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나오셔서 아침 일찍 예루살렘으로 다시 향하시면서 많이 배가 고프셨습니다(12절). 마침 멀리 한 무화과나무가 보여서 가까이 가서 무엇이 있을까 보았지만, 잎사귀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13절). 예수님를 이 나무를 저주하여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절).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다시 그 나무 옆을 지나가면서 보니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죽어가는 상태가 되었고(20절), 베드로가 이를 보고 무화과나무가 말랐다고 예수님께 말씀드리자(20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22절).
아침 일찍 서둘러 나오신(마 21:18) 예수님께서 배가 고프셨기는 하셨지만,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신 것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이 시기는 유월절을 앞두고 있었으니 3월 말에서 4월 초 정도이기에 무화과 열매의 때가 아니었다고 13절에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무화과 열매를 거둘 시기는 아니긴 하지만 이르게 무화과 열매를 맺는 나무들은 3월 말에도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무화과나무에게서 열매를 구하신 이유는 이 무화과나무에 잎사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14절). 헬라어 원어로 보면 잎사귀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어 잎사귀가 무성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데, 그렇게 잎사귀가 무성했다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은 단순히 배가 고파서 무화과 열매를 구했지만, 열매가 없어서 저주하신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배고픔 때문에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라죽게 하셨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그 저주한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게 되었다는 것을 보았던 때의 그 사이에는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는, 소위 “성전 청결(淸潔) 사건” 혹은 “성전 정화(淨化) 사건”이 등장합니다(15절~18절). 아마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은 성전 청결 사건과 어느 정도 의미가 연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며, 돈을 바꾸며, 비둘기를 파는 일은 그 당시 당연하게 일어나던 일입니다. 성전에 내는 성전세(聖殿稅)는 성전 안에서만 유통되는 유대의 화폐인 세겔로 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찾는 사람이 헌금이나 성전세를 내기 위해 화폐를 환전(換錢)해야 했기에 그 돈을 바꿔주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제물(祭物)을 드리는 자들도 멀리서 소나 양 등의 제물을 가지고 오기가 어려우니 예루살렘에 와서 구입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성전 안에서 비둘기를 비롯한 제물을 판매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마 이런 자들은 성전에서 이방인들까지도 들어올 수 있는 이방인의 뜰에서 판매하거나 환전하는 행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과 연결되어 성전 안에서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암묵적(暗黙的)으로 허락받아 폭리(暴利)를 취하고, 어느 정도의 뒷돈을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에게 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더 혼잡하고 혼탁하게 이런 일들이 성전 안에서 이뤄졌던 것입니다. 평일에도 제사를 드리러 성전을 방문하는 자들이 많은데, 유월절을 앞둔 시점이었으니 더욱 복잡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그들을 보시며 예수님께서 그들을 쫓아내시고, 매매하는 상들을 뒤엎으시면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나르느라고 성전 안을 가로질러 가는 이들을 금하셨습니다(16절). 성전 밖으로 돌아가려면 번거로우니 물건을 나르면서 성전을 가로질러 편하게 가려는 자들을 막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이사야 56:7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십니다. 단순히 매매하는 자들과 환전하는 자들, 비둘기를 파는 자들만을 향한 책망의 메시지가 아니라, 이들과 연결되어 이득을 얻으려는 부도덕하고 타락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향한 책망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곱게 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꾀하지만,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놀랍게 여기고 따르고 있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게 되었습니다(18절). 저녁이 되어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오셨는데(19절), 아마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피하기 위한 이유도 포함하여 예루살렘에서 묵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은 이렇게 부패한 이스라엘을 향한 예수님의 경고 메시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잎사귀가 무성한 듯 보여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이스라엘이 다를 바 없다고 경고하시며, 결국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은 것처럼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도 멸망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는 것을 본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시면서(22절),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고 해도 그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3절).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은 것은 믿음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가르치십니다(24절). 믿음으로 기도한다면 그대로 이뤄질 것이란 말씀입니다. 또한 기도할 때 누구에겐가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25절). 무화과나무의 저주 사건과 믿음과 기도, 그리고 용서에 대한 말씀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타락하고 부패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지적하신 예수님께서는 믿음과 기도, 용서라는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 거룩한 공동체는 이런 믿음과 기도, 용서의 모습이 반영(反映)되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욕심과 탐욕에 의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 서로를 용서하며 하나가 되는 삶이 아름답고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라는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겉으로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온갖 부패와 더러운 것으로 가득하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열매 없는 삶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실 것입니다. 믿음과 기도로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며 따르는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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