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항에 워낙 많은 배들이 조업을 했기에 수협 소속의 제빙 공장의 얼음만으로는 부족했다.
어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삼삼제빙과 대원제빙에서의 얼음을 쓸 수밖에 없었다.
얼음으로 신선도를 유지하는 고기는 비싼 값으로 팔 수 있었다.
묵호의 토박이 소비자들은 양미리, 가자미, 임연수어, 오징어, 명태 등 건조가 가능한 것 외의 생선은 꼭 오후 늦게 어판장이나 묵호중앙시장에 가서 떨이로 샀다.
상인들이나 선주들은 밤을 넘기면 고기가 상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전보다 반값에 팔아넘겼다.
젊은 선주들은 잡어를 많이 잡아봐야 힘만들고 돈을 벌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오징어, 명태, 노가리를 잡기 위해 배와 어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오징어는 크고 작고를 떠나 덕장에서 건조만 하면 전량을 수출했기 때문에 늘 값이 좋았다.
자연스럽게 집어등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었다.
카바이트와 석유를 이용한 호롱불에서 획기적인 백열등으로 전환해서 300키로 백열전구를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백열등은 전기를 엄청 먹고 수시로 발열이 되어 터졌다.
또, 빗방울이라도 한 방 맞으면 그대로 터져 어민들은 오징어 낚는 것 보다 날씨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그후, 할로겐, 메탈 할 라이드라는 집어등이 개발되어 한참이나 유용하게 쓰였다.
그러나 이 전구 역시 열이 심해 선원들이 화상을 입기 일쑤였다.
2007년부터 LED 발광 전구가 개발 되었지만 값이 너무 비싸, 정부에서 보조해 주어도 아직 보편화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해바다를 찬는 관광객들은 밤바다의 오징어배 불빛의 신비로움에 넋을 잃는다.
일정한 간격으로 밤새도록 환하게 비추고 있으니 장관이어서 이해가 간다.
그 배들이 ‘고데구리’ 인데 연안의 새끼 고기들 까지 다잡아서 씨를 말렸다.
게다가 겨울철 노가리 명태마저 잡히지 않게 되자, 연근해와 대화퇴에서 고기를 잡아
큰돈을 만지던 몇 몇 선주들은 큰 배를 사서 더 먼바다로 나가기 시작했다.
멀리 남미 칠레까지 나갔으나 투자한 만큼 고기가 잡히지 않자 망하고 말았다.
어민 스스로 3중 저인망을 금지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
그들은 1998년 경부터는 무전기, 방향탐지기, 냉동기, 자동항법장치, 어군탐지기,등을 장착한 배를 건조하기 시작했다.
경비가 엄청 들었지만 같은 급의 어선보다 선원을 반만 고용해도 어획량을 최고로 올릴수 있었다.
70년대 중반 부터는 ‘오우일’씨가 주축이된 젊은 선주들이 어선 현대화를 시작했다.
현대화된 배들은 기존의 배들과 경쟁이 되지 않았다.
출항을 했다하면 배에 고기를 실을 수 없을 정도로 만선이었다.
다른 배들도 할 수 없이 스스로 현대화 시설을 갖출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거의 모든 배들이 평준화 되었지만 선진국 어업 정책처럼 감척을 해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묵호항 소속 젊은 어업인들은 이제 60 살을 다 넘겼다.
그 동안 어선과 어구의 현대화로 소득은 늘었으나, 연근해의 황폐화는 여전해서 늘 근심 속에 있다.
더구나 부정 어획이 늘어나고 바다 속에는 버려진 그물이 그득하고, 한류 난류의 난조로 어군이 제 각각이라 전혀 예측을 못하고 있다.
이것은 묵호항 소속의 선주협회, 선원협회, 수협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이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과학어업을 도입해 지원해야 할 때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