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뿔도 없는 게 자존심은 살아서, 그랬습니다. 욱하는 성질을 이기지 못하여 내던진 무개념 도전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뭐라고 설명할 것이며 뭐라고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해본 것은 고사하고 어쩌면 구경도 거기 와서 처음 해본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경기를 하자고요? 아무리 젊음을 구실로 해서 변명을 해준다 해도 이것은 전혀 무모한 일입니다. 단 한 달의 기간을 유예하였습니다. 글쎄, 한 달 만에 해결이 될 만한 기술일까요? 상대는 외국에서 갈고 닦은 실력자(?)입니다. 전문 기술자는 아니더라도 그만큼 익숙하다는 말입니다. 그를 상대로 경기에 도전하였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신없는 짓을 해놓은 것입니다. 쏟아진 물, 자존심 팽개치고 없던 일로 무릎을 꿇을까요?
오늘 우리 젊은이들의 가장 큰 숙제는 ‘취업’입니다. 대학 졸업 전에 이루어두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학교를 벗어나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졸업을 한두 해 미루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진작 졸업하고 나갔어야 하는데 학교에 남아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소위 대학 5학년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타 지역으로 유학 중이라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숙식을 해결해야 합니다. 비용을 절약하려니 기숙사에 머물러야 합니다. 역시 그것조차 경쟁입니다. 반드시 수강신청이 접수되어야 합니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 놓치고 맙니다.
일단 먹고사는 일을 해결해야 합니다. 학교 근처 바닷가로 찾아갑니다. 서핑 게스트하우스에서 숙식 알바를 찾는답니다. 3 사람의 젊은 서퍼가 안락의자에 앉아 심사(?)를 합니다. 서핑에 전혀 문외한이 알바를 하겠다고? 알바자리도 구하기 어려운 처지에 또 어디를 헤매고 돌아다녀야 합니까? ‘준근’은 목숨을 걸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무엇이든 다 합니다. 어떻게든 합니다. 시켜만 주십시오. 뭐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열정과 간절함에 통과시킵니다. 청소하고 정리하고 차 끓여 올리고, 그렇게 함께 하면서 서핑을 소개합니다. 옷을 입고 벗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뭐 그런 생각도 해볼 만할 것입니다.
어느 날 멋진 캠핑카가 게스트하우스 앞 도로에 주차합니다. 하필 왜 장사하는 집 앞에다 주차하고 야단이야? 불평하고 있는데 멋진 여자가 찻집으로 들어와 차를 주문합니다. 캠핑카로 가져갑니다. 그곳에 남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남자가 멋을 갖추어 서핑 도구를 가지고 바다로 들어갑니다. 여자는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바라봅니다. 이제 갓 서핑을 맛보려 하는 준근으로서는 남자의 서핑보다 여자 쪽으로 눈이 갑니다. 바다에 들어가지만 아직 파도 위에 일어서지도 못합니다. 남자가 방해만 된다고 무시하고 깔봅니다. 게스트하우스의 세 전문인도 옆에서 지켜봅니다. 이봐요! 얼마나 잘났는지 모르지만 한번 해봅시다. 그렇게 해서 경기하기로 약조합니다. 소위 자존심을 건 대결입니다.
그러나 한 마디로 미친 짓이지요. 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포기할 것인가 지킬 것인가, 자존심 팽개칠 것인가, 지킬 것인가 그 문제만 남았습니다. 선배님들 저를 살려주십시오. 저를 만들어주십시오. 그래 못할 거 없지. 한 달, 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합니다. 선배들의 자존심이 어우러져 팀을 이룹니다. 외국 물 좀 먹었다고 국내 서퍼들을 우습게 본다 이거지? 그렇다면 한 번 본때를 보여줘야지. 그런데 이게 말처럼 되는 일입니까? 전문인도 아니고 초보 딱지가 붙기도 전인데 말입니다. 아마도 훈련을 하면서도 그런 마음이 몇 번은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계속해? 포기해? 자존심이 밥 먹여줘?
또 한 가지 변수가 첨가됩니다. 뜸하던 취업 문턱이 열릴 가능성입니다. 이제 경기 일자는 다가오는데 담당교수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서울로 올라와서 면접을 보라는 것입니다. 바로 경기를 치러야 할 그 날입니다. 당장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면접일이라도 잡혀야 가능한 길이 열립니다. 그러니 이를 어쩌지요? 경기를 치러야 하나? 면접에 참석해야 하나? 결국 없는 돈 긁어모아 송별회를 가집니다. 저 취업 면접 참석해야 합니다. 아니, 여태 가르쳐주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포기하는 거야? 경기 홍보까지 다 해두었는데? 말이 되는 소리야? 내 장래를 선배님들이 보장해줄 수 있어요? 맞아, 준근이가 선택할 문제야.
인생은 선택으로 꾸려집니다. 때마다 나 자신의 선택이 내 인생의 향방을 결정합니다. 그것은 그 누가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담당교수도 부모라 해도 안 됩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내 인생입니다. 취업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취업이 인생을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나를 지키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이후의 시간들을 책임질 수 있고 나 자신을 만들며 내 인생을 꾸려갈 자신과 힘이 생기게 됩니다. 현실 속에 나를 내던져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도 장래의 인생을 만드는데 큰 자산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Welcome To The Guesthouse)를 보았습니다. 경험이 중요하지만 정당한 이론이 바탕이 된다면 과연 ‘지식은 힘’이 될 것입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복된 주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