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선의 이해찬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4선의 정동영 의원은 민주평화당 대표로 최근 선출됐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상임고문도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이들 ‘올드 보이의 귀환’은 ‘반정치’를 넘은, ‘정치’의 귀환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기성정치에 불만 쌓이면 유권자들은 정치적 구세주 바라
3김 시대가 막내린 후 가볍고 예능적인 ‘반정치 시대’로
생각이 달라 싸우는 게 아니라 싸우기 위해 달리 생각하는 듯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은 8월28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국회 특수활동비 전액을 폐지하자는 주장에 맞서) “국회는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반(反)정치의 광풍에 굴복하면 안된다.(…) 왜 국회라고 해서 특활비 본연의 목적에 필요한 소요가 없겠느냐, 본연의 목적에 맞는 정도는 둬야 한다”며 특유의 소신 발언을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유인태 사무총장은 반정치의 광풍을 걱정한 모양이지만 (솔릭처럼) 반정치 태풍도 급격히 약해지면서 한반도를 빠져나가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한국 정치를 할퀴고 간) 반정치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반정치를 상징하던 인물들이 퇴장하고)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손학규도 바른미래당 대표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올드 보이의 귀환’은 ‘정치의 귀환’이다.
반정치는 다양한 얼굴로 나타났다. ‘새 정치’를 고유명사로 만든 안철수는 반정치의 상징적 인물이다. 기성정치를 혐오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을 ‘쇼핑’하는 정치 소비자의 눈에 안철수는 매력적인 ‘신상(품)’이었다. 안철수의 상징 자본은 ‘정치권 밖의 명망가’라는 데 있었다. 박원순도 마찬가지였다. “정치하려거든 정치하지 말라”는 격언(?)을 증명하는 인물들이다.
1987년 노태우는 ‘다수당의 다수파’로 대통령이 되었다. 1992년 김영삼은 ‘다수당의 소수파’였다. 1997년 김대중은 ‘소수당의 다수파’로 대통령이 되었고, 2002년 노무현은 놀랍게도 ‘소수당의 소수파’로 대통령이 되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2012년 ‘개인’ 안철수는 기성 정당을 뿌리째 흔들었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2012년에 ‘블랙 스완(검은 백조)’이 될 뻔했다. 17세기 말에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검은 백조’는 존재할 수 없는 형용모순의 상징이었다. 발견된 뒤로는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것’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2007년 <블랙 스완>이라는 책에서 블랙 스완의 개념을 “극단적으로 예외적이고 알려지지 않아 발생 가능성에 대한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가져오고 발생 후에야 적절한 설명과 예견이 가능해지는 사건”이라고 정의하고 ‘경제공황’이나 ‘9·11테러’ 같은 사건을 예로 들었다. 한마디로 블랙 스완이란 예측할 수 없는 ‘극단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반면 <커런시 워>(CURRENCY WARS, 통화전쟁)의 저자인 제임스 리카즈는 블랙 스완을 극단적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 사건의 극단적 결과’로 해석했다. 예컨대 9·11테러도 방식과 규모에서 훨씬 충격적이긴 하지만 일상적 테러가 극단적인 참사로 이어진 것뿐이다. 난 이 해석에 동의한다. ‘안철수현상’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바람’을 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듯이 호들갑을 떨면서 ‘현상’이라고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알고 보면 그런 ‘아웃사이더’ 바람은 이미 여러 번 있었다. 1995년 무소속으로 나와 서울시장이 거의 될 뻔했던 ‘박찬종바람’ 같은 작은(?) 바람도 있었고, 대선판을 뒤흔든 ‘(이회)창풍’ ‘노(무현)풍’ ‘안(철수)풍’ 모두 강력한 태풍이었다.
태풍은 태양으로부터 받는 열량의 차이가 ‘열적 불균형’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발생한다. 정치에서의 바람도 마찬가지다. 정치·경제적 질서로부터 받는 혜택의 차이가 ‘사회적 분노’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기존 체제에 대한 대중적 분노는 기성정치가 무능할 때 폭발한다. 대중이 분노하는데 정치가 싸우지 않으면 대중은 대신 싸워줄 ‘영웅’을 불러낸다. (세계적으로 반정치의 상징인) 도널드 트럼프도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는’ 백인들의 분노를 대변하면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1993년 국무총리로 임명된 이회창은 ‘법과 원칙’대로 하려다가 불과 4개월 만에 그만뒀는데 이런 ‘대쪽’ 이미지가 거센 ‘창풍’의 동력이 되었다. 정치 9단으로 불리던 3김 전성기에 커다란 균열을 냈다는 것을 고려하면 창풍이 역사적으로 가장 센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2002년에는 (고졸 출신의) 노무현바람 앞에 (서울대 출신의) 이인제·정몽준·이회창이 차례로 쓰러졌다. 노무현은 대중의 분노를 자신의 정치적 에너지로 만드는 데 탁월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대중이 분노하는 지점을 읽는 능력이 있었고, 그것을 폭발시킬 수 있는 선동의 기술도 있었다. 노무현은 자기가 무엇에 분노하는지, 누구와 싸우려고 하는지, 누구를 대변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2011년 가을에 불어온 ‘안풍’은 2012년에는 ‘현상’이란 단어가 붙을 정도로 엄청난 태풍으로 발전했다. ‘안철수현상’은 말 그대로 패션이었다. 젊은이들이 그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매력적 상품을 소비하고픈 욕망과 흡사한 것이었다. 그가 갖고 있는 ‘강남성’이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그렇게 ‘불려나온’ 안철수의 불행은 불러낸 대중도, 불려나온 그도 불러낸 이유를 정확히 몰랐다는 데 있다. 추상적인 ‘새 정치’를 내세웠으나 안철수가 ‘새 인물’이라는 것 말고는 내용도, 함께하는 인물도 새롭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졌다. 결국 그는 자기가 무엇에 분노하는지, 무엇과 싸우려고 하는지, 누구를 대변하려고 하는지, 즉 정치를 하는 이유를 끝내 설명하지 못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에 나선 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포스터. ‘3김’은 비전을 제시하고 동지를 모으는 정치 행위 자체를 좋아한 이들이었다.
나는 세 달 전 칼럼에서 ‘보수의 몰락’을 경영전략가인 짐 콜린스의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 빗대 설명했는데 그 비유는 안철수에게 더 적절하다.
짐 콜린스는 강하고 능력 있는 기업의 몰락을 5단계로 설명했다. 1단계는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 2단계는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 3단계는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 4단계는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 5단계는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다. 안철수는 4단계에서 5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이해찬·정동영…올드 보이의 귀환은 ‘반정치의 종언’
대결의 정치보다 ‘대화·타협의 정치’가 돌아오고 있다
‘올드 보이의 귀환’은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명망가가 나라를 구해줄 것이라고 믿는 ‘메시아주의’가 끝났다는 신호다. 대니얼 부어스틴이 <이미지와 환상>에서 통찰한 대로 옛날에는 위대하면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유명하면 위대해진다고 믿는 시대다. 예능의 시대, 가벼움의 시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메시아 이미지의 환상을 낳았다. 그 시대가 서서히 종말을 맞고 있다.
메시아주의만 반정치가 아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검토했던 안철수는 서울시장이 ‘정치가 아니라 행정을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고민했다고 했는데 이것 역시 뿌리 깊은 반정치 의식이다. ‘행정은 일하는 것, 정치는 싸우는 것’ ‘행정은 좋은 것, 정치는 나쁜 것’ ‘행정은 효율적인 것, 정치는 비효율적인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꽤나 널리 퍼져 있다. 이명박, 박근혜가 대표적으로 그런 인식을 가졌지만 (민주화운동가들도) 대통령이나 서울시장 같은 자리에 오르면 정치를 ‘귀찮게’ 생각한다.
“국민만 보고 가겠습니다.” 훌륭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것 역시 아주 위험한 반정치적 태도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의회권력’과 국민을 분리시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정치를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적과 동지’로 보는 이분법적 ‘운동정치’도 정치를 황폐화시키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다.
서구 민주주의는 ‘정치인과 유권자가 만나는 것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돈’과 ‘말’에 족쇄를 채우지 않는다. 우리는 ‘정치인과 유권자가 만나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에서 출발한다. 정치를 보는 시각이 출발부터 부정적이다. 정치인에겐 ‘돈’이든, ‘말’이든, ‘사람’이든 풀어주면 안된다는 ‘도덕주의’ 역시 민주주의의 적이고 반정치의 친구다. 이들은 정치자금을 비현실적으로 묶어 놓고는 특활비도 전액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는 1932년에 출간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진보주의자들이 흔히 빠지는) 도덕적 이상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실제로 진보는 비도덕적 문제도 도덕적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니부어는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고 유토피아적 낙관주의를 설파하는 이상주의자들과 싸웠다. 실제로 한국의 민주·진보 진영은 비도덕적 영역도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슬로건으로 해결하려는 위험한 경향이 있다. 개인과 집단의 윤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꼼수’를 비롯해) 팟캐스트도 반정치 광풍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많은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 갖게 한 것은 이들의 공이지만 정치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책임도 크다.
반정치의 광풍이 몰아친 지난 10여년간 한국 정치는 ‘적과 동지’의 전쟁으로 되돌아갔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미래를 말하다>에서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경제적 양극화가 정치적 양극화를 낳는 게 아니라 (반대로) 정치적 양극화가 경제적 양극화를 낳는다고 주장했는데 지금 한국이 딱 그 지경이다. 국정을 맡기 위해 선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위해 국정을 정쟁으로 만든다. 생각이 달라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싸우기 위해 생각을 다르게 하는 듯하다. 역사인식이나 이념은 말할 것도 없고 사소한(?) 정책도 전쟁이 된다. 정치가 당파적 진영의 싸움터가 되자 서민들 삶의 현장이 전쟁터가 되었다.
정치의 시대를 이끌었던 3김은 반정치의 정치인들과 두 가지 점에서 확실히 달랐다. 정치가·군인·기업가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합목적적’ 유연함이 있어야 한다. 반면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정치에는 맞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학자, 종교인, 법조인, 언론인,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 낫다. 정치가와 군인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공산주의 소련과 ‘연합’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강자가 된 것도 구글의 안드로이드 ‘동맹’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것은 ‘3당 합당’과 ‘DJP 연합’을 했기 때문이다. 노무현도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를 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대쪽 이회창이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양김의 절반만 배웠어도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은 보수주의자인 JP가 진보주의자인 DJ와 연합하도록 방치했고, 이인제의 탈당도 막지 않았다. 2002년 대선에서도 이회창과 그의 핵심 참모인 유승민은 JP를 끌어들이지 못했고, 재벌인 정몽준과 노무현의 후보단일화를 방치했다.
결정적 차이가 또 하나 있다. 반정치의 정치인들이 ‘직’을 보고 정치를 했다면 3김은 정치를 ‘업’으로 했다. 1997년에 목포상고를 나온 호남 출신의 김대중이 대권 도전 네 번 만에 70이 넘은 나이에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런 불굴의 의지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마키아벨리가 말한 ‘비르투(Virtu, 권력의지)’의 힘으로 생각했으나 곰곰이 보니 그게 아니라 정치를 ‘즐겼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김영삼도 그런 정치인이다. 그들은 국민들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하고, 동지를 모으고, 당을 만들고, 언론에 주목받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선거에서 떨어져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토머스 에디슨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는 말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에디슨은 그저 수천번의 실험을 좋아했던 것이다. 정치도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 그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고 싶을 뿐인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된다. 혼술, 혼밥 하는 사람이 정치를 잘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정치를 머리로 하고, 혼자 한다.
올드 보이의 귀환은 3김 이후에 몰아친 반정치의 일탈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신호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 올드 보이들의 귀환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