 때 안디옥교회에서부터 함께 왔던 젊은 수행원 마가 요한이 선교 여행에 더 이상 동참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정하고 예루살렘으로 배 타고 갔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후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제 2차 이방 전도 여행을 떠나고자 계획할 때에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자는 바나바 사도와 절대로 마가를 데리고 갈 수 없다는 사도 바울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서 결국 두 사도가 결별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가 요한이 버가 항구에서 더 이상 두 사도와 함께 하지 않고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이유에 대하여 이런 저런 추측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마가 요한이 아직 미성숙한 신앙인이었다는 점입니다. 마가 요한은 아직 젊었고 영적으로는 어렸습니다. 그는 아직 선교사로서 갖춰야 할 영적인 견고함이 부족했습니다. 선교 여행 도중에 겪게 되는 육체적인 과로와 여행 도중에 만나게 되는 각종 위험들로부터 오는 두려움도 무거운 짐이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는 산길에는 온갖 강도떼들이 나타나는 곳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더욱이 비시디아 안디옥은 높은 고원 지대에 있는 도시로서 거기에 가려면 튀르키에 중부의 험준한 타우로스 산맥을 건너야 하는데, 그 산맥은 높이가 2천 내지 3천 미터의 산들이 첩첩이 쌓여 있는 큰 산줄기입니다. 이 강도떼들 우굴거리는 길을 통과하면서 장대한 타우로스 산맥을 넘어서 비시디아 안디옥에 가서 전도한다고 두 사도가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고, 젊은 수행원 마가 요한은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어머니가 계신 예루살렘 고향 집으로 도망치듯 배를 타고 돌아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가 요한의 이 결정은 두 번째 선교 여행 때에 삼촌 바나바 사도와 사도 바울의 결별 이유가 되는 큰 이유가 되었지만 사실은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마가 요한은 삼촌 바나바 밑에서 더 훈련받은 후에 나중에 신앙과 인격이 잘 여물어져서 후에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에게 큰 유익을 주는 일꾼이 됩니다. 사도 베드로의 편지 베드로전서 5:13 말씀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당시의 초대 교회들에게 쓴 편지 말미에 이렇게 문안 인사를 전합니다.
“택하심을 입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러하느니라”
당시 로마에서 사역하던 사도 베드로 곁에는 마가 요한이 곁에서 아들처럼 섬기며 그를 돕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마가 요한을 아들이라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마가 요한은 예수님이 지상 사역할 때부터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마가의 모친 마리아의 집에 사도 베드로가 기거하며 지냈고 초대 예루살렘 교회 시대에도 베드로가 자기 집처럼 드나들면서 성도들을 섬길 때 그 집 여주인 마리아의 아들 마가 요한이 베드로를 마치 아버지처럼 존경하며 늘 따랐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후에 사도 베드로가 로마에서 사역하던 때에 마가는 영적인 연약함을 벗어버리고 장성한 믿음의 사람으로 큰 힘이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베드로의 구술을 받아서 마가복음을 기록하여 당시의 로마의 성도들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모든 교회들에게 영적인 유익을 지속적으로 주는 역할까지 했던 것입니다.
또한 마가는 사도 바울에게도 훗날 큰 힘이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레몬서 2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마가를 ‘나의 동역자’라고 불렀으며, 디모데후서 4:11 말씀에도 보면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한 때는 의욕은 있었지만 능력이 부족하고 미숙하여서 디딤돌 대신에 걸림돌 역할을 했던 마가 요한은 이렇게 젊은 시절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 나중에는 하나님 나라의 큰 유익을 주는 어엿한 일꾼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젊은이들의 실수와 실패를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기다려주며 격려를 베풀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실패를 통하여 배워가며 낮아짐을 통하여 도리어 견고한 도약을 이루는 기초가 다져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우리 자녀들이나 교회에서 우리의 형제들이 연약하여 실수하고 넘어질 때에 충고도 해주고 책망도 할 때도 있겠지만, 여전히 너그러운 관용과 사랑으로서 품어주고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축복의 마음으로 계속 도와주는 자가 됩시다. 성숙의 길은 멀고 시간이 많이 필요하므로 긴 안목을 가지고 멀리 바라보고 기다려줄 때 우리의 미약한 자녀들과 형제 자매들이 온전해지고 성숙해져서 마침내 남을 돕는 큰 인물, 큰 일꾼들로 우뚝 서는 은혜가 있게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험하고 위험하고 힘든 산길을 넘어서 두 사도가 비시디아 안디옥 성에 도착했습니다. 이 비시디아 안디옥 성은 고원 지대에 있는 동서 교통로에 세워진 도시로서 유대인들이 제법 많이 살고 있었던 성이었습니다. 주전 200년경에 2,000세대의 유대인 가정이 바벨론에서 이 지역으로 이주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전도할 당시의 비시디아 안디옥 성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나바와 바울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전도의 기회를 삼고자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회당의 회당장이 전통에 따라 모세 오경과 선지자들의 글을 읽은 후에 그곳에 새로 회당에 찾아온 바나바와 바울에게 권면할 말이 있는가를 물어왔습니다. 그것이 유대인 회당의 전통으로서 회당장은 설교를 해주는 사람을 지명할 권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이 주어진 설교 시간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설교는 사도 베드로가 성령강림한 직후에 몰려든 오순절 순례자들 앞에 나타나 설교했던 첫 설교의 내용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사도들이 증거한 설교가 비슷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복음의 핵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실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 성의 유대인 회당에서 전한 사도 바울의 복음 증거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우리 신앙의 기초를 확인하는 기회로 삼읍시다.
15절 이하에서 사도 바울은 일어나 손짓하면서 사람들을 자기에게 집중시킨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 진행해오신 구원 사역을 하나씩 설명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설교는 이러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수많은 나라와 백성들이 있지만 특별히 그 중에서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택하시고 그들 족장의 하나님으로 자기를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이 애굽에서 나그네 생활을 사백년간 한 후에 하나님은 큰 권능으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시고 광야에서 사십년간 그 백성을 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 후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약 4백년간 필요할 때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지도자인 사사를 주시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이방 나라들처럼 왕이 있기를 구하므로 하나님께서 초대 왕으로 베냐민 지파 사울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이 교만하고 불순종하므로 40년간 왕으로 있게 하시다가 그를 폐하시고 유다 지파 베들레헴에 살던 이새의 아들 다윗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보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부어 왕으로 세우실 때에 그가 나이어린 홍안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마음 중심이 올곧고 충성된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고 왕으로 삼고자 기름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다윗은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안정시킨 후에 하나님을 위하여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드리고자 마음을 먹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다윗의 마음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직접 성전을 짓는 것은 허락지 아니하셨지만 그 대신에 다윗의 아들 대에 하나님의 성전을 온전히 짓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에게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그는 하나님께 아들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의 왕위가 영원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이후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드렸지만 타락하였고,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 중에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자 곧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이라는 말씀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주실 것이라는 약속대로 다윗이 죽은 뒤 천년이 지나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가 차니까 다윗의 후손 중에서 드디어 약속하신 그리스도 구주가 나셨으니, 그가 곧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이렇듯 마침내 하나님께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셨는데,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구약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예수님을 정죄하고 이방 지도자인 빌라도 총독에게 죽여달라고 청하여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흘만에 그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가 살아난 것은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온 갈릴리 사람들에게 확실히 보여졌으니, 곧 사도들과 갈릴리 여인들이 주축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실한 증인들입니다.”
라고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이것이것이 16절로부터 31절까지의 사도 바울의 설교 내용입니다.
이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사도 바울의 설교의 핵심은 나사렛 예수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예루살렘의 거주자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성경도 알지 못하여 예수님이 죄가 없었는데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에 대한 확실한 증인들이 그 당시 많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도 바울의 설교의 초점은 예수께서 구약 성경에 약속하셨던 그리스도요 그가 죽으신 후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초창기 사도 베드로의 오순절 날 설교도 이와 동일한 내용을 설교의 핵심 내용으로 삼았습니다. 그 얼마 후에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고친 후에 성전 바깥뜰에서 사도들에게 몰려든 사람들에게 전한 말씀도 거의 동일합니다. 그 두 개의 설교들 중 일부 말씀이 이런 내용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이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아 먼 이방 땅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 와서 설교하는 사도 바울도 역시 나사렛 예수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주 그리스도시요 그는 억울하게 십자가에 죄인으로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그의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일에는 확실한 증인들이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주님의 죽음과 부활이 사도들이 전파하려는 복음의 핵심 내용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32절 이하에서 이어 설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인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와 축복에 대하여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의 청중들에게 알려줍니다.
32절을 읽어보면 이르기를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후손을 통하여 그 후손들 뿐 아니라 만민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창세기 12:1 이하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저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려고 한 후에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맹세로써 하신 언약도 그러합니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세기 22:16~18)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을 때 감동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씨 곧 약속의 아들이신 후일에 오실 그리스도에게 천하 만민의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만민 곧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까지도 복을 받게 하시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사도 바울과 바나바도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바 이스라엘과 세상 만민에게 복이 되실 것이라는 약속의 씨 곧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아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에게 여러번 약속하신 그의 후손 중에 태어날 만민의 복이 되실 약속의 자손이었던 것입니다. 아멘.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어서 그 약속의 자손,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들에게 참된 복이 되시는 것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남으로써 된다는 것을 변증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위하여 사도 바울은 이어지는 구약 성경 몇 구절을 여기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 3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이는 시편 2편 7절에 기록된 바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입증한 증거라고 사도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세례받으실 때나 변화산에서 기도하신 후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리곤 했습니다.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은 자들 중에서 나사렛 예수께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곧 창조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며 하나님 아버지와 세상을 통치하시며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실 그리스도라는 것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과 같은 불멸의 영광의 생명을 가진 자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완벽한 죽음을 당하신 후에 다시 살아나신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완벽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육신적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출생한 것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낳으신 일이지만, 더 완벽한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난 것은 그가 영원한 불멸의 생명을 가진 영광의 주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하신 일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4 말씀에서 이르기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고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형제 된 자들에게도 부활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라는 33절의 말씀의 뜻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확실히 입증이 되었고 그를 믿는 자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 모든 성도들 역시 동일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이어서 사도 바울은 34절 말씀에서 보충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예언을 다시 말씀합니다.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이는 이사야 55:3 말씀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사야 55:3 말씀에 이르기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는 그의 집이 영원할 것이고 그의 통치가 영원할 것이라는 메시야 언약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나라 그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성도들이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예고합니다. 그러러면 그의 백성들 역시 영생을 가진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긴 부활의 주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함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는 데 가장 근본적인 기초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이미 이렇게 작정된 예언의 성취이며, 그로 인하여 그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들도 그의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바울 사도는 다윗의 시편 16편을 인용합니다. 35절로부터 37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시편 16편 말씀에 보면 다윗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마음이 기뻐하며 그의 영도 즐거워하고 그의 육체도 안전히 살 것을 믿습니다. 이는 자기의 영혼을 무덤에 버리지 않을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의 거룩한 자 곧 하나님께서 기름부어주신 구원자 그리스도를 썩지 않도록 하실 것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자기 영혼의 장래의 부활과 영원한 행복을 미리 보았기 때문에, 자기가 장차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의 영광을 누릴 것을 바라보면서 그토록 충만한 기쁨으로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된 자들은 조상들과 선지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 대로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에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 들어가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에게 이미 여러 차례 예고된 말씀으로서 그를 믿는 자들 역시 그의 부활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동참하게 될 것이 확실함을 가르쳐주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이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한 나라, 다시는 쇠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영생을 가진 자들의 나라를 위하여 반드시 필수불가결하게 일어나야 했던 일이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38절 이하에서는 사도 바울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인하여 주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임하는 중요한 은혜를 덧붙여 설명합니다. 당시 사도 바울이 설교하고 있는 청중들은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구약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들과 이방인으로서 개종하여 율법을 배우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늘 죄의 짐에 시달리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받는 일에 대한 짐을 지고 종교 생활을 하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부가되는 중요한 은혜 두 가지 곧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말씀해줍니다. 38절과 39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이것을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죄사함을 받아야 하며 또한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고 그 앞에 설 수 있는 의로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이방인들과 율법을 지켜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유대인들로서는 이 두 가지 조건을 절대로 얻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려 대신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고, 그가 죽으시고 부활하사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의 완전한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죄사함의 은혜를 얻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는 은혜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이 은혜에 대하여 로마서 3:23 이하의 말씀에서도 이렇게 선포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나 그밖의 모든 이방 민족 어느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그 누구로도 자기의 죄를 사함받을 길이 없습니다. 또한 그 어떤 공로나 의로운 행위로도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있는 의롭다 함을 받을 자 역시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 구약 성경에 모세와 선지자들이 그토록 예언하였던 바 만민의 구주로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이 그의 모든 죄가 사해지고 하나님 앞에 의롭게 함을 입고 그 앞에 평안히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아무런 차별이 없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이 죄사함과 의롭다 함을 입고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는 그 당시 그들이 그토록 열렬히 찾고 구하던 이 두 가지 은혜 역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그를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받아누릴 수 있게 했음을 큰 소리로 선포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참으로 이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식, 복음 아닙니까? 누가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자기의 삶에 드리워진 수많은 죄에서 자유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누가 감히 지극히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시고 감히 볼 수 없는 완전한 빛 자체이신 하나님 앞에 거리낌없이 천사처럼 의로운 자로 설 수 있습니까? 누가 이 슬픔과 고생과 죄 많은 세상에서 벗어나 영원한 의와 평화와 행복과 영과의 나라에서 선한 목자이신 주님이 영원히 통치하시는 천국의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는 돈으로도 안 됩니다. 힘으로도 안됩니다. 지혜로도 안됩니다. 선행으로도 안됩니다.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 없는 자로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죄사함과 의롭다 함의 은혜를 베푸시고 그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도록 신분 변화를 시켜주시어 천사보다 존귀하게 바꾸어주시는 복을 주심으로 이와 같은 구원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우리가 이 놀랍고 복스러운 구원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베드로나 바울이나 모든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온 세상에 다니며 증거한 복음의 핵심 내용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 초창기의 복음 증거는 지금도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 무엇을 덧붙이거나 뺄 수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만민들이 죄사함과 의롭다 함과 하나님의 자녀 됨과 영생을 얻고 부활의 영광을 얻고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복은 하나님께서 아담의 때로부터 계속하여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바로 그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바로 이천년 전에 저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다윗의 후손 요셉의 가문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태어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예언된 대로 악한 자들에게 넘겨져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려 죽으셨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으니, 다시는 죽음이 범접할 수 없는 불멸의 영광의 몸으로 확실히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렇게 그가 무고하게 고난받고 죽음에 넘겨졌다가 다시 썩을 수 없는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실 것은 이미 예언되었던 것인데 그 말씀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확실히 보고 만지고 그 말씀을 직접 들었던 사도들과 갈릴리 성도들과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직접 만났던 사도 바울이 그 증인들입니다. 우리도 그들이 보고 듣고 체험하고 전해준 복음을 전해 준 그대로 듣고 믿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들이 전해준 그대로 그를 믿는 우리들도 역시 장차 죽음에서 영광스러운 부활의 은혜에 참여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동참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 구주가 하나님의 아들의 존귀한 영광을 가진 자로서 그를 믿는 자들을 형제로 여기시고 천사들보다 더 귀하게 여겨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고 인정하셨으니, 우리가 천사보다 더 복을 받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상속자가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희생의 피로서 다 씻어졌으며, 그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로운 자라고 인정을 받아 장차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능히 서는 은혜도 입을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극히 영광스럽고 영원한 복음을 듣는 자와 믿는 자와 전하는 자는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오늘 듣고 이미 믿고 있는 이 진리와 생명의 도의 말씀에 우리가 모두 앞으로도 굳게 서서 결코 흔들리지 맙시다. 그리고 이 지극히 복스러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진리를 계속하여 힘을 다하여 전파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