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주님 성탄 대축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올해 대림 기간은 별도로 참회와 보속 행위를 할 필요 없을 정도로 온 국민이 너무나 큰일을 겪었다. 전례력으로는 대림절이 끝나고 성탄절을 맞았지만 그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고 사건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 일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찔한 사건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 덕분에 전 국민 듣기 평가에 이어 헌법 공부도 많이 하게 됐다. 그중 자주 들어 외울 정도가 된 조문이 있는데,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우리나라는 주권의 운용이 국민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최고 지도자를 뽑을 수도 있고 뽑아낼 수도 있다. 잘 아는 내용인데도 일상생활에서는 그 법을 적용할 일이 없어서 거의 잊고 지냈다. 그 사람이 일을 저지르는 바람에 우리 국가 공동체를 떠받치는 가장 기초적인 그 약속을 기억해 냈고, 비싼 수업료를 내고 확실하게 학습하게 됐다. 이제 무력으로 겁박하고, 비겁한 술수로 우롱하는 시대는 완전히 끝나간다.
당연한 건데 잊고 지내는 또 다른 게 있다. 하느님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산소가 없으면 살 수 없고 그 흔한 물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하느님은 그런 분이다. 그분이 숨을 거두어들이시면 우리와 우주 만물이 한순간에 무(無)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바로 이분이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 되셨다.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신 게 아니라 우리 모두처럼 한 여인의 태 안에서 만들어지고 탯줄을 끊고 한 아기로 태어났다. 하느님은 철저히 우리 중 하나가 되셨다. 그때 온 백성은 황제의 명령에 따라 각자 고향을 찾아가는 큰 소동을 벌여야 했다. 만삭인 새댁 마리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황제는 그렇게 폭력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지만, 우리 하느님은 아침이슬 내리듯 사람들 모르게 여관방 하나도 차지하지 않고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다. 우리가 태양을 맨눈으로 보면 눈이 멀고 태양 가까이 가면 흔적 없이 없어지게 되는 거처럼 하느님이 진짜 모습을 보여주셨다면 너무 놀라고 두려워 그 자리에서 숨이 멎었을 거다.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하느님은 살아 계시고 우리 구원을 위해 지금도 여전히 일하신다. 그분은 공기처럼 물처럼, 믿는 이들 가운데 살아 계신다.
우리 하느님 이름은 임마누엘, 지금 여기에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요즘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을 겪는 중에 가슴 뛰는 일을 경험한다. 연대의 힘이 그것이다. 총과 장갑차를 맨손으로 막고, 비겁한 권력자들에 대한 분노를 풍자와 흥으로 승화시켜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힘이다. 하느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정말 다르다. 하느님은 우리를 끔찍한 전쟁에서 구하셨고, 불의하고 부정(不淨)한 권력의 횡포에서 빼내 주셨다. 하느님은 안 계신 거 같이 계시고, 아무것도 안 하시는 거 같이 일하신다. 조용해지면 안 들리던 작은 소리가 들리는 거처럼, 세상사와 내 생명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하느님 목소리가 들리고, 세상을 떠나면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뵙게 된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 어떤 사람이 그런다, ‘삶’을 풀어보면 ‘사람’이 되고, ‘사람’을 합쳐보면 ‘삶’이 된다고. 그렇다, 삶은 ‘사람과 사람’이고,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하느님께는 죄송하지만, 하느님보다는 친구가, 사람이 더 가깝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람이 되신 게 아닐까? 거기에 더해 우리가 선물에 약하다는 걸 아시고 당신을 우리에게 선물도 주셨을 거다. 우리 마음을 독차지하고 싶으셨던 거다. 그분이 질투하시는 분이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생명의 주인이시고, 당신 밖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성탄절에는 선물을 주고받는다. 성탄절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 날이라는 뜻이겠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주권을 갖고 있고, 그 권리는 하느님께 속해 있으며,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예수님, 아기 예수님 누워계신 구유 앞에서는 할말을 잃습니다. 감사와 사랑 말고는 드릴 게 없는데, 표현을 잘 못하니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있는 겁니다. 주님이 저희와 함께 계시니 두려워도 계속 앞으로 나가고 더디 가도 함께 가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 계신 곳에는 항상 아드님이 계시니 어머니께 기도하고 청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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