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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고려 현종 22) 거란의 침입 물리친 명장 강감찬 세상 떠남 1270(고려 원종 11) 삼별초, 진도에 거점 마련 1492(조선 성종 23) 성리학자 김종직 세상 떠남 1743(조선 영조 19) 강화외성, 벽돌로 개축 1884(조선 고종 21) 오당 함화진 태어남 국악사로 초대 대한국악원장 역임 대표저서: <한국음악소사>, <조선음악통론> 1911 전국에 풍수해, 사상 행방불명 256명, 유실 및 침수가옥 24,746호 1930 화성 연해서 어선 전복, 31명 사망 1958 국회에서 사친회비 폐지 교육세법안 통과 1960 장면, 제2공화국 총리에 피선 남산에 있던 이승만 동상 제거 시작 1966 ASPAC 제1차 상설위원회 개최 1971 서울 문리대 교수들, 대학자유화 선언 1972 중부지방에 사상 최대의 폭우 1975 싱가포르 항공, 서울 취항 개시 1980 문공부, 전국 2,597개 출판사중 617개를 사회정화명목으로 등록 취소 1981 한계령 도로 개통 1987 95개대 3500여명, 충남대에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결성 종합주가지수, 사상 처음 500선 돌파 1990 북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 발표 14 로마 최초의 위대한 황제 옥타비아누스 세상 떠남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생겨나게 한 그는 팍스 로마나, 즉 로마가 지배하는 나라는 평화롭다는 전통을 세울 만큼 로마를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닌 사람이었음에도 사치를 하지 않았고 언제나 로마를 개혁하기에 골몰했다고 한다. 1662 프랑스 사상가 파스칼1623-1662) 세상 떠남 "Man is but a reed, the weakest in nature, but he is a thinking reed." 1819 영국 증기기관 완성자 제임스 와트 세상 떠남 1839 다게르, 사진술 발명 프랑스의 화가이자 사진기술가 다게르는 '다게레오 타입'이라고 불리는 사진술을 1839. 8.19, 파리에서 열린 '아카데미 프랑세즈' 학술원회의에서 공인받아, 이 날이 공식적인 '사진 탄생일'로 정해졌다. 다게르의 사진술은 감광도가 낮고 노출이 8시간이나 되는 니엡스의 헬리오그래피를 개선한 것으로 사진의 화상이 직접 은판에 인화되는 방식이며, 노출 시간 10-30분 정도에, 거울처럼 좌우가 뒤바뀐 화상을 가지고 있었다. 1924 프랑스의 우체부 페르디낭 슈발 세상 떠남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부로 살아온 나는, 나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 중에도 천재성을 가진 사람, 힘찬 정열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고 또 죽겠노라." 프랑스의 오트리브 지역 우편배달부 페르디낭 슈발이 딸의 출생기념으로 1879년부터 짓기 시작해 33년 1만여일, 9만 3천시간에 걸쳐 완성한 '궁궐'의 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 그는 매일 30씩㎞씩 우편배달을 하면서 모은 자갈, 조개껍질들로 이 건축물을 완성했고, 평소 그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인생의 좌우명이나 격언을 새겨넣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던 마을 사람들은 존경심을 표하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의 집 앞에서 그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1924년 8월 19일, 88세로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세계 각지의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1938 장개석, 공산당계 16단체에 해산 명령 1978 이란 렉스극장에 방화. 377명 사망, 233명 부상 1980 사우디아라비아 트라이스타기 리아드공항 비상착륙뒤 화재. 301명 사망 1989 헝가리 공산당, 탈공산주의 선언 1991 소련에 쿠데타 발생, 고르비 실각 |
2008.7.19 촛불 든 초등생
촛불을 밝히고 있다. <강윤중기자>
소련 쿠데타 발생
1991. 8. 19
옐친 |
1991년 8월 19일 소련에서 공산당의 강경파 간부들이 주도한 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의 목적은 신연방조약을 반대해 이를 이전 상태로 되돌리고 보수파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 없이 실행된 쿠데타는 3일 만에 막을 내렸다. 그 결과 소련 공산당은 종말을 맞았으며,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한편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정적으로서 러시아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던 보리스 옐친은 쿠데타가 일어나자 이를 기회로 삼아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당시 러시아 공화국은 1990년 6월 독립국임을 선포하고 러시아 법이 공화국에서 가장 우선임을 공고히 함으로써 소련을 유지하려는 고르바초프의 노력을 무산시켰다. 또한 옐친이 새로운 연방을 결성해 러시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냄으로써 공공연하게 소련의 해체를 유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세력이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자 옐친은 러시아 공화국 내에서의 공산당 활동을 금지하고 영토 내의 소비에트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등 연방 해체에 박차를 가했다. 마침내 1991년 12월 8일 러시아 연방, 우크라이나, 벨로루시가 새로운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하는 데 서명함으로써 소련은 정식으로 해체되었다. |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사망
14. 8. 19
아우구스투스, 수단 메로에에서 발견된 청동상(AD 1세기) |
14년 8월 19일 나폴리 근처 놀라에서 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사망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독재정치로 공화제가 무너진 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후계자로서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황제가 되었다. 그가 추진한 공화정의 회복은 겉모습에 불과했고 사실상 독재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밖으로는 끝없는 정복전쟁을 벌여 제국을 팽창시켰으며, 안으로는 군사·치안·경제·행정 전분야에 걸친 개혁을 실시해 로마에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로마에 의한 지배로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문화 유산이 후세에 전달되었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졌다. 걸작 건축물도 수없이 세워져 일부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데, 로마에 있는 마르켈루스 극장과 거대한 아우구스투스 광장 유적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아우구스투스는 개인적으로 드루수스 전기와 시·경구 등 많은 글을 썼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전해지지는 않는다. 그의 뒤를 이어 티베리우스가 로마의 제2대 황제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