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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재림의 영(새말씀)은 누구에게 오는가
예수님은 천국의 주인이지만 초림 때는 지상천국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가셨다.
때문에 재림을 약속하셨는데, 그 재림의 영을 누가 과연 받는가 이다.
분류하면 1)자칭 메시야들, 2) 메시야의 심부름꾼, 3) 각자가 스스로
깨닫는다고 주장하는자들, 이렇게 셋이다. 셋 중에서 누가 과연 재림주의
영(말씀)을 받는 진짜인지 이제 진실게임을 펼쳐보기로 한다.
1. 자칭 메시야들과 진짜 메시야의 차이
예수님은 초림 때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마13:35)"
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는 초림 때는 비유로 말하고 재림 때는 창세부터
풀어내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계5장에서도 분명히 예수님은 재림 때
일곱인으로 봉한 책을 펼치시는 분임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재림 때 말씀을 풀어주신다고 했기 때문에 오늘날 말씀을
풀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자기들이 재림 예수로 등극해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 한분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눈만 뜨면 우후죽순처럼
돋아나 있는 게 자칭 메시야집단이다. 따라서 예수님 한분 외에는 일단 모두
가짜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하겠다.
그러면 이제부터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진짜 재림주는 성경기록대로 오시게 되어 있기 때문에 식별이 어렵지 않다.
그는 우선 말씀을 풀어주시되 창세부터 풀어주신다고 했는데 과연 그러한가?
"네가 가서 ... 천사의 손에 펴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계10:8-10)"
이렇게 요한이 받아먹은 "펴놓인 작은책" 은 창1,2,3장이 해독된 말씀이다.
창1,2,3장은 성경전체에서 분량이 작은 것이요, 약속대로 예수님에 의해
해독된 말씀이므로 "펴놓인 작은책" 이 된다. 이것을 천사를 통해서 오늘의
말씀 사역자인 요한이 받아먹었다.
그리고 받아먹은 창세기는 성경전체를 풀 수 있는 성경의 열쇠이기 때문에,
요한은 그것을 받아먹은 후에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심부름꾼이다. 심부름꾼은 그 형제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대신 전하여
구원으로 인도해야 할 사명과 의무를 가졌다. 그는 심부름꾼이기 때문에
형제들 중에 지극히 작은자가 된다.
그러므로 천국 비유에서도 예수님은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자에 한것이 곧
나에게 한것이다(마24:40,45)" 라고 했던 것이다
이는 오늘의 요한에게 예수님이 풀어주신 말씀이 있으므로 그 말씀을 들어야
구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말씀을 직접 전하지 않고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자에게
대신 전하게 하시는가?
그 이유는 우선 가짜 재림주들과 차별화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말씀을 받은
유일한 분인데, 그 이름을 받은자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기록되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2:17)"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계19:12)"
이처럼 오늘의 예수님은 받은자 밖에는 아는 자가 없다고 한 기록을 통하여
자신은 절대로 드러낼 수 없는 천기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감추기 위해서 말씀을 대신 전해줄 심부름꾼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가짜들은 성경기록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재림주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자기가 가짜인데 감추어서 언제, 무슨 영광을 보며 무슨 득을
보겠는가 이다. 기록대로 감추면 고생만 싫컷 할것이기 때문이다.
성경기록이 어찌되었든지 자기들이 자칭 메시야로 등극함으로써 우선
사람들로부터 크나큰 명예와 대접을 받고자 한다. 진짜 재림주는 반드시
영광의 그 날을 약속 받아서 감추어 있을 수 있지만 가짜는 감추는 일이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가짜는 우선 달콤한 꽃감을 먼저 빼먹고 보는 게 장땡이 아니겠는가.
2. 각자가 스스로 깨닫는다고 주장하는 자들(가짜)
마지막 때는 자칭 메시야(적그리스도)들이 창궐하여 사람들을 사로잡아
군림함이 예언되어 있고 오늘의 현실이 바로 그러하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가짜이든 진짜이든 말씀을 풀었다고 주장하는 일인교주 제단을 무조건
혐오하면서 각자가 스스로 말씀을 깨닫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속출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영)을 사람마다 모두 각각 직접 받아서 스스로
깨닫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일은 저 이천년 전 초기그리스도인
시대부터라고 한다. 자연히 이들의 단골메뉴인즉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시는 동안에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되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행1:4-5)] 라는 성구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였다. 그 때에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하늘에서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들에게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혀들이 갈래갈래 갈라지면서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대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행2:1-4)]
라는 두 성구다. 하지만 과연 그게 구원의 성령인가?
그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간단히 증명해보자. 우선 여기서 언급된
요한의 물 세례와 성령 세례는 어떤 관계인가? 모든 표현은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여자를 말할 때 기본적으로는 남자 앞에 상대적으로 불리워지는
여자가 있다. 그리고 점점 단계를 높여서 영을 남자라고 한다면 육체를
여자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혹은 아버지)을 남자라고 한다면
예수님(혹은 아들)을 여자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 및 예수님을 남자라고
한다면 백성들의 조직체를 여자라고 한다.
이처럼 성령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상대적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창조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성령(말씀)으로 지어진 것임을 잊지 말자
그러므로 일단 성령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모든 역사가 성령의 역사임을 누가 부인하랴.
따라서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모든 일들은 성령의 역사가
아닌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약제단의 마지막 선지자인 요한의 물세례도 성령의 역사요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기사와 복음전파와 제자들을 통해 주신 물세례도
모두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불리워질 때 그것이 세례인 경우는
물 세례와 성령 세례로 나뉘어진다. 전자는 보다 낮고 후자는 보다 높다.
즉 여기서 말하는 성령세례는 최상급이 아니고 비교급으로서 성령세례다.
왜 그런가?
하나님이 최상급으로 주시는 성령(말씀)은 마지막 때에 재림주로부터
성경이 해독된 말씀인데, 그 말씀을 일컬어 로고스(=이성=논리=형이상학)라고
했기 때문이다(계19:13).
그렇다면 이천년 전에 오순절 다락방에 불의 혀처럼 갈라져내린 성령이
과연 성경이 해독된 로고스의 말씀이었던가? 절대로 아니다.
그들은 그 성령을 받고 각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의 방언으로 말했을 뿐이다.
성경을 한 줄이라도 풀어주는 로고스의 말씀은 전혀 아니었다.
각 사람의 방언으로 말씀을 전파했기 때문에 그 성령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기폭제로 주신 것이다. 그래서 하루에 삼천명까지 전도했다고
알려주고도 있지 않는가.
예수께서 "너희는 몇 날이 되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행1:4-5)"
라고 하시고 그 약속대로 오순절 다락방에 내린 성령은 눈에 보이는 형상물이다.
그것은 로고스가 아니며 성경을 낱낱이 풀어낸 형이상학의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초림 당시에 행했던 이적기사의 성령으로서 방언을 할 수 있게한
능력이었다. 방언, 그것이 무언가?
방언은 그 시대에 필요했기 때문에 주신 성령의 역사다. 그 때에는 아직
이렇다할 성경도 만들어지지 않는 때이거니와, 사람들이 거의 문맹이었고
번역술이나 교통과 통신 등이 전혀 발달되지 못한 그 시대에 복음을
효율적으로 전파하기 위해서 방언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주신
성령의 역사였다.
하지만 문명과 통신이 발달한 오늘날은
말씀을 전하는데 그런 성령세례나 방언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폐했다.
오늘의 성령세례는 오로지 로고스다. 예수님이 심부름꾼에게 풀어주신
로고스 말씀뿐이다. 예수님의 초림 때도 그러했지만 어느 시대든지
말씀은 한사람을 통해서 모든 백성들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요, 예수님 한 분에 의해서만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다.
지금은 재림예수님 한 분이 주신 로고스로만으로 승부하는 시대다.
예수님의 재림 때 주시는 로고스만이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죄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르게 한다. 대속과 구원의 일은 예수님만이 하신다.
그런데 스스로 깨닫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아!
예수님을 밀어내고(찌르고) 그대들이 여기 저기서 중구난방으로 말씀을
스스로 깨달아 스스로 대속을 하며 스스로 구원을 이룬단 말인가.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닌데 참으로 혼돈이다. 예수님만이
우리 죄를 대속한다 했는데 스스로 구원을 이룬다니 참으로 교만하다.
그 뿐인가? 스스로 깨닫는다고 하는 자들은 저 초기그리스도인 시대부터
구원이 있다고 믿는데, 그들은 다 죽고 없기 때문에 자연히 우리 모두도
그들처럼 죽어서 영만이 하늘에 올라가서 산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이사야, 계시록, 시편 등, 여러 곳곳에서 수없이
인간의 생명이 땅에서 육체로 영생할 것을 기록하고 있음을 어찌할 것인가.
모두 지워 없앨 것인가? 마24장에서는 마지막 때
"택한자들의 육체의 구원을 위하여 환난날을 짧게 감하리라" 했는데
모두 지울 것인가? 그리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서도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달라고 했다. 하늘에서 이룬 것은 영생하는
천사들의 공동체이므로 땅에서도 그와 같이 영생하는 인간공동체를
말하고 있다. 이 모든 말씀을 지워버릴 것인가?
게다가 예수님은 말일에 천사들과 동반강림한다고 했다. 이는 신들이
인간(144000)과 한몸되기 위해 장가오는 일이다. 성경은 여자가 남자에게
시집가는 개념이 아니라 남자가 여자에게 장가오는 개념이다. 성경에서
남자는 하늘의 신을 뜻하고 여자는 땅의 인간을 뜻하는데, 신이 인간에게
장가와서 합일해줌으로써 인간 육체가 땅에서 영생체가 되도록 한것이다.
만일 여자가 남자에게 시집가는 개념이면 인간이 죽어서 하늘에 가는
하늘 천국이겠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장가오는 일이므로 인간이 땅에서
신의 몸을 받아서 영생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같이 땅에서 영생하는
지상천국에 대한 기록들을 그대들은 모두 지워야 할것이다.
성경을 가감하지 말며 왜곡하지 말라
그러므로 재림의 영은 반드시 어느 독보적 존재인 한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한사람이 보이는 육체를 가진 재림주가 되어 사람들에게
진리의 새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재림주가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해주는 진리의 새말씀을 주심으로써
즉 성경을 낱낱이 풀어주심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모르는 죄를 사함받아 영생에 이르게 한다.
결코 터무니 없이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모든 사람들이 각자 스스로
재림주의 영을 받아 스스로 죄사함 받고, 스스로 구원받고, 스스로 영생에
이르지 아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