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싱가포르 통신원 김종호군이 좋은 포스팅을 해주어 잘 읽었습니다. 오늘 조선일보에는 리콴유 총리가 75년 간 살았다는 "쓰러져가는" 집을 보여주면서 청렴!했음을 헤드라인 기사로 썼는데, 우리 통신원이 포스팅한 바에 다르면 굵직한 기업은 다 아들 소유라니 쩝... 우리나라 신문은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나봐요.
리콴유가 유명한 것은 예전 미국 소년의 비행에 대해 "아시아"식으로 휘핑~ 채찍형을 집행하면서 더 서방에 이름을 알렸는데요, 그때 대대적으로 여론을 휩쓴 것이 신유가였습니다. 즉 싱가폴 같은 국가들, 한국도 포함해서 자유주의적 인권이 아니라 권위주의적 위계로 공동체의 이익을 보호함으로써 개인의 인권도 제대로 보호한다는 유가적 발상, 이것이 경제발전을 견인했다고 하는 신유가의 전형적 모델로 리콴유의 개발주의가 스타로 떠올랐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현재 중국이 미국의 워싱턴 컨센서스-자유무역, 인권, 대의제 민주-에 대항하여 베이징 컨센선스-권위주의적 권력, 국가주도의 경제, 지속적 발전과 안정-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신유가, 유교자본주의는 먼저 길을 닦아 준 셈입니다.
그래서 요즘 중국에는 "사회주의" 규범에 더해서 정부가 '유교"까지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는데, 지난 주 연구모임에서 조경란 박사께서 발표하신 현재 중국의 유교 활용, 지식인들, 신좌파와 유교에 대한 발제가 시의적절한 내용으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에 좀 길지만 포스팅 해볼까요~~
중국의 국가주의화 경향은 조박사님에 따르면 "조화사회론(화해사회)", "북경올림픽"이 turning point가 되었다고 봅니다.
특히 90년대에 비주류 지식인으로 개혁개방이 낳은 사회불평등을 비판했던 비판적 지식인 그룹인 "신좌파"는 이제 2000년대 완전한 주류, 관방 지식인이 되었다고 비판합니다. 예전에 유학을 비판했던 신좌파는 지금 적극적으로 유교를 수용하여 "유학"을 전유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른바 유학에서 강조하는 노심자와 노력자, 선각자의 역할, 현능주의를 새롭게 되살리는 겁니다. 즉 메리토크라시를 사회주의와 유학 전통을 결합해서 구사하는데, 유학에서도 內省보다는 外王을, 修己보다는 治人을 강조하여, 통치자의 입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문혁 때 완전한 변방이었던 지식인은 "중심"이 되었고, 오늘날 "권력-자본-지식 결합체" 혹은 "권력-미디어-지식 복합체"로서 유학이 재탄생되었습니다. 모리스 마이스너는 중국 부르주아가 왜 다른 사회와 달리 민주주의를 요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중국공산당 자신이 초기 개혁개방 과정에서 부르주아로 변신했고, 부르주아를 내부에서 창출했기 때문에 양자는 일체라서 그렇다고 답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공산당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자본가가 아니라 오히려 프롤레타리아라는 겁니다.
오히려 문혁 때 주자파로 비판받았던 유소기의 아들이 사회민주주의파를 형성하여 "제3의 길"을 이끌고 있고, 90년대의 신좌파는 Neo-nationalist가 되어 과거의 "憤靑"(분노하는 청년들)은 이제 분노하지 않습니다.
요즘 중국지식계의 가장 확연한 경향은 유학의 붐입니다. 먼저 신좌파의 경우 "중국모델론"을 제시하면서 다투어 유학을 그 중요 속성으로 꼽습니다. 유가사회주의 공화국을 주장하는 간양은 유학+마오쩌둥의 평등+덩샤오핑의 자유 세 가지를 중국이 계승해야할 유산으로 새로운 문명 창출을 주장하고, 왕후이는 정당국가화론을 주장하여 중성정부야말로 중국 개혁개방 성공의 열쇠라며 모든 계층에 초연한 국가, 정부를 주장합니다. 왕샤오광은 응답형 민주를 주장하면서, 대의제 민주라도 민중에 응답못하면 민주가 아니며, 독재형 정부라도 민중이 원하는 것을 그때그때 응답하고 들어줄 수 있다면 그게 진짜 민주라면서, 민주가 아닌 민본이 메인이라 주장합니다.
중국에서 취약한 자유주의파로 추풍, 허기림 같은 인물들있지만 이들도 헌정유교, 신천하주의를 논하며 유교를 끌어쓰는 것은 매일반.
대륙신유가라 불리는 장칭(정교합일의 유교국가), 캉샤오광(강소광)(유교를 국교로 하자), 천밍(진명, 기독교처럼 유교를 시민종교로 하자는 공민유교론)같은 이들은 대놓고 중국이 유교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북경정부는 베이징 컨센서스에서 soft power의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유교를 재발견하고, 이를 세계에 수출하여 중국문명의 정당성과 공감을 획득하려 합니다. 미국의 인권에 대항하기 위한 최대의 카드입니다.
이렇게 유교로 다시 돌아가는 중국 지식계에 대해, 과거 신영복 선생과 민두기 선생은 두분 모두 중국 지성계는 "옛 관습에 대한 창조적 복고"가 하나의 문화관습으로 있었고, 파괴보다는 재건, 진보보다는 안정과 질서를 희구하는 문화적 체질이 있다고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유교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현상 유지뿐 아니라 "창조적" 복고로 창조를 할 수 있으려면, 지금처럼 권력-지식 복합체로서 역할이 아니라 비판담론으로서의 유학을 되살려야하고 그래야만이 지속가능한 유학이 가능하다고 조경란 박사는 말씀하십니다.
왜 비판담론으로서의 유학에 기대를 하는가 하면, 사실 자유주의는 체질상 중국에 맞지 않지 않은가라는 의구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예 자유주의가 큰 소리로 외쳐진 것인 5.4운동기이지만, 자유주의가 강했던 1940년대 <관찰> 잡지의 지식인들도 정치는 미국식 자유주의를 주장해도, 경제는 소련식 사민주의적 체제를 구상했을 정도로 중국지성사에서 완전한 자유주의 지식인이나 흐름은 적었습니다. 즉 자유주의가 중국에 적합한가? 유교의 사유구조가 중국의 현황에 더 맞고 중국에 유사하게 발전한 사상이 유가가 아닌가? 라는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를 그는 "아비투스"로서의 유교문화라고 말합니다.
비교를 하자면 메이지 유신 시절의 가토 히로유키는 초반 열렬한 자유주의자였지만 결국 사회진화론도 일본식으로 해석하더니 국가주의로 갑니다. 비판적 지식인으로 유명한 나츠메 소세키 조차도 메이지 역사는 나의 역사이다라며 메이지유신의 일본 건설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고맙니다. 바로 이와 유사한 사례가 신좌파이고, 또 완벽한 자유주의가 중국에 실현될 수 없는 지성토양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1990년대 신좌파가 주장한 "반현대성적 현대성(modernity of anti-modernity)" 안에 그 모순이 있습니다.
현재 중국의 모더너티를 두고는 여러 모델이 있습니다. 광동모델, 충칭모델, 홍콩모델, 대만모델 등, 베이징 모델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한때 충칭모델에 열광했던 신좌파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왕샤오광의 경우 마오시기의 중국사회주의는 1.0, 개혁개방시기는 2.0(원바오, 배부르고 따순~), 이제 충칭모델은 중국사회주의의 3.0 즉 샤오캉(소강, 극락 직전의 잘 사는~) 단계이다라고 주장했고, 이희광은 미국의 뒤를 이어 또 하나의 이상향을 중국이 창출할 것이고 이제는 덩샤오핑의 선부론을 지나서 共富論의 단계로 들어섰다고 말했으며, 왕후이는 원쟈바오는 충칭모델을 문혁에 고의적으로 빗대어 비판하고 있다며 반박하고 충칭모델의 성공을 기원했습니다.
충칭모델의 선구로 정치적 스타였던 보시라이가 처절하게 숙청당한 뒤 충칭모델이란 말은 쑥 둘어갔지만, 충칭모델이 추구했던 사회주의적 색채는 권위주의와 결합하여 유교라는 이름으로 다시 용인되고 활용되며, 중국공산당 현 정부에게는 충칭모델에 열광했던 사회계층과 지식인을 포섭하면서도 권위주의적 질서는 강화하는 최적의 조합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황에 대해 조박사는 월러스타인의 보편적 보편주의(universal universalism), 즉 서구적 보편주의(미국의 인권이 만약 서구 입장에서 보편이라고 주장하는 그런 보편이라고 한다면)가 아니라 진짜 모든 인류에게 통하는 보편주의를 유교가 구현하려고 한다면, 유교는 서구만 비판해서는 안 되며 중국 자신의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도 있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야 유교가 "중화성의 재구축"에 불과하다는 서구나 주변의 비판을 불식시키고 진정으로 자본주의 비판, 근대의 대안적 가치로서 재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중국에서 진정으로 비판적 지식인이 되려면, 서양 근대의 초월과 문명모델의 전환/ 새로운 질서의 재구축과 그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 국가와의 거리두기 이 세 가지에 다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좌파-오리엔탈리즘도, 셀프-좌파-오리엔탈리즘도 넘어서라고 촉구합니다.
그리고 마오의 평등, 덩사오핑의 자유, 유교만 말하지말고, 위대한 5.4의 정신을 계승하라고 말합니다. 崇中, 嫌中이 아니라, 硏中, 批中(중국을 연구하고 비판하고)하라고 합니다.
토론에서는 중국 지식인 사회의 담론/norm을 국가가 규정짓는 현황을 이야기하면서, 그 norm에 사회주의에 추가적으로 유교도 들어가고 있다고 논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논의를 쭉 보면서 한국의 지식계는 어떠한가 질문을 던져봅니다.
첫댓글 개인적으로 건강한 사회란 체제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고 그 비판에 대한 수용이 관용적인 사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우 공감이 가는 내용이네요. 다만 과연 중국 내부로부터의 체제 자아비판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도 듭니다. 같은 권위주의적 통치체제 라는 공통점이 있는 싱가폴과 중국 사회를 경험해 보고 지켜 본 느낌으로는 두 사회의 수많은 엘리트들이 영미 및 유럽의 유명 대학에서 서구식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본국으로 돌아왔을 때 굉장히 체제 순응적인 성격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금번 중앙대 사태에서 보이는 교수들의 집단 반발같은 움직임은 사실 이 두 사회에서는 -제가 과문해서인지는 몰라도 - 그 예를 찾아 보기
어려우니까요. 그만큼 전체 사회의 안정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데다 비판에 관대하지 않고 그것을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그나저나 중미간 헤게모니 전쟁이 점입가경이네요. 통치모델 차원에서 보이는 중국의 자신감뿐 만아니라, 개인적으로는 경제, 금융쪽에서의 헤게모니 다툼도 흥미로웠는데요. 특히 최근 핫한 AIIB의 가입 여부와 사드 배치를 놓고 벌어진 미중간 힘겨루기는 신개항기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책 결정권자들은 얼마나 힘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