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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디스코 파티
기훈의 방을 나온 형준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 쉬고 싶었지만 밑의 나이트클럽에서 기다리고
있는 문 사장과 정석철(丁錫喆)을 생각하자 그럴 수
만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로 1층까지 내려와 잠시 로비를 서성거리
며 구겨진 기분을 추스린 형준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
단을 천천히 밟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는 하지만
이미 새벽 1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인 때문인지 호텔안
은 로비에도 복도에도 로보트마냥 꼼짝않고 앉아있는
종업원만 어쩌다 눈에 띌 뿐 물 속처럼 고요한 적막에
잠겨 있었다. 휘황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대형의 호화
찬란한 크리스탈 샹들리에도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찬
탄의 목소리가 있어야 빛을 발하는지 그 빛이 차고 메
말라 보였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나이트클럽으로 들어서면서 완전
히 바뀌었다. 요란하고 경쾌한 밴드와 바로 건너편의
사람 얼굴조차 식별해 낼 수 없도록 시시각각 바뀌는
바닷속처럼 칙칙한 조명들이 서로 뒤엉킨 채 한발짝
바깥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끝이 어디인지 얼핏 가늠하기 힘들 만큼 넓은 실내 가
득 농익은 과일처럼 끊어넘친 원색의 조명들이 세탁기
통 속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속에서 수많은 남녀들은
마치 가는 시간을 붙들기라도 하려는 듯 서로 몸을 부
딪치며 미친 듯 흔들어대고 있었다.
형준은 클럽의 가장자리를 돌아 무대 안쪽으로 배치
된 좌석으로 갔다. 문영도와 정석철이 술을 마시고 있
는 자리는 한참을 더듬거리고서야 겨우 을 수 있었
다.
"어, 한 비서관 아직도 안 왔어요?"
의자에 주저앉는 형준을 쳐다보며 정석철이 물었다.
그의 얼굴에 술기운이 벌겋게 올라 있었다.
"아, 아니."
형준은 별로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간단하게 잘
라 말했다.
"들어 왔어요? 그런데."
문영도가 정석철에 비해 비교적 말짱한얼굴로 물었
다.
"뭐, 별로 얘기할 기분이 아니라서 그냥."
"형도 참. 아, 그 사람 내키잖으면 관두라지요, 뭐.
우리 술이나 마십시다. 그리고 영 트릿하게 나오면 영
감님께 직접 부딪치는 거예요."
정석철이 앞에 앉은 문영도에게 들으라는 듯 너스레를
떨며 컵에 가득 맥주를 따뤄 형준의 앞에 탁소리가 날
만큼 힘주어 내려놨다.
"그래요. 그렇게 성급하게 생각할 것 있습니까? 기분
좋게 천천히 추진해 갑시다."
정석철의 말에 동조하듯 문영도는 만면에 웃음을 띄었
다. 그와의 만남도 벌써 10여 차례가 넘어가지만 언제
들어도 막힘없이 유창한 그의 모국어 구사를 들을 때
마다 마음에 걸림을 혀운은 어쩌지 못했다. 한국인임
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부모의 뜻에 따라 집안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했고 교육도 국민학교 때부터 한국 학교
에서 공부했던 덕택이라고 문영도는 항시 자랑스레 말
했다.
40대 중반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하게 느껴지는
문영도는 얼굴가득 웃음을 띄긴 했으나 얼핏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표적으로 강형준과 정석철을 탐색
하듯 번갈아 살펴봤다.
일본의 동경과 오사카 등지에서 호텔과 카바레, 터키
탕 등 십여개가 넘는 대형 유흥업소룰 경영하고 동경
의 번화가에 수십층짜리 오피스 빌딩을 세 개나 가지
고 있다는 성공한 재일교포의 아들인 문영도는 나이가
들면서 조국에 뭔가 사업을 벌이고 싶어하는 그 부친
을 대신해 탐색차 나온 2세 사업가였다.
돈많은 재일교포 2세 사업가라면 흔히 기름기 돌고 여
유있어 뵈는 유약한 귀공자 타입을 연상하게 되나 문
영도는 그 모든 것을 간단하게 뒤집어 버리는 인물이
었다.
그의 부친인 문덕삼(文德三) 회장은 1925년 대전에서
멀지않은 시골에서 땅한조각 제대로 없는 빈농의 장남
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밑으로 동생 8명이 차례로 태
어나면서 하루 한끼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할 만큼 굶
주리고 헐벗은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해방과 함께 일
본으로 밀항을 했다. 낮설고 인심사나운 전후(戰後)의
황폐한 일본땅에서 그는 넝마주의서부터 시작, 짐꾼,
유곽(遊廓)의 심부름꾼 등 밑바닥 인생으로서 안해 본
일 없을 만큼 험한 인생을 산 끝에 재일교포로서도 상
위권에 들만큼 엄청나게 돈을 벌어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일본으로 밀항을 해 간 뒤 10년 후 , 얼마간의 돈도
모이고 그런대로 자리를 잡은 그는 그 동안 소식 한자
주고받지 못했던 부모형제를 찾아 고향을 다니러 왔었
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는 이미 타계하고 9남매나 되
는 그의 형제들은 제각기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
뿔뿔이헤어져버려 그 행방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설상가상,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고향마을까지
수몰(水沒)돼 버렸다.
생각하면 뼈저리게 서럽고 배고팠던 어린시절의 기억
들만 덕지덕지 달라붙은고향이었지만 이제 다시는 밟
을 수도 볼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메어진다
면서 그는 며칠씩 말을 잃고는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고향에의 향수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한
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여덟 명의 동생들에 대한 그리
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막연하게나마 한가닥 남아 있
던 언제가 찾을 수 있으리라던 근거마저 고향땅에 수
몰과 함께 물속 깊이 가라 앉아 버렸다는 기대감의 상
실 때문이었다고 그 아들은 설명했다.
나이가 60고개를 넘어서면서 그는 부쩍 고향에 가 살
고 싶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 부친을 보기가
민망했던 문영도는 연로한 부친 대신 한국을 몇 번 찾
았다. 부친의 고향땅인 D시 일대도 몇 바퀴 돌아 보았
다.
바닷가 쪽은 물론 내륙 쪽으로도 어디나 할 것 없이
풍광이 수려하고 교통도 좋은 D시 일대를 돌아보며 문
영도는 레저산업 쪽이라면 투자를 해도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D시를 몇 번 왕래하면서 D시 출신 국회의원인 오재윤
씨의 지구당 청년보장 정석철과 알게 되었다. 오 의원
의 조카이자 지구당 사무국장인 강형준은 정석철로부
터 소개 받았다.
제1 야당의 부총재이자 국회건설분과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실력자의 조카라는 사실보다도 명석하고 회전이
빠른 두뇌를 가진 강형준 개인과의 유대관계를 그는
상당히 중요시하는 듯 했다.
강형준은 자신에게 어떤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줄 수
도 있을 듯한 문영도를 찬찬한 시선으로 살펴보았다.
"자, 제 잔 받으십시오."
정석철이 두손으로 공손히 받든 맥주잔을 문 사장에게
권했다.
'아, 고마워요. 자 그럼 오늘 밤만은 마음 푹 놓고
술고 마시고 춤도 추고 합시다."
문영도는 정석철이 거넨 맥주를 단숨에 들이미고는 정
석철에게 곧 내밀었다.
"아, 발바닥이야 비벼야죠. 오늘같은 날 술 안마시고
춤 안추고 언제 하겠습니까? 사장님부터 시작하시죠."
정석철의 느물대는 부추김에 문영도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나 먼저."
문영도는 누가봐도 최고급품임을 알수 있을 만큼 맵시
좋은 쥐색 양복의 상의에 꽂힌 네키치프를 버릇처럼
다듬은 다음 여자들끼리 앉아 있는 테이블을 향해 걸
어갔다. 그는 이윽고 차림새가 깨끗하고 키가 후릿한
중년 여인과 함께 플로어로 나갔다. 두 사람의 남녀는
곧 플로어 가득 출렁이는 물결처럼 한덩어리가 되어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미끄러지듯
휩쓸려 들어갔다. 두 사람은 이내 강형준과 정석철의
시선에서 벗어나며 사라져 버렸다.
음악은 곧 빠른 템포로 바뀌었고 붉고 푸른 사이키조
명이 귀청을 찢어대듯 이어지는 음악만큼이나 정신없
이 실내의 구석구석을 빠르게 그리고 쉬임없이 훑어나
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 홀 전면의 무대로 나체에 가
까우리만큼 대담하게 벗어붙인 젊은 무희가 나타나 그
매끈한 황갈색 몸뚱이를 흔등어 대기 시작했다. 가느
다란 끈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검정색 비키니
로 가슴과 허리밑의 음부를 아슬아슬하게 엮어가린 스
물두 셋 정도의 그 무희는 마치 뼈가 들지 않은 연체
동물처럼 유연한 동작으로 춤을 추었다. 그러나 그 몸
놀림에는 성능 좋은 피스폰의 압축운동과도 같은 힘과
탄력이 베어 흘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몸을
흔들어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강한 내력을 내뿜고
있었다.
"아니, 문 사장 저 양반, 이런 춤도 추시나?"
잠시 무대 위의 무희의 몸놀림을 주시하고 있던 정석
철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세계 제일의 유흥도시에서 대형유흥업소를 경영하는
사람이잖아. 거기다 돈 많겠다 놀던 가락이 왜 없겠
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형준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
로 잰 듯 절제된 모습과 별로 웃음기 없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교양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긴 했지만, 그
렇다고 허세를 부리고 호기롭게 놀기를 좋아하는 것과
도 맞아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 온 문영도가 온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는 데에 두 사람은 얼핏 실소같은 걸
느꼈던 것이다.
"아무리 가락이 있다기로 이런 템포는 도저히 아니올
시다 같은데."
정석철은 두어번 머리를 흔들며 사람들 사이로 흘러
들어가 섞여 버린 문영도의 모습을 아 잠시 이쪽 저
쪽을 둘러봤으나 이내 단념한 듯 테이블로 돌아 앉았
다.
"우리도 한바탕 흔들어 봅시다."
정석철이 말했다.
"너나 나가."
형준은 좀 전의 굳은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왜, 생각대로 설득이 안되던가요?"
정석철이 강형준의 기색을 살피며 물었다.
"설득한다고 설득될 사람이야?"
강형준은 속이 타는 듯 맥주를 연거푸 따뤄 마셨다.
"한 비서 그사람, 이번 일을 영감님께 정말 까발릴까
요?"
정석철이 형준에게서 맥주병을 빼았아 옆으로 치우며
물었다.
"그러고도 남을 기세야."
"도대체 왜 그런다죠?"
"결과는 시간이 걸려야 나와. 지금 당장의 진행만 봤
을 때 내가 불리해. 그 친구는 그런 내 입장을 잘 알
고 있어. 지금 밟아버리지 않으면 훗날 저에게 큰 부
담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는 생각하고 있는 거지."
"불리한 입장? 형님이?"
"문 사장에게 돈을 받아 쓴 걸 이미 알고 있었어."
"아, 아니, 그럴 리가?"
석철의 눈이 화등잔만 해지며 놀랐다.
"작년 개인택시 사건이래도 우리의 동태가 낱낱이 체
크되고 있는 모양이야."
"뭐라고요?"
불쾌해 있던 석철의 얼굴에서 술기운이 단번에 사그
라졌다.
"그것과 관계없이 제보가 있었다지만 헛소리야. 문
사장과 석철이 너, 그리고 나 세 사람만 알고 있는 받
아 쓴 돈의 액수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걸로 봐 전
문가를 고용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형준의 눈이 가늘고 골똘해졌다.
"제보는 뭐고 전문가 고용은 또 뭡니까?"
"그녀석 머리가 컴퓨터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거
지. 그 나름대로 나의 비중을 분석하고 위험도를 측정
한 거야. 그 결과 일찍부터 내 약점을 붙들어 둘 필요
성을 느낀 거겠지."
"그 친구 정치가 다 됐네요!"
정석철이 혀라도 내두를 듯 기가 막혀하며 뇌까렸다.
"그렇지만 염려할 건 없어.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까."
맥주컵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꽈악 주는 형준의 얼
굴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더이상 나를 자극하면 어떤 결과가 온다는 걸 알게
해 주겠어."
"진작 그렇게 했어야 해요. 사실 한 비서 그자는 서
울에서 영감님 모시고 으시대고 살고 있으니 선거구만
은 우리들에게 맡겨둬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번에 된
김을 보여줘 형님에게 함부로 대들지 못하게 만들어
놔야해요. 그는 서울, 우린 지방, 서로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정석철은 당장이라도 아 올라가 결판을 내겠다는
듯 설치기 시작했다.
"생각이 있다고 했잖아, 맡겨 둬."
강형준은 무게 실린 음성으로 제어하며 석철의 앞에
컵을 건네고 맥주를 따랐다.
정석철은 형준의 D중고 4년 후배로 어려서부터 D시
에서는 알아주는 쌈패였다. 모교인 D중고에서 수재
로 알려졌던 형준이 서울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이후
좋은 직장 다 마다하고 이모부인 오재윤 의원의 지구
당 사무국장을 맡아 D시로 내려왔을 때 모든 사람든은
그 좋은 머리 갖고서 하필 지구당 사무국장이냐며 혀
를 찼다. 그러나 당시 D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뚜렷한
직장없이 건들거리며 고향에서 주먹이나 휘두르고 있
던 석철은 대환영이었다.
학교시절부터 무작정 좋아하던 선배이기도 했던 데다
야당 중진인 오 의원의 조카란 배경있겠다, 미리부터
지역구를 닦아 놓으면 그 후계는 따놓은 당상(堂上)이
란 판단 때문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형준은 그에게 청
년부장자리를 맏겼다.
그런데 사태는 석철의 생각과는 조금 거리가 있게 돌
아갔다. 그 근원이 오 의원의 맏사위이자 비서관인 기
훈이었다.
형준과 아래 윗 마을에서 자라고 공부한 기훈은 머리
는 형준보다 못했지만 준수한 인물과 대를 이어 내려
오는 명문가에다 돈많은 집 외동아들이라는 신분적 차
이로 형준과는 격이 다른 인물로 대우받아 왔었다.
자기 소유 땅 한 평 갖지 못한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형준은 어려서부터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로 알려졌었다. 줄줄이 사탕처럼 올망졸망 엮어
내려진 7남매를 먹이고 입히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휠
지경이었던 부모에게 형준의 상급학교 진학이란 생각
조차도 사치였다. 그러나 문중 어른들은 형준의 빼어
난 머리가 아깝다며 그의 학비를 전액 보조했다. 그가
서울의 일류대학을 졸업하게 되자 집안에서는 오 의원
의 뒤를 잇게 하려는 의논들이 나왔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형준도 그런 야망을 은근히 키워 왔었다.
그러나 이모부인 오재윤 의원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조카보다는 명문가이자 재산가이
기도 한 한씨 집안의 외동아들에게 더 흥미를 느끼고
일찍부터 눈여겨 봐오던 터였다. 집안 좋고 인물 좋은
데다 실력까지 갖춘 기훈은 아들없이 딸만 둘 분인 자
신의 맏사위로 더할 나위 없는 적격자였다.
그가 일찍부터 기훈을 점찍어 놓고 자신의 뒤를 이을
수도 있다는 미끼를 걸어 은근히 일을 추진시켜온 데
는 맏딸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바로 오 의원 자신의 정치적 안위가
그것이었다.
예로부터 D시와 그 일대는 반가(班家)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는 곳이다. 그런 지역에서
비교적 목소리 높은 세력으로 세 집안을 꼽았다. 오
의원이 속한 해주 오씨(吳氏) 문중과 그의 처가 쪽인
진주 강씨(姜氏) 문중, 그리고 기훈의 집안인 청주 한
씨(韓氏) 문중이 바로 그 집안이었다.
문제는 집안도 융성하고 돈 많은 실력자들도 그중 많
은 한씨 집안에서 밀고 있는 여당의 D시 지구당 위원
장인 한승표(韓昇杓)라느 인물에 있었다. 그 자신 D시
에서 사립 중고등학교를 섭립,운영하고 있는 한승표
는 여당 후보였다. 5대 의회 때부터 시작, 4선(四選)
에 이른 오재윤 의원에 비하면 나이도 젊고 경력도 비
길바가 못 되지만 그와 대결한 두 번의 선거를 통해
그의 지명도가 차츰 높아지고 그와 함께 지지세력도
불어나고 있다는 것을 오 의원은 알아차렸다. 앞으로
자신의 정치여정에 있어 적지아니 신경을 쓰게 할 것
같
은 예감의 인물이었다.
그런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한씨 집안의 종손인
기훈을 사위로 삼는다면 한승표의 지지세력을 간단하
게 분산시킬 수 있음은 물론, 그 집안의 막강한 재력
과 세력까지도 자신이 나눠가질 수 있다는 일거양득의
계산이 쉽게 나왔다.
오 의원이 기훈을 맏사위로 맞아들이기로 했을 때 형
준은 자신의 진로계획에 이상이 생길 것을 직감했다.
자신이 아닌 기훈을 비서관으로 임명했을 때 그는 예
감의 확인으로 어깨를 떨었다. 그런 감정은 형준을 천
거했던 집안 어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작 칼자
루를 쥐고 있는 오 의원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뒤늦게나마 오 의원의 속셈을 알아차린 집안어른들은
과연 정치가다운 포석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형준은
전과 다름없이 예의바른 태도로 극히 조카답게 굴었
다. 그런 형준의 기분과 앞으로의 계획을 모를리 없을
텐데도 오 의원은 그에게 아무런 언질도 비치지 않았
다. 조카의 장래 쯤에 신경쓸 만큼 한가한 사람도 아
니라는 의식적인 무관심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황하에서 공식비공식적으로 기훈의 역할은
자신을 제압해 갔다. 그러나 현실적인 여건이 형성되
지 않는 한 정면대결은 어리석은 감정대결일 뿐이었
다. 형준은 공손한 태도로 지역구를 맡아 일해 보겠다
는 계획을 오 의원에게 털어놓았다. 그렇잖아도 점점
비중이 높아가는 젊은이들의 표를 염두해 두고 있던
오 의원은 두말없이 쾌히 승낙했다.
형준은 그 다음날로 고향 D시로 내려왔다.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하행열차에 몸을 부린 형준은 뒤
로뒤로 빠르게 밀려가는 차창 밖의 풍경을 감정없이
내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출발이고 대결이고 간에
어차피 고향에서 시작할 것이 아닌가.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몇년 후, 아니
길게 잡아도 5년 이내에 기훈과의 대결은 불가피하게
닥칠 것이다. 그리고 그 장소는 고향인 이 D시가 될
것이다.
기훈이 오 의원의 후계자임은 D시 사람 대부분이 인
정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막강한 후광에다가 청주
한씨 문중의 풍부한 자금능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그야
말로 천하무적의 조건일 터였다. 그러나 10여년 동안
의 세월 동안 쭈욱 고향사람들, 속에 파고들어, 그것
도 무작정이 아닌 정확하게 계산된 계획 아래 함께 먹
고 마시며 살아 온 자신의 다져진 위치 또한 무시하지
못할 마큼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볼 때 누구에게 유리한 결과가 될 것인지 뚜껑을 열어
보기 전에는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을 것이다.
기왕 그런 결심을 다지고 있는 바에야 기훈과의 대결
에서 더 이상 양보를 해야하는 필요는 없다. 사건의
원인이야 자신 쪽에서 발생한 것이긴 하지만 이번 일
로 그에게 발목을 잡힐수는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석철이 이끌고 있는 청년당원들을 동원해 죽지않을 만
큼 두들겨 패 또다시 지역구 일에 왈가불가하지 못하
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니었
다. 그런 극한적인 방법은 조금더 사태를 보아가며 동
원해도 될 것이다. 더욱이 지금 자신은 상당한 재력을
가진 재일교포 사업가 문영도와 연결이 되어 있다. 자
신에게 있어 가장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금문제
에 있어 문영도와의 인연은 어쩌면 답(答)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피눈물 나는 과거 위에 부(富)를
쌓아올린 재일교포 1세가 아닌 2세인 때문일까? 문영
도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순수했다. 아니 그것은 순수
라기보다 교포2세가 으레 갖게 되는 경시감(京市監)인
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영도와 형준은 쉽게 묶여졌다.
문영도와 함께 관광단지 개발사업을 추진해 가면서
형준은 자신의 바둑알을 놓아보기로 결정했다. 형준의
시도는 문영도와 오 의원 두 사람을 연결시키려던 처
음의 계획을 수정하는 것부터 시작됐다. 술수(術數)에
능한 오 의원에게 이 일이 연결됐을 때 그에게 돌아오
는 건 잘못됐을 때의 질책 뿐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
문영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을 형준 자신이 쥐고
싶었다. 어쩌면 자신의 일차적 도약대가 될 천재일우
일 수 도 있었다. 지키고 싶었다. 국회건설분과위원장
의 조카에다 그 지구당 사무국장이라는 신분은 일을
추진함에 있어 적절하게 편리했고 문영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형준은 오 의원과 문영도의 면담은 적당
히 구실 붙여 뒤로 미뤄가며 일을 추진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활동비라고 받아 쓴 몇 백만 원의 돈도 형준
이 원했던 것은 아니다. 문영도가 필요할 거라며 던져
준 것이었다.
'돈 많은 재일교포의 고향에서의 사업, 그렇게 쉽게
만나지는 기회가 아니다. 이것은 내게 아 온 첫 번
째 기회야. 놓칠 수 없어. 기훈이 너 정도쯤이 흔든다
고 좌우될 내가 아니다. 날 때부터 온갖 특혜 다 갖고
태어난 너 따위가 감히 방해하도록 놔두지 않겠어. 이
건 내 기회야. 적어도 신(申)은 공평할테니깐'
형준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마음속 깊이 부르짖었
다.
"여하튼 어떤 방법을 쓰든지 항 비서가 더 이상 이곳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처리해야
해요."
다짐하는 석철의 눈빛에 술기운이 없었다.
"걱정마."
형준은 다시 한 번 컵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을 주
었다.
"따분한 얼굴로 계속 술들만 마실 셈이요?"
그때 문영도가 돌아와 자리에 앉으며 두 사람을 차례
로 쳐다보았다. 격렬하고 빠른 템포로 실내를 통채로
들썩거리게 하던 음악은 어느새 경쾌하고 매끈한 탱고
로 바뀌어 있었다.
"사장님은 빠른 템포의 춤을 좋아하시는 모양이죠?"
석철이 조금은 숨이 찬 듯 어깨로 숨을 내쉬는 문영
도를 보며 웃었다.
"연거푸 세곡을 추고 났더니 숨이 차는군!"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 문영도의 검으틱틱한 얼굴이
상기돼 보였다.
"세 번 다 그 여자분과 추셨습니까?"
"아니요. 그 여자는 한 번 추더니 도저히 더 못추겠
다고 해서 다른 젊은 여자하고 췄지요."
"대단하십니다!"
감탄하는 석철의 웃음이 기묘했다.
"운동 대신이지요. 기분도 풀고 운동도 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문영도는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의 컵에 석철
이 맥주를 가득 따랐다.
"그건 그렇고, 두 사람은 무슨 얘길 그렇게 진지하게
하시오?"
맥주컵을 단숨에 비워 낸 문영도가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오며 물었다.
"아, 뭐, 별거 아닙니다."
석철이 손 까지 내저으며 비워진 문영도의 컵에 한번
더 맥주를 가득 따랐다.
"한 비서관 때문에 그렇소?"
문영도는 아직 취기가 없어보이는 형준을 돌아다보며
물었다.
"두 사람이 평소 친하질 못한 모양이군요?"
문영도는 대답없는 형준 대신 석철에게 물었다.
"한 비서가 좀 재는 편입니다."
석철이 불쑥 내뱉았다.
"그래요?"
문영도가 조금은 뜻밖이라는 어조로 받았다.
"형님과 한 비서는 어려서부터 아래 윗동네서 자란
친구고 학교도 같은 D중고 출신입니다. 형님은 D고
개교 이래의 수재로 소문난 실력자지만 가난했고 한
비서는 머리는 그보다 못한데도 명문집안의 종손이라
는 후광 때문인지 항상 형님을 대수롭잖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는 영감님의 사위로 비서관이고
형님이 지구당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는 위치 때문인지
매사에 견제하고 트집을 잡는 형편 이지요."
"보기보다 그릇이 작은 사람이로군요!"
문영도의 표정에 얹짢은 기색이 역력하게 나타났다.
"사실 이번 문 사장님과의 일에 있어서 자기를 거치
지 않고 영감님께 직접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이 그
로선 못마땅하기도 할겁니다."
석철은 내친 걸음이다 싶었던지 술술 털어놓았다.
"이번 일은 성격상 강형준 씨가 맡아야 해요."
문영도가 석철의 말을 끊으며 잘라 말했다.
"사장님 생각도 그러시지요?"
석철이 당연하다는 듯이 반색을 했다.
"이런 얘기 좀더 있다 하려고 했는데."
문영도는 말을 끊고 앞에 놓인 맥주를 한모금 들이켰
다. 그런 그를 형준과 석철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지켜
보았다.
"그동안 강형준 씨를 눈여겨 봐 왔고 또 나름대로 알
아도 봤소. 뒤를 밀어주는 힘만 있다면 대성할 수 있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잘 보셨습니다. 정말입니다. 형남은 누가 조금
만 뒤를 받쳐 준다면 큰 인물이 될 겁니다."
석철의 표정에 감격이 넘쳐 흘렀다.
"우선 이번 일을 위해 전력을 기울여 주시오. 이 일
을 토대로 해서 아버님과 내가 이곳 D시에 자리를 잡
게 될테고 그렇게 되면 결국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강형준 씨의 힘이 될 수 있지 않겠소."
"그렇게 까지 생각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형준은 등줄기를 타고 빠르게 전달돼 오는 전율을 느
끼며 새삼 머리까지 숙여 보였다. 자신의 기대가 적중
하리라는 예감이 다시 한 번 확신되었다.
"그럴 것 없어요. 결과적으로 볼 때 서로를 돕는 일
이 되질 않겠소?"
문영도는 너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런 뜻에서 제 잔 한번 더 받으십시오."
석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손으로 공손히 문영도에게
컵을 받쳤다.
"오, 고맙소, 고마워."
잔을 받은 문영도는 사양하는 형준과 석철의 잔에 각
각 맥주를 가득 따랐다. 세 개의 잔이 공중에서 쨍그
렁하고 마주쳤다.
"내일 모레, 27일 일본으로 가신다고 하셨지요?"
잔을 비운 형준이 물었다.
"28일로 미뤘소."
"미뤄요?"
"오늘 나를 방문하기로 했던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얘기했지요? 그 사람과 함께 내일 모레 이틀 동안 이
곳 주변을 돌아보고 27일 서울로 올라가 밤 비행기를
탈 예정 이었지요."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보다시피 그 사람이 오늘 안 왔소. 내일 온
다니깐 부득이 하루를 미룰 수밖에요."
문영도가 멋적게 웃으며 설명했다.
"이번에 가시면 언제쯤 오시게 되나요?"
석철이 물었다.
"이번엔 좀 걸릴꺼요. 이곳 사업에 대한 계획을 아버
님께 상세하게 설명드리고 일차적인 결심을 받아야 하
니까요."
"아, 네."
"아버님의 결정이 내린 다음 사업자금 조달방법을 의
논해야 합니다. 그런 저런 기초적인 것들을 어느 정도
준비해 놓고 나오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지
요."
"그러시겠지요."
형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이곳의 일은 두분이 맡아 차질 없도록 잘 진
행시켜 주시오."
문영도가 당부했다.
"그 점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석철이 아부감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가형준 씨는 이 일 외에 이모부인 오 의원의 신임을
받는 일에도 신경을 좀 써야 되겠소. 헛헛."
문영도는 그날 밤 따라 기분이 아주 좋아보였다.
새벽 2시쯤 되었을까? 술이 어지간히 취한 문영도는
밤새워 춤도 추고 술도 마시자고 우겼지만 형준과 석
철은 그에게 그만 쉬어야겠다고 만류했다. 시간이 점
점 깊어가는 데도 귀청을 을 듯한 음악소리와 함께
조금도 식을 줄 모르고 점점 더 휘황찬란하게 열기를
내뿜는 클럽을 나온 형준은 석철에게 문영도를 방까지
모셔다 드리고 올테니 아래층 로비에 있으라고 일렀
다.
후론트를 지키는 두 명의 종업원이 졸린 눈을 부비며
앉아 있을 뿐 1층은 휘황한 불빛아래 물 속처럼 깊은
적막으로 잠겨 있었다. 지하로부터 이따금 환청처럼
아득하게 밴드소리가 피어올라 왔다가는 안개처럼 희
미하게 풀어져가곤 했다. 석철은 클럽의 후꾼후꾼한
열기로 달아올라 있던 몸과 술에 푸욱 절여진 듯 먹먹
한 거리를 식힐겸 호텔 밖으로 걸어 나왔다. '드르륵'
열리는 자동문 소리에 반쯤 졸고 있던 후론트 직원이
화들짝 놀란 듯 고개를 돌렸으나 이내 본래의 자세로
돌아갔다.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치장된 호텔 현관 앞
과 넓은 정원을 지나 거리를 면한 곳까지 유백산 수은
등이 뿌옇게 줄을 지어 서 있기는 했지만 새벽 2시를
넙긴 사위는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서걱
거리는 소리 외에는 쥐죽은 듯 조용했고 수은등이 없
는 공간마다느 먹물을 뿌려 놓은 듯 새까맣게 얼어 있
었다. 몸전체로 다가오는 차가운 바람을 기분좋게 맞
으며 석철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를 한 대 거의
다 피웠을 때까지도 형준은 내려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나? 이거 젠장 옷까지 모두
벗겨 침대에 넣어 드리고 오나, 뭐 하나?"
거기까지 생각을 굴리던 석철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
다.
'그럴 수도 있겠지. 장차 출세를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지도 모를 인물아닌가, 쳇.'
석철은 상쾌했던 기분이 차츰 한기로 바뀌는 걸 느끼
며 호텔의 현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자동문을 지난 로
비에까지는 들어가고 싶지않아 회전문을 지난 공간에
선체로 엘리베이터 ㅉ족을 힐끔힐끔 살폈다. 형준이
문영도를 부축해 4층으로 올라간지 20분쯤 됐을까? 석
철이 은근히 짜증이 나려고 하는 판에 그가 로비에 나
타났다. 그런데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온게 아니라
엉뚱하게도 지하계단으로부터 올라 오고 있었다. 1층
에서 내리질 않고 잘못하여 지하까지 내려갔다 올라오
나 보다는 생각과 함께 좀체 실수를 하지않는 형준답
지 않는 행동이란 생각이 함께 스쳐 지나갔다.
"뭐하느라 이렇게 늦었."
자동문을 지나 현관으로 나온 형준에게 짜증기 섞인
목소리로 묻던 석철이 문득 말을 끊었다. 형준의 얼굴
이 백납처럼 질려 있었기 때문 이었다.
"아, 아니, 형님.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 아, 아니."
석철의 물음에 형준은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엉거주
춤 대답했다.
그런데 형님."
석철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한발 다가서자
형준은 피하듯 현관문을 밀고 호텔 밖으로 나가 버렸
다. 석철도 따라 밖으로 나왔다. 형준은 뭐라 말을 붙
이는 석철에게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현관 앞에 세워둔
자신의 승용차인 은색 포니로 다가가 키로 문을 열었
다.
차 안으로 들어간 형준은 서둘러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물었다. 담배를 끼운 뼈가 굵은 그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잠근쇠를 올려주길 기다리던
석철이 조금쯤 신경질이 난 표정으로 차문의 유리를
두들겼다. 그때서야 생각이 난 듯 형준이 황급히 잠근
쇠를 올리고 문을 열어 주었다.
"무슨 일이에요. 도대체?"
석철이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아무래도 심상찮다는
어조로 물었다.
"아무 일도 아니라니까."
한참만에야 입을 연 형준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어디 조용한데 가서 우리 둘이 더 마실까?"
담배를 비벼끈 형준이 엔진을 걸었다. 잠긴 듯 하던
그의 목소리는 이미 평소의 페이스로 돌아와 있었다.
뿌연 수은등 불빛아래 거리로 면해 있는 길을 따라 은
빛 승용차는 소리없이 미끄러져 깊은 침묵 속에 잠겨
있는 호텔을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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