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통계에 의하면 현재 세계 최고 부자는 Microsoft 사의 회장인 빌 게이츠라고 합니다. 지난 1998년에 빌 게이츠가 일 년 동안 벌어들인 순수익 460억 달러는 2억 인구 미국의 하위 40%, 즉 8천만 명이 벌어들인 순수익보다도 더 크다고 합니다. 몇 년 전 해외토픽을 보니 빌 게이츠의 부인이 자신이 졸업한 대학의 기부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자그마한 행사를 열었는데 방이 100개가 넘는 호숫가에 위치한 빌 게이츠의 저택에 저녁식사 한 끼 초대받아 빌 게이츠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 하는데 그 티켓 값이 만 불이었답니다. 돈 있는 분은 한 번 가보시길 바랍니다. 한 끼 식사에 만 불을, 얼마나 만나기 어려운 사람입니까? 그러나 작년에는 주가 폭락이 얼마나 심했는지 엄청난 자산 손실을 입었다고 합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경영의 신’ 이라고 불렀던 General Electric의 전 회장이었던 Jack Welch는 얼마 전에 두 번째로 이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혼을 제기한 아내의 이유를 들어보니까 ‘그 사람은 집에서도 회사에서와 같이 회장인 양 군림하고 가족들을 얽매기 때문에 도저히 그렇게는 살 수 없다.’ 해서 이혼소송을 냈고 결국은 그들은 이혼을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만큼 돈을 벌고 싶으십니까? 얼마만큼 벌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이제까지 수고하고 땀 흘려서 돈을 벌려고 애를 써서 이만큼 사업을 이루었으면, 이제 그만 만족하십시오. 아침 거르지 않고 오셨다면 만족하시고 감사하십시오. 신앙은 너무나 짧은 우리의 삶 속에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고 놓칠 수도 없는 가장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기업의 여덟 가지 법칙>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Built to last> 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100년 이상 지속되어 온 기업이 어떻게 그렇게 이 격변하는 세계 변화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대를 이어올 수 있었고, 성공할 수 있었는가를 깊이 연구한 책입니다. 그 중에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습니다. ‘어느 한 사람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기업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그가 물러가면 곧 그와 더불어 그 기업은 무너져 내린다. 오히려 100년 역사 속에 살아남으면서 성공할 수 있었던 기업은 리더와 더불어 기업 공동체 전원이 그 기업의 목적과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함께 공감하고 거기에 참여할 때, 그 기업은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큰 뜻을 이루게 됐다.’ 라고 하는 것이죠. 정말 우리가 붙들어야 할 가치, 신앙의 비밀은 무엇인가? 제가 예전 고향 교회를 모처럼 가 보았더니 제가 어릴 때 저희를 지도했던 목사님은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고 심지어는 그 교회를 지키는 장로님들 중에도 태반이 돌아가셨고 또 은퇴하셨고 새로운 분들이 장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 많은 분들이 이렇게 저렇게 교회를 떠나 다른 데로 이사 갔거나 다른 교회로 갔더라구요. 또 요즘 얼마나 개발이 많이 됐는지 그 교회가 예전에는 이쪽이 정면이었는데 도로가 나고 하면서 완전히 다 뒤집어놔 가지고 이번에는 정면이 저 반대쪽으로 나고 더 커졌습니다. 어릴 때 뛰어 놀던 나무라든지 이런 건 다 없어지고 그저 딱 하나 제 머릿속에 ‘여기가 내 모 교회다.’ 라는 기억 하나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오고 또 떠나고 합니다만 그 교회만은 홀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올바른 교회를 하나씩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중의 첫 번째, 교회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첫 만남, 그 첫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는 그 교회가 올바른 교회요, 그 신앙이 아름다운 신앙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교회를 나오시게 되었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이 여러분을 찾아 주셨습니까? 그거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오늘 교회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예수님이 여러분을 처음 만나주셨던 그 은혜를 지속하여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의 삶은 고난의 연속입니다만, 교회와 신앙은 이 고난을 능히 이기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그것을 우리 삶에 공급해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세 번째, 경건한 예배와 말씀을 듣고 순종함을 따라서 날마다 생명의 양식, 만나를 얻는 것입니다. 특별히 몸이 떨리는 어떤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이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것 같지만 평범한 그 하루 세끼 식사를 통해서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듯이 한 시간 한 시간 드리는 이 예배에 우리의 마음을 다하므로 우리가 기도하고 기다렸던 그 말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원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합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만큼 이루었다.’ 라며 거기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정한 행복은 오늘 내 손에 쥐어진 것을 가지고 행복을 말하려 한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내일 나를 떠날 수도 있기 때문에. 천만금을 얻은 부자라 하더라도 죽으면서 그것을 싸 가지고 가지는 못합니다. 지금 우리는 한국으로부터 뉴스를 듣고 있습니다. 모 재벌기업의 부정이 송두리째 드러나서 재벌이 해체될 그런 위기에 놓여 있고 대를 이어 몇 대에 걸쳐서 경영하던 경영권을 빼앗길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재산도 잃고 명예도 잃고 그 가업을 다 잃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재물입니다. 결코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행복을 말하지 마십시오. 진정한 행복은 내 삶의 마지막까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내 삶의 종착점인 저 죽음까지 목표를 분명히 하고 죽음의 그림을 확실히 한 다음에 마라톤을 하듯이 목표를 분명히 하고 뛰어가는 그 삶 속에 행복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방문하고 6.15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김정일은 남한을 방문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만 결국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런 우스개가 나왔습니다. ‘김정일이 왜 남한에 올 수가 없었느냐?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남한에는 왕대포가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폭탄주가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총알택시가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핵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죽을까봐 무서워서. 어느 나라에 정말 용한 점쟁이가 있었답니다. 얼마나 정확하게 사람들의 운수를 알아 맞추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자 왕이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민심을 빼앗기겠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그를 불러 들였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처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백성을 현혹한다.’ 해서 죽이기로 했습니다. 그를 불러내었습니다. ‘네가 요망한 점으로 백성을 미혹한다니, 너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너는 과연 네 인생을 어떻게 점치고 있느냐? 너는 이제 곧 죽을 터인데 네 운수나 한 번 점쳐보아라.’ 하며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점쟁이가 잠시 있다가 조용히 입을 떼고 말합니다. ‘왕이여, 제가 점을 쳐보니 왕이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제가 죽는다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왕이 고민하다가 그를 풀어줬다고 합니다. 여러분,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그림을 명확하게 그리고 분명히 할 때 비로소 오늘, 살아 숨쉬는 오늘이 의미를 되찾게 됩니다. 목적을 분명히 할 때 우리는 오늘 한낱 순간의 쾌락을 좇는 유혹으로부터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예전 있던 교회에서 장례식을 많이 치렀습니다. ‘어느 구역 어느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라고 하는 연락이 언제라도 제 핸드폰을 통해서 오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거의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셨을까?’ 고인에 대해서는 우리가 험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떻게 살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이미 그의 죽음으로 완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장례를 집례하면서도 그 분이 비록 이름 없는 할머니이실지라도 그 가족을 통해 그 분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볼 때 ‘아, 그렇지. 성경에 나왔던 많은 인물들, 또는 이름 없는 여인들같이 정말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구나.’ 그런 분의 장례를 집례할 때의 마음가짐은 또 다릅니다. 비록 살아서 얼굴을 대하지 못했을지라도 그 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사회적으로 회장이요, 교수라 할지라도 그가 신앙생활을 온전히 하지 못했다면 그 장례를 집례하는 동안 제 마음에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는 어떤 임종을 기억합니다. 그 분은 50대 중반의 기업 회장이었습니다. 그 분은 저 경상도 어느 지역 유지의 아들이었습니다. 국회의원의 아들로 태어나 공부도 많이 했고 일찍 해외로 진출해서 해외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아주 똑똑한 분이요, 의지도 강한 분이었습니다. 자기의 건강관리를 위해서 철저하게 운동을 하는 분이었고 일 년에 한 차례씩 늘 자기의 건강을 체크하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뜻하지 않게 그에게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급히 미국 최고 암 전문병원으로 건너갔습니다. 거기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남다른 건강을 자신했던 그가 병상에 눕게 되면서부터 자기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미션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에서 채플예배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꿈이 컸습니다. 그리고 자기 눈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너무 유약하고 또 때로는 자기를 의지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그 후에 교회와 거리를 두었습니다. 나중에 가족에게 들으니 그는 일 년에 교회를 한 번 내지 두 번 나갔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한 번은 함께 교회 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아내에게 생일선물로 교회를 같이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같이 점심을 나누는 것이 아내를 위한 최고의 생일선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병상에 누워 투병하면서 다시 자기를 돌아보고 하나님을 돌아보게 되고 겸손하게 병상에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투병 생활하면서 동시에 그의 믿음은 그 상황 속에서 새롭게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병원에서 오랫동안 입원하여 치료를 받던 중에 ‘이제는 괜찮겠다.’ 하고 퇴원을 해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만 얼마 있지 않아 다시 재발하게 되었고 다시 한국의 최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고 권위를 가진 의사에게 자기를 맡기고 가장 효과가 있다는 약을 값을 묻지 않고 미국에서 구해다가 썼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면 내 삶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라고. 그러나 의사의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이제는 죽음을 준비하셔야겠습니다.’ 저는 바로 그 직전에 연락을 받고 그 분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자기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아주 반듯하게 조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많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많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안부를 전하고 그저 시편의 한 구절을 간단히 읽고 간절하게 그 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살려달라는 기도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보여주시고 그 뜻을 따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만났을 때 그 분은 이제 비로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고통과 더 씨름하기보다는 빨리 가고 싶습니다.’ 그 다음 주에 만났을 때는 저의 손을 잡으면서 ‘목사님, 이제 저는 빨리 가고 싶습니다. 남은 가족의 신앙을 부탁합니다.’ 다시 그 다음 주에 갔을 때에는 자기 아내에게 ‘준비한 걸 가져오라.’ 고 말하더니 봉투를 하나 내어놓으면서 ‘내가 일찍 교회를 알고 신앙생활을 올바로 했어야 했는데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을 담아서 자그마한 것을 헌금하고자 합니다.’ 수천만 원의 헌금을 교회에 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임종하기 전날 급하게 저를 불러서 다시 갔습니다. 임종 열 때문에 고통 가운데 힘들어하면서 잠깐 숨을 몰아 쉬더니 저에게 한 마디 던졌습니다. ‘목사님, 모든 것이 감사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나는 이대로 괜찮습니까? 나는 이대로 충분합니까? 참으로 하나님이 죽음과 질병을 통해서 멀어져 가던 그를 강권적으로 불러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시고 마지막 모든 인생을 감사함으로 마무리하게 하셨습니다마는 너무나 아쉬운 것은 저토록 똑똑하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저토록 겸손한 사람이 병상에 눕기 전에, 더 큰 고난을 당하기 전에, 죽음으로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기 전에 일상적으로 그가 가족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 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이 병으로 우리를 부르시기 전에, 저 질병의 고통 속으로 우리를 부르시기 전에, 그리고 때로는 아주 극단적인 처방인 죽음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기 전에,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되겠습니다. 충분하지 않다면 한 걸음 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한가지를 생각합시다. 오늘 나의 삶 속에, 나의 생활 속에, 하루의 일과 속에,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한가지를 내 생활 속에서 제해버리십시오. 그리고 더 밝은 눈으로 하나님을 주목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짙은 어둠의 끝자락에 새 날의 희망을 가지고 다가오는 그 새벽별. 고난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 속에 죽음을 넘어선 부활의 소망을 우리 마음에 담아주심으로 이제 우리의 삶의 목표가 저기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장례식을 치르기 원합니까? 겉치레에 사람이 많이 모여서 봉투를 두고 가는 그런 장례식을 원합니까? 아니면 정말 그는 하나님을 아름답게 믿던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기를 원합니까? 믿음의 사람 되는 것이 나의 소원이요, 우리의 소원이 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고 때로는 우리의 가정과 기업과 직장일로 인하여 늘 우리 마음이 분주해 하며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고 괴로워할 때도 많이 있지만, 정작 우리가 눈을 들고 바라보아야 할 우리의 죽음, 우리의 장례식, 그리고 그 아름다운 죽음을 향하여 오늘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가다듬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밝은 눈으로, 깨끗한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잘못된 습관들을 내어버릴 수 있게 하옵시고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언제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든지 그 죽음에 당당히 응할 수 있는 그런 용기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https://soilsky.tistory.com/ page 21에 등재되어 있음 ID: [성령충만땅에천국]으로 운영했던 블로그 카테고리 [장영수 목사 설교집]에서 인용 전재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