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하느님의 침묵 즈카르야는 그날 성소에서 가브리엘 대천사를 만난 이후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가 그렇게 바라던 일, 아들을 갖게 해주겠다는 천사의 말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루카 1,20).” 나도 믿지 못했을 거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안 됐고, 이제는 늙어서 임신 능력도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침묵 속에서 지내며 아내 엘리사벳의 불러오는 배를 지켜보았다. 드디어 아내가 출산했는데 천사의 말 대로 사내아이였고, 그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아내의 말에 동의하자 혀가 풀려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혀가 풀려 하느님을 찬미한 게 아니라 하느님을 찬미하려 하니 혀가 풀린 거 아닐까?
요즘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깜짝깜짝 놀란다. 정말 큰 일 날 뻔했다. 북한을 자극해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다니 가슴이 서늘해진다. 게다가 이런 일들이 점집에서 그리고 무속 신앙에 근거를 두고 계획된 정황이 있다고 하니 참담하다. 수천만 명의 생명을 두고 그런 곳에서 그런 계획을 했다니 말이다. 그 일들이 성공했으면 정말 어쩔 뻔했고, 또 실패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무속인에게 물어보면서 그런 일들을 계획했다는 걸 우리가 무슨 수로 알 수 있었겠나.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체 북한이 먼저 공격해서 그런 줄 알았을 거 아닌가. 처음으로 북한 형제들에게 감사했다. 그런 자극에 반응하지 않은 것 말이다. 하느님이 아무것도 안 하시는 게 아니었다. 코로나의 시련을 겪는 동안 적지 않은 교우에게 피해를 주던 신천지의 민낯이 전국에 다 드러났을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는 하느님이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보살피고 계심을 알게 됐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하느님의 침묵은 하느님의 권능이 드러나는 자리다. 대림초 4개와 제대 초에 부활초까지 전례 때 켤 수 있는 초란 초가 다 켜진 것은 우리 기다림이 꽉 차서 이제 하느님 하시는 일이 드러나는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옛날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가장 힘센 이는 바로 시민이다. 그들의 무력과 비열한 계획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 시민은 촛불과 앙증맞은 응원봉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맞섰다. 경찰이 세운 차벽을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뚫어 트랙터를 타고 저 멀리서부터 온 농민들에게 길을 열어준 것도 시민이다.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시민은 여러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돕고 응원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게 분명하다. 평화를 반대하는 이들이 사라질 날이 아주 가까이 왔다.
하느님은 안 계신 거 같이 계시고, 아무것도 안 하시는 거 같이 일하신다. 그분의 선하고 의로운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러니 그분 편에 서고 그분 뒤를 따라가야 한다. 그 이상한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조차도 아깝다고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 뜻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기 때문이고 그들도 구원받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들이 그랬다는 것을 슬퍼한다. 그 슬픔이 내 십자가가 된다. 인류 구원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지고 가시니 나는 내 것만 지면 된다. 그 길에서 위로받는다. 주님이 나 그리고 선한 지향을 지닌 철부지 어린이 같은 이들과 함께 계심을 믿는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4).”
예수님, 주님은 성체 안에 계시고 하느님 백성 가운데에 계십니다. 그들을 비난하고 욕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저도 모르게 악한 기운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 대신 무모하고 어리석은 몇몇 사람들 때문에 고통받는 많은 이들을 기억하며 슬퍼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 앞에서 기도하니 길을 잃지 않는 줄 압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