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4월 28일(목)■
(창세기 22장)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묵상/창 22:1-12)
◆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
성경에서는 '시험'이란 두 가지 종류다.
하나는 마귀가 행하는 것으로서 '유혹(temptation)'이란 의미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으로서 문자 그대로 '시험(test)'이다.
성도의 입장에서는 모두 극복해야 할 '시험'이지만 목적이 다르다.
마귀는 타락시키려는 목적이지만, 하나님은 더 깊은 신앙으로 나아가게 하시려는 목적이다.
가령 학생에게 술과 담배를 권하는 것은 타락시키려는 목적이지만, 중간고사를 치르는 것은 실력을 더욱 단단히 하고 자기 위치를 파악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야고보서(약 1:13)와 주기도문(마 6:13)에서 언급한 시험이란, 바로 마귀가 주는 시험, 곧 유혹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신앙이 제대로 섰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미녀를 가지고 유혹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마귀가 하는 일이다. 우리는 여기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아브라함에게 하신 시험은 하나님께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교훈하시려는 귀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100세에 얻은 아들, 그것도 오직 한 명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이 아들 외에 없다. 이스마엘은 내보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다.
번제란 희생물을 칼로 각 지체를 자르고, 배를 갈라서 내장을 꺼내 제단 위에 올려 모두 불태우는 것이다(레 1:6-9). 아브라함이 번제가 무엇인지 모를리가 없다.
하나님의 이 요구 앞에서 충분히 주저할 만하건만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했다. 이 부분은 자식을 가진 아비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나 같으면, 차라리 제가 번제물이 되겠다거나 차라리 제 재산을 다 기부하겠습니다 따위로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했을 법 한데 아브라함은 망설임 없이 그대로 행했다.
도대체 무슨 마음이었을까?
히브리 기자는 이것의 비밀을 밝힌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9)
즉 아브라함은 놀라운 믿음의 논리를 가졌다.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언약을 세우고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셨는데(창 17:19, 21:12), 인제 와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심은 분명히 모순이다. 하나님은 모순되지 않으시다. 그렇다면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것은 인간의 논리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데, 그것은 자기가 이삭을 죽여도 반드시 다시 살리시는 것, 즉 부활시키시는 방법뿐이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부활의 믿음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함이 없었다.
◆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떠나서 제 삼일에 모리아 산에 도착했다. 모리아 산은 예루살렘 정상에 위치한다. 예루살렘은 거대한 산으로서 봉우리가 크게 세 개가 있는데, 모리아 산, 감람 산, 시온 산으로 나뉜다. 후에 솔로몬은 모리아 산에 성전을 지었다. 오늘날에는 그 자리에 이슬람 성전이 세워져 있다.
아브라함이 있었던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모리아 산까지 거리는 도보로 90km 정도 된다(아래 구글지도 참조). 제 삼일에야 여기에 도착했다. 시간이 짧으면 순간적인 감정으로 해치울 수도 있겠지만, 무려 사흘이나 되는 시간은 오만 가지 생각을 다 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흔들림 없이 목적지까지 갔고, 그리고 주저함 없이 칼을 휘둘렀다. 그 믿음이 변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여행하던 이 삼일은 아들이 죽어버린 시간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침 새벽에 잡혀서 매 맞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머물러 있었던 시간과 비슷하다.
◆ 이삭을 제단에 바치다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단에 바칠 때 아들 이삭의 나이가 어느 정도 되었을까?
6절에 번제 나무를 아들에게 지웠다고 하는데, 번제에 쓸 나무의 무게는 절대 작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짊어질 정도라면 적어도 십 대 후반은 족히 되었을 법하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과 같은 나이인 삼십대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힘을 가진 아들이 백세 넘은 힘없는 아비가 자기를 결박하고 번제단에 올려놓으려고 하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을 법 한데 성경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이것을 보면 이삭은 아버지에게 철저하게 순종했던 것 같고, 이런 모습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보는 것 같다.
◆ 하나님께서 칭찬하심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오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하신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경외하는 줄 모르셨던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진작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롭다고 여기셨다(창 15:6). 자식이 없는 그에게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될 것이라고 하실 때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었다. 그것은 결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믿음이었다. 그렇게 아무 행동이 없어도 인간의 중심을 다 파악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오늘 이삭을 바친 사건은 후대에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믿음을 알리고자 하심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잘 알고 계시지만, 후대에 사는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어떤 믿음인지 알 길이 없다.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여주셨다.
"이제야 아노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진정한 믿음이란 이렇게 행위로 드러날 수밖에 없음을 깨우치시는 교훈이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도 자신이 믿음이 좋은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무수하다.
약간의 성경 지식과 약간의 기도하는 시간과 봉사활동으로 자신은 꽤 잘 믿는 사람인 줄 착각한다. 하나님은 아시겠지만, 문제는 정작 본인은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온통 세상 염려로 가득차 있다. 종종 하나님의 시험은 이러한 나의 믿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하신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약 2:19-22)
주님,
여전히 믿음 없이 살고 있음을 회개합니다.
주님을 더욱 깊이 알게 해주시고, 주님을 더욱 깊이 믿게 해주셔서
아브라함처럼 믿음과 행위가 함께 하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