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방지맥에도 비 내리고
산에 가면 무조건 좋다. 여럿이 가면 여럿이라 좋고 혼자 가면 혼자라서 좋다. 야트막한 능선
은 그래서 좋고, 험한 바위 능선은 또 그래서 좋다. 날씨가 맑으면 능선이 잘 보여서 좋고 비
가 오면 구수한 라면이 훨씬 맛있어서 좋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오르막 내리막길을 걸으면
서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정도 힘든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하고 싶은 걸 하
고 있으니까.
――― 한비야, 『1그램의 용기』에서
▶ 산행일시 : 2016년 7월 16일(토), 종일 비
▶ 산행인원 : 17명(버들, 영희언니, 모닥불, 스틸영, 악수, 대간거사, 소백, 수담(水潭),
사계, 메아리, 신가이버, 해마, 해피, 대포, 불문, 무불, 상고대)
▶ 산행코스
◦ 1부 산행 : 큰도사리 쌍둔지→995.9m,도투고랭이,1051.1m,1179m,983.3m→노동교,
이승복 기념관
◦ 2부 산행 : 지옆골→1053.1m,1159.4m,계방지맥 △1187.1m,1116.8m,Y자 능선 분기,
1112.8m→지옆골
▶ 산행거리 : GPS 실거리 15.1km(1부 7.2km, 2부 7.9km)
▶ 산행시간 : 7시간 31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9 : 04 - 평창군 용평면 도사리 쌍둔지 피란교, 산행시작
09 : 23 - 농로 ┫자 갈림길
09 : 46 - 능선마루 995.9m봉
10 : 40 - 도투고랭이
11 : 00 - ┣자 능선 분기봉(1,179m봉)
11 : 34 - 983.3m봉
12 : 00 - 계곡, 임도
12 : 15 ~ 12 : 56 - 노동교, 1부 산행종료, 이승복 기념관, 점심, 지옆골
13 : 16 - 계류 건넘, 임도
13 : 55 - 1,053.1m봉
14 : 35 - 1,159.4m봉
15 : 10 - 계방지맥 △1,187.1m봉
15 : 20 - ┣자 능선 분기봉, 왼쪽은 계방지맥 가리치로 감
15 ; 30 - 1,112.8m봉, Y자 능선 분기, 오른쪽으로 하산함
16 : 14 - 계곡, 임도
16 : 35 - 지옆골, 산행종료
17 : 35 ~ 19 : 24 - 용평리조트, 목욕, 저녁
22 : 03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계방지맥 △1,187.1m봉에서
2. 산중 숲속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은 드물고 값진 경험이다
▶ 도투고랭이
그간 주말이면 우중산행을 놀리다시피 하여 번번이 피해 갔는데 이번에는 정통으로 걸렸다.
새벽에 우산 받치고 집을 나선다. 비가 하도 세차게 쏟아져 우산이 그다지 소용없다. 산에 가
기도 전에 동네에서 다 젖는다. 동병상련이다. 동서울터미널에 드물지만 등산객들의 서성이
는 모습이 보여 눈 마주치고 씩 웃어준다.
오늘 산행은 이름 붙은 산 하나 없는 계방산 남쪽 변방의 무명봉 9좌다. 거기에 요 며칠 전부
터 예고된 우중산행이었는데도 산행인원은 17명이다. 좋은 말로 하자면 어지간히 산을 즐기
는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히 06시 30분에 동서울을 출발한다. 영동고속도로
문막휴게소에 잠깐 들리고 다시 질주하여 도사리 큰도사리 마을 쌍둔지 깊숙이 들어간다.
버스 돌릴 것을 염려하여 피란교 앞에서 멈춘다.
비가 내린다기보다는 아예 퍼붓는다. 콘크리트 포장한 농로가 수로가 되었다. 물살 거슬러
오른다. 발뒤꿈치에서 물보라가 인다. 우리의 행색이 영락없이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의 한 장면이다. 길섶에는 달맞이꽃들이 맨 얼굴로 비 맞으며 반긴다. ┫자 농로
갈림길에서 우리는 왼쪽 산자락을 향한다. 농로 넘쳐흐르는 개울을 첨벙첨벙 건넌다.
농로 끝 감자밭두렁 넘어 울창한 가시덤불을 뚫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천지 가득한 쏴아 하
는 빗소리가 시원하고 후련하다. 목덜미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처음에는 섬뜩
하더니 이내 그 차가운 감촉을 즐긴다. 키 작은 산죽지대를 지난다. 더덕줄기가 앞사람의 발
길에 채였다. 발라당 누워 우윳빛 속살을 드러낸다. 거저줍는다. 청향이 금방 사방에 퍼진다.
땀과 빗물로 범벅이 되어 능선마루 995.9m봉을 오른다. 우아하게 휴식한다. 타프 치고 그 안
에서 빗소리 들으며 부침개 안주하여 입산주 탁주 마신다. 해피 님 말마따나 차일 친 잔칫집
이다. 천둥 번개가 아쉽다. 산상의 흥겨운 사이키데릭 분위기를 돋울 텐데. 오래 쉬면 춥다.
오르막길 수풀 헤치는 것이 유영 다름 아니다. 줄지어 물살을 가른다. 장관이다.
이렇듯 비 오는 날은 무엇보다 사진 찍기가 대단한 고역이다. 이중 삼중으로 싸맨 카메라를
꺼내고 한손으로 우산 받치고 한손으로 초점 맞춰 셔터 누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멋진 사
진 한 장만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을 못할까 싶다. 더도 말고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눈과
발이 늘 바쁘다. 지난주에 진행했던 도투고랭이 아래 ┣자 능선 분기봉을 넘고 야트막한 안
부가 도투고랭이다.
3. 산행시작, 큰도사리 쌍둔지 농로 따라간다
4. 왼쪽이 가야 할 산릉
5. 저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6.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의 한 장면 같다
7. 산행시작한 지 42분 걸려 오른 능선마루 995.9m봉
8. 타프 치고 입산주, 잔칫집 분위기를 냈다
9. 도투고랭이를 향하여
▶ 노동교, 이승복 기념관
사면 풀숲 뒤져 대물 손맛 보며 오른다. 항상 그렇듯 산행 마치고 목욕탕에서 샤워하며 눈 감
으면 이런 4옆이 치렁치렁하게 달린 줄기가 선연히 떠오른다. 1,051.1m봉 넘고 길고 가파른
오르막이 오래 이어진다. 지난주에 내려온 능선을 거꾸로 오른다. 그때와 전혀 다른 산이다.
┣자 능선 분기봉인 고도계 1,179m봉이다.
1,179m봉에서 오른쪽으로 방향 틀어 동진한다. 내리막은 되게 미끄럽다. 엉덩방아 찧는다.
앞사람이 미끄러진 자국을 특히 조심했지만 새로이 미끄러진 자국 낸다. 쭉쭉 내린다. 내 키
를 훌쩍 넘는 풀숲을 뚫기도 한다. 약간 주춤했다가 한 피치 냅다 오르면 노송이 즐비한
983.3m봉이다. 983.3m봉은 능선이 다섯 가닥으로 뻗었다. 그중 제일 긴 가운데를 잡는다.
고도 300m를 막 쏟아져 내린다. 여울 물소리 들리고 무덤 지나 갈대 우거진 개울을 만난다.
무릎 넘게 흐르는 물이다. 갈대 잡아가며 건너서 임도에 올라선다. 임도 따라 산모퉁이 돌면
31번 국도가 지나는 노동교다. 노동교 옆의 카페 분위기 나는 건물에 비 가릴 데가 보인다.
점심 먹으려고 잠시 사용하고자 사정하였으나 대번에 거절당하였다.
바로 아랫녘에 있는 이승복 기념관으로 이동한다. 주차장 옆 너른 광장에 비가림막을 씌웠
다. 혹시 잡음이 생길지도 몰라 소백 님이 이 광장을 관리하는 가게에 들려 장소 사용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답례로 오대산 막걸리 4병을 사가지고 왔다. 주차장에 쏟아지는 장대비 또한
구경거리다. 라면 끓이는 버너 소리조차 구수하다. 오늘은 신마담이 라면 끓이느라 바빠서
식후 커피는 상마담이 끓인다.
▶ 계방지맥 △1,187.1m봉
2부 산행. 17명 전원 참석이다. 지난주는 염천이었는데 오늘은 냉천이다. 걸어야 살 것 같다.
물앙골 지나 지옆골로 들어간다. 야콘농장 앞에 차를 세운다. 마을 앞개울이 대천으로 흐른
다. 농로 걸어가며 연신 왼쪽 산릉 오를 기회를 엿본다. ┫자 임도 갈림길에서 임도 넘쳐흐르
는 대천을 건넌다. 등산화에 찬물이 스며들어 발가락까지 시원하다.
1부 산행 때와 마찬가지로 가시덤불숲을 뚫는다. 엄나무와 두릅나무, 산초나무는 붙들지 않
도록 복창하여 뒷사람에게 인계한다. 산죽지대 가파른 오르막이다. 더러 미끄러져 엎어진다.
그럴 때면 사지에 힘이 쑥 빠진다. 눈앞을 가리는 게 땀인지 빗물인지 모르겠다. 고개 젖혀
바라보는 공제선이 안개에 가리기에 다행이라고 할까? 그저 오르고 또 오른다.
10. 거의 키를 넘는 울창한 수풀을 헤치고 노동교 쪽으로 하산
11. 물싸리(Shrubby cinquefoil, 장미과 낙엽관목)
12. 큰비비추(Hosta longipes,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13. 안젤로니아(Angelonia angustifolia, 현삼과 한해살이풀)
14. 2부 산행, 지옆골에서 바라본 넘어야 할 산릉
15. 2부 산행시작 1시간 걸려 1,053.1m봉 내린 안부에 오름, 잠시 휴식
16. 등로 주변
17. 등로 주변
1,053.1m봉은 정상 근처에서 오른쪽 사면을 질러간다. 안부. 휴식하며 주력(酒力) 보충한
다. 산행표지기는 한 장도 보이지 않지만 등로는 잘났다. 안개는 쉴 새 없이 출몰하고 소낙비
는 그쳤는가 하면 다시 쏟아진다. 초원과 바윗길이 번갈아 나온다. 초원에서는 발걸음이 느
긋했다가 절리 예리한 바윗길에서는 바짝 긴장한다.
여로의 계절이다. 등로에 줄지어 피어 있는 여로(藜蘆)가 여로(旅路)의 벗이다. 검은색을 려
(黎)라고 하는데, 이 갈대(蘆)가 검은색의 껍질에 싸여 있기 때문에 여로(藜蘆)라고 한다.
이 빗속에서도 앙증한 꽃 열심히 피웠다. 고개 들면 하늘 가린 숲속 수묵농담의 풍경화 진경
전시장이다. 1,159.4m봉을 넘고 고지가 저기라 내쳐간다.
△1,187.1m봉. 계방지맥 길이다. 여태 한적하던 등로가 탄탄대로로 뚫렸다. 삼각점은 다 닳
아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1,187.1m봉 내리막은 탄탄한 만큼 빗길로 미끄럽다.
1,116.8m봉 넘고 Y자 갈림길이다. 왼쪽은 계방지맥 가리치로 가고 오른쪽은 남진하여 신약
수교 삼거리로 간다. 인적 뜸한 오른쪽 우리의 길을 잡는다.
산행 중 소백 님의 아주 건설적인 제안이 있었다. 여기서 가까운 용평리조트에 지인이 경영
하는 음식점이 있고, 그 옆에 드래곤밸리호텔 사우나가 있으니 산행 마치고 그리로 가면 좀
좋지 않겠는가. 호텔 사우나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 음식점에서는 꽃등심을 삼겹
살 값으로 먹을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어느 해 여름날 백운산 산행을 마치고 강원랜
드 사우나(입장료가 1인당 25,000원이었다)에 들렸는데 다른 사람들이 사장을 불러 우리가
욕조 물을 더럽혔다고 갈아 달라 요구했었다. 호텔 사우나는 미리 얼추 몸단장을 하고 갈 일
이다.
소백 님의 제안이 너무 일렀다. 갑자기 이런 우중충한 산행이 시큰둥해지고 저녁 행사에 맘
이 더 쏠리게 되었다. Y자 능선 분기봉인 1,112.8m봉에서 그만 오른쪽 능선을 잡아 하산하
기로 한다. 산행을 하다말고 내려간다. 지옆골로 내리는 길. 산릉은 여전히 안개에 가렸다.
우람한 적송 숲이 볼만하다. 뚝뚝 떨어져 골로 간다.
계류 건너 임도에 올라서고 임도 따라 내린다. 골짜기 도는 임도라서 물길을 여러 차례 건너
고 오미자 야콘농장 농로를 내려 아까 지나온 지옆골이다.
오늘 산행도 그럴 것이다. 후지와라노 기요스케(藤原淸輔, 1104∼1177)의 와카(和歌)처럼.
오래 살다 보면
지금 이때도
그리워하게 될까
괴롭다 여긴 옛날의 일도
지금 그리워지듯
永らへばまたこの頃やしのばれむ憂しと見し世ぞ今は恋しき
18. 소낙비는 내렸다 쉬고 또 내리기를 반복했다
19.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20. 계방지맥 진입, 대간거사 님과 사계 님(가운데)
21. 여로(藜蘆, Veratrum maackii var. japonicum, 백합과 여러해살이풀)
22. 빗속을 뚫고 전진
23. 등로 주변
24. 골로 가는 중, 적송이 볼만하다
25. 지옆골 가는 도중 만난 지계곡
첫댓글 등산화 씻기는 그런 기분도 좋았습니다. 우중 산행이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랬만에 시원했네요. 비 흠뻑 맞아본 게 얼마만인지. 요즘은 별개 다 가물어요.
우중 사진찍느라 고생하셨겠네요~
앞으로 몇번을 더 우려먹어도 될 같아요 지나갈 때마다 나오는 수량이 변하지않으니
이번주도 션 할 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처럼 시원한 산행이었습니다...마지막까정 양말이 뽀송뽀송했었는데 션한 계류를 첨벙첨벙 건너면서
좋은 바지 구입 축하드립니다^^
@스틸영(김순영) 그 션한 바지를 찾느데 애로사항이 있네요, 산지 워낙 오래돼서,,,기억이 나질않아요
@메아리(김남연) 인터넷을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포기를 할려다가
방법를 찾았어요
집에 안입는 비옷 바지를 엉덩이만 잘라내면 될 것 같아요
자를때 예술적인 감각으로 잘라야되요
이번주에 선을 뵈드리쥬
@상고대(김길용) 아주 멋지겠네요(특이하겠네요)^^
단체 사진에 불문님의 하트 뿅~! 뿅~! 에 뻑 갑니다^^
오랜만에 우중산행 즐거웠습니다
담날 고속도로의 상황이 아슬아슬합니다
비에 젖은 촉촉한 하트 나쁘지 않았나봐요?
ㅎㅎ
비오는데 메모하시고 사진찍으시는 모습 보면서 匠人의 모습이 느껴지더군요. 수고많으셨습니다.
날이 습하지 않아서 깔끔한 우중산행 이었습니다. 비덕분에 핸폰도 함께 젖어 기기변경하는 기회도 얻고 ㅎㅎ 소고기도 묵고 아주 값비싼ㅋ 오지산행 했습니다.
언젠간 가겠지요...
궁리 궁리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