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중 돌아가신 군인들 및 모든 분들 제도를 위한 순례-
8월 7일 일요일 아침 빗방울이 내리는 날씨.
오늘도 묘산스님과 함께 강원도 정선을 출발 영월과 제천 명당자리에 조상님들을 모시고난 후 고양시 행주산성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50분 쯤.
이곳 행주산성(고양산)에는 행주외동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돌아가신 관군, 승려들, 민간인 전투 참여 사망한 분들의 무덤을 시작으로 자연적으로 발생한 공동묘지가 한강을 바라보는 서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행주산성은 입장마감으로 행주산성 역사공원으로 이동하여 기도를 마치고 계절 별미인 콩국수로 대중공양을 마쳤습니다.
저녁시간 한가한 자유로를 오랜만에 달려봅니다. 최대한 남방 한계선 6.26전쟁 격적지 근처를 돌기 위해 문산읍을 지나 적성면, 전곡읍 등 37번 국도를 따라 연천 입구 한적한 숙소에서 여정을 풀고 장거리 여행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8일 아침 숙소를 출발할 때 빗방울은 다소 굵어졌습니다. 연천을 거치는 3번 도로를 따라 철원읍 백마고지역 근처에 있는 백마고지전적비 주차장에 도착. 백마고지 전투와 화살머리고지 전투 등에서 사망한 아군, 민간인, 유엔군, 적군, 중공군 등 모든 사망자들 제도를 위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동송읍에서 대중공양을 마치고 식당을 나올 때는 폭우로 도로는 흙탕물이
되어 벼렸습니다.
(화살머리고지 전투1)
프랑스 대대가 1952년 10월 6일일부터 10월 10일까지 철원 서북방 281고지를 방어 중 중공군과 치른 전투이다.
결과
프랑스 대대는 많은 병력이 손해를 입으면서 이 고지를 끝까지 확보함으로써 중공군의 의지를 꺾을 수 있었으며, 우측의 국군의 백마고지 방어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프랑스 대대는 전사 47명 부상 144명이라는 손실을 입으면서 고지를 사수했다. 중공군은 5천여 명의 전사자와 7천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
(화살머리고지 전투(Battle of Arrowhead hill) 2)
휴전 직전인 1953년 여름, 철원의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281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국군 제2사단(사단장, 김웅수준장)이 고지를 방어하기 위한 두 차례의 방어전투를 치르면서 고지를 성공적으로 사수한 전투이다.
제 1차 전투와 2차 전투를 모두 합하였을 때, 적군 약 1,300여 명을 사살하고 10명의 포로를 포획하였으며, 100여정의 소총과 4,700여 발의 수류탄을 노획하였으나, 국군 212명(180명이라는 자료도 있음.)이 전사하고 16명의 실종자와 77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백마고지전투)
백마고지는 광활한 철원평야 일대와 서울로 통하는 국군의 주요보급로를 장악할 수 있는 군사지정학상 요지로 중국인민지원군과 국군간의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었다.
공격을 감행한 중국인민지원군은 장융후이[江擁輝]가 지휘하는 제38군단의 6개 연대에 지원부대병력을 합하여 총병력 4만 4,056명이었으며, 각종포 55문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이에 대응하는 국군은 김종오 소장이 지휘하는 제9사단 예하의 제28·29·30연대 병력 2만명에 국군 제51·52·53포병대대, 국군 제53전차중대, 미군 제213자주포병대대, 미군 제955중포병대대, 미군 제73전차대대 등의 지원을 받아 중국인민지원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9일 동안 12차례에 걸쳐 치러진 공방전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은 약 1만 명, 국군은 3,500명 정도의 사상자를 냈다.
갑자기 굵어져 폭우 수준인 오락가락 하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남쪽으로 포천시와 양주시, 의정부시를 지나 고속도로를 달리다 중간에서 국도로 바꾸어 양평을 거처 용문을 지나 홍천 청운면을 지나 횡성. 여기서 부터는 익숙한 도로... 밤12시를 조금 넘어 동해시 집에 도착.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집중 폭우로 여러 지역이 물에 잠겨 많은 피해가 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조상님 천도와 묘지정리를 같이해야하는 이유
1). 묘지를 음택이라 합니다. 영혼들(조상님들)의 집입니다. 무연고묘지란 누군가 돌봐주는 후손이 없는 영혼들의 집입니다. 마치 가족도 없고 돌봐주는 사람들도 없이, 홀로 쪽방에서 살고 있는 기초수급 독거노인과도 같습니다. (실제로는 더 심하지만..).
2). 무연고묘지를 정리한다는 것은 조상영혼들이 살고 있는 집을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쪽방촌, 무허가 판자촌, 무분별한 낙후 지역, 낡고 오래된 마을 등을 정리하여 부가가치가 높아지는 개발 가능한 효율적이고 새로운 땅으로 재정비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묘지를 정리하고 난 후 조상님들의 영혼들을 당연히 새로운 집이나 거처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3). 묘지 주인들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근처(임시 거처인 중음계)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론 살아있는 후손들에게 불필요한 간섭이나 영향을 주지 않도록 흔히 말하는 저세상(또는 좋은 곳, 하늘나라 등)으로 돌아가게 하는 과정을 천도(제도라고도 함)라고 합니다.
4).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 중음계에 있는 영가들(조상님들)은 마치 수해나 화재 전쟁등으로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는 이재민이나 난민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누군가 후손들이 길을 열어주기 전까지는 법계의 공무원들이라 할 수 있는 화엄신중들은 중음계 영가들을 단지 임시숙소 울타리 밖에서 지키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습니다. 몇 백년 아니 몇 천년이라도.... 인간계의 일은 중음계를 포함해서 인간들이 먼저 일을 해야 신중들이 응해줍니다. 특히 중음계 영가들의 천도(제도)과정은 살아있는 그 후손들이 능력과 법력이 있는 법사(스님)가 출현하였을 때 그 시작하는 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5). 결론은 조상님들 천도와 묘지 정리는 같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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