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 영혼의 기쁨
(막심 퓌상)
연옥에 대해서는 주로 그 혹독한 괴로움만을 이야기한다.
연옥에서의 기쁨을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지만 연옥에서의 기쁨은 죽은 이를 위해서나
산 이를 위해서도 훌륭한 교훈이 된다.
**성화 은총**
현세에서는 우리가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인지
미움받을 만한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연옥 영혼은 상존 은총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의심 없이 하느님의 뜻을 알고 있다.
오라게네스의 부친은 아들의 가슴에 경건하게 입을 맞추곤 했다.
그것은 성세로 말미암아 이 천진한 가슴이
주님의 거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성 루도비코의 모후 카스티야의 블랑슈는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의 아이들 이마에 입 맞추기를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 이마에 성녀 엘리사벳이
입을 맞추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세례성사 때에 하느님의 입맞춤으로 거룩하게 된 어린이의 영혼이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다운 것이라면
한평생 스스로 은총에 따라 살고 하느님에 대한 사람에 불타면서
이승을 떠나는 영혼의 아름다움은 어떻겠는가?
연옥 영혼은 하느님의 아름다우심을 반사하는 충실한 거울이다.
연옥에서 가장 신분이 낮다 하더라도
그 영혼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세계와 같다.
그 세계에 하느님의 영광은 영원히 나타난다.
연옥에 있는 제일 못난 영혼이라도
이 점에 있어서는 물질 세계보다 가치 있다.
제노바의 성녀 가타리나는 고해신부에게 말했다.
신부님. 만일 신부님께서 상존 은총을 갖추고 있는
한 영혼을 볼 수 있다면
신부님께서는 신부님 영혼의 구원을 위해 온갖 고통과
치욕과 가난을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를 받고 또 보존하기 위해서는 한 번이 아니라
천 번이라도 죽기를 원할 것입니다.
연옥 영혼은 청정 결백한 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흡사 천사와도 같이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
죄의 잠벌을 받는다는 것이 몹시 괴로운 것임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순명과 인내로써 즐거이 이 고통을 참아 받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도 보태어 느끼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중에도 하느님깨 대한 사랑에 불타서
환의희 노래를 부르는 순교자는 연옥 영혼의 상징이다.
괴로운 감옥에서도 사랑과 상존 은총으로 인해
연옥 영혼은 하느님과 일치하고 있다.
그 고통으로 자신이 천국에 맞갖는 자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몹시 갈망하는 것이다.
제노바의 성녀 가타리나는 말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연옥 영혼에게 비상한 영향을 주어
상상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이 크나큰 즐거움이 연옥 영혼의 고통을 덜어주지는 않지만
하느님과의 끊임없는 교제로 그들의 즐거움은 점점 더해 간다.
또 하느님과 교제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잠벌이 없어짐에 따라 이 교제는
더 친밀해지기 때문에 연옥 영혼은 비상한 즐거움과
비상한 괴로움을 동시에 느낀다.(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