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시 시선집
최규철 시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50년 가까운 세월을 형이상시에 관심을 가지고 시를 써오면서 그동안 상재된 시집 중에서 형이상시를 엄선하여 시선집을 출간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중에는 형이상시의 특색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서 다소 시의 자구를 수정한 점도 많이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지하다시피 형이상시에서 중요한 특징은 컨시트를 비롯해서 정서의 지적등가물과 압축된 생략적 구문, 패러독스와 아이러니 등입니다. 그중에서 필자가 오랫동안 형이상시를 써오면서 특별히 주시한 것은 바로 컨시트의 독특한 시법입니다. 컨시트는 서로 유사성이 없는 이질적이고 상반된 사물이나 관념을 폭력적으로 결합하여 뜻밖의 정교하고도 충격적인 새로운 메타포를 창출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필자가 형이상시를 쓰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은 컨시트 이외의 다른 형이상시의 특징들도 모두가 마찬가지로 컨시트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광의적인 의미의 맥락에서 볼 때, 컨시트를 제외한 형이상시의 다른 특징들 역시 기발한 착상과 순발력 있는 기지, 부조화의 조화 등과 같은 컨시트적 요소들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필자는 컨시트가 형이상시의 모든 특징들을 총체적으로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형이상시를 컨시트시학의 관점에서 다루며 시를 써왔습니다.
필자의 컨시트시 중에서는 패러독스나 아이러니 같은 2원적 양극화의 상반된 상황을 억지로 결합시킴으로써 오히려 특별한 컨시트의 묘미를 창출해 낸 사례도 있고, 딱딱하고 생경한 학문적 지식과 같은 지성적 의미를 정서적 감성으로 소화하여 지성과 감성의 폭력적 통합을 이룸으로써 컨시트시로 전환시킨 시들도 많이 있습니다. 환언하면 컨시트를 통해서 생리학, 식물학, 천문학, 기상학, 지리학, 신학 등의 여러 가지 지적 요소들을 정서적 경험으로 흡수하여 지적 놀라움과 희열을 주는, 소위 정서의 지적 등가물을 이루는 일입니다. 또 시어를 순발력 있는 기지로 가지치기를 할 때 단축된 생략적 시구문이 컨시트로 인해서 의외의 경이로운 함축성과 다의성을 극대화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신고전주의 바탕에서 존 던 일파에 의해서 대두되었던 형이상시가 한동안 신선한 새바람을 일으키다가 그 후 몇백 년 동안 매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형이상시가 20세기 전반의 모더니즘 시대에 와서 다시 엘리엇 일파의 신비평가들에 의해서 새로운 빛깔의 형이상시로 재조명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20세기 후반을 휩쓸고 간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서 다시 빛을 잃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21세기의 메타모더니즘과 같은 초문화 시대에 이르러 17세기의 형이상시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은 형이상시의 특징 중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컨시트 시학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보존적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형이상시를 쓰는 시인은 서로 연관성이 없고 어울리지 않는 즉물적 사물이나 추상적 관념뿐 아니라, 서로 상충되는 예술적 개념이나 사상까지도 컨시트를 통해서 뜻밖의 참신한 빛깔의 창조적 가치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가타리와 함께 집필한 공저 『천개의 고원』에서 오랜 기간 유럽을 주도해 오던 근대의 전통적 인식론을 ‘수목형 사유 모델’로 이해한 반면, 이러한 구시대적 사유방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토대로 하는 ‘리좀형 사유 모델’을 소개했습니다. 이 두 가지의 모델을 더 자세히 설명드리자면, 나무와 그 가지처럼 중심지향적 체계와 위계질서로서의 순차적이고 서열화된 수목형 모델과 고구마와 감자와 같은 구근처럼 지하에서 실뿌리로 따로따로 흩어져 있고 파편화된 탈중심적 형태의 임의적이고 나열화된 리좀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두 모델로 단절되어 죽어버린 나무와 뿌리는 컨시트를 통해서 폭력적으로 접목되어 한 생명체로 피가 돌고 신진대사를 이루는 제3의 문학형태의 모델로 탈바꿈해 갈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수목형과 리좀형이 완전히 하나로 접붙여져서 또 다른 모델의 시가 된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를 통해 모자이크 자화상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모자이크 자화상은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경험해 온 무수한 삶의 조각들이 파편화되어 자신의 얼굴로 몰려와 무질서하게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그림으로서 실제의 자신의 얼굴과는 또 다르게 그려진 작품입니다. 그것을 가까이에서 보면 그 얼굴을 식별하기가 어렵지만, 조금만 물리적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눈과 코와 입과 귀의 이목구비와 얼굴의 윤곽이 또렷하게 드러나 보입니다. 즉 이 그림은 근거리에서는 리좀형으로, 원거리에서는 수목형으로 따로 상반된 모형으로 보여집니다. 한 그림 속에 포스트모더니즘과 넓은 의미의 모더니즘이 공존해 있는 상태입니다.
21세기는 다양한 예술문화가 동시에 공존하고 혼합되어 있는 초문화 시대입니다. 그중에서 특별히 메타모더니즘은 근대사회 전반을 배경으로 한 초기 모더니즘을 비롯해서 20세기에 새로이 등장한 후기 모더니즘과 20세기 후반의 포스트모더니즘까지도 모두 함께 수용하고 있는 일종의 잡종문화입니다. 그러나 필자가 시도하는 컨시트시는 메타모더니즘과도 차등화되어 단순히 공존과 혼합의 상태가 아닌, 상이한 시대의 상충되고 유형이 다른 문예의 흐름까지도 컨시트를 통해서 결합하여 제3의 문화형태로 변형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런 컨시트 시학이 21세기를 추도하는 문예사조가 될 때 앞으로 다가오는 AI 시대의 인공지능이 시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는, 그런 사이비 예술문화 속에서도 영혼의 숨결이 살아있고 생명감이 있는 예술로 남아 영원히 보존해 가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21세기의 형이상시에 눈을 뜨고 연구하며 작품으로 시도해 보려 할 즈음에 필자가 너무 고령이 되고 시력이 극도로 약화되어 부득불 여기서 붓을 꺾게 된 것에 대해서 매우 아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형이상시에 뜻을 둔 후학들이 많이 일어나서 필자가 이루지 못한 21세기의 형이상시를 더욱 발전시키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끝으로 평설을 써 주신 시인이시며 영문학자로서 형이상시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신 원응순 교수님과 이 시선집을 출간해 주신 박진환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머리말>
- 차 례 -
책머리에_서론
제1부
몸속으로 흐르는 시간
몸속에 지구가 있다
나목 옆에서
살아 있는 옷
백자 1
백지 2
백지 한 장의 새날
쉼표 하나 찍고 간다
눈물로 씻어 맑게
바람의 역설
단 한 방울의 눈물
피아노 시인 쇼팽
내 얼굴 전체가
태양에서 울리는 종소리
맹물을 찍어 그림을 그린다
빛과 소금 1
빛과 소금 2
피를 타고 흐르는 시간
마른 장마철
도시의 새 아침
괄호 안에 가두지 못하는 바람
땅 빼앗기
우리의 뜀박질
빛으로 가는 길
끼가 있는 물고기
연륜을 쌓아간다
황금 해시계와 해바라기
디지털 생체시계
꽃게의 꿈
생존의 무게
시월생
그림자로만 살아 있다
눈물로 그린 아내의 얼굴
어부의 이맛살
마지막 한 모금의 커피
달 속의 폐가
하와이 생태
고목 그림자의 꿈
아내의 현주소
원죄
바다에 대한 수상
제2부
아내의 빈자리
굴렁쇠가 돈다
시의 향기로 남고 싶다
바람나무
피로 곰삭은 세월
바람의 나라
세수를 하며
함께 잔을 비운다
햇살을 마시며 살아온 새
새장 안의 시간
손끝으로 보는 눈
모자이크 자화상
병아리의 봄
커피 한 잔의 정량(定量)
생각하는 사람
그믐달
시의 불꽃
단 한 번의 입맞춤
시의 깊이
시어를 검색한다
황금도시의 꿈을 꾸는 밤
잊혀진 시간들
바람의 열매
도심의 달밤
백일몽에서 깨어난 눈물
길, 시간, 바람
개기일식
아내를 지운다
바람의 얼굴
새의 미소
물고기의 꿈
백조의 환상 무도
나의 그림자
시를 쓸 때는
그녀는 성형미인
큰칼을 쓴 그믐달
몸의 컨디션
달의 체질이 녹아내리고 있다
어떤 의미의 탈춤
화장품 냄새가 난다
하루해의 충전
아내의 그림자
아침이슬 같은
돈 비린내만 남는다
가을풍경을 그린다
꽃술의 시간
공원의 꿈길
짝신을 신고
가묘․1
가묘․2
제3부
연
태엽 풀려가는 과목
진주
어머니의 가출
죽은 그림자 하나
새 술에 취하여
나이바퀴 돌아가는 소리
시인의 꿈
촛불로만 보이는 꿈
이맛살의 조류발전
인형처럼 살 순 없을까
사랑의 중독성
넋두리도 시가 된다면
눈을 감고 보는 쇼
아내의 천국 초상화
밤비 소곡
꿈의 역설
별자리
머리칼을 빗으며
작은 열매의 크기를
눈물, 나의 모든 것
잠꼬대로 쓴 시
날마다 부활의 아침을
눈물로 묻은 당신의 무덤
내 생활 반경의 중심
아겔다마 송
하루의 햇살
별나라, 꿈의 도시
그대의 영혼
도시의 야경
고흐의 ‘구두 한 켤레’
나폴리의 풍경
죽음 뒤의 내 모습처럼
빛의 씨앗
제4부
중생의 그림자
천 원군 한 장
낮달, 그 뉘앙스
그런데 왜 나는
고목 그림자
여기가 좋사오니
주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이름
문어발 같은 어둠으로
영원한 맞춤옷
제로가 되는 날
늙은 어부의 얼굴에 황금어장이
낙엽, 오색바람
전동차에서
가을의 산실
지폐 속의 자화상
의식 밖으로 부는 바람
강아지 인형의 총기
기도의 3보액(寶液)
얼굴 없는 메시지
기다리게 하소서
생명나무 열매
아내는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천국 모국어
지금은 두 손을 모을 때
종점
기도의 눈물
또 하루의 빈자리
광란의 콘서트
생명의 빛깔
소양증, 마른 바람소리
반달, 아내의 반신
또 하루가 보인다
샤론의 장미꽃
바다에서의 식감(食感)
꿈속으로 열린 날의 동면
밤
목마르지 않는 생수
제자리로 돌아가는 감나무골
꿈길을 밝힌다
제5부
섬김의 손길
당신은 갔어도
부모님 묘비에 새긴 시
잠 속에서 껌을 씹는 아내
아내의 무덤
불을 끄지 않는 역설
아내의 눈을 보며
아내의 목걸이
이제야 알았습니다
아내의 눈
천국 집에 사는 가족
흑백사진
두 개의 시간
그리움
내 영혼
행복의 문을 열어가누나
미니 멜로디카
● 시선집 평설
형이상적 기상의 세계_원응순
[2024.10.01 발행. 334쪽. 정가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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