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소설 『스티커』를 읽고
당신은 저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아니면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김선미 작가의 『스티커』에서는 원하는 저주를 스티커로 만들어 준다.
주인공 장시루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어느 날 엄마의 민속학 자료 속에서 『스티커로 저주를 거는 방법』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는 저주 스티커를 만들게 된다. 시루는 다크웹에서 스티커를 판매하며 돈을 벌지만 점점 더 강력한 주문과 위험한 요구가 들어오면서 상황이 복잡해진다. 그러던 중 소우주라는 인물이 나타나자 저주가 쌓이면 자연재해가 온다는 경고를 하고, 시루는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닫는다. 결국 소우주와 함께 저주로 인한 재앙을 막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저주를 안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안 한 사람도 없다. 책 속에서 실제로 저주 스티커를 만들어내며 타인의 불행을 거래하는 순간 나는 나에게 묻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욕망을 품은 적은 없는가?” 『스티커』는 단순히 판타지적 장치로서의 저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어두운 충동을 드러내는 거울 역할을 한다. 괴롭힘과 고립 속에서 주인공이 선택한 길은 저주였지만, 그 끝에서는 재앙과 파멸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이야기는 “저주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그리고 그 욕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처음의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스티커』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저주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스칠 수 있는 감정이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순간 세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작품을 통해 전해진다.
저주 스티커의 주요 고객은 청소년이었다. 누군가 망하면 좋겠고 죽이고 싶고 가족마저 버리고 죽이고 싶은 현 사회를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이 다크웹에서 저주를 거래하듯, 청소년 사회에서도 분노와 혐오가 ‘밈’이나 ‘댓글’ 형태로 소비되고 확산된다.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저주하는 말이 빠르게 퍼지며 일종의 놀이처럼 소비되는 것이다. 작품 속 저주가 쌓이면 자연재해가 일어난다는 설정은, 현실에서 혐오와 폭력이 누적될 때 공동체 전체가 병들고 무너질 수 있다는 은유로 읽힌다. 청소년 사회에서 반복되는 사이버폭력은 개인의 정신 건강뿐 아니라 집단의 신뢰와 안전까지 위협한다.
『스티커』는 단순히 판타지적 저주 이야기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겪는 분노·상처·고립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묻는 작품이다. "저주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스칠 수 있는 감정이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면 결국 자신과 사회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결국 처음의 질문 “당신은 저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는 청소년 사회에서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고 해소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스티커』는 저주 대신 대화와 연대, 치유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청소년 사회는 분노와 상처를 건강하게 풀어낼 공간이 부족해 저주·혐오·조롱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스티커』가 보여주듯, 안전한 대화와 치유의 장이 마련되지 않으니 온라인에서 공격적 언어와 폭력적 밈이 확산되고, 어른 사회 역시 이를 방관하거나 모방해 악순환이 이어진다.
결국 작은 혐오와 폭력이 쌓이면 공동체 전체가 병들 수 있다. 청소년들에게 예술·운동·토론·연대 같은 건강한 해소의 통로가 제공되지 않는 현실이 문제다. 『스티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분노를 억누르지 말고 안전하게 표현하며, 저주 대신 치유와 연대를 통해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저주의 스티커가 행복의 스티커가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