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시영
심심했던 재두루미가 후다닥 튀어 올라
푸른 하늘을 느릿느릿 헤엄쳐간다
그 옆의 콩꼬투리가 배시시 웃다가 그만
잘 여문 콩알을 우수수 쏟아놓는다
그 밑의 미꾸라지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붓도랑에 하얀 배를 마구 내놓고 통통거린다
먼 길을 가던 농부가 자기 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만히 들여다본다
<시읽기> 10월/이시영
몇 번을 읽어도 의미 전달이 안 되는 시들이 참 흔하다. 시는 의미 전달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게 정설일지라도 이 말이 비문투성이의 시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시구의 의미가 전달되었을 때, 시는 시어 개개의 인상과 소리맵시가 어울려 새로운 형상을 얻는 경우가 더 많다.
농경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10월이 정답게 다가설 것 같다. 재두루미가 하늘을 헤엄치고 “콩 꼬투리가 배시시 웃다가 그만/잘 여문 콩알을 우수수 쏟아”내고, 뭔가를 못 참겠다는 듯 미꾸라지들도 “봇도랑에 하얀 배를 마구 내놓고 통통”거린다는 10월, 이 개구진 수런거림에 길을 가던 농부가 걸음을 멈추고 자기 논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가을 햇살을 두르고 깊어갈 10월의 생명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시어는 음성 상징어들이다. 재두루미, 콩꼬투리, 콩알, 미꾸라지 등의 시어들이―후다닥, 느릿느릿, 배시시, 우수수 등이 상징어와 통통거린다는 서술어에 차벽 없이 조응하면서 시는 자연물들이 너나들이로 어울린 가을 풍정을 얻는다.
네 개의 장면으로 짜인, 삶의 허기가 일절 제거된 이 시는 통째로 동사가 아닐까. 가을은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벗어나 시를 읽는 저마다에게 가을 형상이 저절로 그려지도록 시는 가을의 생명력에 닿는 게 아닐까.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다가가는 자연물들의 평등한 어우러짐, 자연을 빼다박은 어법이며 소리맵시가 현대시의 미래라는 듯이.
―이병초,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 형설출판사, 2021.
첫댓글 자연을 빼다박은 어법이며 소리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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