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 하루 살기가 쉽지 않다. 아니 너무 어렵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들리는 이야기가운데 긍정적인 것도 희망적인 것도 별로 없다. 그냥 전세계가 미움과 질시, 혼돈속에 공멸을 향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형국이다. 안그래도 힘들텐데 기온은 곤두박질 치고 며칠전 봄날씨가 갑자기 시베리아 혹한속으로 깊게 빠져 들어가고 있다. 마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설국열차처럼 말이다. 연말이지만 거리나 동네나 그런 기분을 느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하루 하루 그냥 시간을 꺼트리는 그야말로 소일(消日)하는 모습이 하루하루 지속되고 있다. 이러면 안되는데 뭔가에서 용기를 얻고 희망도 찾아야할텐데 하면서 무심히 누른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참으로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출연자들의 잡담으로 그치는 프로가 대부분인 현재 각종 방송사 프로그램들에게 그래도 아주 장수하고 있는 작품인 '세상에 이런 일'이었다. 특별한 인연을 가진 두 남자의 이야기였다. 이인용 자전거 전문용어로는 텐덤 사이클이라고 한단다. 운동장이나 자전거 놀이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이인용 자전거이다. 젊은 연인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해서 커플 사이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연인도 친구도 아닌 나이 20살이나 차이나는 남자 두 사람이었다. 소방관으로 일을 하는 이종욱(방송 당시 55세)씨와 조승현(방송당시 75세)씨 등 두명이다.
그동안 사이클과 관련한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접했기에 무엇이 세상에 이런 일인가 봤더니 바로 조승현 할아버지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시각장애인들이 정상인처럼 열심히 인생을 사는 모습도 많이 봐오고 감동을 받았지만 자전거는 달랐다. 앞을 볼 수 없으면 자전거는 정말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승현할아버지는 이인용 자전거를 희망했고 그 대단한 파트너이자 리더역할을 소방관인 이종욱씨가 맡은 것이다.
두명의 자전거 여행자들은 벌써 15년째 텐덤 사이클을 이용해 전국을 누비고 있다. 이인용 자전거는 보기에 쉬울 것 같다. 혼자 타는 것보다 둘이 힘을 합치면 더 속력도 날 것같고 힘이 덜 들 것 같다는 착각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두 사람의 호흡이 정말 잘 맞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대충 탈 경우 그냥 가는 것이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연인들이니 편하게 타서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전문가 대열에 든 선수급들의 의견은 혼자 타는 것보다 둘이 타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한다. 발을 구르고 멈추고 하는 동작이 일치하지 않으면 자전거 속도는 물론 방향 조절도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말이다. 벌써 15년동안 두 사람은 친부자지간 또는 큰형과 막내의 자세로 힘든 것을 이겨내고 이제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그런데 어찌 힘들지 않았겠는가. 앞에서 리더하는 파일럿인 소방관 이종욱씨는 앞에서 방향과 상황판단 뿐아니라 앞을 볼 수 없는 조승현 할아버지를 위해 주변 환경을 생중계하는 열성을 보인다. 봄에는 주변에 핀 꽃들의 모습과 이름을, 여름에는 들판에 익어가는 벼들과 과일들 모습들을, 가을에는 상큼한 구름의 모습과 점점 단풍을 향해 가는 주변 상황을 아나운서가 경기를 생중계하듯 할아버지에게 전달해 준다. 할아버지는 앞에서 리더하는 이종욱씨에게 짐이 되지 않기위해 뒤에서 얼마나 노력을 하겠는가.
현직 소방관인 이종욱씨와 현재 시각장애인 협회에서 근무하는 조승현 할아버지는 주로 주말에 만나 라이딩을 즐긴다. 하지만 라이딩이 없는 평일에도 자전거를 옆에 두고 산다. 이종욱씨는 시간이 나면 주변 산길을 달리며 테크닉과 순발력을 연마하고 조승현 할아버지는 근무처에 아예 실내 자전거시설을 해놓고 시간이 허용하는 한 자전거 연습에 열중한다. 조 할아버지의 실내 자전거는 이종욱 소방관이 만들어 준 것이다.
이들 두사람의 운명적 만남에 대해 주변에서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부자지간도 그런 부자지간이 없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친부모에게 누가 그렇게 열성을 쏟겠는가. 이종욱씨는 몇년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평소 살갑게 모시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조승현 할아버지에게 더욱 잘한다고 말한다. 그런 정성을 조승현 할아버지는 멋진 사이클 라이딩으로 보답하려 한다. 실제로 두사람이 다녔던 자전거 여행 길이도 수천 아니 만 킬로미터가 넘을 듯하다.
답답하고 힘든 세상속에 조승현 할아버지와 이종욱씨 이 두사람의 이야기는 짙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갑자기 힘이 솟는 것 같다. 시각장애인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열심히 앞을 달리는 조승현 할아버지와 조 할아버지를 리더하며 비록 험한 인생사이지만 거침없이 나아가는 이종욱 소방관앞에 더욱 힘찬 내일이 있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무기력해 있던 나도 정신을 차리고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 자신있고 희망차게 해 나가야겠다.
2023년 12월 1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