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표지에는 어떤 것이 있나
불교에서 사용하는 표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만(卍) 자와 원이삼점(圓伊三點) 그리고 법륜(法輪)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만(卍) 자
우리는 이 만자를 불교 전유의 문양으로 알고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만자(卍)는 산스크리트로 스바스티카 또는 슈리바차라 불려지는 것으로, 693년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에 ‘만(萬)’이라는 음을 가진 한자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자의 기원과 상징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대체로 아리안족의 태양 숭배와 관련된 것이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만자의 가운데 +자 모양은 태양을 상징하고, 주변의 꺾인 부분은 태양의 빛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외에 그것을 흐르는 물의 상징으로 보기도 하고, 둥글게 선회하는 모발의 형상이라고도 하는 주장이 있다. 인도의 고대 신화 속에 등장하는 비슈누와 크리슈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두 신의 가슴에 난 털이 빙빙 말아 올려졌는데, 그 털이 기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인도 이외에 페르시아와 그리스 등지에서도 이와 유사한 부호를 사용한 흔적이 있는데 여기서는 이것을 태양, 번갯불, 흐르는 물 등을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그러므로 이 표지는 인도불교에만 있었던 고유한 상징이 아니고, 유럽․아프리카 등 세계 전역에서 그 모양을 찾아볼 수 있다. 문양은 행운과 번영을 상징하는 것으로 널리 퍼져 폭넓게 쓰인 문양이다.
이러한 상징물은 동서양의 교류로 인하여 인도에 전해지게 되어 불교를 비롯하여 자이나교 힌두교들까지 받아들여서 길상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만 자는 불교에 하나의 상징물로 자리잡혀져 불교의 전파와 함께 동아시아 전반에 퍼지게 되었다.
특히 북방불교에서는 만 자 혹은 덕(德) 자라고 하여 이를 길상해운(吉祥海雲), 길상희선(吉祥喜旋)이라 한역하기도 하였다. 초기 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갖추고 계시는 32상 가운데 하나로 여겨, 가슴이나 손 또는 발 등에 만 자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화엄경 여래십신상해품(如來十身相海品)에는 부처님의 가슴에는 훌륭한 사람의 모습인 만 자 모양이 있으니 이를 길상해운이라 한다고 하였고, 대반야경에서는 가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몸에 덕 자가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스바스티카에 대해서 구마라습은 대품반야경과 대지도론에서는 덕(德) 자라고 번역을 하였고, 선비요법경 등에서는 덕자만자(德字萬字)라고 번역하였으며, 현장 스님은 대반야경에서 덕 자라고 번역하였다.
스바스티카를 만 자라고 하는 것은 곧 만(萬)자와 통하기에 이는 만덕이 모였다는 것을 뜻한다. 북방불교에서는 불교의 상징마크로 사용하고 있으나 남방불교에서는 이 대신 법륜을 그 상징 마크로 사용하고 있다.
만(卍) 자의 모양은 중심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우만 자(卐)와, 왼쪽으로 도는 좌만 자(卍)로 크게 나누어진다. 인도의 옛 조각에는 卍자가 많으나, 중국․한국․일본에서는 굳이 구별하지는 않는다. 또 좌우 만자의 각 끝부분이 다시 꺾인 모양도 있다. 이러한 만자는 아시리아․그리스․로마․인도․중국 등 고대문명이 찬란하였던 곳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 표지는 현재의 동남아시아 남방불교권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만’ 자는 중국과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권에서만 유행하였던 불교의 상징 표지임을 알 수 있다.
원이삼점(圓伊三點)
원이삼점은 주로 사찰 건물의 박공(牔栱) 부분에 그려진 문양으로서, 원 안에 둥근 점 세 개가 들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자삼점(伊字三點) 혹은 줄여 ‘이자(伊字)’라고도 한다. 이것은 산스크리트 문자 ‘∴’의 음인 ‘이’를 한역하면서 ‘이(伊)’라고 나타낸 데서 유래한다. 곧 ∴=伊다.
이 원이삼점의 원은 우주법계를 나타낸다고도 하고, 원융(圓融)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여기서 원융이란 걸리고 편벽됨이 없이 모든 것에 가득하고 만족하며, 완전히 일체가 되어서 서로 융합하므로 방해됨이 없는 것을 뜻한다. 원융은 화엄사상의 요체로 의상대사 법성게에도 첫구절에 ‘법성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다(法性圓融無二相)’고 나와 있다.
중국의 불교를 종파불교라고 규정짓듯이, 중국에서는 하나의 교리에 대하여 각 종파 나름대로의 주장을 펼쳐, 종파 사이에 이론과 실천수행의 차이점이 극에 달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종파불교의 가르침이 우리나라에도 처음 그대로 전래되었으나, 삼국통일기를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고승들은 보다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통하여 이들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고승들에 의하여 전개된 새로운 교리통합론을 일반적으로 원융사상이라고도 하며, 이 원융사상은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적인 흐름을 형성하여 우리나라 불교를 원융불교라고까지 지칭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원융사상을 주창한 대표적인 것이 원효(元曉)의 화쟁(和諍)사상이다. 원효는 인도 및 중국불교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이(理)와 사(事), 소승과 대승, 아(我)와 법(法) 등과 같은 상대적이고 대립적인 것들을 한데 어우르는 원융사상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모두 일(一)이면서 다(多)요, 다(多)면서 일(一)이라는 원융사상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면 ∴=伊 곧 점 세 개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첫째, 법신과 반야 그리고 해탈을 상징한다는 설이다. 법신이란 진리의 본체를 가리킨다. 반야는 지혜의 다른 말로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를 깨닫는 것이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항상 변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한말로 표현하면 공(空)을 깨닫는 것이다. 해탈은 윤회라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대자유의 경지에 드는 것이다.
진리와 그것을 깨닫는 지혜 그리고 고뇌의 속박에서 벗어난다는 불교의 핵심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원이삼점이라는 것이다. 또 이 세 점은 각기 불(佛) 법(法) 승(僧)의 삼보(三寶)를 상징한다고 하여 이를 삼보륜(三寶輪)이라고 이름붙이기도 한다.
이외에 이자삼점이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삼법인(三法印)을 상징한다고도 하고,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의 삼신불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법신(法身)은 해탈의 법인 진리 자체를 뜻하는 비로자나불을 가리킨다. 보신(報身)은 수행의 결과로 얻어진 공덕으로 부처가 된 아미타불, 노사나불 같은 분이며, 화신(化身)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인간 세상에 출현한 석가모니불을 말한다.
원이삼점
법륜(法輪)
법륜이란 8개의 바퀴살을 가진 배의 키 모양으로 된 문양이나 형상으로 나타낸 것으로 불법을 상징한다. 원래의 법륜은 많은 바퀴살을 가진 수레바퀴 모양이었으나, 표현하기가 복잡하여 8개의 바퀴살을 가진 배의 키 모양으로 간략화된 것이다.
법륜은 법 즉 진리의 바퀴란 뜻으로, 산스크리트어 다르마차크라(Dharma- cakra)에서 나왔다. ‘다르마’는 법, ‘차크라’는 수레바퀴를 의미한다. 수레바퀴가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굴러가듯, 부처님의 가르침 또한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모든 곳에서 중생을 교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원래 법륜의 ‘륜(輪)’은 태양을 상징하고, 바퀴살은 햇살을 상징했다. 태양은 고대에 널리 퍼져 있던 신앙의 대상이었다. 이것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군왕의 권위를 나타내게 되었다. 이것을 전륜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지닌 군주를 왕 중의 왕인 전륜성왕이라고 한다.
전륜성왕은 인도신화에서 통치의 수레바퀴를 굴려, 세계를 통일․지배하는 이상적인 제왕으로. 자이나교와 힌두교에도 등장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몸에 32상과 7보(七寶)를 갖추고 있으며, 무력에 의하지 않고, 정의에 의해서만 천하를 지배한다고 하는 왕인데, 이 전륜성왕에는 금륜(金輪)ㆍ은륜ㆍ동륜ㆍ철륜의 네 왕이 있다. 고대 인도의 통치자들은 금으로 만든 바퀴인 금륜(金輪), 은으로 만든 은륜(銀輪), 동으로 만든 동륜(銅輪) 등의 수레바퀴를 통해 세계 정복에 나섰다.
풍류도를 설립하고 불교에 귀의했던 신라의 진흥왕이 왕자의 이름을 금륜(金輪)과 동륜(銅輪)으로 지어 불렀는데, 이 또한 자신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고자 했던 꿈을 반연한 것이다.
전륜성왕이 가지고 있는 칠보(七寶) 중에 윤보(輪寶)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법륜의 모양을 하고 있다. 전륜성왕은 이 윤보로 산과 바위를 부수고 거침없이 나아간다고 한다. 전륜성왕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윤보가 땅을 평평하게 닦고, 모든 적을 굴복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불교의 법륜은 곧 윤보(輪寶)다. 전륜성왕이 윤보로써 모든 적을 굴복시키듯이, 부처님은 법륜으로 중생의 번뇌를 없애는 것이다.
불교에서 전륜은 불법을 펴는 것을 함께 가리킨다. 석가가 도를 깨친 후 처음으로 다섯 제자에게 설법했는데, 이를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하는 것은 이에 기인한다.
그러니 세상을 다스리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보기(寶器), 즉 윤보가 불교에서는 8개의 바퀴살을 가진 배의 키 모양을 한 법륜이다. 그러므로 법륜은 한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법륜이란 부처의 가르침이 세상 어느 곳에 존재하는 중생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보물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부처는 이 바퀴를 굴리며 미혹한 중생으로 하여금 미혹과 집착을 부수며 깨우침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