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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 1구간, 2026. 5. 4.(월) - 음력(3.18), 일출 05:35~일몰 19:22
- 2구간, 2026. 5. 15.~16.(금,토) - 음력(3. 29.~30.), 일출 05:25~일몰 19:32
●산행지: 영인지맥(靈仁枝脈) 2구간 졸업
●산행코스: 각원사-유황골고개-갈마고개-영인지맥분기점(400m봉)-망향봉-안서교-경부고속도로-단국대병원정문-161m봉-삼각점봉-북일고후문-두정전철역(1호선)-노태산-동물이동통로-삼성전자후문-동아제약-차암교회-차암1동버스정류장-공단2교차로5번송전탑-192m봉-용와산-33번송전탑-삼각점봉-월랑리고개-월랑초교-월랑고개-봉수대-연암산-여우고개-둔덕산-어르목고개-국사봉-어라산-성내고개-금산-투구봉-배티고개-169m봉-아산고개-산불감시초소-상투봉-식물원-흐느재-연화봉/영광의탑-깃대봉-영인산-골프장입구-232m봉-냉정고개-잔다리고개-석산-석산갈림길-입암산-공세리성당-합수점(아산만호/공세천)
●먹거리: 생수1리터, 캔맥2,900원, 육포(7,880원), 핫&쿡2, 땅콩, 사탕10
●준비물: 하계텐트, 바람막이, 메트, 스틱, 헤드랜턴, 팔토시, 스패츠, 모자, 충전지1, 충전짹, 손수건, 휴지, 물티슈, 안대, 귀마개, 양말2, 여분의류, 띠지5
●거리: 약 55.1Km
●소요시간: 31.56h
●누구랑: 나홀로
●경비: -1구간, 시외버스 왕복(7,600원X2)
- 2구간, KTX(14,100원), 편의점(3,900원), 얼큰내장탕,캔음료(13,000원), 전철(2,100원)
●날씨: 6~19도 맑음, 15~30도 맑음
● 1구간 산행경과: 5. 4.(월), 11.9km
- 14:36 : 각원사회차지 출발
- 14:43~58 : 각원사
- 15:16 : 호서정맥능선
- 15:31 : 국민은행연수원갈림길
- 15:40 : 영인지맥분기점
- 16:33 : 무네미고개
- 16:58 : 안서철육교
- 17:36 : 큰매산(142.2m)
- 18:02 : 두정역
* 2구간 산행경과: 5. 15.(금), 37km
- 06:50 : 두정역 출발
- 07:28 : 노태산(141.2m)
- 08:05 : 수레터마을
- 08:30 : 제2공단교차로/ 624번지방도/ 시계(천안시-아산시 음봉면)
- 09:01 : 미륵산(185.7m)
- 09:32 : 용와산(238.6m)
- 09:56 : 쌍룡고개/ 25번국도
- 10:31 : 251.2m봉
- 11:01 : 연암산(292.7m)
- 11:30 : 여우고개/ 3번군도
- 12:02 : 송촌동물이동통로
- 12:20 : 둔덕산(226.2m)
- 12:47 : 어르목고개/ 45번국도
- 13:09~21 : 국사봉(222.8m)
- 13:35 : 국사봉(222.8m)
- 13:40 : 어라산(207m)
- 13:53 : 성내고개/ 2차선도로(고룡산로)/ 면계(음봉면-영인면)
- 14:15 : 도곡재
- 14:30 : 금산(251.0m)
- 14:54 : 263.1m봉
- 15:57 : 배티고개/ 아산리삼거리/ 628번지방도
- 16:12 : 177m봉/ 삼읍면봉(영인면, 음봉면→염치읍)
- 16:36~17:30 : 뒷아산고개/ 39번국도/ 영인산자연휴양림입구
- 17:53~18:18 : 어금니바위갈림길
- 18:03~05 : 어금니바위
- 18:43 : 291.3m봉
- 18:55 : 영인산수목원
- 19:19 : 영인산산림박물관
- 19:39 : 영인산 연화봉(330m)
- 19:47 : 영인산 깃대봉(351m)
- 20:00 : 영인산 신선봉(363.5m) 비박
* 5. 16.(토) : 6.2km
- 04:56 : 영인산 출발
- 05:20 : 255m봉/ 삼읍면봉(영인면, 염치읍→인주면)
- 05:35 : 아름다운c.c.삼거리
- 05:47 : 231.4m봉
- 06:27~50 : 냉정고개/ 복흥골버스정류장/ 628번지방도
- 07:13 : 잔다리고개
- 07:44 : 123.4m봉
- 08:12~59 : 입암정
- 09:00 : 입암산(208.9m)
- 09:35 : 앞동산(114.1m)
- 09:50~ : 공세리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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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인지맥(靈仁枝脈)이란...?
영인지맥은 칠장산에서 서남진하여 태안의 안흥진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이 성거산(579.1m)을 넘어 갈마고개에 이르기 약 200m 직전의 분기점(395m봉)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쳐 경부고속도로와 1번국도를 지나 천안시 북부시가지를 지나서 노태산(141.2m), 천안 제3,4공단을 지난다. 아산땅으로 들어선 후 용와산(238.6m), 연암산(292.7m), 둔덕산(226.3m), 국사봉(222.8m), 금산(251m)을 넘어 영인산(363.5m)을 일군후 입암산(207.4m)에서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로 공세들로 이어져 아산방조제 부근의 서해바다에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4.8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아울러 이 산줄기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안성천으로 모여 아산만으로 흘러들고, 남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곡교천으로 모여 삽교천으로 흘러들어, 두 물줄기는 삽교천에서 합류하여 모두 서해로 흘러 들어간다.
♤ 영인지맥 개념도
♤ 영인지맥을 지나는 동네
* 천안시(天安市)
천안이라는 지명은 천하대안(天下大安)이라는 준말로 하늘아래 가장 살기좋은 고을이라는 뜻이다. 천안 삼거리는 조선시대부터 한양에서 경상도와 전라도로 내려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대로로 삼남대로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 곳이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없으나 그 옛날에는 큰 장터와 주막이 즐비한 번성했던 곳이라고 한다. 때문에 삼남의 관문인 천안을 보면 삼남의 형편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천안이 편안해야 나라가 편안하다고 해서 지명을 천안(天安)이라고 했다. 충남 동북부에 위치한 있는 시로, 충남의 최대도시로 대한민국에서 17번째로 큰 도시, 전국의 일반시 중 열 번째로 큰 대도시이다. 대도시 특례를 받는 시로는 충남에서 천안이 유일하며,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경남 창원시, 충북 청주시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동쪽으로 충북 진천군, 청주시, 서쪽으로 아산시, 남쪽으로 세종특별자치시, 공주시, 북쪽으로 경기도 안성시, 평택시와 접한다. 오늘날 천안이라는 지명은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이라는 의미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의미로 지어진 곳이라는 설이 있다. 즉 왕건이 여기에 지명을 붙일 때 이곳이 편안하면 천하가 편안할 것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 후삼국시대 왕건과 견훤 사이에 전선이 형성된 지역이었고, 그만큼 교통의 요지이기에 이런 말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천안으로 개칭되기 전의 이름이 '도솔'인 것으로 미루어 이보다도 불교 용어인 '도솔천'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니 유념하자. 천안의 다른 고호(古號)인 '영주(寧州)', '환주(歡州)' 등도 '편안하다(寧)', '기쁘다(歡)' 등의 의미를 담고 있어 천안과 뜻이 통한다. 고조선과 일맥상통하는 토광묘제 집단이 진작부터 자리하고 있었으며, 기원전 2세기에는 현 전북 익산시 일대에 자리잡은 건마국이 주도하는 마한연합에 속해 있었다. 그런 후 AD 1세기 후반 ~ 2세기 초반에 서북한에서 내려온 집단이 동남구 청당동 일대에 자리잡게 되어 번영하며, 이 집단이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기원후 3세기 시점에서는 건마국을 제치고 마한의 새로운 수장국인 목지국이 되어 있었다. 삼국시대에 들어선 뒤 3세기 중후반 경 휘하 거수국으로 거느리던 백제국에게 하극상을 당한 시점부터는 마한의 맹주 자리를 빼앗기고 백제국 휘하의 거수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고구려가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해서 오늘날의 충북 청주시 및 괴산군, 세종특별자치시, 대전광역시 일대를 석권하고 백제는 피난수도인 웅진성으로 천도했을 무렵에는 현재의 천안 일대는 백제-고구려 국경에서 북쪽으로 다소 돌출한 국경도시가 되어버렸고, 남북국시대에 들어서는 통일신라에 속하였으며 신라 경덕왕이 지명을 대대적으로 개칭하면서 대목악군은 대록군으로, 감매현은 순치현으로, 구지현은 금지현으로, 상위 행정구역인 웅천주는 웅주로 고친다. 사산현은 개칭되지 않고 그대로였는데, 그 상위 행정구역인 나혜홀은 백성군으로, 한산주는 한주로 고친다. 후삼국시대에 들어서는 태봉 영역에 들어가게 되어 내내 태봉을 이은 고려의 판도에 있었다. 고려 성종대에 10도제가 실시되며 천안도독부는 공주목에 속하였으며, 이후 도호부제가 축소, 폐지되며 환주라는 이름으로 개칭된다. 목주군은 청주목에 속하게 되며, 별칭으로 신정이라 불리기도 했다. 현종대에 5도 양계제가 실시되며 1018년, 환주는 다시 천안부로 개칭되고 수령으로 도독 대신 지부사가 파견된다. 그리고 목주군과 함께 양광도에 속하게 된다. 이때 속군현으로 온수군(현 충남 아산시), 인주현(현 충남 아산시 인주면), 신창현(현 충남 아산시 신창면), 평택현(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을 새로 두게 되며 지역행정의 중심으로 성장한다. 온수군은 명종대인 1172년에 온수현으로 격하되고, 인주현은 아주현으로 개칭된다. 고려 초에 순치현은 풍세현으로, 금지현은 전의현으로, 사산현은 직산현으로 개칭되었으며, 전의현은 청주목의 속현이 되고, 풍세현과 직산현은 상기한 천안부가 1018년에 다시 설치됨과 동시에 천안부의 속현이 된다. 풍세현은 별칭으로 자천(秭川)이라 불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 천안부는 속현으로 풍세현, 직산현, 온수현, 아주현, 신창현, 평택현을 거느린 거대한 행정구역으로 발전하게 된다. 조선의 건국과 함께 행정구역이 대대적으로 재편되면서 태종대인 1413년에 천안부는 옛 이름인 영주에서 딴 영산군을 거쳐 1416년 천안군으로 격하되며, 목주군도 1413년에 목천현으로 격하되고, 아주현은 아산현으로 개칭된다. 그리고 격하와 함께 원래 천안부의 속현이었던 직산현, 온수현, 아산현, 신창현, 평택현이 한꺼번에 천안에서 독립하게 되며, 천안군, 목천현과 함께 모두 청주목에 속하게 되어 원래 천안부가 도맡았던 지역중심적 기능은 모두 청주목으로 이관된다. 그리고 모두 충청도에 속하게 된다. 이에 당시 오늘날 천안시의 경내에는 천안군의 직할지와 목천현, 직산현,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안군의 속현으로 남은 풍세현이 분립하게 된다. 1963년 천안읍과 환성면이 천안시로 승격되어 천안군에서 분리되었고, 나머지 천안군 지역은 천안의 '천'에 지명의 접미사로 흔히 쓰이는 '원(原)'을 합성해 천원군으로 개칭되었으며 이로써 충남에서 대전시에 이은 두번째 시 승격이 이루어졌다. 1973년에는 성환면이 성환읍으로 승격되었다. 1982년에 천원군청이 오룡동(중앙초등학교 근처)에서 성거면(현 서북구청)으로 이전하면서, 3년 뒤인 1985년 성거면이 성거읍으로 승격되었다. 1991년에 천원군은 다시 천안군으로 명칭이 환원되었다. 1995년 도농통합으로 천안군이 천안시에 병합되었다. 2002년 직산면과 목천면이 직산읍과 목천읍으로 승격되었다. 2005년에 인구 50만 돌파와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이 이루어졌고, 천안시청이 불당동으로 이전했다. 2008년에 국회의원 선거구를 기준으로 동남구와 서북구로 분구되었다. 2013년 인구 60만을 돌파하였다. 전반적으로 낮은 산이 넓게 분포해 있다. 광덕산(699m)이 천안에서 가장 높고, 성거산(579m), 태조산(424m), 흑성산(519m) 등이 있다. 시 남단의 금북정맥을 기준으로 서쪽은 평지가 있는 반면 동쪽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 삼국시대 이래, 대부분의 요충지는 폭이 넓은 강을 끼고 수운이 발달한 특징이 있는데 천안은 그 중에서 예외인 고장이다. 즉, 천안은 현재도 인구 60만이 넘는 대도시임에도 유역면적이 큰 하천은 관통하지 않는 곳이다. 천안시 중심 시가지가 있는 금북정맥 서쪽은 아산만에 합류하는 삽교천과 안성천 수계인 반면, 동쪽의 목천읍, 병천면 등 옛 목천군 영역은 병천천-미호강으로 이어지는 금강 수계로 완전히 구분된다. 다만 수계 구분은 현대에 들어서 경부고속도로 등 교통망의 발달로 인해 의미가 많이 사라졌다. 동/남쪽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특성상 동쪽과 남쪽으로의 시가지 확장이 어렵다. 원래 경부선을 경계로 하여 동쪽을 중심으로 성장했으며, 점차 경부선 서측을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2기 신도시인 아산신도시 개발로 인해 천안아산역 인근에서 아산과 연담되어 있다. 최근 개발이 서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정작 천안에서 가장 큰 번화가(천안종합버스터미널)는 동남구에 소재한다. 현재 아산신도시 개발 여파로 서북구 인구가 동남구를 한참 앞질렀다. 천안이 60만명을 넘기며 비수도권 대도시로 성장하면서 동-서부로 생활권이 나뉘는 게 아닌, 조금 더 세분화된 도시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지리적 거리로 볼 때 충청도의 수부도시인 대전광역시보다는 경기도의 수부도시인 수원시에 조금 더 가깝다. 천안에서 대전은 57km인 반면 천안에서 수원은 50.4km이다. 게다가 43번 국도가 아산시 음봉면 쪽으로 넓고 쾌적하게 개통돼 서울, 수원으로의 접근성이 더욱 좋아졌다. 실제로 대전광역시와의 교류보단 서울특별시와의 교류가 압도적으로 많다. 다만, 인접 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와는 천안시와 바로 경계가 닿아있는 소정면과 전의면 외에는 교류가 적다. 전의면, 전동면 일대가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세종시 중심부인 동지역은 대전광역시로 치우쳐 있어서 실제로 행정구역은 둘이 맞닿아 있음에도 천안과 세종특별자치시와의 거리는 좀 멀다. 청주시 또한 인접해 있지만 천안시가지가 서쪽으로 치우쳐 있고, 동면, 북면, 수신면 등 산으로 막혀 있어서 교류가 적다. 천안시는 현재 도내 다른 지역보다 수도권과 아산시와의 교류가 압도적으로 많다. 1990년대까지는 다른 지방들과 별 차이가 없었으나 2004년 4월 1일 경부고속철도 천안아산역이 개통되고 수도권 전철 1호선이 2005년 1월 20일 천안역까지 연장개통된데 이어 2008년 12월 15일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천안역을 지나 아산시에 소재한 신창역까지 연장된 이후 수도권과의 교류가 확대되었다. 천안시는 과거 조선시대부터 천안삼거리라 불리며 수도권과 영·호남을 잇는 길목으로서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오던 곳으로, 오늘날에도 대전과 함께 철도와 도로 교통이 매우 발달한 국가 교통의 요충지이다. 대한민국의 지리적 표시제를 적용받는 농산물로는 성환읍의 성환 배, 천안 호두가 있다. 배와 호두 말고도 지역에 따라 농산물이 있는데, 입장 거봉포도, 병천 아우내 오이, 수신 멜론이 대표적이다.[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아산시(牙山市)
현재의 아산시는 조선시대 아산현, 온양군, 신창현이 합해진 것이다. 아산현은 아산시의 북쪽 지역인 영인면, 인주면, 둔포면, 음봉면, 염치읍 일대이다. 북쪽으로는 경기도 평택시, 동쪽으로는 천안시, 남쪽으로는 공주시, 남서쪽으로는 예산군, 서쪽으로는 당진시가 있다. 백제의 아술현(牙述縣), 신라의 음봉(陰峯), 음잠(陰岑), 탕정군(湯井郡), 고려의 인주(仁州), 아주(牙州)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부터 아산(牙山)이 되었다. 연산군대에는 잠시 경기도에 속하기도 했다. [아산현지도, 규10428), 조선후기 지방지도, 서울대]는 동쪽을 위로 하여 그린 지도이다. 지도 왼쪽 아래는 아산만을 그린 것이다. ‘서통대해(西通大海)’가 적혀 있다. 서쪽으로 바다와 통한다는 뜻이다. 지도 오른쪽의 하천은 곡교천이고 지도 왼쪽에는 아산만 방조제가 생겼고 아래쪽은 삽교천 방조제가 생겼다. 지도 가운데 많은 건물이 그려진 곳이 읍치(邑治)이다. 영인면 아산리가 중심부였다. 아주관(牙州舘)이 객사인데 현재 영인초등학교가 객사터이다. 교궁(校宮)이라 이름붙여진 곳이 아산향교이다. 아산만 근처에 작은 성곽이 보이고 그 안에 건물이 그려져 있다. 충청도 일대의 세곡을 모아 배를 통해 한양으로 옮기던 공세창(貢稅倉)이다. 지도 여백에는 아산현의 연혁, 면 명칭, 호수(戶數) 등이 기록되었다. 우리 한반도를 토끼 한 마리가 앞뒷발을 가지런히 곧추세우고 서있는 형상으로 곧잘 비유한다. 그 내복부 가장 오목하게 또 깊이 들어가 있는 곳이 바로 아산만이다. 평택·아산·당진 세 고을이 그 아늑한 해만을 둘러싸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당나라와의 해상교통은 이 아산만을 통해 이루어졌음은 당나루란 뜻인 당진이란 지명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아산만에만 당진포(당진), 당포(아산군), 당항(평택군) 같은 지명이 세 개나 있다. 예부터 국제항구였을 뿐 아니라 충청도 40고을의 모든 세곡은 모두 이곳에 모아 서울로 운반했던 유수한 국내항구이기도 했다. 지금도 아산에 '관창'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여기에서 서울까지는 뱃길로 500리 잡았다. 옛 말에 아산창지가 평양감사보다 낫다했음은 흥청 거렸던 옛 아산항을 연상케 해준다. 내륙 깊숙이 파고들어서인지 서해안 유수의 군항이기도 했던 아산만은 일본해적인 왜구의 약탈이 혹심했기로 선조 연간에는 아산만 일대가 폐허가 되어 아산이라는 고을(현)을 폐하고 직산(稷山)현에 소속시키기 까지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아산만을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산들에는 옛 산성이 쌓여 있지 않은 산이 없고 이를테면 어라항산성·앵리산성·수한산성·신성산성·복부산성·연암산성· 월주산성·천덕산성·학성산성·고용산성 등등등 한말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박해와 통상거부에 앙심을 품은 프랑스주교 페롱과 유태상인 오페르트가 덕산에 있는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를 도굴하기 위해 도굴선을 갖다댄 것도 바로 이 아산만 구만표였다. 아산만의 썰물 시간까지 도굴을 못다해 실패하고 말았다. 그후 강화도의 운양호 포격사건의 보상책으로 일본은 동해안과 서해안 두 군데의 개항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당시 화방의질(花房義質) 일본공사는 직접 군함 고웅호를 타고 서해안의 개항지를 물색하고 다녔는데 당시 답사보고기록에 보면 목포·군산·아산·남양·강화·제물포의 장단점을 거론하고 결국 군산이냐 아산이냐 제물포냐 하는 삼자택일로 압축시키고 있다. 그 보고서에 보면 도이(桃李)도에 정박, 한 달에 걸쳐 아산만을 측량했는데 '인근에 거읍명촌(巨邑名村)'이 적고 주선(舟船) 출입이 한산하며 만내에 사주(砂州)가 있어 양항(良港)이랄 수 없으나 산과 섬으로 아늑히 둘러 있어 외해의 큰파도를 막아주고 또 배를 댈만한 기슭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략상 서울에 가장 가까운 제물포에 눈독을 들여 끝내 아산 개항은 좌절되고 만 것이다. 그후 동학난리가 나고 청 · 일 간에 전운이 감돌 때 청나라에서는 엽지초(葉志超)를 사령관으로 하는 3,500의 병력을 아산만 백석포에 상륙 주둔시키고 정여창의 북양함대 8척으로 아산만을 지키게 했다. 개전과 더불어 아산만의 바다와 내륙에서 이 함대는 박살나고 말았다. 아산만의 역사는 그래서 기구하고 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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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지를 관통하는 지맥은 개발과 보존의 이익속에 원형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상처 투성이다. 영인지맥이 그중 하나이다. 천안시내구간인 1번국도에서 노태산구간은 공단과 아파트와 번화가로 변하여 산줄기 모습은 찾을 수 없고 노태산에서 624번 도로사이도 천안 3, 4 산업단지 조성으로 지형조차 변하여 독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624번 지방도로를 만나 일단 아산시 경계만 들어서면 이후 영인산까지 별 어려움이 없다. 어르목고개부터 성내고개까지는 이충무공묘소를 빙 둘러싼 국사봉에 해당한다. 영인산 이후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입암산까지는 족적은 거의 없고 가시덤불이며 산줄기도 S자모양으로 휘돌고 있어 애를 먹고 입암산은 채석장으로 완전이 맥이 끊겼다. 영인산의 거대한 조형물과 시설물, 입암산 정상의 정자를 보면 마치 머리에 곱게 꽃단장하고 뽀얗게 분바른 여인네같지만 뒤통수는 어마어마한 채석장으로 산의 반토막이 없어진 것을 보면 마치 반은 없어진 뇌(腦)속을 보는것 같아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운게 울화가 치민다. 최근 당진 태안화력의 육상 전송 병렬선로가 신탕정으로 이어지며 군산에서 수도권으로 가는 북상전력과 합해져 둔덕산에서부터 국사봉능선으로 고압송전선로를 이동하는 송전철탑이 이마에 꽂여있는 바늘처럼 다량 심어져 더욱더 유감이다. - 박종율대선배님 블로그 인용
예정에 없던 영인지맥을 송세르파대장님의 162지맥 졸업산행 예정 공지를 보고 부리나케 준비하여 마치게 되었습니다. 지맥을 하며 송세르파대장님의 띠지 도움을 많이 받기도하였지만 90Kg이 넘는 거구의 몸을 이끌고 오직 끈기와 뚝심과 열정으로 졸업의 관문을 통과하시고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는 모습에 졸업 축하산행에 맞추기 위해 궁리끝에 두 구간으로 잡고, 15일 두정역에서 출발하여 영인산에서 비박하고 16일 냉정고개에서 합류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서울동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로 왕복하며 5월 4일 각원사에서 출발하여 두정역까지 1구간을 미리 끊어놓으니 부담이 훨 덜어졌구요. 영인산에 23시 도착 예상했는데 의외로 빨라 뒷아산고개에서 여유있게 저녁도 먹고 어둡지 않은 시간에 정상에 도착하였습니다. 정상 전망대 1층도 비박이 가능했고, 초소건물도 문이 열려 있고 내부가 깨끗하여 아늑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답니다.
영인산을 오르며 어금니바위도 다녀왔지만 보기에 따라 영인산이 바로 아산이 아닌가 싶었으며 또한 음봉면은 서쪽에 있는 영인산의 그림자가 길어 그 영향에 있다는 뜻으로 보였고, 지리산의 반야봉이나 도봉산의 여성봉처럼 음봉이란 성적 심벌의 뜻이 있는 것으로도 짐작되었답니다. 영인지맥이 끝을 맺는 공세리성당 또한 고구려 주몽의 아들 비류가 남하하여 세운 미추홀로 여겨지기도 하며, 고려시대 조운의 거점에서부터 전략적 중요상에 있었고 내포지역으로 서양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개화에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송세르파대장님이 졸업식 행사를 성대하게 마치고 카페로 자리를 옮기는 사이 저는 조용히 빠져 10만평의 부지에 민족의 성지로 자리잡은 아산 금곡천 옆에 있는 현충사를 찾았습니다. 박물관과 전시관 신구현충사, 장군이 21세에 장가들어 기거한 저택, 장인장모의 묘와 세째아들 묘까지 두루 살펴보고, 공무원들 퇴근시간이 있어 콜택시(11,500원)를 불러 이순신장군 묘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어라산에 올라 어제 지난 국사봉 능선도 살펴보고 다시 우백호로 내려서서 산정리 산소말에 장군의 아산 초장지까지 다녀오니 사자지맥을 하며 장흥 대덕면 신리에서 오성산갈림길에 올라 멀리 이순신장군의 초장지가 있는 완도군 고금도를 바라봤던 기억이 소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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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구간거리
각원사-(1.75km)-갈마고개-(0.5km)-영인지맥분기점-(2.3km)-무네미고개-(1.2km)-23번 국지도/안서철육교/
경부고속도로-(0.7km)-분기봉-(1.5km)-두정터널-(0.8km)-1번국도/북부고가교-(3.1km)-노태산-(2.4km)-
삼성SDI-(1.4km)-현대모비스-(0.7km)-624지방도-(1km)-189/강모산-(1.2km)-용와산-(1.2km)-쌍룡고개/25번국지도-(1.5km)-개안암 갈림길-(0.9km)-연암산-(1.2km)-여우고개/3번군도-(1km)-배방-음봉간 도로 예정지-(0.6km)-둔덕산-(0.6km)-음봉터널-(0.5km)-어르목고개/45번국도-(0.4km)-국사봉-(0.5km)-어라산-(0.85km)-성내고개/2차선도로/성내고개-(1.8km)-금산-(1.8km)-배티고개/628지방도-(2km)-39번국도-(2.7km)-흐느재-(0.8km)-영인산-
(1.2km)-능선분기-(1.2km)-628지방도-(0.8km)-임도-(1.6km)-입암산-(1.9km)-인주4거리-(0.6km)-아산만 방조제
♤ 구간거리
- 접속 각원사 좌불상 ~ 분기점 2.4km
- 접속 문암저수지 예비군훈련장 KB천안연수원 ~ 분기점 2.1km(갈마고개에서 8분)
- 접속 만일사에서 금북정맥 만일고개로 올라 만일고개에서 0.8km
- 분기점 ~ 여우고개/ 3번군도 25.8km
-. 분기점 ~ 두정역 12.8km
-. 두정역 ~ 쌍룡고개/ 25국도 7.6km
-. 쌍룡고개/ 25번국도 ~ 여우고개/ 3번군도 5.2km
- 여우고개/ 3번군도 ~ 공세리성당 27km
-. 여우고개/ 3번군도 ~ 어르목고개/ 45번국도 3.9km
-. 어르목고개/ 45번국도 ~ 영인산휴양림입구/ 39번국도 9.9km
- 영인산휴양림입구/ 뒷아산고개 ~ 공세리성당 15.1km (상투봉 왕복 1.1km 포함)
-. 영인산휴양림입구/ 39번국도 ~ 냉정고개/ 628지방도 8.8km
-. 냉정고개/ 628지방도 ~ 공세리성당 5.2km
♤ 식수 공급지 및 산행정보
- 두정동, 노태산: 시내동지구
- 차암교회, 수레터마을: 편의점 두곳
- 연암산 봉수대: 연암정
- 여우고개/ 3번군도: 수도꼭지 약수터
- 투구봉 체육공원갈림길 안부에서 올라: 산불감시초소 상태 양호
- 배티고개: 편의점(010-7721-3353)/ 봉고차 간이매점(옥수수)
- 영인산휴양림입구/ 39번국도/ 뒷아산고개: 영인산순대국밥집
- 영인산휴양림제2매표소 290m봉: 산불감시초소 상태 양호
- 상투봉: 왕복 약 1.1km, 나무데크
- 영인산수목원: 화장실 물보충 가능
- 영인산산림박물관: 화장실 물보충 가능
- 영인산 전망대: 1층, 2층 휴식공간(대피소), 3층 전망대, 초소건물
- 냉정리마을: 물보충 가능
- 입암산: 육각정자
♤ 서울에서 영인지맥 분기점 가는 길
- 서울역 ~ ktx 천안아산역: 05:27, 05:38, ~20:38, 20:49,~, 0.40h, 14,100원(10,600원)
- ktx 천안아산역/ 아산역 ~ 천안역: 국철 1호선
- 무궁화 서울역 ~ 천안역: ~20:09, 1.19h, 6,300원
- 천안터미널 ~ 각원사: 0.15h, 택시 1만원
- 천안전철역 ~ 동부관장방면 버스정류장 각원사회차 81, 24번 버스: 0.25h,
- 천안터미널 건너편 승강장 ~ 안서동행 14번, 700번, 701번 시내버스: 백석대회차, 0.20h
- 경부영동선 ~ 천안시외버스터미널: ~20:05, 20:30,~, 1.17h, 6,800원
- 동서울터미널 ~ 천안시외버스터미널: ~ 19:55, 20:15, 20:25, 20:35~22:00, 1.25h, 7,600원~9,800원
♤ 공세리성당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아산만/ 안성천 합수점 ~ 공세리마을 대진아파트버스정류장: 도보이동
- 인주파출소, 대진아파트버스정류장 ~ 온양온천역버스정류장행 600, 601번버스: 0.40h,
- 온양온천역버스정류장 ~ 온양온천전철역: 도보이동 서울까지 약 3시간, 2,100원
- 온양온천역 ~ (전철이동) ~ 천안역 ~ (ktx이동) ~ 서울역
- 인주파출소, 대진아파트버스정류장 ~ 평택터미널, 평택역 ~ 서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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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승강장에서 24, 81번 버스에 승차하면 각원사회차지까지 한방에 갑니다. KB연수원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없고, 안서동종점인 백석대에서 내려 문암저수지로 잠깐 걸어들어가야 합니다.
♤ 각원사 경해원
각원사의 개산조는 경해법인으로 경해원은 스님이 주석하던 전각이다. 스님은 일본으로 유학중에 재일동포 각연 김영조 거사님의 보시로 1975년 창건하였다. 사찰의 연혁이 얼마되지 않아 그런지 현대식 전각으로 엄청나게 규모가 크다. 태조산 각원사에 모셔져 있는 청동대불은 아미타부처님으로서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1977년 5월 9일에 봉안되었는데, 늘 일체 중생이 모든 고통에서 건져내는 대자대비하신 미소를 머금고 계시는데 좌불상의 앉아있는 키가 무려 15m나 되며 무게는 60톤, 귀의 길이만도 1.75m, 손톱 길이가 30㎝나 된다. 좌불상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그 신비로움이 다르게 다가오는데 특히 각원사 입구 상암지에서 바라본 좌불상은 연꽃위에 열반한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 있다. 아미타불은 한량없는 광명을 지니고, 중생의 번뇌와 어둠을 밝히는 한량없는 생명력을 지녔기에 생멸이 없는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이시며, 어떤 중생이라도 착한 일을 하고 아미타불을 지극 정성으로 부르면 서방극락의 아름다운 정토로 맞아가는 부처님으로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억불국토를 지나서 있는 극락세계에 계시면서 현재까지 설법하고 계시는 부처님이시다.
각원사 좌불상에서 약 15분 올라서면 호서정맥 능선이고 반대편 유왕골고개 아래로 150m에 약수가 있습니다.
♤ 유왕(留王)골고개
천안시 안서동과 목천읍 덕전2리 점말 북쪽에 있는 마을이고 그 위의 고개가 이곳이다. 유왕(留王) 마을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BC18년 위례성(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봄, 여름이면 이곳(현재의 천안시 북면과 입장면의 경계)에 머물며 농사를 장려하였다고 하여, 유왕(留王)골이라는 설과, 고려 태조14년( 931년)에 왕건이 후백제의 운주(현 홍성군) 지방 30여 성을 취하여 목주(현 천안의 동남부)를 친정하실 때 태조산에 진을 치고, 군량은 유량동(留粮洞)에 두고 왕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여 유왕골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유왕골 고개엔 새천안 로타리 클럽이 기증한 정자가 있어 지역 등산객들이 많이 쉬는 곳이다. 이정표엔 "좌측 약수터/ 우측 좌불상"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좌불상이란 각원사를 말함이다. 오른쪽은 천안의 진산이라는 태조산으로 향하는 길이고 왼쪽은 성거산 방향이다. 영인지맥은 성거산 방향이다.
왼쪽으로 KB연수원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습니다.
♤ 갈마고개(335m)
금북정맥 마루금이다. 갈마고개 이정목에 왼쪽으로 태조산, 각원사가 1,218m이고 오른쪽으로 성거산이 1,362m라고 안내한다. 천안시 서북구 안선동과 동남구 목천읍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좌측 능선 아래에는 굉장히 규모가 큰 국민은행 연수원과 숙의하씨의 묘소가 있고 우측 아래 메일골에는 만일사와 숙의하씨의 소생인 계성군의 묘소가 있다. 이 고개는 예전에 칡이 많이나서 ‘칡 갈(葛) 뫼’라 갈뫼고개라 부르던 것을 갈마고개가 되었고 또다시 변음이 되어 걸마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걸마고개에는 이정표가 두개 서 있는데 하나는 금북정맥 이정표이고 하나는 역사적 이정표다. 조금 특이한 이정표는 ‘숙의하씨 묘’ 와 ‘계성군 묘’의 이정표인데 ‘숙의 하씨’는 영의정 ‘하연’의 딸로 부인을 12명이나 두었다는 조선조 9대 임금이었던 성종의 후궁 중에 하나이고 ‘계성군’은 숙의 하씨의 소생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성종의 후궁의 母子로 성거산 방향에 있는 계성군의 묘와 숙의하씨의 묘는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 을좌에 있었는데 1971년 서울시도시확장계획으로 충남 천안시 목천읍 송전리 신대동 메일골 신좌로 이장하였다고 한다.
속리산 아래 삼파수는 대간에서 갈라지는 삼수령이고, 여기는 정맥에서 갈라지는 삼수령입니다.
♤ 영인지맥분기점(395m)/ 구계/ 삼리동봉(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 동남구 목천읍 송전리 → 안서동)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영인지맥분기점 산패와 백두사랑 노란색 산패가 높이 매어 있다.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송전리와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 동남구 안서동의 삼리동봉이다. 금북정맥 산줄기인 만일고개에서 약 0.8km거리이다. 천흥천(안성천), 천안천(곡교천), 산방천(금강)을 가르는 삼파수의 삼수봉(三水峰), 삼수령(三水嶺)이기도 하다.
순간 판단으로 첫 산패를 놓쳤습니다. 아 저기로 가야했구니 했을 땐 이미 늦었습니다.^^
♤ 337.1m봉/ 구계/ 삼리동봉(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 → 송남리)
왼쪽으로 사면길이 나있어 우회하기 쉽다. 녹슬어 방치된 안테나가 있는 봉우리이다. 소나무에 맨발대선배님 산패가 높이 매어 있다. 지맥의 오른쪽이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송남리로 바뀌는 삼리동봉 지점이다.
천안시가지와 성거읍을 조망합니다.
♤ 293.6m봉/ 구계/ 전망대봉/ 삼리동봉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서북구 성거읍 송남리 → 요방리)
전망이 좋게 나와 천안시가지와 문암저수지, KB연수원, 분기점과 성거산 등 두루두루 살펴본다.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높이 매어 있고, 독도대선배님 코팅지산패도 참나무에 매어 있다. 지맥의 오른쪽이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송남리→요방리로 바뀌는 삼리동봉 지점이다. 지맥분기점 뒤로 성거산(579.1m)이 바라보인다.
♤ 성거산(聖居山, 579.1m)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입장면, 동남구 북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군부대가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을 때 천안시 직산읍 산헐원을 지나다가 동쪽의 이 산을 보고 신령이 있다면서 성거산이라고 부르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상에는 성거산성(충남문화재자료 263)이 있는데, 지금은 군사 기지가 들어서 있다.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성곽이 많이 파괴되어 옛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가면 백제 도읍지였던 위례산의 위례산성(충남기념물148)에 이른다. 서쪽 산중턱에 만일사(晩日寺)가 있으며, 경내에는 오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 254)과 마애불(충남 문화재자료 255) 등 문화재가 여러 점 있으며 산자락에는 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천흥사지(天興寺址)가 있는데, 현재 절터는 마을로 변하였지만 오층석탑(보물354), 당간지주(보물99) 등 중요한 문화재가 많이 있다.
지맥은 앙증맞은 망향봉 표지석에서 좌틀로 내려섭니다.
♤ 망향봉(望鄕峰, 256m)/ 국립망향의동산, 망향휴게소
천안시 안서동과 성거읍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개념도상에는 256m봉으로만 기록이 되어 있고 삼각점이 있다고 하는데 삼각점은 찾지 못하고 사랑 산악회에서 와석으로 만든 망향봉 표시석이 있는 밋밋한 봉우리이다. 망향봉이란 지명은 맞은편 경부고속도로 건너편에 있는 망향휴게소에서 따온듯 싶다. 망향휴게소 뒷쪽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요방리에 국립망향의동산의 조성되어 있다. 국립망향의동산은 해외에 이주해 살면서 연고지가 없거나 조국에 묻히기를 원하는 1백만 해외 동포를 위한 국립 묘원으로서 1976년에 개설되었다. 국립망향의동산 안에는 묘역 이외에도 위령탑과 대한항공 희생자 위령탑, 재일교포 조림지 등이 있으며 망향의 날로 정해져 있는 매년 10월 2일에는 합동 위령제가 열리고 경부고속국도 망향 휴게소는 국립망향의동산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으며, 휴게소 맞은편에도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무네미고개를 지나 잘 닦여진 등산로를 따라도 되지만 원 지맥은 약간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 무너미고개(95m)/ 문암고개/ 구계/ 삼리동봉(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 서북구 성거읍 요방리)/ 산자분수령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가 추자나무에 높이 매어 있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문암마을과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요방리를 잇는 조그만 고개이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세 그루가 서있다. 직진하여 텃밭 그물망 울타리를 따라 오르면 왼쪽으로 백석대학교 건물이 보인다. 낮은 고개 하나를 두고 남쪽에는 천안 무너미 고개, 북쪽에는 직산마을 무네미 고개라고 한다. 무너미란 ‘물이 넘어간다’고 해서 물넘어 고개라고 불렀으며 계곡의 상류에 무너미 방죽이 만들어져 물이 넘어가리라고 생각치 못했던 고개에 물이 넘어간다. 이곳 무너미 고개는 옛 천안군과 직산현을 나누는 경계이면서 분수령이기도 하다. 고개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망향동산을 옆으로 끼고 직산 무너미를 지나 성거읍 요방리, 석교리 앞을 흐르는 한내(寒川)와 합쳐져 입장천에 이르러 안성천으로 든 다음에 아산만으로 입수하고, 남쪽의 물은 천호저수지에 들렀다가 천안천을 지난 다음에 아산 곡교천을 거쳐 아산만에 입수한다.
천안시 태조산을 내려선 호서정맥이 목천읍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횡단하는데 여기는 그 이전의 고속도로 횡단이 되네요. 경부고속도로가 천안을 지나며 단국대병원이 보이는 곳입니다.
♤ 안서철육교/ 23번국도/ 경부고속도로/ 주유소
고속도로 아래 23번국도는 예전에 안성선 철로가 있던 곳이다. 경부고속도로를 굴다리로 통과하는 곳에서 지맥은 우틀로 이어지나 차량통행이 많아 단국대학교병원앞 사거리까지 가서 횡단보도로 우회하여 고속도로 옆 임도로 들어선다. 경부고속도 굴다리를 빠져나와 천안에서 안성 가는 23번국도를 무단횡단하여 고속도로와 나란히 걷다가 가족묘지를 통해 111m봉 쉼터로 올라서는 경우도 많다.
♤ 단국대학교병원
안서철육교에서 무단횡단을 하지 않고 단국대병원 앞 횡단보도를 이용한다면 오른쪽 철조망으로 진행한다.
♤ 국사봉갈림길/ 사각정자/ 구계/ 삼리동봉(천안시 남동구 안서동,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요방리 → 서북구 부대동)
국사봉까지는 왕복 1.3km 거리이며, 지맥은 갈림길이 있는 사각정자 쉼터에서 좌틀하여 두정공단 방향이다. 직진은 국사봉으로 알바하는 성거읍 문덕리향이다.
지맥의 좌우 모두 천안시 서북구 내로 들어서는 지점입니다.
♤ 161m봉/ 구계/ 삼리동봉(천안시 서북구 부대동, 남동구 안서동 → 서북구 두정동)/ 삼각점봉
단국대 뒷산으로 큰매산 등산안내도가 서있다. 인식이 어려운 삼각점을 지나고, 단국대 공대 갈림길도 지나고, 161m봉에 도착한다. 지맥의 왼쪽이 천안시 남동구 안서동→두정동으로 바뀌며 천안시 남동구와 헤어지고 좌우 모두 천안시 서북구로 들어서는 지점이다. 단국대 기숙사갈림길을 지나자마자 삼거리에서 지맥은 우틀이지만 왼쪽으로 큰매산을 향한다.
♤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斗井洞)
충남 천안시 서북구에 위치한 법정동이며, 부대동, 신부동, 성정동, 백석동, 성성동과 접한다. 1914년 북이면 상두정과 북일면 신주막을 병합해 영성면 두정리가 되었다. 1931년에는 환성면으로 편입되었고, 1963년에는 천안시가 승격하면서 두정동이 되었고, 부성동이 관할하게 되었다. 2013년 10월에는 부성동이 쌍용대로를 기준으로 부성1동과 부성2동으로 분동하고, 두정동을 나눠 관할하게 되었다. 두정역이 있다. 이 역을 지나는 수도권 전철1호선 일반열차와 급행열차 모두가 정차한다. 수도권에 사는 대학생들이 통학하러 많이 이용하고 백석동, 두정동, 신부동 일대에서 천안역 대신 이용하기 때문에 천안 시내에서는 천안역보다 수도권 전철 이용객 수가 많다. 공업과 주거 지역이 섞인 지역이다. 1980년대만 해도 공장만 있는 지역이었지만, 1990년대 이후 북부지구택지개발사업 때문에 두정동 전체가 개발되면서 많은 사람이 사는 주거지역으로 발전했다.
♤ 큰매산(142.2m)/ 4등삼각점(평택 434/ 1991재설)/ 천안시 서북구 - 동남구
지맥은 우틀이지만 왼쪽으로 지맥에서 왕복 450m 떨어져 있어 다녀온다. 천안시 동남구와 서북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단국대 천안캠프스 뒷산이라 보면 된다. 정상에는 4등삼각점이 있고, 봉우리 아랫쪽에는 동남구와 서북구를 잇는 천안터널이 있다. 큰매산은 조류인 매가 날개를 힘차게 펼치고 남북으로 하늘에 떠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큰매산이란 지명을 얻게 되었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삼각점안내판에 같이 설치되어 있다. 큰매산은 지맥에서 왼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는 산이지만 큰매산을 경유해서 갈 수밖에 없다. 큰매산의 위치가 아래로 1번국도가 통과하는 천안터널이다. 마루금으로는 1번 국도를 건널 수가 없기 때문에 터널위를 지나서 2분 정도 진행하다가 오른쪽 능선을 타고 터널 입구로 내려서게 된다. 굳이 빽해서 가더라도 차량통행이 많은 1번국도를 건너기 어려워 정확한 마루금으로 갈 수도 없다. 직진하면 북일고 뒷길로 e편한세상 아파트를 통과한다.
큰매산에서 북부고가교를 택하는 경우 뒤돌아와서 내려서야 하고 왼쪽으로 두정역이 바라보입니다.
♤ 구 1번국도/ 북부고가교
구 1번국도를 횡단보도로 건너고, 차도로 삼성대로(북부고가도로)를 건너 경부선철로를 지난다. 원 지맥길은 철도 고가 왼쪽이나 이곳은 두정공단 공장지대, 경부선 철도가 맥길을 짤랐고, 상가와 학교, 아파트 때문에 맥길을 읽을 수가 없다. 천안 두정지구에 조성된 신시가지로 인해 정확한 마루금을 따를 수도 없고 커다란 의미도 없어 마루금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도로를 따라 걷는다.
♤ 두정고가차도/ 두정터널/ 두정역
북부고가도로를 건너지 않고 큰매산에서 직진을 하였다면 두정역을 지나는 두정고가도로/ 두정1교로 우회하여야 한다. 오른쪽으로 두정역을 지난다.
♤ 한국교육기술대학제2캠퍼스/ 천안두정푸르지오 사거리/ 삼동경계면(천안시 서북구 두정동, 부대동 → 성성동)
시내동이라 최대한 지맥과 가까이 간다. 영성보도육교를 지나고 천안신대초등학교, 성성초등학교, 두정고등학교 서문을 지난다. 삼거리에서 천안 오성중학교가 보이면 좌틀하고,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노태산이다.
지난번 성수지맥에서도 같은 의미의 노산을 지났습니다.
♤ 노태산(魯泰山, 141.2m)/ 삼동봉(천안시 서북구 성성동, 두정동 → 백석동)/ 노태근린공원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높이 매어 있다. 성성동과 백석동 사이에 위치하며 중국에 공자에 태어난 태산이 있는데 이와 유사하며 노태산이라 이름지어졌다. 산의 정상에 공자를 기리는 제당이 있었다하며 북쪽 자락에는 성인들이 살았다 하여 성인동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백두대간에서 분기된 금북정맥의 성거산에서 다시 분기된 영인지맥이 국사봉을 지나 노태산을 이루고 봉서산, 월봉산으로 이어진다. 둘레에는 수천년전에 대규모 집단이 살았던 선사유적이 조사되었고, 두정동과 백석동에 그 일부 원형이 보존되고 있다. 두정동 구획정리 지구와 1,2,3산업단지가 있으며 천안의 대동맥인 새천안번영로와 북부대로가 산의 북서를 지나고 있어 68만 천안시민의 성장동력이 되고 있는 곳이다. 노태산 정상에서 좌틀로 내려선다.
♤ 노태산성
백제시대~나말여초기에 초축, 운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노태산성이 발견되었다. 또한 노태산성 축조 이전에 조성된 삼국시대의 주거지와 노태산성의 축조과정을 살필 수 있는 영정주시설, 유사판축층 등도 확인되었다. 노태산 정상에서 좌틀하여 생태통로로 내려선다.
백석동으로 넓게 돌지 않고 성성동에서 곧바로 차암동으로 갔습니다.
♤ ABB코리아 천안공장/ 삼리동경계면(성성동, 백석동 → 차암동)
지맥의 왼쪽이 백석동에서 차암동으로 바뀌는 삼리동경계면 지점이다. 지맥은 동아제약사거리에서 우틀하여 천안 제3산업단지 삼성전자 삼성SDI와 천안 제2산업단지 롯데삼강, 현대모비스를 지나 좌틀하여 신갈사거리로 향한다.
노태산에서 공단2교차로까지는 부득이 도로를 따라 우회길을 택해야 합니다. 공단사거리에서 좌틀합니다.
♤ 삼성SDI/ 현대모비스
천안제3산업단지를 지난다. 동아제약 건물을 끼고 정문을 지나고 천안서북경찰서 방향으로 우틀한다. 왼쪽 도로 아래에 삼성 SDI 공장이 보이고 계속 도로를 따른다. 원지맥길은 SDI 공장을 지난다.
♤ 천안시 서북구 성성동 사라리(沙羅里)
본래 서기 1700년 조선시대에는 이곳을 천원 북이면, 대목동이라 하였으며 전주이씨 익양군파 종중 집성촌이기도 하다. 사라리는 성인동과 수릿터 사이에 발달된 마을로 성성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사라는 본래 우리 나라의 고어로 접시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인지 사라리에는 점토로 그릇을 굽던 점말이 있다.(발사라리 옹기터) 지금은 전주이씨 익양군파 종토로 되어 있다. 요즈음도 이곳에서 많은 그릇 조각을 찾아 볼 수 있고 옛 가마터가 확실하다. 1970년 한글학회의 지명 조사에 의하면 백제 때에 그릇을 구울 수 있는 여건은 점토질이 좋고 바로 이웃에 차돌백이가 있어서 백토를 구하기가 쉬워야 하는데 바로 이 부근이 순쉬웠음을 들 수 있다. 이제는 천안이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가마터와 잔유물이 없어져 허탈하고 옛날을 그리워할 뿐이다. 그렇지만 사라리는 산업단지와 함께 새천안 번영로가 통과하는 천안의 성장 동력 지역이라 모든 주민은 꿈을 안고 살아간다.
♤ 차암교회/ 천안시 서북구 차암동/ 수레터마을/ 성성동 - 차암동
624번지방도 건너편 차암1통정류장, 수레터마을을 지나 차암동 내를 관통한다. 수레터 마을 삼거리(승강장)에서 우틀, 언덕을 올라서면 공단2교차로(왼쪽 제3산업단지, 오른쪽 제4산업단지), 직진으로 마정공단으로 향한다.
♤ 수레터마을 입구
천안시 직산읍 차암동에 속해있는 마을로 수리터(수레터: 車垈) 지명의 유래는 마을의 생김새가 수레(車)와 같다하여 수렛터라 하였다고 한다. 또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 나면서 아산만에 상륙한 청군(淸軍)이 많은 전쟁 물자를 마차에 싣고 이곳을 지나가다가 고장난 마차를 고쳐 갔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마을 뒷산에 많은 차돌(고령토)이 박혀있어 한 때는 도자기의 원료로 반출되면서 차돌이 나왔다고 차돌백이라는 말이 변하여 차대(車垈)가 되었다고 한다.
천안시를 통과한 영인지맥이 아산시(음봉면)와 처음 만나는 지점입니다.
♤ 공단2교차로/ 624지방도/ 신갈사거리/ 시계/ 읍면계/ 삼리동경계면(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신갈리, 차암동 → 아산시 음봉면 산동리)
공장 정문에서 왼쪽으로 조그마한 봉우리에 올라섰다 내려서며 보니 묘지가 있어서 살아남은 봉우리다. 624번 도로를 따라서 오르막으로 오른다.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신갈리와 아산시 음봉면 산동리의 경계에 있는 사거리로 아산에서 성환으로 이어지는 도로인데 이 사거리를 지나면 천안시를 벗어나서 아산시 음봉면으로 접어든다. 지맥의 왼쪽이 천안시 서북구 차암동→아산시 음봉면 산동리로 바뀌는 삼리동경계면 지점이다.
사거리를 지나니 아산시 음봉면의 표지판이 보입니다.
♤ 충남 아산시 음봉면(陰峰面)
아산시 음봉면은 본래 아산군 일동면 지역으로서 16개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이동면의 16개리와 천안군 성환면의 공수리를 병합하여 이 지방에 있는 아산의 삼국시대 이름인 음봉의 이름을 따라 음봉면이라 하였고, 충남 서북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천안시 백석동, 서쪽은 영인면, 남쪽은 염치읍, 북쪽은 둔포면과 연접하였다. 음봉이라는 지명은 이 지역의 주산인 월선산(옛 음봉산)의 지형적 특징에서 유래했다. 산봉우리가 해를 등지고 있어 그늘이 지는 곳이 많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는 온화하고 아늑한 지역적 정서를 대변한다. 면의 중앙에 위치한 연암산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이 작은 구릉지대이며, 면의 북쪽에는 신휴저수지에서 신휴평야가 있어 신휴천을 따라 형성되고 있다. 교통은 국도45호선이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경부고속도로 천안TG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연계하고 있는 지방도 628호가 동서로 가로지르는 사통팔달의 교통요지다. 작은 구릉지대로 형성된 까닭에 과거에는 낙농업 및 사슴사육이 발달한 부촌으로 성환과 둔포와 연계한 북부지역에는 넓은 배과수원으로 봄철 달빛에는 흰배꽃이 장관을 이룬다. 면의 서쪽에는 지난 1991년 관광지로 지정된 아산온천이 있어 전국각지에서 찾아오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천안과 가까운 지역에는 아파트 단지들이 조금씩 건설되면서 인구가 늘고 있다. 아파트들이 계속해서 건설되고 있고, 새로운 산업단지와 배후시설이 지속적으로 개발계획이 생겨나고 있다.
♤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신갈리
천안의 서북구지역에 직산이라는 지역이 있다. 직산은 왕이 오가고 암행어사가 자주 방문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직산에는 직산사산성, 직산현관아, 온조왕사당, 직산향교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마한은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의 54개 소국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이곳 직산에 있던 마한 소국이었던 목지국의 우두머리를 진왕이라고 불렀다. 직산현관아는 조선시대의 관청으로 직산이라고 불리게 된 시기는 고려시대이고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이곳에 직산현관아를 세우게 된다. 직산은 작은 마을이지만 천안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지리적인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직산의 옛 지명은 위례성이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남쪽으로 와서 도읍을 열었다고 하는 시(詩)를 조선시대 문인이었던 대제학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이렇게 읊었다.
백제가 남긴 터에 잡초만 무성한데
나 감개에 젖어 안타까워 한다.
다섯 용이 쟁패를 부리던 시대는 지나갔을지라도
위례성 두 봉황의 울음소리는 남아있는 듯 하는구나
온조 사당은 단풍 우거진 곳에 깊숙하게 자리 잡았는데
성거산을 감싸고 푸른 구름이 비꼈어라.
그러나 ‘위례성 직산설’을 반론한 이가 있는데 조선시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저술한 『아방강역고』이다. 다산 선생은 “위례성은 이곳이 아니고 삼각산 동쪽이다” 주장하였다. 위례성은 현재 서울의 풍납토성이 가장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는 곳이다. 직산의 옛 지명이 위례성이기는 하지만 백제의 도읍지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후 직산은 사산현이 되고 고려시대에 비로소 직산이란 지명이 되었다. 이곳은 지형이 높아 천수답이 많고 가뭄으로 피(稷)가 많아 피산으로 부르다가 직산으로 바뀌었다.
♤ 시계/ 읍면리계/ 삼리봉(아산시 음봉면 산동리, 천안시 직산읍 신갈리 → 마정리)
도로 옆에 묘지가 있는 조그만 봉우리이다. 공단2교차로에서 왼쪽 도로를 따라 마정공단으로 향한다. 제이스텍공장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에스에프이노텍 경비실 뒤쪽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지맥의 오른쪽이 천안시 직산읍 신갈리→마정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미륵산(彌勒山, 185.7m)/ 강모산(康母山)/ 시계/ 구면리계/ 삼각점봉
오른쪽으로 약 50m 다녀와 왼쪽으로 진행한다. 준희선생님 산패와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90도 좌틀로 내려선다.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신갈리와 음봉면 산동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지만 정상은 그냥 밋밋하고 아무런 표식조차 없고 선답자의 시그널이 수두룩 하게 정상을 지키고 있다. 강모산이라는 어머님의 강녕함을 기리는 효심이 깃든 이름인데 일제강점기의 지도에는 별도의 이름이 없고 미륵산/ 미력산이라는 지명이 있을 뿐이다.
♤ 가시당고개(115m)/ 서낭당이고개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마정리와 아산시 음봉면 산동리를 잇는 고개이다. 북한산성에 가사당암문이 있는데 혹시 가사당고개는 아닐까? 가시버시와 관련이 있을까?
안부 오른쪽 약 30m에 가까이 있어 다녀와도 되겠습니다.
♤ 충장사(忠壯祠)
충장공 황세득(黃世得: 1537~1598) 장군을 모신 사당으로 자는 사구, 본관은 성주, 충남 직산에서 살았다. 이순신의 처종형으로 1537년(중종 32)에 났으니 이순신보다 8세 위다. 1564년(명종 19)에 무과에 급제하여, 1594년(선조 27)에 장흥부사, 1596년(선조 29)에 사도첨사가 되어 통제사 이순신의 휘하가 되었다. 황세득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과 더불어 왜군을 격파했으며 여수지맥 순천 왜교성 전투에서 명량해전 당시에 바다로 나갔다가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과 작전중 왜군의 집중 사격을 받아 전사했다. 1704년(숙종 30) 직산읍 선비들의 상소로 시호 충장공과 함께 호조참판을 증직하였으며, 정려문을 하사하였다. 오늘날 성주황씨의 시조이며, 1988년 신도비를 묘역에 세웠다.
♤ 160.9m봉
강모산에서 내려섰다 올라선 안부로 안부 오른쪽에 충장사가 보이고 160.9m봉에는 선답자 띠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용와산 아래로는 고속철이 통과합니다. 용와산을 내려서면서 지맥의 오른쪽이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마정리→아산시 음봉면 쌍암리로 바뀌며 천안시와 이별하고 지맥의 좌우 모두 완전하게 아산시 음봉면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 용와산(龍臥山, 238.6m)/ 3등삼각점(평택 315 재설/ 76. 8 건설부)/ 시계/ 구면계/ 삼리봉(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마정리, 아산시 음봉면 산동리 → 월랑리)
용와산 오름길에 전에는 맨발대선배님의 '힘힘힘' 격려산패 있었는데 천왕봉운영자님의 격려산패로 바뀌어 참나무에 매어 있고, 정상에는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으며 조망은 나오지 않는다. 천안시 직산읍 마정리와 아산시 음봉면 월랑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풍수설에 의하면 이 산의 형세가 용와형(龍臥形)이라 하여 용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산중에는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순절한 장열공(狀烈公) 황박(黃珀)장군의 묘와 임진왜란의 공신 충장공(忠壯公) 황세득(黃世得)장군의 묘가 있다. 왼쪽의 아산시 음봉면 월랑리는 1,2리가 있는데 월랑1리는 동으로는 용와산, 서로는 연암산이 있으며 남으로는 월랑저수지가 있는 앞이 트인 아늑한 마을이다. 마을에는 고인돌이 하나 있으며 달이 밝은 마을이라 월랑리라 한다. 월랑2리는 일명 장수마을로 용와산 줄기를 이어받은 산세에 자리잡은 마을로 용의 꼬리 부분에 해당되며 용이 하늘로 오를 때 힘차게 차고 오른다하여 ‘길 장(長), 물 수(水)’를 써서 장수마을이라고 부른다. 33번 송전철탑을 지나고, 용와산 내려서는 길이 여름에 가시나무 잡목으로 고약하다. 헤치고 내려서면 넓은 밭이 나타나고 쌍룡고개로 나아간다. 다시 공단으로 내려선다. 쌍암테크노벨리....
♤ 충남 아산시 음봉면 월랑리(月朗里)
월랑리는 동으로는 용화산, 서로는 연암산, 남으로는 월랑저수지가 있으며, 앞이 트인 아늑한 마을로 용와산 고인돌이 하나 있으며 월랑리의 지명은 달이 밝은 마을이라 운중반월형의 명당이 있다하여 월랑이라 한다.
♤ 충남 아산시 음봉면 쌍암리(雙巖里)
신휴저수지가 보이고 자꾸만 도시화가 되어가고 있는 쌍암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왕골, 작은왕골, 큰왕골, 당안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왕골은 쌍암리에서 큰 마을이며 큰바위가 있어서 바윗골, 암골 또는 암리(巖里)로 불리다가 변음이 되어 왕골이라 하며 큰왕골은 왕골 윗쪽에 형성된 마을이라 붙혀진 지명으로 상암리(上巖里)라 부르기도 한다. 작은왕골은 큰왕골 북쪽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암리(下巖里)라 부르고 있다. 당안은 작은 왕골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에 당집이 있어서 붙혀진 지명이다.
쌍룡고개에서 직진하니 오른쪽으로 숭모당 묘지가 보이고 그대로 직진하여 공장 왼쪽 담장 바깥쪽을 따릅니다.
♤ 쌍룡고개/ 25번국도(월암로)/ 삼리경계면(아산시 음봉면 월랑리, 쌍암리 → 쌍룡리)
충남 아산시 음봉면 월랑리와 쌍암리를 잇는 2차선도로로 큰 사거리이다. 고갯마루에 신화산업전기(주) 회사가 있다. 아산에서 성환으로 이어지는 25번도로가 지나가며 오른쪽으로 쌍암테크노밸리산업단지가 있다. 원래 지맥은 수산특장이라는 군납특수중장비제작업체(상장업체) 공장을 지나 덤불을 헤치며 사면치기로 올라야 하나 왼쪽으로 팬스를 통과하여 연암산 등산로를 찾아 오르면 된다. 길건너 송전탑 건설로 생긴 임도를 따라 간다. 맞은편 도로로 올라서서 공장지대 울타리를 넘나들며 지나는데 난해하다. 공장이 마루금을 차지해 왼쪽으로 넓게 우회하여 연암산등산로로 진입해야 한다.
♤ 충남 아산시 음봉면 쌍룡리(雙龍里)
아산시 음봉면에 위치한 쌍용리는 용 두마리가 동네를 감싸고 있어 쌍용리라 했다고 한다. 마을 남서쪽에 용마산이 자리하며 자연부락으로는 건너자핫골, 용골, 자핫골 마을이 있는데 건너자핫골 마을은 자핫골 건너 아랫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혀진 지명이며 용골마을은 마을 뒤 연암산 기슭에 용바위가 있다고 하여 붙혀진 지명이다. 자핫골 마을은 상룡이라고도 부르며 용골 윗쪽에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쌍암사갈림길을 지나 올라선 월랑리갈림길 삼거리입니다.
♤ 251.2m봉/ 삼거리
쌍암사갈림길 전에 수산세보틱스아산공장이 지맥을 가로막고 있다. 쌍암사갈림길부터는 길이 좋고 이정표가 서있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높이 매어 있다. 왼쪽은 월랑초교로 가고 지맥은 우틀이다.
♤ 개안암갈림길/ 사거리쉼터/ 삼리경계면(아산시 음봉면 쌍룡리, 월랑리 → 동암리)
개안암갈림길에서 지맥의 왼쪽이 음봉면 월랑리→동암리로 바뀌는 삼리경계면이다. 지맥은 우틀이다. 251.2m봉을 지나서 운동기구가 있는 쉼터가 나오는 삼거리인데 왼쪽은 개안암으로 가고 지맥길은 우틀하여 봉수대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삼거리 중간에 연암산 안내판이 있다.
♤ 충남 아산시 음봉면 동암리(銅岩里)
음봉면 동암리는 마을 동쪽에 구리바위가 있어 붙혀진 지명이며 만리산, 말미산 등이 낮은 산지를 형성하여 골짜기가 발달해 있으며 동암저수지가 있어 저수지 수로를 따라 논이 분포해 있고 자연마을로는 대동, 새터말, 주막거리 등이 있다. 대동은 동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옛주초와 기와조각으로 대가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새터말은 동암 남서쪽에 새로 터를 잡아 이룩된 마을이라 새터말이라 불린다. 주막거리는 대동 앞에 위치한 마을이며 마을에 주막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개안암갈림길에서 연암산 동봉(275m)으로 오르며 지맥의 오른쪽이 아산시 음봉면 쌍룡리→소동리로 바뀝니다.
♤ 연암산성(燕巖山城)/ 연암산봉수지
충남 아산시 음봉면 소동리와 동암리, 쌍용리 일원에 있는 연암산 동봉과 서봉에 걸쳐있는 산성으로 정상에는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산성의 축성 연대로 보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고려시대까지는 이곳의 지역을 방어하는 산성으로 북방에서 내려오는 세력을 견제하는역할을 했고, 조선시대에는 성 안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연암산 동봉(275m)이다. 연암산 정상부에 석축(石築)으로 된 산정식 산성(山頂式 山城)이 있는데 연암산 정상부분은 두개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데 해발 292.7m의 서쪽 봉우리와 해발 275m의 동쪽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다. 산성은 동쪽 봉우리에 축조되어 있고 둘레는 약 450m 정도로 추정된다. 성벽은 대체로 붕괴되어 흔적만 남기고 있는데 이 중 남벽과 동벽은 석축(石築)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남벽부의 일부 구간은 제법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여기에는 20㎝ ×50㎝의 자연할석으로 축조하였다. 높이는 약 180㎝ 가량 되었다. 성의 내부는 대체로 북고남저의 지형이다. 남쪽 부분에 평탄지가 있어 건물지였을 가능성도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지형상 이곳에 성내의 물을 처리하는 수구지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한편 성안의 동쪽부분에는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여지는 석축의 봉수대가 남아 있다. 둘레가 약 50m 가량 되는 원형의 봉수대로서 높이 1m 70㎝ 가량이 남아 있는 부분도 있다. 이 산성으로부터 북방으로는 낮은 구릉과 평야지대가 펼쳐지고 있어 북방에 대한 시계가 양호하다. 연암산 봉수대는 남쪽으로 30여리 떨어진 천안군 풍세면 삼태리의 태학산 봉수대의 봉화를 이어 받아서 북쪽으로 25리 떨어진 평택 망해산 봉수대에 전달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아산현 봉수조(牙山縣 烽隨條)에 오암산봉수남응천안군대학산북응직산현망해산(烏岩山烽燧 南應天安郡大鶴山北應稷山縣望海山)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 산성에서 서쪽으로는 성내리산성, 동쪽으로는 용와산성이 같은 산줄기 상에 조밀하게 분포되어 상호연락이 가능하며, 성의 주향으로 보아 북방으로부터의 적에 대비하였던 산성이었다. 아산 지역의 영인산성, 꾀꼴성, 물한산성 등과 함께 관방유적(군사 방어 시설)의 하나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유적이다.
연암정에서 바라보는 가야할 국사봉 능선에는 송전철탑이 다량 심어져 있고, 멀리 둔포 팽성이 공단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 연암정(燕巖亭)/ 육각정
봉수대 오른쪽에 연암정이 있다. 연암(燕巖)이란 “제비 연(燕)에 바위 암(巖)”인데 제비들이 바위에 둥지를 틀었다고 해서 연암이라 불렀다는 속설이 있고 또 다른 설은 과거 장수와 한 여인과의 사랑에 대한 전설이 있어서 불렀다는 속설이 있다. 옛날 음봉 땅에 부모를 오랑캐에게 잃은 한 처녀가 살았다. 그녀는 이곳을 지키는 장수와 사랑에 빠졌는데, 오랑캐가 다시 쳐들어오자 그 장수도 오랑캐와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처녀는 부모와 정인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오랑캐 주둔 부대에 나아가 적장의 침실봉사를 자원하여 마침내 적장을 암살하였으나 처녀도 역시 살해되고 말았다. 적이 물러간 후 마을에서는 그 처녀와 정인을 합장해 주었는데, 그 무덤에서 제비 한 쌍이 나와 이 바위에 둥지를 틀었으므로 그 바위를 제비바위라 부르게 되었으며, 산 이름도 연암산이 되었다고 한다.
산성(연암정)에서 정상까지는 약 8분(0.5km), 정상으로 향하며 멀리 어금니 모양의 영인산을 확인합니다.
♤ 연암산(燕巖山, 292.7m)/ 정상석, 사각정자, 산불감시카메라/ 4등삼각점(평택 444/ 79. 4)
아산시 음봉면 동암리와 소동리의 경계인 연암산 정상은 두개의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다. 해발 292.7m의 서쪽 봉우리와 해발 275m의 동쪽 봉우리에 둘레 약 450m의 연암산성이 축조되어 있으며, 성안의 동쪽 부분에 원형의 봉수대가 아직도 남아 있다. 정상에는 삼각점과 산불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국립지리원에서 세운 삼각점 표시가 있다. 북방으로는 구릉과 평야지대가 펼쳐져 시계가 양호하고 동쪽으로는 용와산성, 서쪽으로는 성내리산성이 조밀하게 분포되어 상호 연락이 가능한 군사적 요충지로 북방으로부터 적에 대비하였던 산성이며, 산봉우리에 있는 큰 바위에 제비들이 둥지를 지었다하며, 둥지를 지었던 바위를 연암이라 하고 그 바위가 있는 산을 연암산이라 한다. 지맥은 좌틀이다.
대제학 묘지로 내려서기 직전 212m봉에서 지맥의 왼쪽이 아산시 음봉면 동암리 → 송촌리로 바뀝니다.
♤ 소동리 갈림길/ 삼리경계면(아산시 음봉면 송촌리, 소동리 → 원남리)
왼쪽으로 통훈대부 덕수장공 묘지에서 광덕산 원경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 한양조공 묘지에서 편한길을 따라 내려오니 왼쪽으로 약수터(140m) 가는 임도가 나오는데 이곳이 소동리 갈림길이다. 오른쪽 내리막길이 소동1리 방향인데 지맥길은 직진이다. 소동1리(동리 마을)는 중리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며 소동리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다. 연암산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전답에 가뭄과 토질이 안좋아 들판에 소를 많이 매어 놓았던 유래로 소동으로 이름지어졌으며 동리라는 유래는 소동2리 자연부락 이름인 중리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이름 지었다고 한다. 가족묘지를 지나자마자 직진으로 길이 좋아 알바하기 쉽다. 곧바로 좌틀하고 임도따라 여우고개로 내려서야 한다.
♤ 아산시 음봉면 원남리(院南里)
옛날 한양으로 다니던 길목으로서, 신창읍치에서 곡교천을 건너 곡교리를 지나면 음봉천을 따라 동북쪽으로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은 지금의 음봉 소재지인 삼거리를 지나 어르목고개(於羅項)를 넘어 둔포로 길이 이어졌다. 어루목고개를 넘자마자 원남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원남리는 '원의 남쪽 마을'이라는 뜻으로 요로원(要路院)의 남쪽 마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박두세의 <요로원야화기>로 유명한 요로원이 바로 이곳에 있었는데 지금의 음봉면 신정리 1구이다.
아산시 음봉면 원남리와 송촌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입니다.
♤ 여우고개(125m)/ 3번군도
낙석방지철망 기둥에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가 묶여 있다. 아산시 음봉면 원남리, 소동리와 송촌리, 동암리를 잇는 연암산 북쪽에 위치한 구릉지대로, 옛날에는 인가가 별로 없는 한적한 고개였기에 여우가 많이 나타나 여우고개로 불리게 되었다. 원남리 부근의 여우골(狐洞)이라는 지명도 이 지역에 여우관련 설화가 많았음을 뒷받침 한다. 여우골이란 여윈비가 여우비로 변이되었듯이 넓지 않고 좁은 골짜기, 가늘고 여읜 골짜기의 의미로 여읜골이라 하다가 여의골, 여우골로 변이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또한 '산길이 넓지 않고 좁은, 가늘고 여윈(살찌지 않은) 길이 나 있는 작은 고개'라는 뜻으로 '여윈고개'라 부르다가 '여우고개'가 생겨났다면 '여우고개' 인근의 마을은 자연스럽게 '여우골'이 되지 않을까? 절개지 위에서 왼쪽으로 내려서서 맞은편 전봇대 뒤 절개지로 올라서서 철책을 따른다. 고개 정상에는 (주)파인디앤씨라는 공장이 자리를 잡고 있어 철조망을 따르다 헤어진다. 이 고개에서 왼쪽으로 조금 가면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에 윤보선 대통령의 묘소가 나온다. 공장 옆으로 진행해야 하나 약간 우회를 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약수터가 있었다는데 그게 밭농사용 수도꼭진가 보다.
♤ 해위(海葦) 윤보선대통령묘소/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대한민국의 정치인, 독립운동가. 윤웅렬, 윤영렬 형제를 필두로 구한말에 유력 가문으로 떠오른 해평 윤씨 집안 출신이다. 윤영렬의 차남인 윤치소의 장남으로, 윤치호가 당숙, 윤치성과 윤치영은 숙부이다. 1915년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잠시 활동하다가 탈퇴하고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로 유학을 다녀왔다. 그래서 당시 별명이 "영국 신사" 대한민국 헌정 사상 유일한 의원 내각제 정부의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5.16 군사정변으로 장면 내각이 붕괴한 후에도 1년간 대통령직을 유지하였으나, 1962년 3월 대통령직을 하야하였다. 이후 국회의원으로서 야당을 이끌었으나 1980년에 정계에서 은퇴하였고, 1990년 7월 18일 사망하였다. 충남 아산군 출신으로, 호는 해위(海葦)이다. 에든버러 대학교 고고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충남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윤보선 전 대통령의 선영에 위치하고 있다. 선영의 맨 윗 쪽에 윤보선 전 대통령의 묘소가 마련되어 있고 그 아래로 그의 고조부~부친의 묘소가 마련되어 있다. 1990년 7월 18일 윤보선 전 대통령이 자택에서 사망하여 이곳에 안장되었으며 1997년 11월 24일 아내인 공덕귀가 사망하여 합장되었다. 온양온천역에서 아산시 간선버스 240번을 타고 동천2리에서 내리면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입구에는 비각이 존재하며 비각의 내부에는 윤보선 대통령의 조상들의 공덕비가 있다. 비각에는 우횡서로 國泰民安(국태민안), 敬天孝親(경천효친)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비각의 오른쪽에는 묘소로 가는 계단이 잘 닦여 있어 길만 따라가면 묘소에 도달할 수 있다. 무덤의 정면에는 큰 비석이 있는데 전면에는 '대한민국대통령 해위윤공보선지묘 배권사공덕귀부좌(大韓民國大統領 海葦尹公潽善之墓 配勸士孔德貴祔左)'라고 쓰고 후면에는 윤보선 대통령의 생애가 쓰여있다. 이 비석은 2000년 7월 장남 윤상구의 주도하에 세워졌으며 글은 조카 이기종이 다듬고 글씨는 여초 김응현 박사가 쓰고 비석의 형태는 차남 윤동구가 설계하였다.
♤ 부활의동산
천주교묘지이다. 가야할 둔덕산에 송전철탑이 여럿 심어져 있고, 묘지에서 맞은편으로 물한산(284.5m, 수한산(水漢山)이라 부르기도 한다)이 보이는데 여기서는 보이질 않지만 그 너머로 꾀꼬리산(270.6m)이 있다. 야트막한 산이긴 하지만 물한산성과 꾀꼴산성이 연결되어 있는데 1,500여년 전에 축성된 백제시대에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던 곳이다.
♤ 송촌동물이동통로/ 세종-평택-화성 43번고속국도
절개지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동물이동통로이다. 동물이동통로를 건너 직상은 가파른 급경사이고 왼쪽으로 100m 가면 계단길이 나온다. 약 30분을 올라서면 둔덕산이다. 2014년도 경 영인을 하신 선배님들은 고속도로 공사로 깊은 절개지를 오르내리셨다고... 43번국도는 아산방조제 위에 있는 평택대교를 건너 이리로 온다.
남쪽으로 물한단맥이 분기하는 지점입니다.
♤ 둔덕산(屯德山, 226.2m)/ 삼리봉(아산시 음봉면 원남리, 송촌리 → 삼거리)/ 폐헬기장
아산시 음봉면 원남리와 삼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예전부터 산세가 둔덕처럼 낮고 평평하게 이어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둔덕산 기슭에서 발원한 물은 흑천(黑川, 거무내)을 이루어 둔포천으로 합류한다.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높이 매어 있고 반바지운영자님, 대구마루금 고한현우대장님 코팅지산패도 있다. 밋밋하고 두리뭉실하여 지나가기 좋은 산이다. 둔덕산을 내려서며 가야할 국사봉에서 금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이며 오른쪽 아래로 원남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三巨里)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는 음봉면의 행정 및 교통의 중심지로, 과거부터 길이 세 갈래로 나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아산시 중부 둔덕산 기슭에 위치하며, 북으로 평택, 남으로 예산·당진, 동으로 천안을 잇는 교통 요지로 이동이 편리한 교통의 중심지이다. 면사무소와 이순신 장군 묘소가 위치하고 있다.
♤ 어르목터널 상단/ 음봉터널/ 45번국도(충무로)
안부사거리이다. 왼쪽길은 뚜렷한데 오른쪽 길은 묵어 있다. 45번고속도 음봉터널 위로 송전철탑 건설로 훼손된 산림을 복원 중이다.
♤ 158.1m봉
NO11/12 대형 송전철탑이 지나가는 곳인데 정상은 잡목만 무성하다. 이곳에서 어르목고개 내려가는 등로 가운데는 음봉배수지가 가로막고 있어서 송전탑 왼쪽으로 울타리를 따라 아랫쪽으로 우회해서 내려가야 한다. 계속 울타리 철망을 따른다.
국사봉 오름길 이정표가 있으며, 45번국도가 지나나 바로 옆에 터널이 생겨 지금은 한산한 도로가 되었습니다. 왼쪽 음봉으로 내려서면 이충무공묘소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 어르목고개/ 어라항고개(於羅項)/ 45번국도(음봉면로)/ 음봉배수장
배수지 맞은편 평강채씨 판서공파 묘원으로 가는 임도로 올라선다.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와 원남리를 잇는 고개로 45번도로가 지나가며 음봉배수지와, 안산김씨 효열비가 고개 양 옆에 있다. 국수봉에 이어진 산세를 사람으로 치면 어르목고개가 무릎에 해당되는데 이순신장군의 묘소 뒷산인 국수봉에서 큰 인물이 난다하여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산을 파헤쳐 길을 만들어 무릎을 끊어놓아서 기맥의 기운이 흘러나와 음봉 국민학생 사이에 문둥이가 나온다 여우가 나온다 등 온갖 괴소문이 난무하던 고개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조선시대 명종때 임꺽정이 이곳에 웅거하며 조정으로 가는 곡물이나 진상품을 털었으므로 민초들이 어울려서 넘었다해서 어르목 또는 어라항(於羅項) 고개라 불렀다고도 한다.
♤ 어라항산성(於羅項山城)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와 원남리 경계에 있는 어리목고개(어라항) 서쪽 산에 돌로 쌓은 석성(石城)으로, 조선시대 기록에 따르면 둘레가 364척, 높이가 10여 척 규모였다. 어리목고개의 이름을 따서 어라항산성 또는 어리목산성으로 불렸다. 국수봉 부근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직산현(현 천안시 직산읍)의 망해산과 봉수 신호를 주고받던(약 25리 거리) 전략적 요충지였다. 조선시대 아산현의 주요 고적(古蹟) 중 하나로 언급되나, 현재는 유적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거나 인근 어라산, 어리목고개 등 지명으로만 그 위치가 전해진다.
평강채씨 가족묘를 오른쪽에 두고 왼쪽으로 오른다.
♤ 평강채씨 판서공파 묘원
평강 채씨는 강원도 평강군이 본관인 대한민국의 성씨이다. 전국에 약 8만 5천 명 정도가 거주한다. 다른 채씨들과 비교해도 평강 채씨가 많고, 다른 채씨들도 평강 채씨에서 분가했다. 평강 채씨의 원시조 채경연은 고려의 개국공신이다. 평강 채씨(平康蔡氏)의 중시조 채송년(蔡松年)은 1230년 최향의 난이 일어나자, 병마사로 이를 평정하여 대장군에 올랐고, 그 후 금자광록대부로 태사, 문하시랑평장사, 상호군 등을 거쳐 태자태사에 이르렀다. 그의 맏아들 채정(楨)이 중서시랑평장사로 평강군에 봉해졌고, 둘째 채자화(子華)는 문하시랑평장사, 상장군, 판이부사 등을 지냈으므로, 후손들은 본관을 평강으로 삼아 가문을 이어왔다. 평강 채씨의 집성촌은 대표적으로 전북 군산시 대야면, 서수면, 개정면 일대와 전북 순창군 일대, 충북 진천군, 전북 고창군, 강원도 인제군 등이 있다. 소감공파와 목사공파가 대표적이다. 이렇듯 주로 전라도, 특히 전북에 주로 분포한 성씨이다.
산패는 아무리 둘러봐도 없습니다. 평상이 있는 쉼터에서 영인산을 바라보는 전망대가 있군요.
♤ 국사봉(國師峰, 222.8m)/ 쉼터, 산스장/ 4등삼각점(평택 446/ )/ 삼리봉(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원남리 → 신정리)
222.5m봉을 내려서면서 지맥의 오른쪽이 아산시음봉면 원남리→신정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예전에 대구마루금 고한현우대장님의 국사봉 코팅지가 걸려 있었다.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높이 매어 있다. 조금 지나면 쉼터와 체육시설이 보인다. 약 30분 진행하면 또 국사봉이 나온다. 정상에는 삼각점과 삼각점 표지판이 있고 표지판 기둥에 여영대선배님의 222.8m봉 산패가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아산시의 모든 이정표에는 이곳을 국사봉이라 설정하고 있고 대다수의 많은 산꾼들이 이곳을 국사봉이라 하는데 영진 1/50000의 지도에는 다음 봉우리를 국사봉이라 해서 조금은 혼란스럽다.
♤ 음봉면 신정리 갈림길
음봉면에 속해있는 마을로서 대부분이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마을 가운데 커다란 신정저수지가 있고 자연마을로 대정리, 신리, 요란, 장골마을이 있다. 대정리는 장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요란장이 섰을때 대장간이 있었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며 신리는 요란마을 옆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붙혀진 이름으로 요란과 신리는 한 마을이 됐다. 요란은 신정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옛날에 요로원이 있었다고 하여 요로원 또는 요란으로 불리고 시장이 있어서 요란장이라도 불렀다고 한다. 장골은 요란 남서쪽 안골짜기에 있는 마을로서 신정리 월추산성터가 있다.
북으로 고용단맥이 분기해나가는 지점입니다.
♤ 국사봉(國師峰, 222.8m)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와 신정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조금 전에 지나온 개념도상의 국사봉이 있었고 아산시에서 설치한 이정표도 지나온 곳을 국사봉이라 했는데 맨발대선배님은 이곳을 국사봉이라 표기를 해놨다. 영진 1/50000의 지도에는 여기가 국사봉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도는 225m로 표기가 되어 있다. 국사봉이란 지명은 전국에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국사봉의 ‘사’자를 사(思), 사(事) , 사(師), 사(祀), 사(祀)등 여러가지로 쓰고 있으나 한자의 자의(字意)는 별 의미가 없다. 국사봉의 ‘국사’는 대개 무속사회의 ‘굿’ 발음이 비슷한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영인지맥상의 어라산(214m)과 이충무공묘소 뒷산인 어라산(123.6m)과는 동명이산입니다. 거기서 거기로 약 0.7km 길이 이어지니 여기도 어라산이라 퉁친 것도 같고...
♤ 어라산(於羅山, 214m)/ 쉼터/ 삼리동봉(아산시 음봉면 신정리, 삼거리 → 산정리)
국사봉에서 내려섰다 올라선 봉으로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와 신정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정상에는 이정표(← 국사봉 900m →금산 2340m)와 벤취가 있으나 정작 어라산의 표식은 없다. 어라산의 북동쪽으로는 국사봉이 있고, 북서쪽으로는 금산이 자리하고 있다. 금산과 국사봉은 아산의 북쪽에 동서 방향으로 발달한 산지인데, 이 산지의 남동쪽 말단에 있는 높이 123.6m의 낮은 구릉에 해당한다. 이 구간 이정표에는 10m 단위까지 표시를 해놓고는 정작 정상에는 그 어떤 표시도 없으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이충무공의 묘지가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영춘편에 ‘어라산은 현 서쪽 58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라산에서 내려선 안부로, 지맥이 성내고개로 내려서기 직전에 영인면과 처음 만나는 지점입니다.
♤ 성웅 이순신장군묘소/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어라산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성웅 이순신장군의 묘지가 나온다. 지맥의 오른쪽이 아산시 음봉면 신정리→영인면 성내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충무공 이순신은 1545년 4얼 28일 서울 남산 아래 건천동에서 태어나 외가가 있는 충남 아산 염치읍 백암리로 내려와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성장했다. 젊어서는 아산의 유력가문 상주 방씨에게 장가들어 살았다. 32세 무과에 급제한 후 아산을 떠나 관직 생활을 하다가 1598년 12월 16일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후 유해는 고금도에 모셨다가 1599년 아산 금장산(아산 음봉면 산정리)에 안장하였고, 다시 16년 후인 1614년 현재의 묘소인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에 묻혔다. 그의 사후 뜻있는 선비들이 그가 살던 집 근처에 현충사를 짓고 제향을 지내면서 그의 충절을 기리는 전통이 확립됐다. 현충사는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1706년 충청도 유생들은 충무공 이순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건립했고, 1707년 숙종으로부터 현충사(顯忠祠)라는 사당의 편액을 하사받았다. 현충사는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폐됐다가 1930년대 초에 중건됐다. 1931년 국내에서 활동하던 민족운동 지도자들은 신간회가 해체된 후 새로운 민족운동의 방법으로 민족문화 보존운동을 추진했는데, 그 핵심이 이충무공 유적보존운동이었다. 1931년 5월 ‘이충무공유적보존회’를 조직한 민족운동 지도자들은 동아일보와 함께 현충사 중건 운동을 전개하면서 성금을 모금했다. 이렇게 모은 성금을 기반으로 현충사가 중건됐고, 영정이 새로 제작됐다. 1932년 6월 5일 아산에서 현충사 낙성식과 영정 봉안식이 거행됐는데, 강원도·경상도·충청도·전라도 등 전국 각지에서 약 3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운집했다. 이렇듯 국내 민족운동 세력은 항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아 재결집해 독립의지를 재확인했다. 정부에서는 1957년부터 현충사를 사적 제155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현재의 현충사 건물은 1960년대 성역화 사업으로 경내가 확장된 후 현재의 자리에 새롭게 건축한 것이다. 현충사 경내에는 이순신이 살았던 본가의 고택이 있는데, 원래 월곡(月谷)이라 불리던 곳이었다. 처가인 상주 방씨 집이었는데, 부인이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의 무남독녀여서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아 살게 됐다. 이순신은 결혼 후 문과에서 무과로 바꾸어 공부했는데, 본가 바로 앞 은행나무 아래에서 활쏘기 훈련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2011년부터는 현충사 앞에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을 새로 지어 이순신 관련 자료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재는 국보 제76호로 지정된 『임진장초』·『난중일기』·『서간첩』이다. 『임진장초』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1592년 4월부터 1594년 1월까지 조정에 올린 장계 즉 공문을 모아 놓은 자료이다. 이순신은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 임진왜란 7년 동안 매년 1권씩 일기를 썼는데, 임진·계사 등 간지를 써서 연도를 구분했다. 정조 때 『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며 일기를 하나로 묶어 간행할 때 『난중일기』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지금까지 『난중일기』로 불리고 있다. 『임진장초』와『난중일기』는 임진왜란 시기 이순신의 활약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인데, 전자가 공식적인 기록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순신의 개인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서간첩』은 이순신이 친척들에게 보낸 편지 여섯 편을 모은 것이다. 이 편지 속에는 자신이 지키고 있는 호남 지역이 국가를 지키는 보루라고 여기고 한산도에 진을 쳤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충무공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확고한 사명감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충사 이외의 이충무공 사적지로는 이충무공 묘소가 있다. 묘소는 현충사에서 북쪽으로 9㎞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고룡산로 어라산에 있는데, 조상들의 묘와 함께 있다. 본래 충무공은 1598년 순국한 후 전남 완도의 고금도에 모셔졌다가 1599년 2월 아산의 음봉면 산정리 금산 동남쪽에 옮겨 모셔지고, 1614년 현재의 위치로 이장됐다. 이 지역은 이순신의 외가 초계 변씨의 땅이었는데 이순신 집안의 선산이 됐다고 한다. 아산에서 이충무공 유적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게바위 나루터로, 인주면 해암리 곡교천 하류에 위치해 있다. 이순신은 1597년 4월 백의종군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와 아산 본가에서 묵고 있던 중 여수에서 아들을 보기 위해 배를 타고 오던 어머니의 부음을 듣게 됐다. 이에 급히 게바위 나루터에 가서 배에 올라 어머니의 시신을 입관하고 본가로 모셨다. 효심이 지극했던 이순신은 백의종군 중이어서 어머니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남쪽의 근무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큰형을 비롯한 집안 어른들을 일찍 여의어서 이순신은 어머니와 함께 집안 식구들을 돌보야만 했다. 이순신은『난중일기』에서 어머니를 ‘천지(天只)’라고 불렀는데, 이는 『시경』에서 따온 말로 ‘오직 하나 뿐인 하늘’이라는 뜻이다. 그는 임진왜란으로 인한 국가와 가족의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만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졌는데, 어머니는 그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게바위는 백의종군하는 죄인의 처지에서 어머니를 잃고 장례도 치르지 못한다는 탄식과 아픔을 전하고 있다. 한반도를 인체에 비유한다면 아산은 바다가 내륙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아산만을 끼고 있어 생명의 탯줄이 있었던 배꼽 부위에 해당된다.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에서 아산을 ‘동남(東南)의 길방(吉方)’이라고 했는데, ‘학문과 시문에 뛰어난 현달한 선비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산은 세종대의 명재상 맹사성(孟思誠), 과학자 장영실(蔣英實), 이몽학의 난을 진압한 홍가신(洪可臣),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제창한 이간(李柬), 19세기 산림(山林) 유학자 임헌회(任憲晦), 대통령 윤보선(尹潽善) 등 수많은 역사인물을 배출한 민족문화 발전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음봉면소재지와 고용산, 성내저수지가 있는 영인면 성내리를 연결하는 고개입니다.
♤ 성내고개(115m)/ 2차선도로(고룡산로)/ 면계(음봉면 - 영인면)/ 인가
충남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와 음봉면 산정리의 경계로 2차선 도로이다. 왼쪽 낙석방지용그물망 끝으로 가서 철계단으로 옹벽을 올라선다.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 산패가 낙석방지철망 기둥에 매어 있다. 지명유래는 성내마을에 따온듯 하며 성내리는 대분분의 지형이 나즈막한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관계용수가 풍부하여 논농사가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자연마을로는 안골, 서촌말, 쇠재 등이 있는데 안골은 성내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금산의 북쪽 안에 있다고 붙혀진 지명이며, 쇠재는 금산 밑에 마을로 질그릇점이 있으며 철이 생산되었다고 해서 쇠재라고 불린다. 촌말은 성내리의 서쪽에 있어서 붙혀진 지명이다. 고개를 가로질러 민가 옆으로 올라 등로로 접어든다.
♤ 성내리산성(城內里山城)
성내리산성은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 3리 마을 뒷산의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는 산성으로 아산 지역에서는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는 산성이다. 성은 2㎞ 쯤 떨어진 고용산에서 동남쪽으로 발달한 지맥의 동남쪽 맨 끝단에 솟아오른 봉우리를 에워싸면서 축조되었다. 산성 소재지 인근 주민들은 월주산성(月柱山城)으로 부른다. 월주산 정상 서쪽 100여m 지점이 영인면과 음봉면, 둔포면이 만나는 지점이다. 서쪽 2㎞ 지점에 고용산(高聳山)이 있고, 남쪽 약 2㎞에는 동서 방향의 통칭 영인지맥 산줄기가 병풍처럼 길게 이어져 있다. 성벽 일부가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지만 축성 시기와 경위는 확인되지 않는다. 산성이 축조되어 있는 월주산(月柱山)은 높이 190.5m로 그다지 높지 않으나, 주변 일대에 평야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높게 보인다. 성내리산성에서는 둔포면은 물론이고 안성천과 경기도 평택시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남쪽으로는 전망이 좋지 못한 데 비해 북쪽으로는 멀리까지 조망된다는 점에서 북에서 남하하는 세력을 감시하기 위해 축조한 산성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과 성내에서 발견되는 토기 조각 등을 근거로 막연하게나마 백제시대부터 존속하여 조선시대까지도 일정 정도 기능을 유지하였던 산성으로 추정된다.
♤ 180.5m봉
성내고개에서 약 15분 올라선 봉우리로 장의자가 두개 있다. 등로 아랫쪽에는 청주한씨 가족 납골묘가 보인다.
♤ 도곡재/ 사골고개(155m)/ 면계(영인면 - 음봉면)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있다. 충남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와 음봉면 산정리의 경계인 도곡고개이다. 음봉면 산정리 사골마을 위에 있는 고개로서 가루고개라고도 부르며 사골(삿골) 마을 골짜기에 사기점이 있었다고 해서 사깃골 또는 삿골이라 불리다가 사골로 바뀐듯 하며 조금 오르니 통나무 계단이 나온다.
♤ 사골마을 갈림길
충남 음봉면 산정리는 면의 서부 음봉천의 서쪽에 위치한다. 본래 사정리, 산솟말, 삿골, 나뭇골, 사기리로 이루어졌으며, 산소와 사정의 이름을 따서 산정리라 하였으며, 이충무공 묘소로 유명한 곳이다.
왼쪽으로 영인지맥의 끝머리 입암산의 오른쪽으로 마루금의 종착지 공세리성당이 눈에 들어오고, 원랑산 좌우로 아산만방조제와 아산호가 보입니다..
♤ 금산(錦山, 251.0m)/ 송전철탑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높이 매어 있다. 영인면 일대 성내저수지와 그 뒤로 고용산이 조망된다.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와 성내리, 음봉면 신수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산 위에 돌로 쌓은 성 100여간이 있으므로 ‘성재’라고도 부른다. 1872년 지방지도(아산)에 따르면 일북면 동심산과 수항치 사이에 금산(錦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동쪽인 음봉면 삼거리에 이충무공 산소가 있으며 서쪽은 아산의 옛고을터가 있다. 금산 아래에 있는 영인면 성내리 금성마을은 쇠재라 부르며 옛날 질그릇을 구웠다고 한다. 돌로 쌓은 성터 흔적을 찾아 보지만 잘 보이질 않는다.
♤ 고용산(高聳山, 295.8m)
충남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와 신봉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에는 초목이 별로 없고 돌이 많은 악산(嶽山)으로 들 가운데 솟아 있으므로 사방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용산(高勇山)은 현 북쪽 12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여지도서』에는 “고정사(高井寺)는 지금 못쓰게 되었다. 고용산(高勇山)에 있다”라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1872년지방지도』(아산)에 이북면 동쪽에 고용산(高勇山) 이 표기되어 있으며,『조선지형도』에는 영인면 신봉리와 금성리 사이에 고용산(高聳山)이 한자를 달리하여 기재되어 있다. 한편 고용산은 문헌에 따라 ‘용(勇)’ 용(聳)’ 혹은 용(괟)으로 달리 표기하고 있다. 돌성이 있어서 쇠성 또는 금성으로 다른 이름으로도 표기하고 있다. 또 고용산은 ‘고름산’이나 ‘고령산’의 방언이다. 전설에 의하면 병자호란 때 인근의 주민들이 이 산으로 피난을 하였는데 적병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봉우리로 올라오자 주민들이 돌을 내리쳐서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직전에 독도대선배님 '힘힘힘' 격려 코팅지 산패를 지나왔습니다.
♤ 263.1m봉/ 무인산불감시카메라/ 삼리봉(아산시 영인면 성내리, 음봉면 산정리 → 신수리)
넓은 공터의 산스장으로 평상도 있다. 아산온천 갈림길로 여기서 좌틀로 하산하면 아산온천 바로 옆 모텔촌이다. 지맥의 왼쪽이 아산시 음봉면 산정리→신수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지맥길은 우틀하여 이정표가 가리키는 투구봉 방향이다.
♤ 충남 아산시 음봉면 신수리(新壽里)
충남 아산시 음봉면 신수리에 부처골이라 부르는 골짜기가 있다. 신수리는 아산온천이 위치한 마을이다. 1990년대에 온천이 개발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신수리라는 지명은 1914년 신촌리와 수동을 병합하면서 앞 글자 한개 씩 따서 생겼다고 한다. 이때 수동의 수[禾]를 수(壽)로 바꾸었다. 신수리는 아산시 음봉면의 서쪽 끝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기에 농경지는 많지 않다. 마을 뒤쪽에는 매가 날개를 펴고 있는 형태의 매봉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부처골은 아산온천 뒤편에 해당한다.
좌에서 우로 광덕산-봉수산-도고산-영인산 순입니다. 도고산과 영인산 사이로 290m봉이 보이고 그 사이에 애기업은바위가 있습니다.
♤ 투구봉(胄峰, 300m)/ 전망바위
아산온천의 뒷봉이다. 아산시 음봉면 산수리 방향 아산온천 조망이 트인다. 가야할 영인산으로 지맥길에 송전철탑은 계속된다.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와 신정리에 걸쳐 있는 암릉으로 되어 있는 봉우리로 멀리서 바라보면 투구처럼 보인다고 붙혀진 지명인데 국수봉(國帥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지형도』에는 삼거리와 신정리 사이에 요로원이 있고 그 서쪽으로 국수봉(國秀峰)이 한자를 달리해 나타난다. 국수(國帥)는 나라의 장수를 뜻하지만 대개 국사(國師)가 변하여 국수(國帥)로 부르게 되었다는 견해도 있으며 산에 돌로 쌓은 성이 있어 둘레가 364척, 높이가 10여척이 되는데 어리목 고개에 있는 성이라 어리목산성 또는 어라항 산성으로 불린다.
♤ 아산온천
아산온천은 1987년에 발견되어 1991년에 관광지로 지정 개발되었다. 수질은 중수산나트륨을 포함한 알카리성 온천으로 20여종의 무기질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체감이 매끄럽고 혈액순환촉진, 세포재생촉진작용, 신경통, 관절염, 고혈암, 위장병, 풍, 피부미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변이 야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공기가 맑아 삼림욕까지 겸할 수 있는 곳이다. 아산온천 너머로 무명산이 뚜렸하게 보이지만 지맥길은 아니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동심사방향의 오름길로 올라섭니다.
♤ 286.1m봉/ 면계/ 삼리봉(아산시 음봉면 신수리, 영인면 성내리 → 아산리)/ 산불감시초소/ 4등삼각점(아산 418/ 79. 8. 복구)
투구봉에서 3분정도 내려서면 솧전철탑(NO.29)이 있는 체육공원갈림길이고 체육공원 방향으로 내려서면 곧바로 아산온천스파다. 32번송전탑에서 5분 정도 올라서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무명봉(285m)이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 커다란 송전철탑(NO.30)이 있는 봉우리이다. 정상에 4등삼각점이 있으며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높이 매어 있다. 이곳부터는 삼각점의 도엽명이 평택에서 아산으로 바뀐다. 아산온천지구 숙박지구로 내려선다.
♤ 동심사(東深寺) 갈림길
286.1m봉 지나 1분 정도(0.6km) 걷다가 뚜렷한 임도를 버리고 송전철탑에서 왼쪽의 희미한 등로로 꺽어지는데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지금은 등산로 입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있다. 동심사는 중건한지 겨우 15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천년고찰이라 부른다. 고려 말 원종 원년(1260)에 충렬왕은 세자로 책봉되고 3개월 후 태자비를 맞이하지만 비운의 권력투쟁 속에 그는 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충청도 아주(현 아산시)에 있었던 사찰로서 1279년(충렬왕 5년)에 충렬왕의 장자인 강양공이 들렸다는 절이다. 강양공은 충렬왕의 장자였지만 세자로 책봉되지 못했으며 동심사에 유배되어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절개지에서 왼쪽으로 내려서서 크리스탈모텔을 통과합니다. 봉고차 간이매점을 만날 수도 있고 아산온천스파까지 거리가 1.1km로 배티고개에서 끊을 경우 온천욕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 배티고개(115m)/ 아산리삼거리/ 628지방도(아산온천로)/ 면계(음봉면 신수리 - 영인면 아산리)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산정리, 신수리와 영인면 성내리, 아산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628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도로 오른쪽에는 아산온천지구라 많은 모텔들이 보이고 맞은편에는 아산리가 보인다. 왼쪽으로는 대안학교인 폴앤다니엘 기독학교 이정표가 보이고 그 뒤쪽으로 오른다. 지맥은 도로 건너 높은 산줄기가 아니고, 오른쪽 아래로 보이는 능선이 지맥이다.
39번국도를 통과하려 우회하는 지점에 위치한 봉우리로, 지맥이 음봉면과 헤어지고 염치읍과 처음 만나는 지점이며 여기부터 아름다운골프장 입구까지 영인면과 염치읍과 경계를 따릅니다.
♤ 169m봉/ 삼읍면봉(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음봉면 신수리 → 염치읍 서원리)
39번국도로 내려서기 직전의 송전첩탑이 있는 야트막한 봉우리로 지맥의 왼쪽이 음봉면에서 염치읍으로 바뀌는 삼읍면봉 지점이다. 지맥은 여기서부터 영인산을 내려선 아름다운골프장 입구까지 영인면과 염치읍의 경계를 따른다. 지맥길은 직진이지만 39번국도를 통과하기 위해 지하통로를 찾아 오른쪽으로 시그널이 걸려있다. 39번국도 도로 너머가 지맥길인데 절개지로 내려서기도 어렵고 차량이 너무 많아 도로를 무단횡단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김옥균선생의 유허비가 있는 송하말 굴다리쪽으로 하산한다.
♤ 충남 아산시 염치읍(鹽峙邑)
충남 아산시의 중북부 곡교천을 경계로 북쪽에 위치한 읍으로 남쪽으로 곡교천이 흘러 신창면과 경계를 이루고, 북쪽은 영인산 등의 잔구성 산지가 발달해 있으며 백암리에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현충사가 있다. 현재 염성리·산양리·강청리·서원리·중방리 등 14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본래 아산군 근남면의 지역으로 금곡리·가곡리 등 23개 리를 관할하였다. 『1872년지방지도』(아산)에 근남면으로 표기되어 있고 1911년 원남면의 대동·대서·대중·백암의 4개 리를 합하고 아산군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아남면이라 하였다. 1914년 같은 군 삼서면의 8개 리와 온양군 일북면의 1개 리, 이북면의 3개 리, 서면의 일부를 합하고 염성리의 염치(소금산)의 이름을 따서 염치면으로 고쳤다. 조선지형도에 온양면 북쪽에 염치면으로 기재되어 있다. 1989년 온양시 신동 일부를 편입하였고, 석정리 일부는 온양시에 속하게 되었다. 1990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면 지명이 된 염치는 염성리의 으뜸이 되는 마을로 옛날 이곳까지 소금배가 들어와서 소금을 쌓아두었다는 소금산이 있는데, 일설에는 소금산의 돌이 모두 희어서 소금같이 보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 지역이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였으므로 백제시대 이후 소금을 생산, 저장, 공급하였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법정리인 백암리는 뱀밭 또는 사전(蛇田)이라고도 하는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현충사가 있으며, 거기에 이충무공의 『난중일기』와 서간첩, 임진장초, 공의 유물인 장검과 옥로, 요대 등이 보존되어 있어 사철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서원리에 어금니바위/ 애기 업은 바위가 있다.
♤ 영인산휴양림입구/ 39번국도/ 뒷아산고개/ 읍면계(염치읍 - 영인면)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와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를 잇는 고개이다. 39번 국도를 굴다리로 통과하면 영인산자연휴양림입구이고 건너다보이는 마을이 영인면소재지인 아산리이다.
♤ 고균(古筠) 김옥균(金玉均, 1851~1894) 묘/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바로 아래로는 영인면 아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조선조 말기 풍운아 김옥균의 유허가 있는 곳이다. ‘김옥균 선생 유허'는 갑신정변을 이끈 개화파 지도자 고균 김옥균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김옥균의 무덤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외인 묘지와 신죠지(眞淨寺)에도 있는데, 아오야마에는 위패만 있고, 신죠지에는 김옥균의 머리가 묻혀 있다. 김옥균 선생 유허는 김옥균의 아들 김영진이 아산 군수로 있을 때 만들었으며, 김옥균의 옷과 머리카락이 묻혀 있다. 김옥균은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 광정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백온(伯溫), 호는 고균(古筠) 또는 고우(古愚)이다. 1851년에 김병태(金炳台)의 장남으로 태어나 7세 때 당숙 김병기(金炳基)에게 입양되어 한성(지금의 서울특별시)에서 성장하였다. 11세 때인 1861년 양아버지 김병기가 강릉부사에 임명되어 임지(任地)에 가자, 양아버지를 따라 강릉에 가서 16세까지 율곡사당이 있는 서당에서 이이(李珥) 학풍의 영향을 받으며 공부하였다. 고종 9년(187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은 호조참판에 이르렀으며 1884년 조국 개화를 위해 갑신 개혁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일본에 건너가 제도와 문물을 시찰하고 임오군란이 일어난 뒤에 수신사(修信使) 박영효, 부사 김만식 일행의 고문으로 일본에 들어가 활약하였다. 당시 사대주의 자들이 청나라의 후원을 믿고 허세를 부리고 있어 나라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는지라 김옥균은 이를 개탄하여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등과 협력하여 독립당을 조직하고 국정을 개혁하여 낡은 폐습을 타파하려고 하였다.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업식 연회를 기회로 박영효, 홍역식 등과 협력하여 거사하였으나 청나라 군사 1,500명의 무력 진압으로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으로 망명하여 이와다휴사크(岩田周作)라 변명하고 오가사와라(小笠原)섬과 홋카이도(北海道), 도쿄 등지를 전전하면서 10년을 지냈다. 1894년 3월 28일 상해로 건너간 김옥균은 동화양행에서 수구파의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 당하였으며 시체는 본국으로 돌아와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었다. 이듬해에 새로운 내각이 들어서자 법무대신 서광범, 총리대신 김홍집의 상소로 죄명을 씻기고 관직이 회복되었고 순종 때에는 규장각 대제학에 추증을 받고 관리를 보내서 제사지내는 대우까지 받았다. 묘는 일본 동경 청산외인 묘지에서 1914년 9월 11일 의발(衣髮)을 영인면 아산리로 이장, 정경부인 유씨와 합장한 것이다. “아 김옥균!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비상한 시대를 만났지만, 비상한 공적도 없이 비상한 죽음만 얻었도다(嗚呼, 抱非常之才. 遇非常之時, 無非常之功, 有非常之死). 박영효 혹은 유길준이 썼다고 하는 김옥균의 묘비명이다.
♤ 156.1m봉/ 읍면계(염치읍 - 영인면)
선답자 시그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절개지와 39번국도로 인해 우회했던 맥길과 다시 합류한다.
♤ 어금니바위 갈림길
제2매표소 1.2km를 가리키고, 왼쪽 0.7km 지점에 아산(牙山)의 지명유래가 되었다는 어금니 바위가 있다니 다녀온다. 아산 지명의 유래가 어금니바위인지 영인산(靈仁山, 363.5m)인지 또는 칠승팔장의 명당지인 설화산(雪華山, 447.5m)인지 고증을 위한 향토사학자들의 좀 더 정확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준희선생님 '힘힘힘' 격려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습니다.
♤ 어금니 바위(牙巖)/ 아기업은 바위/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
바위가 대여섯개 있는 조망터이다. 나무사이로 지맥의 주산인 영인산 전체의 모습이 바라보인다. 충남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 39번 국도 윗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산군(牙山郡) 이름을 낳게한 영인산의 북동쪽에 있는 바위로 바위의 모양이 아기를 업은 모양처럼 보인다고 해서 ‘아기업은 바위’로 부르며 또다른 이름은 가장 큰 바위가 부처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처바위’ 또는 ‘불암(佛巖)’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아암(牙巖)과 아산(牙山)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지형도에는 음봉면, 영인면, 염치면의 경계에 부아암이 표기가 되어있다. 어금니처럼 생긴 어금니바위-애기업은 바위-혹은 부처바위가 있어서 '어금니 아(牙)'자를 따서 아산(牙山)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옛 이름 아술(牙述)도 역시 '어금니처럼 생긴 바위(술-수리=봉우리)'를 뜻하는 이름이다. 이 지역은 백제의 탕정군, 아술현, 굴직현의 3개 현에 속한 지역이었다. 이 바위는 슬픈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고려 말, 염치읍 송곡리에 장자못이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어느 돈 많고 욕심도 많은 한 노인이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날 노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왔고, 늘 효성 지극하고 마음씨 넉넉한 이 집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쌀을 퍼주었는데 그만 심술궂은 노인네에게 들키고 말았다. 심술쟁이 노인네는 스님에게 쌀을 빼앗고 자신이 시주를 하겠다며 쇠똥을 가득 담아주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스님은 아무 표정 없이 쇠똥으로 가득한 바랑을 메고서 집을 나서니, 며느리가 너무 미안하여 스님을 마중하며 연신 허리를 구부렸다고 한다. 그 때 노스님이 뒤돌아 서서 며느리에게 말하길 “죄 많은 이 집 노인과 이 집은 곧 큰비가 오면 물에 잠길 터이니 마음씨 착한 며느님은 어서 집을 나와 산 위로 피하세요.”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기를 “절대로 뒤를 돌아보면 안됩니다. 절대로~” 잠시 후 스님의 말대로 며느리는 산을 올랐고, 곧하늘이 열린듯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느 전설이나 그렇듯, 산 위로 다 올라간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걱정하는 효심에 뒤를 돌아보게 되고, 그 순간 며느리는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그 바위가 염치면 서원리 뒷산에 있는 애기를 업은 형체의 바위다. 이 바위를 혹자는 어금니 모양이라 해서 ‘어금니바위’라고 칭했는데 어금니 아(牙)자를 따서 아산(牙山)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는 막연한 표현이 있다.
산불감시초소 상태가 좋습니다. 문도 열리고요. 겨울에 비박지로 그만입니다.
♤ 291.3m봉/ 산불감시초소
정상에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지맥은 우틀이다.
♤ 영인산휴양림제2매표소/ 상투봉갈림길
매표소에서 2,000원씩(영인면민은 공짜, 아산시민은 1,000원) 입장료를 받았으나 지금은 매표소가 폐쇄되었다. 매표소에서 내려선 안부에서 영인산자영휴양림 너머로 보이는 상투봉(299m)은 왼쪽으로 왕복 1.1km(약 30분 소요) 떨어져 있으나 다녀오는 경우도 있다.
♤ 영인산자연휴양림/ 화장실
1997년 12월 29일에 개정했으며, 구역면적은 130만평방미터, 1일 수용인원은 2,800명이다. 아산시청에서 관리한다. 영인산 기슭에 있고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이 완만하여 삼림욕에 적합하며 인근에 다른 높은 산이 없어 산 정상에 서면 서해바다와, 온양 시가지, 아산만 방조제, 삽교천이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역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였으므로 산 정상에 ‘민족의 시련과 영과의 탑’이 건립되어 있고, 백제 초기의 석성인 영인산산성과 여민루 등의 문화재 7종이 있다. 휴양림에는 휴양모텔, 야영장, 사계절 썰매장, 산막, 삼림욕장, 수영장, 어린이놀이터, 자연관찰원, 민속놀이터, 체력단련시설, 물놀이장, 야외교실, 전망대, 등산로 등의 시설이 있다. 주변에 김옥균 묘소(충남기념물13), 아산향교(충남기념물114), 영인석불(충남문호재자료240), 관음사석탑(충남문화재232) 등의 문화재와 현충사, 온양민속박물관, 외암민속마을과 온양온천, 도고온천, 아산온천, 광덕산 및 여름철 피서지 강당골유원지, 충무풀장, 도고파라다이스 유수풀장, 도고골프장등의 관광지가 있다.
상투봉에서 멀리 하늘금을 그은 금북정맥과 아산시 뒤로 배-태-망-설을 찾아봅니다. 가야할 입암산의 채석장도 아주 잘 바라보이네요. 지나온 제2매표소 오른쪽으로 희미한 호서정맥의 서운산-위례산-성거산-흑성산 라인도 찾아봅니다.
♤ 상투봉(上頭峰, 299m)/ 유두봉(乳頭峰)
상투봉갈림길에서 왕복 약 1.1km이다. 상투봉은 산의 형상이 상투와 같이 뽀족하게 솟아 있다하여 상투봉으로 불리고 있으나 영인면 아산리 남쪽에 있는 영인산 봉오리와 영인산의 한 자락인 유두(젖꼭지)봉은 신창면 남성리, 신달리 방향에서 보아야 유두형상을 확인할 수 있다 선조들이 유두라는 표현을 쓰기가 민망해서 그랫는지 상투봉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형상을 보면 상투가 아니라 유두(젖꼭지) 형상을 하고 있다. 아산영인향토지에 의하면 동림산(銅林山)의 주봉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동림산으로 불리어 졌던 산으로 이곳에서 남쪽으로 60m 위치에 흔들바위가 있고, 동림산에는 삼국시대의 동림사지(銅林寺址)터가 있었다고 전해져 오는데 현재 위치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이곳에서의 낙조와 아산시와 곡교천 뒤의 도고산 등 주변 산들의 전망이 아주 일품이다.
2층으로된 전망대도 지나고 스카이어드벤쳐도 지나갑니다. 커다란 산림박물관건물도 옆길로 지납니다.
♤ 영인산수목원/ 읍면계/ 삼리봉(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염치읍 서원리 → 강청리)
영인산수목원은 수목유전자원의 수집·증식·보전관리 및 자원화를 위한 연구와 국민들에게 자연학습장으로 제공하고 영인산자연휴양림과 연계하여 상호보완 기능을 갖도록 함은 물론 일부 산불피해지를 복원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2007년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2012년 5월 11일에 정식 개원하였다. 규모는 52만㎡이고, 1,047종의 수목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벚나무 80종, 단풍나무 60종, 목련 82종, 무궁화 100종, 왜성침엽수 35종 등 특화수종이 식재되어 있다. 영인산수목원은 영인산자연휴양림사업소에서 자연휴양림, 산림박물관 등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거북샘이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비박하며 핫&쿡을 끓일려면 산림박물관 화장실에서 물을 챙겨가야 합니다.
♤ 영인산 산림박물관/ 읍면계/ 삼리봉(아산시 염치읍 강청리, 영인면 아산리 → 상성리)/ 화장실
영인산 산림박물관에서 흐느재로 내려서며, 지맥의 오른쪽이 영인면 아산리→상성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다. 영인산산림박물관은 산림과 임업에 관한 자료의 수집과 교육, 산림문화 창달을 통한 산림문화의 현장학습장으로서의 역할과 전시 및 연구를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영인산산림박물관은 대지면적 27,996㎡, 연견평 6,043㎡에 지하1층, 지상 2층 규모로 본관과 별관으로 구분되어 있고 본관은 2개의 전시실로 구분되며, 제1전시실은 '사람과 산'이라는 주제로 자연, 씨앗, 나무, 숲, 생태계, 산림환경보전을 테마로, 제2전시실은 사람과 자연의 만남이란 주제로 숲 속 놀이터, 생각의 숲으로 전시되어고 별관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숲을 통해 휴식과 치유를 위한 장소로 조성되어 있는 신개념 산림박물관이라고 한다.
♤ 영인암장
채석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며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산 62-2번지에 지역 로컬들이 개척한 암장이다. 영인지맥 흐느재에서 영인암장으로 등산로가 있다. 비교적 관리가 잘 되어있고 어프로치가 쉽다. 규모가 있고 웅장하다. 가로폭도 크며 높이가 25~28m라 꼭 60자 루프가 필요하다. 탑에서 서해바다 아산만이 바라보인다.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천안시 동남구 신부동에 도솔공원 인공암벽장이 있다.
♤ 흐느재고개/ 희내재/ 헬기장/ 관리사무소
영인산 정상부 동쪽을 지나는 작은 소로로 산성을 오가는 가파른 고갯길이었다. 보도블럭이 깔려 있는 흐느재는 충남 아산시 영인면 상성리와 염치읍 강청리를 잇는 고개이다. 산림박물관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흐느재이다. 예전에 영인산에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을 때 헬기장이 있었던 곳이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등로는 출입금지라는 팻말과 함께 바리케이트가 처져 있다. 이곳으로 내려가면 아산향교와 김옥균의 묘소가 있는 영인면 아산리이다. 갈림길에서 편하고 완만한 왼쪽 도로를 버리고 오른쪽 계단을 밟으며 올라선다.
동남쪽으로 조망이 터져 금북정맥의 서운산부터 위례산, 성거산, 흑성산 광덕산 등 주변의 산들이 잘 보입니다.
♤ 연화봉(蓮花峰, 337m)/ 정상석/ 민족의시련과영광의탑
군부대 초소로 오르던 콘크리트 계단을 올라서니 연화봉과 쌍둥이 탑(민족의시련과영광의탑)이 보인다. 아산시 영인면과 염치읍의 경계에 있는 영인산의 한 봉우리로서 멀리서 바라보면 봉우리의 형상이 마치 연꽃처럼 생겼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봉우리 앞에는 높이가 24m나 되는 시련과 영광의 탑이 세워져 있다.
상투봉 뒤로 광덕산 군의 배태망설을 또 찾아봅니다.
♤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
1998년에 연화봉 정상에 24m 높이로 세워진 쌍둥이탑은 너무 커서 주변과의 부조화를 이룬다. 영인산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산으로 아산시내는 물론 가깝게는 안중과 평택, 멀리 천안까지 굽어볼 수 있어 전략적 요충지로 꼽혀 왔으며 나당연합군에 맞선 백제가 이곳에서 7년 동안의 전쟁을 벌였고, 청일전쟁 때도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며 일제시대 때 일본군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일장기를 꽂았다는 깃대봉도 이곳 옆에 있다. 6·25전쟁도 빗겨가지 않아 연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전쟁 직후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고 미군부대가 80년대 말까지 37년 동안 주둔했다. 전 독립기념관장 최창규박사가 지은 "영인(靈仁) 현충(顯忠)으로 피어오른 민족의 담시(譚詩)"가 대리석에 8폭으로 새겨져 있다.
가야할 입암산과 그 너머로 북서쪽으로 삽교방조제, 북쪽으로 영인지맥 종착지인 공세리성당과 아산만 그 뒤로 서해대교가 아련히 보입니다. 북동쪽으로는 고룡산이 뚜렷하게 보이고 그 너머가 안중읍과 평택 시가지입니다. 그 앞의 둔포면과 아산만 방조제 너머로 서봉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계두봉도 보입니다.
♤ 깃대봉(359.9m)/ 정상석/ 봉화대터
잠깐(19m) 깃대봉에 올라섰다 내려선다. 깃대봉에는 6.25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고 대공포시설과 탄약고 건물이다. 영인산은 지리적 요충지로 서해안 일대를 조망할 수 있으며, 6.25전쟁 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군사시설인 계단과 초소 그리고 나무 전봇대를 볼 수 있다.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폐초소처럼 생긴 건물은 옛 탄약 창고였고 정상에는 옛날 대공포를 보관했던 건물 잔해인 콘크리트 조각들이 많이 뒹굴고 있다. 조선시대 말기에 아산만에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 군대와 평택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이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싸워 일본이 청일전쟁(1894년 6월~1895년 4월)에서 승리한 후 영인산에 일장기를 꽂았다고 해서 깃대봉이라 불렀다. 사생결단을 표현할 때 아산이 무너지나 평택이 깨지나 하는 말도 이때 생겼다고 한다. 이곳 깃대봉의 전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3층으로된 배모양의 전망대에 올랐다가 갑니다. 이곳 전망대가 지맥의 왼쪽이 강청리→산양리로 바뀌는 삼리봉입니다. 배가 아니라 거대한 잎사귀 모양을 형상화 한 것이라네요. 예전에 미군부대 초소였다가 그 후에 한국군이 사용하던 것을 군대가 철수하면서 3층 규모의 대피소로 개조하였는데 3층은 무개 전망대이고 2층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쉼터, 휴식공간입니다. 1층은 비박이 가능한 공간인데 정상쪽 문은 상시 개방상태입니다.
♤ 영인산(靈仁山, 신선봉 363.5m)/ 정상석/ 2등삼각점(아산 22/ )/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 - 산양리
영인산 오름 전 옛날 군부대 경비초소 올라다니던 시멘트 계단을 따라 한참을 올라간다. 영인면 아산리 일원에 위치하고 있는 영인산은 높지는 않지만 매우 가파르고 영험한 산으로 정상에는 우물이 있어서 큰 가뭄이 있을 시 기우제를 지내던 산이다. 예로부터 사람의 기원대로 되는 신기한 징험이 있다 하여 영인산이라 부르고 있다. 아산시 영인면과 염치읍, 인주면에 걸쳐있는 아산지방의 명산으로서 신선봉으로 부른다. 아산의 백제시대 지명인 아술현의 주산은 현재의 영인산으로 알려져 있다. 아술현의 아술은 어금버금의 어금/ 엄(큰 바위)과 수리(높은 산)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이후 신라시대에엄 엄봉(陰峯), 음잠(陰岑) 등으로 불리다가 영인산으로 명칭이 이어졌다. 아산시 지명의 유래가 되고 있는 어금니 형상을 하고 있는 영인산이 바로 아산(牙山)이다. 영안산을 영인 저수지 아래 쪽에서 바라보면 어금니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산의 높이는 낮지만 험준하고 서해바다와 가까운 들판지대에 솟아있기 때문에 조망이 빼어나게 좋다. 이 때문에 옛부터 전략적 요충지여서 청일전쟁 때 치열한 격전지였고 6.25 때에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6.25이후에는 미군부대가 37년간 주둔하기도 했던 곳이다. 산 정상에는 남북으로 펼쳐진 백제 초기의 석성으로 추정되는 영인산성이 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하였으리라 본다. 또한, 영인산 정상에는 2마리의 학의 형상을 띤 듯한 두 개의 탑이 우뚝 서 있는데 이것이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 이다. 이 탑은 민족의 역사 및 문화적 가치 재조명과 아산만 일대의 국제 무역항 건설, 공업단지 조성, 아산온천 개발에 따른 배후 휴식공간을 마련해 세워진 탑으로 높이는 30m이며 둘레가 26m이다. 산 정상에 서면 서해바다, 삽교천, 아산만 방조제와 아산시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국민 휴식공간으로 시에서 조성한 영인산자연휴양림이 있어 볼거리 즐길거리가 다양하다. 전망대에서 약 100m 진행하여 영인산 정상을 찍고 배모양전망대로 다시 돌아와서 초소 왼쪽으로 제법 가파르게 내려선다. 영인면이라는 지명도 이 산에서 유래되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신성산(薪城山 - 섶재산의 뜻)이라 수록되어 있고, ‘산마루에 옛성 2개가 연해서 쌓은 신성산성이 있는데 그 북쪽 성은 돌로 쌓은 것으로 주위가 480척에 높이가 10척이며, 남쪽 성은 흙으로 쌓은 것이 주위가 480척에 높이가 4척인데, 옛날에 평택 사람이 난리를 피하여 우거한 사실이 있어 평택성(平澤城)이라 이름했다’라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영인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산 중턱에는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세심사가 있으며 이 산의 남쪽 산줄기가 동심산으로 고려 공민왕의 태를 봉안했던 곳인데 후에 영남의 금산으로 옮겼다고 한다. 초소옆 왼쪽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 영인산성(靈仁山城)
충남 아산시 영인산 일대에 있는 산성으로, 영인산은 영인면 아산리 기준 서남쪽에 있는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사방으로 지맥이 뻗어 있어 영인면과 인주면, 염치면 등의 경계가 되고 있다. 성은 남쪽에서 북으로 달리고 있는 산맥의 제일 북쪽에 솟아 있는 영인산 정상부 지형에 따라 부정형으로 축성한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백제시대에 지어진 성으로 둘레는 1000m에 달하며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축성하였는데, 현재는 전체적으로 퇴락이 심하여 성의 구조를 살피기는 어렵지만 납작한 돌로 외면을 맞추어 거의 수직에 가깝도록 쌓아올렸던 듯 하다.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부분은 동벽으로 현재의 높이 3m 정도, 300~400m 구간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문지는 남문지와 서문지가 확인되는데 성벽의 붕괴가 심하여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영인산이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다 남에서 북으로 달리는 산성의 최북단에 성이 축조되어 있기 때문에 전망이 매우 좋다. 먼저 동쪽으로는 산맥이 이어지고 있어서 그다지 전망이 좋지 못하나 북쪽으로는 영인면과 인주면 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며, 멀리 아산만과 안성천, 삽교천, 그리고 평택까지도 조망된다. 지어진지 천 년이 훌쩍 넘었고 규모도 아산 지역에서는 가장 큰 산성으로 중요한 관방유적이라 할 수 있다.
♤ 328m봉/ 읍면계/ 삼리봉(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영인면 상성리 → 신현리)
계속 내려서다 살짝 올라치는 묘지가 있는 봉으로 지맥의 오른쪽이 아산시 영인면 상성리 → 신현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다. 지맥길은 좌틀이다. 오른쪽으로 복흥골로 내려가는 등로가 뚜렷하다.
♤ 곡교천(曲橋川)
영인산 내림길에서 곡교천이 바라보인다. 천안 동남구 광덕면 원덕리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대응리에서 삽교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옛날에 아산시 염치읍 일대의 하천에 나무로 놓은 굽은 다리가 있어서 하천 앞 마을을 고분 다리라 부르고 한자로 곡교리라고 불렀으며, 마을 앞 하천을 고분 다리천 또는 곡교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1872년 지방 지도(1872年地方地圖)』에 곡교와 곡교점이 나타나고, 『대동여지도』에도 곡교가 나타나고 있으나 하천의 명칭은 미륵천으로 표시되어 있다. 곡교천은 일부 구간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데, 풍세면에서는 한천(漢川), 한내 또는 봉강천(蓬江川)이라고 부르고, 아산시 배방읍에서 쑥개, 봉호(蓬湖), 봉강(蓬江) 또는 봉강천이라고 부른다.
♤ 289m봉/ 세심사 갈림봉
세심사 갈림길을 지나 전망암 바위에서 왼쪽 아래로 세심사를 내려다 본다. 지맥은 세심사 오른쪽 능선으로 이어진다. 세심사갈림길 지나서 능선 왼쪽으로 세심사와 골프장 삽교천이 조망된다.
♤ 아산 세심사(洗心寺)
세심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 (慈藏)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654년 창건사실이 입증된다면 무려 1359년의 역사를 간직한 현존하는 손에 꼽을 만한 역사를 간직한 사찰이다. 1530년(중종 25년)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여지도서』 『범우고』 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빌려 세심사로 고쳤다. 원래는 신심사였던 것을 최근에 세심사라고 개명한 이 절은 고려조에 창건되었다. 영인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세심사는 절의 중심부에 고려시대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이 있고,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부도은 원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 부도 2기만 있다. 이 밖에 1563년(명종18년)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 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
♤ 255m봉/ 삼읍면봉(아산시 영인면, 염치읍 → 인주면)
정상에 평상과 돌탑이 한기 있다. 지맥의 왼쪽이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 인주면 냉정리로 바뀌는 삼읍면봉이다. 지맥은 이제 염치읍과 헤어지고 영인면과 인주면의 경계를 따른다. 여기부터 골프장 도로까지는 잡목이 있는 등로를 따라 내려간다. 하산 등로가 넓게 퍼져 있어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왼쪽으로는 골프장이 계속해서 보인다. 영인산에서 임도로 내려서서 아름다운cc 골프장&온천리조트로 들어가는 도로로 나오며 부뜰이운영자님의 '힘힘힘' 격려산패를 만난다. 오른쪽으로 골프장이 보인다.
♤ 충남 아산시 인주면(仁州面)
충남 아산시 인주면은 지리적으로 아산시의 북서부에 있어 남으로는 곡교천을 사이에 두고 아산시 선장면과 신창면, 서쪽으로는 당진시 신평면, 우강면과 시계를 이루며, 동쪽으로 아산시 영인면과 염치읍, 북으로는 아산만과 아산호를 사이에 두고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현덕면과 접해 있는 충청남도 북단의 도계를 이루는 면이다. 12개 법정리를 관할하며 아산만과 삽교호를 연결하는 미곡 생산의 중심지이자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및 인주일반산업단지 등이 들어선 산업도시이기도 하다. 인주면은 영인산 서쪽 기슭에서 시작하여 남으로는 곡교천, 서로는 삽교호, 북으로는 아산만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너른 평야지대로서 예로부터 농업과 어업이 발달하였다. 3면이 호수와 물길로 이어져 아산만을 통해 서해로 통하고, 뒤로는 영인산이 있어서 영인산 지맥인 신풍산, 입암산을 등지고 각 마을이 형성되었다. 인주면의 ‘인주(仁州)’라는 이름은 아산현(牙山縣)의 옛 명칭으로 백제 때 아술현이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음봉현으로 바꾸었고 고려 초에 인주라 하였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인주’라는 이름은 동쪽의 영인산과 관련되어 붙여진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또는 이곳 공세창에 40여 개 고을의 조세를 받아 쌓았는데, 그 공물이 축나지 않고 잘 관리된 것이 어질고 착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어질 ‘인(仁)’ 자를 써서 ‘인주’라 하였다고 전한다. 인주면은 본래 아산군 신흥면에 속하여 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서면의 6개 리와 이서면의 3개 리, 삼서면의 5개 리, 현내면의 3개 리, 천안군 돈의면의 2개 리를 병합하고 아산군의 고려 때 이름인 인주를 따서 인주면이라 하여 아산군에 편입되었다. 인천광역시의 고려시대 이름인 인주보다 그 시기가 앞선다. 1995년 1월 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아산군과 온양시를 통합하여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아산시 인주면이 되었다.
찬우물이 나오는 냉정리는 여기만 있는게 아닙니다. 경기도 포천 관인면에도 냉정리가 있구요. 반대로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경북 울진군에는 온정리가 있어요. 북한 강원도 고성군에도 온정리가 있네요.
♤ 충남 아산시 인주면 냉정리(冷井里)
인주면 냉정리는 인주면소재지 동남쪽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골마을로 농업용수를 공급해 주는 냉정저수지가 있으며 대부분 주민들의 생업은 농업이다. 냉정리라는 명칭은 마을에 찬, 냉(冷) 우물, 정(井)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냉정리는 본래 아산군 일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현내면의 점리(店里)를 병합하여 냉정리라 하고 아산군 인주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아산군과 온양시를 통합하여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아산시 인주면 냉정리가 되었다. 영인산에서 서쪽으로 길게 이어진 산줄기의 북쪽, 입암산의 남쪽에 있으며 서북쪽으로 신성리에 걸쳐 냉정저수지가 있다. 628번 지방도가 지나가지만 교차로는 없다. 익산평택고속도로(단, 나들목은 바로 옆 영인면에 영인IC가 있다)와 당진청주고속도로가 지날 예정이며, 두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아산JC가 들어설 예정이다.
♤ 아름다운c.c.골프장 입구
골프장으로 내려서고 도로를 따라 오르다 골프장 입구 삼거리에서 좌틀하면 오른쪽에 숲으로 들어서는 시그널이 걸려있다. 아름다운골프장은 당초 104만8526㎡를 체육시설로 인가받아 이 중 86만7448㎡를 18홀 골프장으로 개발해 2009년부터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는데 예전에 저축은행 비리사건으로 얼룩졌던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각종 비리사건이 연루된 골프장이었다고 한다. 아름다운골프장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도로를 따라 삼거리로 오른다.
알바유의지점입니다.
♤ 231.4m봉
백합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고 세종 홀산아대배님 코팅지산패도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주변에 백합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6분 정도(약 700m) 진행하면 시그널이 달려있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약간 좌틀의 뚜렷한 길을 버리고 우틀로 꺽으면 독도대선배님 '힘힘힘' 코팅지 격려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급경사지로 약 10분간 잡목넝쿨을 헤치고 내려서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남양홍씨참의공파 가족묘원으로 내려서야 한다.
남북으로 신설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입니다.
♤ 냉정고개(冷井峴, 75m)/ 628지방도(영인산로)
전봇대에 반바지운영자님의 코팅지 산패가 매어 있다. 충남 아산시 영인면 신현리와 인주면 냉정리를 잇는 2차선도로이다. 628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오른쪽으로는 아름다운 골프장가는 길이고 고개 오른쪽에 평강사슴농장 표시석과 버스 정류장이 있다. 사슴이 아니라 황소만한 엘크다.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냉정리는 동남쪽으로 덕흥산이 있어 낮은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 냉정저수지가 위치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복흥골, 잔다리 등이 있다. 복흥골은 냉정리 남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전에 그릇점이 있어서 점말이라 불렸는데 후에 점말을 다시 일으킨다는 뜻으로 복흥골이라 개명하였다. 잔다리는 냉정리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가는 다리가 여럿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한자어로 세교(細橋)라고도 한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했더니 병풍지맥을 하며 순창군 복흥면을 지났었군요.
♤ 복흥골정류장
왼쪽 전봇대 있는 곳을 곳으로 올라선다. 영인지맥의 원지맥길은 버스정류장 오른쪽의 평강사슴농장 뒤로 이어지는데 철조망으로 길이 막혀 갈 수가 없다. 입암산으로 향하는 이정표도 평강사슴농장쪽이 아닌 논두렁 가운데로 표시되어 있다. 왼쪽 공장으로 들어가는 도로쪽으로 우회하기도 한다. 사슴목장으로 직진해 철조망을 넘어서면 반듯한 등산로와 만날 수 있는데 주인의 제지를 받는다.
산패는 발견하지 못했고 띠지가 매어 있습니다.
♤ 123.4m봉
사슴농장에서 올라오는 지맥과 만나는 곳으로 장의자가 있다. 산패가 아카시나무에 높이 매어 있다. 왼쪽으로 영광 ENG공장 소음이 들린다.
♤ 잔다리고개(細橋峴)
충남 아산시 인주면 냉정리 잔다리마을에 있는 아산시 영인면 신현리와 이어주는 고개이다. 잔다리는 냉정리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가는 다리가 여럿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한자어로 세교(細橋)라고도 한다. 깊게 패인 비포장 고갯길로 차량이 다닐 수 있고 나무 계단으로 오른다.
♤ 118.0m봉/ 면계/ 삼리봉(아산시 인주면 냉정리, 영인면 신현리 → 월선리)
아무 표시도 없고 선답자 띠지만 나폴거린다. 지맥의 오른쪽이 영인면 신현리→월선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지맥은 좌틀로 내려서면 영인산이 보인다.
♤ 수루네미고개(車峴)/ 수레너미고개
충남 아산시 인주면 냉정리에서 영인면 신현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고개의 역할은 잃은지가 오래된 듯 흔적도 보이질 않고 잡초만 무성하다. 영인면 신현리의 ‘현’은 한자어 이름 차현에서 온 것이며 영인면 신현리와 인주면 냉정리 사이를 넘어 다니던 이곳의 두 고개 역시 수레너미(수루너미,수레너머)인데 한자어로 기록하면서 차현이라 했고 그 아래 마을의 이름은 차현리라 했다. 이 수레 차(車)로 인해 그 뒤에 ‘수레가 넘어 다녔다’는 이야기가 덧붙게 되었고 그 이야기가 정설인 것처럼 왜곡되어 있다. 물론 그 고개로 실제 수레가 넘어 다녔다고 해도 원래는 산을 뜻하는 술(述: 수리)에서 비롯된 고개 이름이다.
영인면에서 둘레길 등산로를 손봤는데 영인지맥과 많이 겹쳐 덕을 봅니다.
♤ 132.9m봉/ 이정표
지나치는 능선봉으로 공세리성당 2.9km를 가리키는 이정목이 지키고 있는데 위치가 반대로 되어있다. 입암산 쪽에 냉정고개가 표시되어 있는데 오른쪽에 설치해야 하는걸 왼쪽으로 설치했다. 132.9m봉을 지나서 잡목을 헤치고 나가면 엄청난 채석장 절개지가 앞을 가로 막는다. 채석장이 지맥길을 잘라먹었다.
♤ 고속도로(익산-세종-평택)
거대한 채석장으로 입압산으로 오르는 길이 단절되어 우회해서 입암산으로 가야 한다. 왼쪽으로 내려서서 동물이동통로로 고속도로를 지나 올라서면 냉정고개 2.9km, 입암산 0.6km 이정목이 서있다. 석산채석장 뒤쪽으로 아산호(평택호)가 바라보인다.
입암산 직전에 육각정자가 있고, 공세리성당 1.6km를 가리키는 이정목이 서있습니다.
♤ 입암산(笠岩山, 208.9m)/ 육각정자/ 3등삼각점(아산 309/ )/ 면계/ 삼리봉(아산시 영인면 월선리, 인주면 냉정리 → 신성리)
채석장이 입암산을 파먹고 있어 우회로로 까칠하게 올라선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나무에 매어 있다. 육각정자 주위에는 멋진 암릉과 운동기구와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정자에서 냉정저수지 뒤쪽으로 아산만 삽교호도 바라보인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충남 아산시 영인면 월선리와 인주면 신성리의 경계에 있는 나즈막한 산으로 산의 형상이 갓의 형태로 보인다 해서 갓바위산(笠岩山)이라고 부르며 넓은 공터에 알아볼 수 없는 3등삼각점이 있다. 공사중이라 출입을 금지시키지만 무시하고 직진하여 채석장 경계울타리를 따라 내려선다.
입암산에서 내려서자마자 지맥의 왼쪽이 아산시 인주면 신성리 → 공세리로 바뀝니다.
♤ 천등말 갈림길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천등말은 서강 남쪽에 있는 마을로, "천등혈(天燈穴)"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천주교공원묘지 삼거리
공원묘지 가기 직전에 넓은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 능선으로 접어들어 천주교묘지 상단부로 오른다.
지맥이 영인면과 인주면의 면계를 벗어나 인주면 안으로 들어서는 지점입니다. 숲을 벗어나 공세리마을로 들어섭니다.
♤ 앞동산(114.1m)/ 공세리성당 공원묘지봉
천주교묘지 최상단부로 영인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죽은 나무에 매어 있다. 양회임도를 따르다 좌곡각지점에서 직진 숲속으로 들어선다.
♤ 공세리성당 공원묘원
천주교 공세리 성당 표석 앞에서 양회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왼쪽으로 광덕산과 그 뒤로 배태망설이, 오른쪽으로 도고산이, 맨 오른쪽은 당진의 송악산이 바라보인다.
♤ 충남 인주면 공세리(貢稅里)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는 바다를 마주보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동남쪽에는 농경지가 분포하며 공진창이 있었으므로 공세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공세지, 동강, 서강, 새원, 천등마을 등이 있고 공세지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공세리의 그것과 같다. 동강마을은 공세지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에는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와 배가 닿았었다고 한다. 서강마을은 공세지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에는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와 조세를 배에 직접 실어 냈다고 한다. 새원마을은 공세지 북쪽 들 가운데 있는 마을로, 새로 언(뚝)을 막고 마을이 되었으므로 새원이라 하였다. 천등말은 서강 남쪽에 있는 마을로, "천등혈(天燈穴)"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찬밥 모양으로 관리가 영 안되는 모양새입니다.
♤ 삼도해운판관비(三道海雲判官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비(石碑)로 1984년 5월 17일 충남 문화재자료 제238호로 지정되었으며 해운판관(海雲判官)의 청렴한 덕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해운판관은 조창(漕倉)을 돌며 세수미의 선적을 감독하고 배가 조창(京倉)까지 무사히 도착하도록 관리하는 조운(漕運) 업무를 맡았다. 비는 모두 9기인데 흩어져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모아 놓았다. 이중 3기는 현감의 선정비이고 6기는 해운판관비이고 비에는 모두 三道海雲判官碑라고 새겨져 있다. 9기의 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인조 27년(1649)에 세운 비이고, 가장 최근 것은 숙종 34년(1708)에 세운 비이다.
조세로 내었던 곡식을 저장하였던 조창인 공세창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공세 곶창지는 충청,전라,경상 3도의 稅穀을 이곳에 집합하여 서울로 운반하던 곳이죠.
♤ 아산공세곶고지(牙山貢稅串庫址)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조선 중기 조창이 있었던 터로서 충청남도 기념물 제21호다. 공세곶창이 설치된 것은, 1478년(성종 9) 면천(沔川) 범근내포(犯斤乃浦)의 것을 폐지하고 이곳에 새롭게 정한 뒤 부터이며 현재 창고지 주변에 축조한 성지로 약 300칸 정도의 창지(倉址)를 볼 수 있다. 최초에는 창고가 없이 노적하였으나 1523년(중종 18)에 비로소 창고 80칸을 건축하였다. 이곳에는 공주목 이하 임천ㆍ한산ㆍ정산ㆍ회덕ㆍ진잠ㆍ연산ㆍ이산(노성)ㆍ부여ㆍ석성ㆍ연기 등 12군현의 세미와 홍주목 이하 서천ㆍ서산ㆍ태안ㆍ면천ㆍ온양ㆍ평택ㆍ홍산ㆍ덕산ㆍ청양ㆍ대흥ㆍ비인ㆍ남포ㆍ결성ㆍ보령ㆍ아산ㆍ신창ㆍ예산ㆍ해미ㆍ당진 등 19군현의 세미를, 그 외 청주목 이하 천안ㆍ옥천ㆍ문의ㆍ직산ㆍ회인 등 6개 현의 공세미 등 합계 39개 목ㆍ군ㆍ현의 것을 납고시키고 다시 경사로 수로 500리 길을 선박으로 조운하였다. 해운 판관을 두어 주관케 하였다. 현재 1672년(현종 13) 3월 ‘三道海運判官碑(삼도해운판관비)’ (높이 125㎝, 넓이 72.6㎝, 두께 49㎝)와 1708년(숙종 34) 해운판관 이의만(李宜晩)의 불망비(不忘碑, 높이 150.5㎝, 넓이 55.7㎝, 두께 13.4㎝), 1653년(효종 4) 판관 한진의(韓鎭倚)의 선정비(높이 106.5㎝, 넓이 44.5㎝, 두께 18㎝) 등 8기가 전해지고 있다.
우째 천주교에서 공자를 디스하냥... 공쉐리 성당...
♤ 공세리성당(충남 문화재 제144호)/ 아름드리 멋진 팽나무
충남 내포(內浦)지역에 위치한다. 서쪽은 바다, 북쪽은 아산만(牙山灣), 동쪽은 너른 들판이다. 성당 앞은 드넓은 경작지다. 그러나 2004년 방조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이 일대는 포구였다. 조선시대에는 조운선이 드나들었고, 언덕에는 충청도 서남부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곶창(貢稅倉)이 있었다. 서해와 맞닿아 마을 사람들은 일찍부터 천주교를 받아들였다. 1894년(고종 31년) 조세 금납화가 공포되면서 조운제도는 폐지됐고, 공세창도 문을 닫았다. 공세창 성벽돌은 성당의 기초가 됐다. 1895년 6월 양촌성당(陽村本堂, 구합덕성당의 전신)에서 분리 창설되었으며 공세리 일대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기에 이미 ‘내포의 사도’라고 불리던 이존창에 의해 복음이 전래되었다. 이 후 박해기를 거치면서도 신앙을 보존하던 이 지역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뒤에는 양촌본당의 관할 아래 있다가 1895년 6월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의 에밀 드비즈(Emile P. Devise, 成一論 1871~1933) 신부가 공세리로 부임하면서 본당이 설립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드비즈 신부는 이미 매입한 10칸 정도의 기와집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꾸몄고 1897년 6월에는 다시 3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공세창이 있던 일대를 매입한 다음 1899년 그 자리에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였다. 또 1905년에는 조성학당(1927년 폐쇄)을 세워 교육 사업에도 앞장서 공세리 발전에 기여하였다. 한편 1920년대 들어 신자수가 증가하자 기존의 성당으로는 늘어나는 신자들을 다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드비즈 신부는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지휘 감독하여 1922년 9월에 현재의 고딕 양식의 서양식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이 후 9대 주임 이인하 신부는 1958년 초에 강당을 신축하였고 1971년 1월에는 13대 주임 김동욱 신부가 성당을 증축하고 별관을 완공하였다. 수령 350년 안팎 팽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사이사이로 붉은 벽돌과 창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답고, 평화롭다. 아치형 창은 로마네스크 양식, 첨탑은 고딕 양식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드라마 <아이리스>, <모래시계>의 배경이 됐다. 사제관은 정면이 팔(八)자 계단으로 2층을 오를 수 있는 구조다. 성당 한쪽에는 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한 32명을 기리는 현양탑과 추모벽이 조용히 서 있다. 드비즈 신부는 의학 지식이 풍부했다. 부스럼이나 종기로 고생하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생약 처방에 관한 서양책과 한방 의서를 놓고 치료약을 만들었다. 고약이었다. 까만색 약제를 기름종이에 싸서 종기 난 부위에 붙이면 며칠 후 감쪽같이 나았다. 신부는 심부름을 잘 해주는 소년에게 고약 조제법을 가르쳐줬다. 소년의 이름은 이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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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 헌신한 사람, 그리고 신앙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현충사(顯忠祠)까지는 차로 15분 거리이다.
♤ 인주사거리
성당 뒤쪽으로 가보지만 숲 사이로 아산호가 보일 뿐이고 합수점까지는 걸어서 가기엔 어려움이 있는 곳이다. 성당에서 뒤로 내려서면 39번 국도이고 아산만 방조제 앞으로 가야하나 도로를 건널 수 없다. 안성천과 곡교천이 만나는 합수점엔 34번 국도가 영인면에서 인주면으로 가로 지르고 38번 국도와 39번 국도가 아산만으로 향하면서 서로 교차하기에 진입로 등이 얽혀있어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위치상 아산호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서봉지맥과 마주보는 곳이다.
♤ 아산만 방조제/ 안성천-곡교천 합수점
굳이 가야한다면,,, 인주IC를 건너뛰어... 아산만방조제 앞에서 자전거도로를 걸어 아산만으로 향한다. 안성천과 곡교천 합수점에서 아산만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서봉지맥과 마주보며 영인지맥을 마무리 한다. 동쪽으로 아산만을 가로질러 서해복선전철이 건설되고 있다.

첫댓글 영인지맥 완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영인지맥 마지막 저의1대간 9정맥 6기맥 162지맥 종주완성을 함께하시고 종행사도 자리를 빛내주시여 무한한 영광이었습니다
남은 지맥길도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
파이팅입니다 ~~~
덕분에 영인산에도 오르고, 현충사와 이충무공묘소도 방문하였습니다.
세르파대장님의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끈기를 이어받아 저도 하나하나 밟아나가겠습니다.
홀대모에 대한 깊은 열정에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인연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