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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면 쏜다
“내 프러포즈 받아 줄 거지? 오케이지? 예스오케이 말이야!”
다그치듯 접근하는 도치씨의 입술을 피하며 우아영은 할 말을 잃고 멍했다.
일주일 후 마누라가 죽는다는 것도 괴상망측했지만 그보다 더 웃기는 것은 시도 때도 없이 결혼하자며 대시하는 도치씨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결혼이 무슨 바겐세일도 아니고 이벤트도 아닌데 생일잔치하는 것처럼 쉽게 생각하는 도치씨를 어떻게 따돌려야 할지 암담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평소에는 전혀 느끼지 못한, 도치씨의 바짝 마른 입안에서 풍기는 구취는 숙취냄새보다 지독했다. 오장육부가 뒤집혔다. 울컥 창자가 목구멍으로 딸려 올라 왔지만 우아영은 간신히 위장을 꾹 누르고 도치씨의 입을 피하느라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의 예고.
한 치 예측도 못했던 기습 프러포즈.
최루탄이나 메탄가스보다 더 지독한 구취.
이 세 가지가 혼합되어 우아영은 고문보다 참을 수 없는 정신적 혼란에 빠졌다. 모두가 우아영을 혼란하게 했지만 프러포즈의 경우엔 도치씨가 장난이라도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100송이의 장미는 아닐지라도 환경설정을 제대로 해서 프러포즈해야지 거지발싸개 같이 이게 뭐냐 싶었다.
망령들었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직 100세시대의 절반도 못 채운 애송이가 벌써 치매들었을 리는 없고 도대체 뭐가 뭔지 정리가 안됐다.
야바위나 사기꾼이나 마술사가 어떻게 멀쩡한 사람을 후리느냐고 묻는다면 단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사람을 멍하게 하는 것이 비결이다. 사랑이 ‘멍’ 맞으면 ‘청’ 해진다. 그러니까 멍청이라는 말이다, 한자어에 멍청이를 이백오二百五라 그런다. 二가 멍이고 청이 百이며 이가 五다. 다시한번 더 풀면 두 개를 백번 물어도 五라고 대답한다는 뜻이다. 아주 쉽게 말해서 천치라는 말이다.
천치가 되면 신경세포와 전신세포 마비효과에 빠진다. 아파도 웃고 슬퍼도 웃으며 행복해도 무표정이고 짠해도 무표정이다.
우아영은 손가락 마디하나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전신이 경직되어 통나무같이 뻣뻣했고, 도치씨의 횡포를 수비해야한다고 의식하면서도 신경세포는 따로 놀았다. 순간천치상태에 빠진 것이다.
허지만 이보다 더 요상한 의식이 우아영을 더 깊은 천치상태로 빠지게 했다. 사고마비현상 또는 교란현상이었다. 도치씨가 바지의 지퍼를 내릴 때. 긴장하고 야릇한 흥분에 발동됐던 자신의 기대감을 무참하게 짓이겼던. 그 순간의 무안을 생각하면 최소한 따귀라도 한방 올라가야 하지만, 어떻게 된 셈인지 우아영의 속마음엔 야릇한 호기심과 흥분이 다시 꿈틀대고 있었다.
그래서 우아영은 전혀 도치씨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었던 것이다.
도치씨는 자신의 프러포즈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우아영을 아전인수로 해석했다. 자신의 프러포즈를 절반이상 받아들인 것이라고 착각했다.
누군가 착각은 프리자유라고 했다.
프리해진 도치씨는 뻣뻣하게 경직된 우아영을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남자가 여자를 기습하면 본능적으로 반사대응하기 마련이지만 우아영의 반응은 전혀 직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치씨는 자신의 착각에 스스로 동화되었다.
“그렇군. 아영이가 이미 나를 사랑하고 있었네? 아영이가 지랄 떨까봐 공연히 내가 처음부터 겁먹었던 거 아냐? 흐흐흐.”
도치씨는 이제 우아영을 손에 넣은 거나 다름없다고 판정했다. 여유가 생겼다. 도치씨는 기왕이면 좀 폼 나게 우아영을 나긋나긋하게 요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멋지게. 사랑은 아름답게. 사랑은 부드럽고 강렬하게. 내 사랑 아영을 위해서.”
가능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처럼 로맨틱하고 후레시fresh하게 포옹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우아영을 감동시킨다고 생각했다.
평소, 맛보다 분위기에 약한 것이 여자라고 믿는 도치씨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당연했다. 혜림이도 그랬고 또 기억할 수 없는 그 여자들도 다 그랬다. 포장마차에서 소주한잔을 마시더라도 섹소폰이나 피아노 음악을 백뮤직으로 까는 곳을 찾아 헤매는 도치씨다. 그래서 끌어안고 키스하더라도 분위기를 영화의 한 장면에 맞추면 우아영이 완전 퍼질 것이라고 믿었다.
여유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자 도치씨의 행동은 꺼릴 것 이 없었다.
도치씨는 끌어안았던 우아영을 일단 놓았다. 손을 떼면서 조심스럽게 우아영의 반응을 체크했지만 우아영은 마취가 덜 풀린 수술환자처럼 약간 비틀거린 후 마비상태를 유지했다.
도치씨는 두 팔을 떼고 손가락을 피아노 스트레칭 한 후, 두 손목을 360도 돌려 근육을 풀었다. 머리통을 두 번 좌우로 흔들어 본 후 아주 부드럽게 우아영의 허리를 가볍게 끌어 당겼다. 저항 없이 안겨오는 우아영을 자신의 배에 바짝 붙이고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우아영이 자연스럽게 뒤로 젖혀졌다. 아르헨티나 탱고나 브라질 살사댄스 자세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포즈가 마음에 들었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쓰윽 웃었다.
도치씨는 2단계 동작으로 돌입했다.
저질탱고댄서나 불법살사댄서가 흔히 말하는 믹싱동작이다.
천천히 우아영의 입술로 접근하며 속삭이듯 말했다.
“아영아. 이 오빠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냐? 잠들기 전에 하루도 널 상상 안 해 본적 없었단다. 너는 내 나이트밤 상상 속에서 한 폭의 명화였지. 너의 구석구석은 내 영감의 표적이었고 너의 오밀조밀함은 내 환희의 필드였어. 오늘 이 영광의 기쁨과 이 순간의 행복을 신의 이름으로 바친다. 아영아 나의 아영아. 내 가슴이 너무 벅차 터지기 전에 한마디만 들려다오.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우리 결혼해요 라고 말이다. 으응?”
허지만 우아영은 도치씨의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아니 들리지 않았다.
조금 전.
도치씨가 바지지퍼 내릴 때처럼 언제 무안 주며 돌변할지 알 수 없었고, 도치씨의 모든 행동이 너무 익숙해서 연기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경솔했던 행동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만 했다. 만약 도치씨의 행동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거칠어지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지금 절반만 상납하고 있는 마음도 싸그리 거둬들이려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도치씨가 입술을 포개 왔을 때 우아영은 입술을 깨물며 맹세했다.
“흥! 한번 당하지 두 번 당할까봐?”
도치씨는 입술을 깨문 우아영이 흐뭇했다. 그럴 리는 없을 것이라고 지례 짐작했지만, 아직 키스도 한번 못해 본 완전 신품이라 생각해서 기분이 겹치게 째졌다.
우아영은 결코 서둘지 않는 도치씨가 만만했다. 허지만 경계의 눈초리는 느슨하게 늦추지 않았다. 마치 밤늦은 공원이나 골목에서 맞닥뜨린 강도의 번뜩이는 칼날을 본 순간처럼, 아찔해지는 충격에서 정신을 차리면 산다는 위기의식과 흡사했다.
도치씨는 자신의 행동이 오묘해져도 별 거부반응 없는 우아영의 침묵은 OK사인이라 여겼다.
OK사인 받은 이상 이제부터 천방자축 종횡무진 누비고 훑어도 흉 될 것 없고, 험 될 것 없다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도치씨의 남은 한쪽 손바닥이 우아영의 돌출부위란 돌출부위는 꼼꼼하게 다 훑기 시작했다. 좌우상하로 두 손과 머리가 통째로 오르내리며 혼자서 바빴다. 바쁜 와중에도 할 말은 빠뜨리지 않았다.
“사랑해! 사망할 때까지 우리 인정사정없이 사랑하자! 이제부터 아영인 내 인생의 골대며 내 삶의 키퍼야.”
“아으, 아으.”
우아영이 처음으로 몸을 약간 비틀며 목을 움츠렸다.
도치씨는 나무인형처럼 뻣뻣하던 우아영이 몸을 비틀자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도치씨는 의식적으로 우아영의 엉덩이사이에 가운데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그 부분이 여자의 기초성감이란 것을 잘 아는 도치씨였다.
그 순간 천둥소리 보다 더 크게 우아영이 비명을 질렀다.
가능한 참고 도치씨의 발작을 지켜보다 때가 되면 한방에 무참하게 보복하려고 했지만, 엉덩이 골 사이로 파고 든 도치씨의 손가락은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간지러움이었던 것이다.
“으악! 으아악! 으으아악!”
“저건 아영언니 비명이죠?”
마지막 갯바위를 타고 오르던 오진숙이 눈이 휘둥그레져 이감독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감독이 황급히 말했다.
“맞네. 도치 저놈이 기어이 미스우를 절단 냈구나! 우리가 딱! 한발 늦었나보다.”
오진숙이 서둘렀다.
“감독님 좀 부지런히 움직여요. 왜 그렇게 동작이 둔해요?”
“내가 둔한 게 아니고 바위가 미끄럽잖여?”
“그러게 평소 운동 좀 하세요.”
이감독은 오진숙이 내민 손을 잡고 간신히 갯바위에 올라서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미스오! 저게 뭐냐?”
“도치형부하고 아영이가 붙었네요. 어머 어머 어떡해?”
이감독이 랜턴을 도치씨와 우아영을 향해 사격자세로 직통 비췄다. 비추며 목청껏 소리 질렀다.
“꼼짝 마!”
오진숙도 소리쳤다.
“움직이면 쏜다!”
첫댓글 좋을려다 버렸네요~
결국 오진숙과 이감독때문에 구사일생 살아남게 될런지.
도치의 헛된 꿈이 아닐런지 우아영의 마음은 굳게 닫혀 있네요..
ㅎ
이제 소설의 막판으로 들어 가네요
끝나기 전에 잘되어야 할텐데....시원한 밤되세요
ㅜㅜ ㅋ 눈치없게 ㅎㅎ
우리 주위에 꼭 그런 사람있습니다...ㅋㅋㅋ
소설내용에 집중 잘 되네요 우아영과 도치씨 애정행각이 방해받았네요
좋다말고 죽을것 같다 좋아지는 게 인생이고 사랑이겠지요...ㅋ
우아영이 많이 긴장했어요 아직 순수한 처녀라서 그런가요??ㅎ 감정변화도 심하고 ㅋㅋㅋㅋㅋ
ㅋㅋㅋㅋ
그러게요. 처녀들 갈팡질팡 하는 마음은 다 똑 같은가 봅니다.
미워하면서 좋아하고...싫다면서 은근히 호기심가지는거 그게 사랑아닐까요?
고운 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