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6
#요한계시록 #Revelation 13:8-10
성경을 자의적이고 아전인수격으로 왜곡하는 목사, 목회보다는 교회가 제공하는 혜택에만 관심있는 목사, 교회를 이용해서 부와 명예와 권력을 취하는 목사, 교회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를 솔선수범하여 책임지지 않고 뒤에 숨어 책임전가 하는 목사, 부교역자를 함부로 대하고 쫓아내는 목사, 정치이념에 매몰되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국가 지도자를 우상숭배하거나 저주와 비방과 욕설을 일삼는 목사들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이다. 아무렇지 않게 점집을 수시로 드나드는 교인, 하나님께 까불면 죽인다는 목사, 주일마다 장사하거나 회사가거나 학원 가거나 놀러 다니는 교인, 윗사람을 공경하지 않고 아랫사람을 돌보지 않으며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교인,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불륜이나 동성애 등의 간음을 저지르는 교인, 뒤에서 험담하고 이간질하는 교인, 남에게 전혀 베풀지 않는 교인들은 창세 전부터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하고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이다.
#20200606
#출애굽기 #Exodus 32:21-25
모세의 추궁과 책망에 대해 아론은 구차한 거짓말로 변명한다. 이런 아론의 모습을 우리는 너무도 한심하게 생각하며 쉽게 비난하곤 하지만 사실 오늘날 한국 교회에는 이런 아론만큼의 염치조차도 없는 목사들이 적지 않다. 적어도 아론은 모세 앞에서 자기가 잘못한 것은 알았고 그래서 자기보다 세살이나 어린 동생인 모세에게 존대하면서 변명하기라도 했다. 그러나 어떤 목사는 자기가 책임져야 할 교회의 문제를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뻔뻔하게 회피하고 외먼하며 책임전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문제가 부각될 때는 자기가 전면에 나서 해결하지 않고 부목사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며 비겁하게 뒤로 숨기도 하고 책임지고 자숙한다는 빌미로 장기간 교회를 비워 바람이나 쐬러 다니며 혹시나 담임목사를 물러날 때를 대비해서 수개월치 사례비를 가불하기도 한다. 문제가 잠잠해졌다 싶으면 돌아와서 그동안 고생한 부목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보다는 자기편이냐 아니냐 따져서 내쫓아버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섬기던 교회를 언제든지 저버리기 위해서 다른 교회를 알아보고 그 교회와 내통하다가 아무런 협의도 없이 전격적으로 제멋대로 사임하는 파럼치함을 보이기도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자기가 그렇게 부적절하게 대응해 오고 자기 책임으로 그만둔 것이면서도 다른 곳에서는 도리어 온갖 교회 욕을 해버린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전적인 은혜로 아론을 죽이지 않으시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를 심각하게 훼손한 목사는 용서받지 못한다.
#20190606
#매일성경 #히브리서 4:14-5:10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로서 맡으신 세 직분은 선지자, 제사장, 왕이다. 그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제사장 중 제사장인 대제사장이시며, 대제사장 중 대제사장인 큰 대제사장이시다.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의 인성을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드리심으로써 대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하셨다. 또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끊임없이 성도들의 회개와 기도를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 드리심으로써 대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하신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심판주로 오신 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 때에는 성도들의 찬양을 올려드리심으로써 영원히 대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하실 것이다. 그분의 대제사장 직분은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이므로, 그 누구도 이를 대체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는 각자가 그리스도 앞에서 제사장이 되어 각자의 삶을 직접 그리스도께 올려 드리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동병상련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비슷한 어려움을 당했어도 온전히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고 도리어 상대방의 고통을 폄훼하기 일쑤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범죄한 인간의 모든 비참한 군상을 직접 체험하셨다. 그분은 자비로우시므로 아무리 우리의 고난이 그분의 것에 미치지 못하고 우리가 작은 고통에도 엄살을 피우더라도 이를 무시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을 묵상할수록 우리를 향한 그분의 긍휼하심을 깨닫게 되어 고난을 인내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감사하게도 다른 이를 거칠 필요 없이 우리의 형편을 그대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고난 중에 우리에게 주시는 긍휼과 은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제사장과 대제사장을 세우시고, 대제사장을 통해서 일 년에 단 한 번 속죄일에 백성들의 죄를 대속할 수 있도록 하셨다. 아무리 대제사장이라 하더라도 흠결 있는 죄인 중 한 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대제사장은 속죄소에 들어가기 전에 자기를 위한 온갖 정결예식을 먼저 치러야만 했다. 허리춤에는 방울과 긴 밧줄을 매었는데, 그러고서도 속죄소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부정함이 발견되었을 때는 바로 죽음을 당하였다. 속죄소 밖에 있는 제사장들은 대제사장의 허리춤에 매단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묶은 밧줄을 끌어당겨 대제사장의 시신을 끌어내야만 했다. 그런 대제사장 조차도 하나님께서 아론과 같이 지정하신 자들이 아니면 안되었다. 하물며 완전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것이 확실하지 않겠는가.
멜기세덱은 그 시작과 끝을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그는 하나님의 제사장이었고 아브라함에게서 예물을 받고 그를 축복하였기 때문에 아브라함보다 더 크다는 것, 따라서 아브라함의 자손인 아론과 그 반차를 따르는 모든 대제사장들보다 큰 제사장이라는 것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이 불완전한 아론의 반차를 따른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이 아론의 그것과는 격이 다름을 알려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불완전한 인간이셨다. 따라서 이 땅에 계실 때는 30여 년 간의 시간의 흐름을 따라 조금씩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실 수 밖에 없으셨다. 그분은 조금씩 고난을 당하셨고 조금씩 기도하셨으며 조금씩 순종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그 모든 일을 완성하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순종의 삶은 그분을 믿는 모든 신자들의 거룩한 삶의 표본이 되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거룩한 삶은 그분의 것에 비해 부족하고 미약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원하시며 그렇게 되도록 인도하신다.
#과거묵상 #한국교회
하나님께서 자정능력을 잃은 교회를 '회복' 시키시는데는 대체로 다음의 두가지 방법이 사용된다.
하나는 그 교회를 '철저히 파괴'하신 후에 회복시키시는 것이다. 이는 성경의 여러 예시들에 나와 있다. 사사시대의 교회들이 그랬고, 시드기야 때의 교회들이 그랬다. 이 교회를 파괴하시는데는 교회 내적인 요소가 아니라 반드시 교회와 무관한 외적인 요소가 개입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외적인 요소를 사용하셔서 그 교회의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무너뜨리신 후에야 '회복'을 시키신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자정능력을 잃은 교회는 '회복'이란 매우 점잖은 표현보다는 하나님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살리심'을 입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겠다.
다른 하나는 그 자정능력을 잃은 교회 내에서 무릎을 꿇지 않은 7천인을 끌어내셔서 새로운 교회를 이루시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종교개혁 시대에 입증된 방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자정능력을 잃은 교회는 '회복'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손에 '버림'을 받고 새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겠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미 자정능력을 잃은 지 오래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교회에 남은 것은 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님의 손에 '죽임'을 당하든지, 아니면 '버림'을 당하든지. 그래도 꿋꿋하게 주님의 뜻을 따라 목회하는 의로운 목회자들이 소수나마 있으니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의로운 목회자들에게는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견인할 수 있도록 하시거나, 그들을 따로 불러내어 새로운 교회를 이루실 것이다. 이들로 인해 자정능력을 잃은 한국교회가 죽임 당하지 않고, 버림 당하지 않고 회복할 것이라는 헛된 망상은 버리시기 바란다.
기대된다. 과연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어떻게 죽이실지, 아니면 어떻게 버리실지. 그리고 죽임 당한 교회를 어떻게 살리실지, 버림받은 교회에서 어떻게 새로운 교회를 만드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