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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세라세라] 12
S#1. 호텔 가족 만찬룸 (밤)
차회장과 윤여사, 태주와 혜린이 식사하고 있다.
윤여사 : 난 아무래도 약혼식 장소가 맘에 안들어. 적어도 유니온 정도는 돼야 되지 않니?
혜린 : 급하게 날짜 잡느라 그런 걸 어떡해? 그 정도도 괜찮아. 얼마나 호화롭게 한다구.
윤여사 : 별 자랑할 것도 없는데 호화롭기라도 해야지... 아유, 이제 와서 이런 말 한들 뭐해.
차회장 : 새로 발령난 부서는 어떠냐?
태주 : 며칠 안돼서 잘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별 어려움 없습니다.
차회장 : 가장 총괄적인 업무를 보는 곳이야. 준혁이가 도움 많이 줄 거다. 배울 점 많을 거야.
태주 : ...네...
윤여사 : 근데 준혁이 얜 왜 함흥차사야?
차회장 : 늦는다고 했어. 바이어 접대 있다고 했지?
태주 : 네.
차회장 : 약혼식 올리는대로...
이때, 노크 소리와 함께 준혁이가 들어선다.
준혁 : (고개 숙이며) 늦었습니다. (문쪽을 향해) 들어와요.
곱게 정장을 차려 입은 은수가 들어선다.
갑작스런 은수의 등장에 경악하는 태주와 혜린.
윤여사 : 그 아가씬 누구니?
준혁 : 전에 말씀 드렸었죠? 교제하고 있는 사람 있다고. (은수에게) 인사드려요.
은수 : (다소곳이 고개 숙이며) 처음 뵙겠습니다. 한은수라고 합니다.
고개를 드는 은수. 태주와 혜린 쪽을 여유 있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은수의 여유 있는 시선과 태주의 충격 받은 얼굴.
차회장 : 이리들 앉아라.
준혁과 은수, 나란히 앉는다.
차회장 : (은수를 찬찬히 보며) 인턴사원이라고 했었나?
준혁 : 이번에 정직원으로 채용됐습니다.
차회장 : 그럼 어느 부서에 있지?
은수 : MD 사업부 1팀에 있습니다.
차회장 : 혜린이 너 있는데 아니냐?
혜린 : 네. (은수에게) 이 자리에서 볼 줄은 몰랐네요.
은수 : (미소) 네. (태주와 시선이 닿는다)
태주 : (시선을 피한다)
윤여사 : 다들 친하겠네. 같이들 싱가폴도 갔다 왔잖아?
혜린 : 친해도 너무 친해서 탈이지.
준혁 : (혜린을 본다)
혜린 : (비난의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차회장 : 아까 하던 얘기나 하자. 태주 넌, 약혼식 올리는 대로 우리 집으로 들어와라.
태주 : ! 예?
윤여사 : 아들 삼으시겠단다.
차회장 : 우리 식구도 단촐하고 너도 혼자 몸이니 그냥 한 식구로 살자는 얘기야.
혜린 : (웃으며) 이럴 땐 시댁 없는 게 정말 좋다니까.
윤여사 : 애는 말버릇 하곤.
혜린 : (태주에게 다정하게) 설마 그 정도에 자기 기분 상한 건 아니지?
태주 : (무뚝뚝한) 응.
혜린 : 거 봐. 이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넓은데. (태주의 딱딱한 눈치에 약간 마음 상한 듯 은수를 보고, 준혁을 본다)
두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야?
은수 : !
준혁 : 뭐가?
혜린 : 지난번에 아빠한테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했었잖아. 싱가폴에선 뭐 그저 그런 걸로 보였는데,
그동안 어느 정도 진전됐는지 궁금해서.
태주 : !
준혁 : (혜린을 똑바로 노려보며) 글쎄... (은수를 본다) 나랑 결혼할래요?
은수 : (당황한) 네?
준혁 : 봤지? 아직 설득 중이야.
윤여사 : (태주에게) 강서방은 왜 그렇게 못 먹어? 먹성 하난 좋은 거 같더니.
태주 : 아닙니다. 잘 먹고 있습니다.
혜린 : (준혁에게) 엄마가 강서방 강서방 하는 거 애정이 철철 넘치지 않아? 엄마 은근히 우리 태주씨 엄청 이뻐한다. 놀랍지?
윤여사 : 쟤는 또 왜 저렇게 방정이야? 아주 남자 하나 땜에 좋아 죽네, 죽어.
태주 : (불편하다. 물을 마시다가 은수와 시선이 마주친다)
은수 : (시선 피하지 않고 미소 짓는다) 그래서 요즘 강차장님 얼굴이 좋아지셨나 봐요. 아주 좋아 보여요.
태주 : !
혜린 : !.....당연하죠. 내가 또 잘 챙겨 먹이고 있거든요.
은수 : (여유 있는 표정으로 혜린을 본다)
태주, 입을 닦으며 차회장과 윤여사에게 눈인사를 하고 나간다.
혜린, 태주의 태도가 신경 쓰인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은수를 보는데 은수는 태연하다.
S#2. 동, 화장실
세수하는 태주.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벽에 기대선다.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고통스러운 듯 눈을 감는다.
S#3. 호텔 복도
걸어오는 차회장과 윤여사, 혜린, 태주, 준혁, 은수.
차회장 : 우린 들어갈 테니까 니들은 더 놀다 가던지.
혜린 : 네, 아빠.
윤여사 : (혜린에게) 너무 늦지는 말고.
혜린 : 알았어.
일동, 차회장과 윤여사에게 인사한다.
출구 쪽으로 가는 차회장과 윤여사.
혜린, 차회장과 윤여사가 사라지자.
혜린 : (혼잣말처럼) 아주 써프라이즈 파티가 따로 없어요. (화를 숨기지 않는) 무슨 가학취미 있니? 어떻게 이런 자리에...
은수 : (불편한, 준혁에게) 저 화장실 좀.. (자리에서 빠진다)
준혁 : (화난 듯) 어차피 어른들한테 한번 인사시킬 사람이었어. 집으로 찾아뵙는 것보다 밖에서 뵐 때 인사드리는 게
은수씨한테 부담이 덜 될 거 같았고. 뭐가 잘못됐는데? 사람 면전에 두고 꼭 그렇게 심한 말 해야 돼?
태주, 준혁이 말하는 동안 자리에 있기 싫은 듯 엘리베이터 쪽으로 앞서 가서 버튼을 누른다.
혜린과 준혁.
혜린 : 찝찝하지도 않아?
준혁 : .....
혜린 : (준혁을 노려본다) 그거 사랑이니, 오기니?
준혁 : (혜린을 본다) 넌 뭔데?
혜린 : !
준혁 : 너랑 별반 다르지 않아.
태주,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혜린 쪽을 향해.
태주 : 안 가?
혜린, 준혁을 확 노려보고는 엘리베이터에 다가가 탄다.
S#4. 동, 화장실
은수, 손을 씻다가 멈추고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잠시 본다.
물을 잠그고 거울을 보는 은수. 심호흡을 한다. 마음을 굳게 먹으려는 듯 입을 꼭 다문다.
S#5. 동, 복도
화장실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준혁. 나오는 은수를 보고 다가간다.
준혁 : (걱정스러운) 괜찮아요?
은수 : .....
준혁 : 마음 상했죠?
은수 : 아뇨. (애써 웃는) 정말 괜찮아요.
은수, 앞장서 걸어간다.
준혁, 걱정스런 얼굴로 은수를 따른다.
S#6. 도로 / 태주의 차 안
태주와 혜린, 굳은 얼굴이다.
혜린 : 우리 한잔 할래?
태주 : (무뚝뚝한) 됐어.
혜린 : (태주를 본다)
태주 : (쳐다보지도 않고 여전히 딱딱한) 내일 일찍 출근해야 돼. 집에 데려다 줄 테니까 오늘은 그냥 들어가.
혜린 : .....
혜린, 잠시 침묵하고 창 밖을 보다가.
혜린 : 당신 괜찮아?
태주 : .....
혜린 : 괜찮냐구.
태주 : .....
혜린 : (태주 보며) 태주씨, 괜찮냐니까?
태주 : (날카로운) 너 의사라도 돼? 왜 시도 때도 없이 괜찮냐, 안 괜찮냐 물어? 나, 괜찮거든. 이제 그 질문 좀 제발 좀 그만해라.
혜린 : 왜 신경질 내고 난리야?
태주 : 내가 언제?
혜린 : 괜찮지 않잖아, 지금!
태주 : 그만 좀 하자.
혜린 : 괜찮은 사람이 중간엔 왜 나갔니?
태주 : 사람이 화장실도 못가?
혜린 : 얼굴 하얘져서 뛰쳐나가는 거 내가 못 봤는 줄 알아?
태주 : .....
혜린 : 그 여자 얼굴 보니까 그렇게 미치겠든?
태주 : 그만 하라고 했지! 너 자꾸 사람 피곤하게 굴 거야!
잠시 침묵이 흐른다.
혜린 : 겨우...겨우 진정했단 말이야. 사무실에서 마주치는 거... 다 견디기로 마음먹었는데...
오늘 그 자리에서 보니까 또 숨이 막히잖아. 자꾸만 조여드는 기분이야.
태주 : .....
혜린 : 미안해... 당신 피곤하게 해서.
태주 : .....
혜린 : 참을께. 그래, 괜찮을 거야. 다 견딜 수 있어..... 당신만 날 떠나지 않으면 돼.
태주 : .....
S#7. 동, 호텔바
은수와 준혁, 마주 앉아 있다.
준혁 : 힘들지 않았어요?
은수 : 생각보단 별로. 사실 재벌 회장님이라고 해서 엄청 겁 먹었었거든요.
그런데 역시 사람은 다 똑같나 봐요. 별로 안 무섭더라구요.
준혁 : (웃는다)
은수 : 특히 어머님은... 좀 재밌어 보이시던데... 살짝 우리 엄마랑도 비슷해 보이고.
준혁 :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하는 은수를 본다)
은수 : 왜 그러세요?
준혁 : 그냥... 은수씨가 좀 달라보여서요.
은수 : .....솔직히, 강태주씨랑 차혜린씨 얼굴 맞대는 거 편하진 않았어요.
준혁 : !
은수 : 하지만 지난 일이 지운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구 자꾸 거기 연연해서 되새기는 것도 미련한 짓이잖아요.
아무렇지 않게 대하다 보면 결국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준혁 : 은수씨 생각보다 강하네요.
은수 : 네. 제가 머리통만 딴딴한 게 아니거든요.
두 사람, 마주보고 웃는다. 술을 마시는 은수.
준혁, 은수의 태연하고 씩씩한 모습이 안간힘으로만 보여 더 불안하게 느껴진다.
S#8. 은수네 오피스텔 근처 부동산 소개소 (다른 날, 낮)
태주, 업자에게 오피스텔 키를 내민다.
태주 : 집 열쇠거든요. 집 보러 오는 사람 있으면 이쪽에서 알아서 보여주세요.
업자 : 그 집엔 사람이 아예 안사나요?
태주 : 예, 비어 있습니다.
업자 : 아무 때나 둘러볼 수 있고 좋겠네요.
태주 : 그럼 수고 좀 해주세요.
태주, 나간다.
S#9. 부동산 소개소 앞 길
태주. 몇걸음 걸어가다가 망설이듯 주변을 서성인다.
S#10. 은수네 오피스텔
은수, 11부에서 찍었던 매장 사진들을 보며 뭐라 노트하고 서류들을 살피는 등 열심이다.
지수, 만화책을 읽다가 한숨을 쉬며 은수를 본다.
지수 : 갑자기 일벌레가 된 거야? 일요일까지 집에서 회사 일 하는 거, 정말 너무 낯선 풍경이야.
은수 : 내일까지 보고서 제출해야 한단 말이야. 신입이 첫판부터 눈 밖에 날 순 없잖아.
지수 : 연애가 무섭긴 무서운가 봐. 사람이 저리 변할 순 없어.
은수 : 내가 할 일 하는 거 뿐이거든. 호들갑 좀 떨지 마라.
지수 : 나... 진짜로 진짜로 궁금해 주겠는데 지금껏 꾹 참았던 게 있거든.
은수 : 뭔진 모르지만 안 듣고 싶다.
지수 : 언니 그 때 태주 아저씨 막 싫다면서 새로 사귀는 사람 있다고 했었잖아. 그거 유령인물이야, 실존인물이야?
은수 네가 없는 거 만들어 내는 성격은 아니잖아.
이때, 은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액정을 본 은수의 표정이 굳어진다.
S#11. 은수네 오피스텔 로비
태주, 통화 중이다.
태주 : 잠깐이면 돼. 나 지금 여기 와 있어.
은수(f) : 그냥 지금 얘기해요.
태주 : 전화로 할만한 얘기 아니야.
은수(f) : 나 바빠요.
태주 : 잠깐도 시간 못 내주냐?
은수(f) : .....
태주 : 옥상으로 와. 기다리고 있을께.
태주, 전화 끊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S#12. 은수네 오피스텔 옥상
태주, 벤치에 앉아 있다.
잠시 후 은수가 등장한다.
태주, 인기척에 고개 돌려 은수를 본다.
태주 : 왔구나.
은수 : 여긴 어쩐 일로 온 거예요?
태주 : 집 때문에 왔다가.....
은수 : .....
태주 : (은수를 본다) 회사 일은 할만해?
은수 : 네.
태주 : 신입이라 이것저것 많이 시키지?
은수 : 네.
태주 : .....혜린이가 힘들게 하지 않아?
은수 : !.....회사 생활이 그 정돈 다 힘들죠.
태주 : .....
은수 : 할 얘기가 뭐예요?
태주 : .....
은수 : 강차장님.
태주 : 신준혁이랑... 잘 지내?
은수 : ! 그럼요.
태주 : 언제부터... (말을 멈춘다) 아니다...
은수 : 좋은 사람이에요.
태주 : !
은수 : 날 많이 위해줘요.
태주 : !...(끄덕인다) 어...그래...
은수 : (힘없이 고개 끄덕이는 태주를 잠깐 야속한 시선으로 본다)
태주 : .....
은수 : 그거 물어보러 온 건 아니죠?
태주 : (은수를 본다) 회사 말인데, 다른 데로 옮기는 거 어때?
은수 : !
태주 : 내가 알아봐 줄 수 있어. 지금이랑 비슷한 조건으로...
은수 : 왜요?
태주 : .....
은수 : 회사를 왜 옮기라는 거예요?
태주 : 너 힘들잖아.
은수 : 안 힘들어요.
태주 : 억지 부리지 마.
은수 : 억지 아니예요.
태주 : 혜린이가 많이 괴로워해.
은수 : !
태주 : 그런데 네가 아무렇지 않다는 게 말이 돼? 바로 옆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데?
은수 : 그래서... 그 여자 괴로워하지 않게 나보고 회사 나가라구요?
태주 : !
은수 : 그 여자 걱정돼서 여기까지 쫓아와 나한테 이러는 거예요?
태주 : 그런 게 아니라...
은수 :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당신들 입장만 생각해?
태주 : 은수야..
은수 : 당신들 신경 쓰인다고 나보고 꺼지란 얘기 아니야.
태주 : 네가 제일 힘들잖아! 너보다 더 힘든 사람 누가 있어!
은수 : !
태주 : 그러니까 그렇게 안간힘 쓰면서 살지 말라구. 나, 도저히 네 모습 못 보겠어.
은수 : 핑계 대지 말아요.
태주 : 핑계 아니야.
은수 : .....고마워서 어떡해요? 강차장님이 이렇게 내 걱정도 해주시고.
태주 : 은수야.
은수 :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당신이 뭔데 내 이름 그딴 식으로 불러!
태주 : !
은수 : 생각해주는 건 고마운데 나 안간힘 쓰는 거 아니예요.
태주 : .....
은수 : 나랑 전혀 상관도 없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힘들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 안간힘 쓸 이유도 없죠. 안 그래요?
태주 : .....
은수 : 당신 기준대로 판단하려고 하지 말라구요. (돌아서는데)
태주 : 미안해.
은수 : .....
태주 : 너랑 얘기하면... 예전부터 이상하게... 왜 자꾸 꼬이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은수 : .....
태주 : 마음 상하게 하려던 거 아니었어. 미안해..... 미안해요, 한은수씨.
은수 : (돌아본다) 들어가세요, 강차장님.
은수, 간다.
태주, 가는 은수를 보다가 벤치에 앉는다. 마음이 무겁다.
S#13. 연립주택 내부
집안 구조를 돌아보고 있는 경진과 호영. 부동산 업자.
경진, 얼굴 가득 설레임이 가득하다.
호영 : 어떠세요, 어머니?
경진 : 아유, 좋네. 아주 아담하니 있을 거 다 있고, 방도 세 개나 되고.
호영 : 그럼 이 집으로 할까요?
경진 : (망설이는) 정말로 좋긴 한데... 내가 딱 살고 싶었던 그런 집이긴 하네.
경진, 좋기도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걸리는 듯 아쉬운 시선으로 집안을 둘러본다.
업자 : 아무리 급매라도 이만한 집을 이 가격으로 사는 건 정말 횡재죠. 이 집 주인이 아주 사정이 급했거든요.
빨리빨리 결정하시는 게 유리할 겁니다. 일단 계약부터 딱 해서 먼저 찜해놓는 게 현명한 거다, 이거죠.
경진 : (호영을 보며) 아무리 그래도 말야. 이렇게 집 한 채를 떡하니 받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
S#14. 동네 수퍼 앞 파라솔
경진과 호영,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호영 : 왜 또 이제 와서 이러십니까?
경진 : 도와주는 건 고마운데... 이건 규모가 너무 크잖아.
호영 : 다른 거 말고 지수만 생각하세요. 몸도 성치 않은 애 데리고 아무 데나 가서 살 수 있습니까?
경진 : 난 아무래도 이해가 안가. 그 사람 말이야,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까지 하냐구.
호영 : 은수씨랑 그렇게 헤어지고 갔는데 마음이 많이 안좋았겠죠. 게다가 동생도 그렇게 돼고...
경진 : 우리 은수한테 아직 마음이 있는 거지?
호영 : 예?
경진 : 난 말이지, 혹시나 그 사람이 딴 생각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
호영 : 무슨 말씀이신지...
경진 : 남자들 그런 거 있잖아. 괜히 버리긴 아까우니까 어떻게 얼러서 옆에 두려고 말야...
호영 : 아, 태주 그런 놈 아닙니다. 그 정도는 아니예요, 그 놈. 절대로 은수씨 모르게 하라는 거 보면 모르십니까.
경진 : 아니 그럼 도대체 뭐냐고...
호영: 그냥 순수하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 놈이 지수 생각도 얼마나 하는데요.
아픈 애 데리고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는데 당연히 돕고 싶지 않겠어요?
경진 : .....
호영 : 자선복지사업... 딱 그거다, 맘 편히 생각하시라구요.
경진 : 자선복지...
S#15. 은수네 오피스텔 (밤)
은수, 놀란 눈으로 경진과 지수를 번갈아 본다.
은수, 방금 퇴근한 듯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은수 : 갑자기 집을 구했다니요?
지수 : 한 10년째 연락 끊고 있는 엄마 이종사촌 있잖아, 엄청 부자라는. 연락이 닿았대.
경진 : 내가 죽게 생겼는데 자존심이고 뭐고 있니... 그래두 야 핏줄밖에 없더라.
그 구두쇠 양반이 우리 지수 얘기랑 집 얘기 듣더니 눈물을 펑펑 쏟아내더라구.
은수 : 엄마랑 사이 나쁘다고 하지 않았어요?
경진 : 세월이 그만큼 지나고 나니까 이젠 뭐 사이좋고 나쁘고도 없더라구.
그게 인생인 거야, 살다보면 다 같이 불쌍하고 다 같이 서러운 거.
지수 : 늙으면 마음이 약해진다는 게 맞긴 맞나봐.
경진 : 무슨 말이냐?
지수 : 10년 전에 엄마랑 갈라선 이유가 엄마가 빚지고 떼먹어서 그런 거 아니었어? 그런데, 그러고 10년만에 불쑥 나타난 엄마한테
그런 거금을 빌려줬다는 게 좀 그렇잖아. 사람이 변하지 않고서야 불가능이라고 봐. 나는.
(경진의 눈길을 보고) 왜 그런 눈으로 봐?
경진 : 네 심장이 네 입만큼 팔팔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했다.
은수 :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건 정말 큰 돈이잖아요.
경진 : 그러게. 그러니까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는 거지.
은수 : 이사는 언제 갈 수 있는 거예요?
경진 : 거기 사는 사람들이 이 달 안으로 빠진다고 했으니까 이 달 말일 경엔 갈 수 있을 거야.
은수 : .....(한시름 놓인다)
경진 : 왜 그러니?
은수 : 갑자기 자꾸 좋은 일만 생겨서... 기분이 이상해요.
경진 : ...(걸리는) 아유, (수건을 챙겨들며) 난 오랜만에 때나 박박 밀어야겠다.
경진, 욕실 쪽으로 간다.
지수 : 요즘 보면 우리 지여사 참 능력 있어.
은수 : (기쁜) 정말 잘됐다, 그치?
S#16. 백화점 사무실B, 회의실 (다른 날, 낮)
혜린과 팀장, 은수, 다른 직원2명 정도가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혜린 : (서류를 살펴보며) 중저가 캐쥬얼 샾 규모를 축소하는 건 결정이 된 거고.., 남는 공간을 위한 새 입점 계획은요?
팀장 : 소라직물에서 나온 폴리라는 캐쥬얼 브랜드를 검토 중인데, 나온 지 3주 밖에 안됐는데도 소비자 반응이 아주 좋아서
현재 유력하게 밀고 있습니다.
혜린 :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른 후보 브랜드 두 세군데 더 물색해 보세요.
팀장 : 예.
혜린 : (다음 서류를 뒤적인다) 매장 내 매대 판매 위치를 개선해 보자? 신입 보고서가 재밌네요.
은수 : .....
혜린 : 각 브랜드 샾 사이 자투리 공간에 매대를 설치하자는 건데, (은수를 본다) 한은수씨, 이런 생각을 한 이유가 뭐죠?
은수 : 고객의 쇼핑동선을 다양하게 유도하기 위해섭니다. 매대를 브랜드 샾 사이에 군데군데 설치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매장을 둘러볼 수 있는 효과가 나지 않을까 해서요.
혜린 : 좋은 의견이긴 한데 자칫 매장 전체가 산만해질 우려가 있어요. 쇼핑 동선에는 집중도라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같은 종류의 상품들을 집중해서 배치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죠.
은수 : .....
혜린 : 어쨌든 단순 보고서가 아니라 문제점과 해결방안까지 제시한 적극성은 칭찬할만 하네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해주세요, 한은수씨.
은수 : 네.
혜린 : 이만 회의 마치죠.
은수 : (일어서려는데)
혜린 : 한은수씨는 잠깐 남을래요?
은수 : (다시 앉는다)
직원들 나가고.
혜린 : 그날, 내가 심하게 말했던 거 사과할께요.
은수 : .....
혜린 : 생각지도 않게 은수씨가 와서 당황해서 그랬어요.
은수 : 네, 이해해요.
혜린 : 어쨌든 우리는 계속 얼굴 보고 일할 사람들이에요, 그쵸?
은수 : 네.
혜린 : 솔직히 은수씨에 대해 껄끄러운 마음 있는 거 사실이에요. 은수씨도 그럴 거고. 그런데.., 이제 우리 그러지 말아요.
은수 : .....
혜린 : 은수씨랑 나, 서로 원하든 원치 않든 인연 있는 사람들인 건 확실한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 인연, 인정하고 가자구요.
은수 : 차이사님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저도 맘이 편하네요.
혜린 : 은수씨도 동감하는 거예요?
은수 : 누구보다 회사 생활 잘 하고 싶어요. 당연히 차이사님과도 잘 지내고 싶구요.
서로 얽힌 게 있긴 하지만 어차피 다 지난 일이잖아요.
혜린 : 그렇죠.
은수 : 먼저 이런 얘기 해줘서 고마워요. 열심히 할께요.
두 사람, 미소 짓는다.
S#17. 동, 사내 식당
혜린과 태주,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는다.
태주 : 샤샤 매출 현황이랑 고객 분포를 분석해 봤는데 아무래도 자체 브랜드로 흡수시키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야.
혜린 : .....
태주 : 사내에 관리팀이 있으니까 네가 이쪽 일 하면서 관여하기도 쉬울 거고.
혜린 : 준혁오빤 거기 대해 뭐래?
태주 : 노코멘트야. 나보고 다 알아서 하래.
혜린 : 참 나, 조언 좀 해주면 어때서. 은근히 속 되게 좁다니까.
태주 : (피식 웃는다)
혜린, 테이블에 앉으려다가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은수를 발견한다.
혜린 : 어, 은수씨!
은수 : !
혜린, 은수 앞에 앉는다. 태주, 당황한다.
혜린 : 왜 혼자 먹어요? (태주에게) 뭐해? 안 앉고.
태주 : (할 수 없이 앉는다)
은수 : 매장 돌다가 시간을 놓쳤어요. 이사님도 점심이 좀 늦으시네요?
혜린 : 난 이 사람이랑 시간 맞추느라구요. 준혁오빠라도 불러서 같이 먹지 그랬어요?
은수 : 회사 내에서 사람들 눈도 있는데 그럴 순 없죠.
혜린 : 하긴, 사내 커플이면 그런 고충 있겠다. (태주에게) 그러고 보면 우린 참 편해. 아예 다 공개하고 나섰으니까.
태주 : .....(물을 마시려는데)
혜린 : (물컵 뺏으며) 그 버릇 좀 하지 말라니까.
태주 : 물도 맘껏 못 먹냐?
혜린 : 밥 먹는 중간에 물 먹는 거 속 버린다고 몇 번 말했니?
은수 : 그럼 식사들 하고 오세요. 저 먼저 일어날께요.
혜린 : 가요, 그럼.
은수, 간다.
혜린 : 봐서 알겠지만 은수씨랑 나, 잘 지내기로 했어.
태주 : (본다)
혜린 : 그러니까 당신도 담담하게 해. 내 앞이라고 괜히 경직되지 말고. 나, 괜찮으니까.
태주 : 마음 다 가라앉힌 거야?
혜린 : 고민하고 신경 쓴다고 좋을 거 하나도 없잖아. 사실, 서로들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닌데.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자 싶어.
태주 : .....
혜린 : 나 노력하는 거 눈에 보이지?
태주 : 응.
혜린 : (웃으며) 알아주니 고맙다.
식사하는 두 사람.
S#18. 동, 사무실B
사무실에 들어서는 은수. 자리에 앉는다. 아직 점심시간이라 직원들 몇 명만 있다.
은수, 좀 전에 봤던 혜린이가 태주의 물컵을 뺏는 장면을 떠올린다. 씁쓸하다.
생각을 떨쳐내자 싶은 듯 서류를 뒤적이며 컴퓨터를 켜는데 은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S#19. 동, 준혁의 사무실
준혁, 통화 중이다.
준혁 : 점심은 먹었어요? ...구내 식당이면 별로 맛 없었겠네... 난 지금 매장 둘러보고 외부에 사람 만나러 가야 돼요.
저녁에 일 일찍 끝날 거 같은데, 시간 어때요? ...오늘은 좀 특별한 걸 해보죠. 은수씨가 생각해 봐요. 뭘 하면 좋을지.
S#20. 동, 사무실B
은수, 통화 중이다.
은수 : 네, 그럼 이따가 봐요. 네.
전화 끊는 은수. 일을 하려다가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S#21. 백화점 명품관 매장
매장에서 쇼핑하는 윤여사. 블라우스를 살펴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윤여사 : (전화 받는) 어, 그래. (점원이 가져다 주는 쇼핑백을 받으며) 쇼핑은 다 했어. 뭘 많이 사? 그냥 필요한 거 몇 가지 샀지.
얘는 엄마를 뭘로 보는 거야?
S#22. 백화점 사무실B, 혜린의 방
혜린, 통화 중이다.
혜린 : 쇼핑하면 엄마 아니야. 새삼스레 발끈하시긴. 나 안나갔다고 삐진 건 아니지?..... 핑계가 아니라 정말로 일이 많았거든?
계속 회의에 업체 미팅에...
S#23. 백화점 명품관 매장
윤여사 : 아이구아이구, 됐어. 누가 너더러 나와 달라 사정했어? (점원에게 목례하며 옷매장을 나온다)
매장을 나와 엘리베이터 쪽을 향해 걸어가는 윤여사. 쇼핑백 몇가지를 들고 있다.
윤여사 : 강서방이랑 같이 일찍 퇴근해서 집에 와서 저녁이나 먹어. 방이랑 다 꾸며놨으니 둘러도 보고 그래야지. 그래.
윤여사, 전화를 끊다가 윤여사 쪽으로 오고 있는 최이사와 준혁을 보고 깜짝 놀란다.
마주치는 세사람.
최이사 : 어이구, 이런데서 뵙네요. 오랜만입니다.
윤여사 : (꺼림칙한) 네...안녕하셨어요? (준혁을 미심쩍인 시선으로 보는) 여긴 웬일이니?
최이사 : 새로 입점한 브랜드들이 있다고 해서 신상무랑 같이 좀 둘러봤습니다. 신상무 덕분에 오랜만에 매장 구경 해보니까
한창 일할 때가 생각나서 아주 기분이 좋네요. (준혁의 등을 두드리며) 잘 봤다.
준혁 : 예.
최이사 : (윤여사에게) 전 이만.., 선약이 있어서요.
윤여사 : 예... (고개 숙여 인사한다)
최이사 : (준혁에게) 다음에 또 보자구.
준혁 : 예. (인사한다)
최이사, 간다.
준혁 : 쇼핑하러 오셨나 보죠?
윤여사 : 어..
준혁 : 혜린이라도 불러서 같이 하시지 그랬어요?
윤여사 : 일하는 애를 뭣하러 부르니. (앞장서 걸어간다)
준혁, 윤여사를 따라 엘리베이터 쪽으로 간다.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타는 두 사람.
S#24. 동, 엘리베이터 안
준혁과 윤여사. 윤여사, 영 미심쩍은 얼굴이다.
윤여사 : 너 언제부터 최이사랑 그렇게 친해졌니?
준혁 : (윤여사를 본다)
윤여사 : 아니 좀 그렇잖아. 혜린 아빠랑 껄끄러운 거 뻔히 알면서... 틈만 나면 너한테 주의 줬던 거 몰라?
준혁 :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분인데 안면몰수할 순 없지 않습니까? 저한텐 윗사람이기도 하구요.
윤여사 : 난 정말 네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니, 알았던 적이 한번도 없었던 거 같아. 그렇게 말을 했는데 왜 딴 짓을 해?
준혁 : 어머니는 왜 그렇게 절 못마땅해 하시는 겁니까?
윤여사 : (당황하는) 뭐..뭐?
준혁 : 전부터 계속 궁금했어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절 싫어하시는지.
윤여사 : 아니 내가 언제...
준혁 : 제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꺼림칙하셨던 겁니까?
윤여사 : ! (깜짝 놀란다)
준혁 : 항상 궁금했었는데, 이제 조금은 어머니를 이해할 거 같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 린다. 윤여사에게 인사하며) 들어가십쇼.
준혁, 나간다.
윤여사,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S#25. 혜린네 집 거실 (밤)
차회장과 윤여사.
차회장, 놀란 얼굴로 윤여사를 본다.
차회장 : 준혁이가 그런 말을 해?
윤여사 : 내가 없는 말 지어내요? 그 말을 하는데 아주 기운이 서늘해지는 게 아, 꼭 내가 무슨 죄인이라도 된 거 같더라니까.
차회장 : .....(불안하다)
윤여사 : 최이사 그 양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걔한테 그런 소릴 한 거야? 도대체 뭐 득될 게 있다구.
차회장 : 그 아이가 기억을 찾은 거 같진 않고?
윤여사 : 기억을 찾았다면 찾았다고 말을 했겠죠.
차회장 : .....
윤여사 : 애가 정말 정나미가 안 가. 아무리 그렇다고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할 건 어딨냐구요?
우리가 일부러 숨겼나? 지 충격 받을까봐 쉬쉬한 거지?
차회장 : .....
윤여사 : (생각난) 혹시 최이사 그 사람, 뭐 좀 이상하게 왜곡해서 얘기한 건 아닐까요?
차회장 : !?
윤여사: 준혁이 눈치가 영... 왠지 적대시하는 거 같기도 하구...
차회장 : !
이때, 혜린과 태주가 현관에 들어선다.
혜린 : 다녀왔습니다!
혜린과 태주, 소파 쪽으로 다가온다.
태주 : 안녕하셨습니까.
윤여사 : 어, 그래. 이리들 앉어.
혜린 : (자리에 앉으며) 그런데 엄마 아빠 분위기 왜 이래?
윤여사 : (태주에게) 강서방.
태주 : 네?
윤여사 : 요즘 준혁이 혹시 이상한 눈치 안보이던가?
태주 : 무슨 말씀이신지.
차회장 : 웬 또 쓸데없는 소리야?
윤여사 : 아니 좀 물어보면 어때서요?
차회장 : 괜히 입방정 떨고 그러지 말어! (불쾌한 얼굴로 일어나 나간다)
윤여사 : 저 양반이 애들 앞에서...
혜린 : 갑자기 준혁 오빤 왜? 무슨 일 있어요?
윤여사 : 아유 몰라! (일어나 주방쪽으로 향하며 혼잣말로) 그러게 내가 첨부터 싫다그랬잖아, 걔는.
검은 머리 짐승은 집안에 들이지 말라는 옛말이 아주 딱이라니까.
혜린 : 뭐야, 다들 왜 저러시지?
태주 : 방이나 좀 보자.
S#26. 동, 태주의 방 (전 준혁의 방)
새로 인테리어 된 방이다. 둘러보는 태주와 혜린.
혜린 : 어때?
태주 : 생각보다 넓네.
혜린 : 준비는 다 됐는데, 언제 들어 올 거야?
태주 : 주말에나 시간 나니까, 그 때 옮기지 뭐. 근데 누가 쓰던 방이야?
혜린 : 준혁 오빠.
태주 : !
혜린 : (태주 눈치 보고) 왜... 기분 나뻐?
태주 : 그런 게 무슨 상관이라구.
혜린 : 당신은 까다롭지 않은 거 하난 진짜 맘에 들어. 엄마도 그래서 당신 좋아하나 봐. 준혁오빠 대할 때랑 영 다르시거든.
태주 : (혜린을 본다)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어머니가 너네 오빠 못마땅해 하는 거야?
혜린 : 설마 그건 아니겠지. 사실 미스테리야. 엄마가 오빠를 왜 싫어하는지는.
태주 : 한번 여쭤보지 그랬어?
혜린 : 속을 알 수 없어서 싫대... 나한텐 그게 너무 외로워서 움츠러든 걸로 보이던데... 사람 마음이 다 다른가 봐.
태주 : (혜린을 본다)
혜린 : 왜?
태주 : 아직도 마음 있냐?
혜린 : (웃는다) 질투 하는 거야?
태주,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려 장식품을 무심히 만지작거린다.
혜린, 뒤에서 태주를 안는다.
혜린 : 기분 좋은데? 당신이 질투도 해주고.
태주 : .....
S#27. 도로/ 준혁의 차 안
준혁과 은수.
준혁 : 생각해 봤어요?
은수 : 네?
준혁 : 뭐 할지 생각해 보라고 했잖아요. 안했어요?
은수 : .....유람선 타고 싶어요.
준혁 : 유람선? 그건 생각지도 못했네.
은수 : 서울 와서 제일 타보고 싶었던 건데 못 타봤거든요.
준혁 : 잘 됐네요. 나도 못타봤는데.
은수 : 정말이요?
준혁 : 이런 걸 두고 서울 촌놈이라고 하는 거예요. 나 같은 사람 많아요. 서울에.
S#28. 유람선 선착장
은수, 선착장에 서 있다. 저 멀리 배가 오는 것을 보고 있다.
<인터컷-5부>
태주가 은수 손을 끌며 선착장으로 달려가는 모습.
선착장에 도착해서 망연히 멀어져가던 배를 보던 그들.
표를 사들고 준혁이 다가온다.
준혁 : (표를 내밀며) 자요.
표를 받는 은수.
배가 도착한다.
S#29. 유람선
준혁과 은수, 난간에 서서 한강 풍경을 보고 있다.
준혁 : 맨날 보던 한강도 이렇게 보니까 색다른 맛이네.
<인터컷-5부>
태주 : 그만 좀 뿔어 있지? 유람선 그거 하나도 재미없다니까. 한강 구경하고 싶은 거라며. 여기서도 잘 보이잖아. 실컷 봐.
준혁, 생각에 잠겨있는 은수를 본다.
준혁 : 무슨 생각해요?
은수 : 예전에 누가 그랬거든요. 유람선 그거 하나도 재미없다고. 한강 보는 거 다 똑같다고. 그런데... 아주 재밌어요.
이렇게 보는 한강도 전혀 다르고.
준혁 : 누구예요, 그런 소릴 한 사람이.
은수 : 억울할 뻔 했어요. 그 말만 믿고 평생 유람선 한번 못타볼 뻔 했잖아.
준혁 : .....
은수 : (준혁을 보며 웃는다) 고마워요. 나 억울하지 않게 해줘서.
두 사람, 나란히 한강을 바라본다.
준혁 : 혜린이네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한번도 그 가족 일원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
은수 : .....
준혁 : 눈 앞에 가족을 보면서도 그 속에 낄 수 없는 심정이 어떤 건지 짐작이 가요?
은수 : .....
준혁 : 나중에 성인이 되면 나도 빨리 가정을 가져야지. 그 생각하면서 자랐어요. 어쩌다가 이 나이까지 지금 이러고 있지만.
은수 : .....
준혁 : 은수씨랑 가족이 되고 싶어요.
은수 : !
준혁, 은수를 돌아본다. 은수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끈다.
주머니에서 팔찌를 꺼내는 준혁. 은수의 팔에 끼려고 하는데 은수, 움츠리며.
은수 : 상무님, 전 아직...
준혁 : 오해하지 말아요. 프로포즈하는 거 아니니까.
은수 : ?
준혁 : 애인한테 이 정도 선물은 해줄 수 있잖아요.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는 것만 알고 있으라는 얘기예요.
은수 : .....
준혁, 은수 팔에 팔찌를 끼워준다.
준혁 : 잘 어울리네요.
은수 : .....
준혁 : 이거 끼워주기 참 힘들었네... (은수를 본다) ...사랑해요.
은수 : !
부드럽게 은수를 포옹하는 준혁.
S#30. 백화점 사무실, 차회장실 (다른 날, 낮)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는 차회장.
전화벨이 울린다. 버튼을 누르면.
여비서(e) : 회장님, 상무님 오셨습니다.
차회장 : 들어오라고 해.
차회장, 일어나 소파 쪽으로 가는데 준혁이 들어선다.
차회장 : 거기 앉아라.
준혁 : (차회장 앞에 앉는다)
차회장 : 혜린이 에미한테 얘기 들었다.
준혁 : .....
차회장 : 어떻게 알게 됐니?
준혁 : 최이사님한테 들었습니다.
차회장 : 다른 건 들은 거 없고?
준혁 : !
차회장 : (준혁의 눈을 똑바로 본다) 사고 현장에 네가 있었다는 얘기는 안하더냐?
준혁 : !.....하셨습니다.
차회장 : .....서운했던 거냐?
준혁 : 놀랬습니다. 화도 났구요.
차회장 : 화가 났다구?
준혁 : 제 아버지 일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다니... 화가 나는 거 당연하잖습니까.
차회장 : 난 네가 끝까지 몰랐으면 했다.
준혁 : .....
차회장 : 좋지도 않은 일 알아봤자 마음에 상처만 되니까. 네가 날 비난해도 할 수 없어. 내 생각엔 변화 없다.
준혁 : .....
준혁, 차회장의 당당한 태도에 마음이 복잡해지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차회장도 준혁이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무엇이 있음을 직감하지만 역시 내색하지 않는다.
차회장 : 최이사가 무슨 생각으로 너한테 그런 말을 했는진 모르겠다만...
준혁 : .....
차회장 : 네가 다른 사람 농간에 흔들릴 만큼 어리석은 놈은 아니니 더 이상 말은 안하마.
준혁 : .....
차회장 : 널 믿어도 되겠지?
준혁 : 그런 말씀 하시니 좀 불편하네요. 그만한 일로 제가 아버님을 배신이라도 하겠습니까?
차회장 : !
준혁 : 저, 아버님 아들 아닙니까. 항상 말씀하셨듯이.
차회장 :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그럼 가서 일 봐라.
차회장, 일어난다.
준혁 일어나 목례하고 나간다.
차회장, 착잡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는다.
S#31. 동, 최이사 사무실
서류 봉투를 준혁 쪽으로 밀어주는 최이사.
준혁, 말없이 봉투를 열어 서류를 훑어본다.
최이사 : 각 임원들이 소유한 보유주식 현황이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준혁 : 일단 사람에 대해 알아봐야죠.
최이사 : 거기 너 모르는 사람 없어.
준혁 : 얼굴 아는 거야 의미가 없죠. 그 사람이 원하는 것과 취약한 게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파악할 겁니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려면, 그게 기본이니까요.
최이사, 믿음직스럽다는 듯 준혁을 본다.
S#32. 동, 백화점 사무실 영업기획팀 회의실
혜린과 태주. 서류들을 검토하고 있다.
태주 : 백화점 매장은 그대로 있을 거고, 의상실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혜린 : 오래된 단골 고객들은 대부분 의상실에서 거래하고 있어. 그래서 계속 유지하려구. 샤샤의 탄생지이기도 하구.
태주 : 서류 처리는 거의 다 된 거 같아. 예전과는 많이 다를 거라는 거 알지?
혜린 : 무슨 말이야?
태주 : 전처럼 네가 나서서 전권을 휘두를 순 없다구.
혜린 : 그 정돈 알아.
태주 : 네 성질에 또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며 간섭하고 잔소리할까봐 그러는 거지. 이젠 네 개인 브랜드 아니니까 조심해.
같이 일하는 사람들 아주 피곤해져.
혜린 : (살짝 노려본다) 내 성질이 그렇게 이상하니?
태주 : 노말한 편은 아니지. 본인도 알 거 아냐?
혜린 : 그만 두자.
태주, 피식 웃는데 태주의 핸드폰이 울린다. 전화 받는 태주.
태주 : 네... 예, 아버님.
혜린 : (의아한 눈길로 본다)
태주 : 아뇨, 괜찮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전화 끊는다)
혜린 : 아빠가 웬일이야?
태주 : 오늘 저녁 술 한잔 하시자는데?
혜린 : 어떡하지? 저녁 때 예복 찾으러 가야 되는데.
태주 : 넌 떼놓고 오라셔.
혜린 : 뭐?
태주 : 남자들끼리 한잔 하고 싶으신가 보지, 뭐.
혜린 : 당신이 아빠 눈에 든 거 보면 참 희한해.
태주 : 내가 원래 남자들한테도 먹히는 매력이거든.
혜린 : (웃는다. 서류 챙기며 일어나며) 예복은 나 혼자 가서 찾을께. 자기 오피스텔에 가 있을 테니까
아빠 만나고 오면 같이 입어 보자.
태주 : 응.
두 사람, 나간다.
S#33. 한식집 방 (밤)
태주와 차회장.
태주, 차회장에게 술을 따라준다.
차회장 : 혜린이 건사하는 거 보통 일이 아니지?
태주 : (웃는다) 쉽진 않습니다.
차회장 : 겉은 송곳처럼 뾰족해도 속은 여린 애야. 알고 보면 속정도 깊고.
태주 : 잘 알고 있습니다.
차회장 : 그러고 보면 네가 여자 다루는 거 하난 타고난 놈인가 보다. 난 내 딸이 누구한테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구는 건 첨 봤거든.
태주 : (웃는다)
차회장 : (태주에게 술을 따라 주며) 준혁이랑은 좀 어떠냐?
태주 : ?
차회장 : 불편하진 않냐?
태주 : 형님이 그렇게 살가운 성격은 아니니까요. 조금 어렵긴 합니다.
차회장 : 그 놈 속도 편하진 않을 거야. 네가 들어오고 나서 자기 위치가 어정쩡해진다고 느낄 수도 있으니까.
태주 : .....
차회장 : 준혁이를 잘 살펴봐라.
태주 : ! (매우 당황스럽다)
차회장 : 워낙 철저한 놈이니 빈구석 찾기는 힘들겠지만 그럴수록 더욱 경계를 해야지.
태주 : !
차회장 : 그런 놈이 한번 들고 일어서면 그 파장이 아주 무섭거든.
태주 : ! (예상치 않은 말에 혼란스럽다)
차회장 : 혜린이한테는 이런 거 내색하지 말고.
태주 : ...네.
차회장 : 약혼식은 그냥 조촐하게 할 생각이라고?
태주 : 가족들만 모인 자리에서 말 그대로 결혼을 약속하는 정도로 하자는 게 혜린이와 제 생각입니다.
어른들께서는 서운하실지 모르겠지만...
차회장 : 아냐, 됐어. 집사람만 아니면 나도 약혼식 같은 거 뭐 필요하나 싶은 사람이야. 번거로운 것보단 낫다.
태주 : .....
차회장 : 자라온 환경이 다른 사람들끼리 만나 평생을 함께 한다는 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태주 : .....
차회장 : 게다가 너희들 결합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에 사실 내가 걱정이 좀 많다.
태주 : 심려 끼쳐 드렸던 점 죄송합니다. 하지만 혜린이랑 저,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열심히 잘 살 겁니다.
차회장 : 사는 게 다 그렇다. 열정이야 잠깐 그 때 뿐이지. 스며들 듯 정 붙이며 사는 거, 그게 진짜야.
미운 정 고운 정 실컷 쏟아내면서 잘 한번 살아봐.
태주 : .....
S#34. 新 태주의 오피스텔
오피스텔에 들어서는 태주를 혜린이가 맞는다.
혜린 : 생각보다 빨리 왔네.
태주 : (겉옷을 벗으며 소파에 앉는다)
혜린 : 술 많이 했어?
태주 : 아니.
혜린 : 아빤 무슨 일로 당신 보자고 한 거래?
태주 : 그냥 술친구.
혜린 : 옷 저기 걸어놨어, 지금 입어볼래?
태주 : 이따가.
혜린 : 피곤해 보인다?
태주 : 어른 상대 하는 자리 힘들잖아.
혜린 : 당신도 힘든 게 있어?
태주 : (일어나 냉장고 쪽으로 향하며) 내가 무슨 싸이보그냐.
태주, 물을 마시다가.
태주 : 형님 말야.., 아버님 회사 직원 아들이라고 했지?
혜린 : 갑자기 그건 왜?
태주 : 뭣 때문에 아버님이 형님을 거두신 건가 해서.
혜린 : 엄마랑 똑같은 말을 하네. 난 아빠가 준혁 오빠한테 한 눈에 반한 게 아닌가 싶어. 아들 한명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오빠가 눈에 딱 들었던 거지.
태주 : 그건 좀 억지다.
혜린 : 그거 외엔 도저히 설명이 안되거든. 처음부터 오빠한테 얼마나 끔찍하셨는데. 나랑 엄마가 질투가 날 정도였다니까.
한 때 난 아빠가 밖에서 낳아온 자식이 아닐까 생각 한 적도 있었어.
태주 : 정말로 그렇게 끔찍하셨다면 사윗감으로는 왜 반대하신 거야?
혜린 : !
태주 : 이상하잖아.
혜린 : 당신과 나 사이에 그런 얘기 하는 거 불편하다는 생각 안 들어?
태주 : .....
혜린 : 지킬 건 지키자, 우리.
태주 :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경계하고 피할 거까진 없잖아.
혜린 : .....
태주 : 난 괜찮으니까 괜히 불편해 하지 말라구.
혜린 : 처음부터 아들로 생각했기 때문에 사위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하셨어. 근데 난, 그건 핑계라고 생각해.
태주 : ?
혜린 : 내 결혼을 통해서 사업적인 도약을 원하셨거든.
태주 : 그래서 정략결혼 얘기가 나온 거야?
혜린 : 응. 준혁오빠야 당연히 아빠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할 사람인데 굳이 사위로까지 맞아서 붙잡을 이유가 없잖아.
준혁오빤 준혁오빠대로, 나는 나대로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써먹자, 그게 아빠 생각이었을 거야.
태주 : 너무 비정한 거 아니야?
혜린 : 그게 현실이야. 이런 집 생각보다 많아.
태주 :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건 기적과 같은 일이네.
혜린 : (웃는다) 내가 망나니 역할 제대로 해서 얻은 소득이지.
무엇보다 우리 아빠, 비정한 사업가 이전에 결국은 내 아버지였던 거고.
태주 : .....
혜린 : 그런데 갑자기 준혁 오빠 얘기는 왜 하는 거야?
태주 : .....뭐, 그냥.
혜린 : 오빠랑 당신, 물론 서로 좋은 감정일 리 없다는 건 아는데, 되도록이면 잘 지냈으면 좋겠어.
태주 : .....
혜린 : 어쨌든 가족과 같은 사람이야.
태주 :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고?
혜린 : 무슨 소리야?
태주 : ...그냥 해본 말이야... 사람 속이라는 거 정말 모르겠다.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들어.
태주, 씁쓸한 듯 생각에 잠긴다.
S#35. 백화점 사무실B (다른 날, 낮)
은수, 업무를 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은수 : (전화 받는다) 네.....예, 한지수 보호자 맞는데요. 무슨 일이세요?
병원직원(f) : 특진료가 2중 부과 되는 바람에 진료비가 과다 청구 됐거든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요, 시간 나실 때 이 쪽으로 오시면 즉시 환급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예. 좋은 하루 되세요.
S#36. 백화점 사무실B
전화를 끊는 은수.
이때, 혜린이가 들어온다.
혜린이가 자기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결재서류철을 들고 일어나 혜린의 사무실로 향하는 은수.
S#37. 동, 혜린의 사무실
혜린, 막 의자에 앉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혜린 : 네.
은수가 들어온다. 서류철 내밀며.
은수 : 현재 입점 고려 중에 있는 브랜드들의 시장 분석푭니다.
혜린 : (받아 열어보며) 후보 목록인 거죠?
은수 : 네.
혜린 : 알았어요. 나가봐요.
은수 : (목례하고 돌아서는데)
혜린 : 잠깐. 은수씨.
은수 : (돌아본다)
혜린 : 다음 주 토요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죠?
은수 : !.....이사님 약혼식 날 아닌가요?
혜린 : 역시 알고 있었네요. 오빠가 무슨 말 안해요?
은수 : !...별 말씀 없으시던데요.
혜린 : 가족끼리만 모여서 조촐하게 하기로 했거든요, 인원파악 때문에 그러는데 혹시...
은수 : 전 그날 약속이 있어요.
혜린 : .....
은수 : 축하드리고 싶지만 자리는 못할 거 같아요.
혜린 : 알았어요. 그렇게 해요, 그럼.
은수 : 네.
은수, 목례하고 나간다.
S#38. 병원 카운터
은수, 차례가 되자 카운터 앞에 선다.
은수 : 진료비에 착오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요.
직원 : (컴퓨터 보며) 환자분 성함이요.
은수 : 한지수요.
직원 : (컴퓨터 눌러 보고) 특진료가 2중 부과 됐네요. 차액 578000원 환불해 드릴께요.
(좀 더 컴퓨터 눌러보더니) 카드 결제로 하셨네요. 카드 가져 오셨죠?
은수 : 카드라뇨? 카드로 결제했을 리가 없는데요.
직원 : (컴퓨터 보며) 카드 맞는데.., 카드는 일괄 취소처리하고 새로 결제해야 되거든요.
잠깐만요... 카드사용자 명의가 강태주씨.., 아니세요?
은수 : ! 누..누구요?
직원 : 강태주씨요. (의아한 듯 은수를 본다)
은수 : !
S#39. 버스 안 (밤)
은수, 굳은 얼굴로 앉아 있다.
태주(e) : 난 네가 고생하면서 사는 거 보는 게 싫어.
<인터컷-10부>
은수 : 싫어서 뭐요? 그럼 아저씨가 호강시켜 줄래요?
태주 : 가능하다면 그래주면 좋지.
은수 : (웃는다) 마음이라도 고마워요.
태주 : 진심이야.
은수, 분한 듯 입술을 꼭 깨문다.
<인터컷 - 10부>
태주 : 널 전혀 도울 수도 없으면서 그냥 넋 놓고 있어야 하는 내가 견디기 힘들어. 자신 없어, 난.
은수 : 빙빙 말 돌리지 말아요. 제대로 똑바로 말해요!
태주 : 그래서... 감당할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여기서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해.
은수, 입을 꽉 물고 참아보려 하지만 결국 눈물이 흐른다. 한없이 서럽고 분하다.
S#40. 은수네 오피스텔 (밤)
경진, 페디큐어를 칠하고 있다.
이때 은수가 들어온다.
은수 : 다녀왔습니다.
경진 : 어, 그래.
은수 : 지수는요?
경진 : 만화책 빌리러 갔어. 가만히 좀 있으래도 저렇게 종종거리고 다닌다. 그래도 뭐, 조금씩 운동하는 게 좋다고는 하니까.
은수 : 병원에 갔다 오는 길이에요.
경진 : 병원엔 왜?
은수 : 진료비에 착오가 있었다고 환불받으라고 하더라구요.
경진 : (반가운) 환불? 얼마나? 야, 또 꽁돈 생기는 거네?
은수 : 카드로 결제한 거라 결국 처리 못하고 왔어요.
경진 : ! 어...그래... (몹시 당황해서 시선 돌리며 열심히 얼굴 문지른다)
은수 : 어떻게 된 거예요?
경진 : ! (화들짝 놀라는)
은수 : 미용실 원장한테 빌린 거라면서요?
경진 : 그게...그러니까...
은수 : 왜 지수 병원비가 강태주 카드로 결제된 거냐구요!
경진 : !
경진, 어쩔 줄 몰라하다가 은수에게 싹싹 빌기 시작한다.
경진 : 미안하다, 은수야, 정말 미안해. 그런데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
은수 : .....
경진 :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어떡하겠니? 모르는 사람들 도움도 받잖아. 그냥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적선 받은 셈 치고...
은수 : 집도 그 사람이 해준 거예요?
경진 : .....
은수 : 그런 거예요?
경진 : 나도 싫었어, 이것아! 난 뭐 그러고 싶었겠니? 그런데 어떡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식새끼 데리고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는데 날더러 어떡하라구. 나, 길바닥에 앉아 구걸이라도 할 수 있다? 자존심이고 뭐고가 어딨어.
당장 굶어죽게 생겼는데 뭘 어떻게 챙기냐구!
은수 : 내가 만약 지수였다면 어떻게 돼요?
경진 : !
은수 : 내가 만약 엄마 의붓딸이 아니라 친자식이라도 그럴 수 있어요?
경진 : 여기서 친자식이 왜 나와?
은수 : 엄마가 아무리 나 힘들게 해도 나한텐 항상 지수랑 엄마 밖에 없었어요.
경진 : .....
은수 : 한번도 엄마 따로 생각해 본 적 없다구요.
경진 : 알아, 알아. 내가 그걸 왜 모르겠니.
은수 : 그러면 제발... 나 좀 그만 서럽게 해요, 엄마. 나 좀 그만 서럽게 해줘요. 나 너무 비참하고...너무 창피하고...
정말 미칠 거 같단 말이야!
오열하는 은수.
경진, 어쩔 줄 몰라 하며 은수를 본다.
S#41. 백화점 사무실B (다른 날, 낮)
은수, 초조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잠시 후,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난다.
S#42. 동, 복도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은수. 사무실을 향해 걸어간다.
S#43. 백화점 사무실, 영업기획팀
사무실에 들어선 은수. 업무를 보고 있는 태주를 바라본다.
태주,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든다.
놀라는 태주에게 다가가는 은수.
은수 : 강차장님.
태주 : ?
은수 :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태주 : 무슨 얘기죠?
은수 : 조용히 말씀드려야 할 거 같아요.
태주 : !
S#44. 동, 이벤트 홀
행사가 없는 각종 기구들이 아무렇게나 놓인 텅 빈 공간이다.
들어오는 태주와 은수. 두 사람, 어색한 분위기다.
은수 : (태주를 본다) 우선, 고맙다는 말씀 드리려구요.
태주 : !?...무슨 일인데?
은수 : 병원비 내주셨다면서요?
태주 : !
은수 : 우리가 살 집도 구해주시구요.
태주 : ! (난감하다)
은수 : 어려운 사람 도와주려는 마음은 알겠는데... 도저히 받을 수가 없어요.
태주 : 그건...
은수 : 이러시면 안돼죠. 나한테...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정말 아니죠. 도대체 날, 뭘로 보고 이러는 거예요?
태주 : !.....너 어려운 사정 알고 있었고, 아는 이상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어.
은수 : 우리가 거지예요? 내가 언제 당신한테 구걸한 적 있어요?
태주 :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은수 : 그럼 뭐예요? 차장님이랑 나랑 무슨 사이라고 그걸 지나치기가 힘드냐구요!
태주 : 그럼 어떻게 가만있어. 너 고생하는 거 뻔히 아는데!
은수 : !.....나 고생하는 거 보기 싫어서, 호강시켜 주고 싶어서, 그게 당신 능력으로는 안되니까,
결혼할 여자 돈으로 날 도와준다구요?
태주 : 말 함부로 하지 마.
은수 : 아니, 할래요. 당신은 한번이라도 날 존중한 적 있어? 당신이 날 함부로 하는데 그까짓 말 몇마디 함부로 하면 어때서요?
태주 : 은수야, 이러지 마. 너 존중 안한 거 아니야.
은수 : 혹시 미안해서 그래요? 이렇게 하면 미안함이 가실 거 같았어요?
태주 : 감히 그런 생각 하지도 않아. 너에 대한 마음의 짐 덜 생각 따위 해본 적 없어. 뭘 해도 안된다는 거 아니까.
뭘 해도 용서가 안되는 거 아니까. 그냥...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어, 은수야.
은수 : 이기적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돈 줄은 몰랐어. 어떻게 한결같이 자기 입장만 있고, 자기 기준만 있고,
자기 감정만 있을 수 있어요? 당신 그거 때문에 상대방은 얼마나 갈갈이 찢어지는지 전혀 생각 안하죠?
태주 : 너 마음 상한 건 알겠는데 냉정하게 생각해.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네 동생 살릴 생각 먼저 하라구.
고집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그건! 네 힘으로... 너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있어?
은수 : 그건 내 사정이에요. 강차장님이랑 아무 상관도 없어요. 이제 우리 서로 전혀 아무렇지 않은 사이잖아.
태주 : 어떻게 아무렇지가 않아! 어떻게 네가 아무 상관도 없냐구!
은수 : !
태주 : 난 아니야. 그게 안돼, 난!
은수 : !
태주 : 아무렇지 않아지지가 않는다구.
은수 : (태주가 미우면서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태주 : 그러니까 은수야, 제발 한번만, 한번만 눈 감아.
은수 : 사람이...어떻게... (눈물이 왈칵 솟는다) 어떻게 이렇게 비겁해...!
태주 : !
은수, 돌아서 간다.
태주, 괴로운 듯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는다.
S#45. 바 (밤)
호영과 태주, 술을 마시고 있다.
태주, 우울한 얼굴이다.
호영 : 내가 그랬잖아. 위험하다구. 세상에 비밀이란 건 없거든. 어떡하든 다 들통나게 돼 있어.
태주 : .....
호영 : 어떡할 거냐?
태주 : 어떡하긴. 내가 뭐 할 말 있나.
호영 : .....
태주 : 걘...어떻게 살려고 그러지... 대책 없기는.
호영 : .....
태주 :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할 거라는 건 알겠는데... 그게 그렇게 갈갈이 찢어질 만큼 가슴 아픈 일인가...
그게 그렇게 슬픈 일이야, 형?
호영 : 내가 그걸 어떻게 알어.
태주 : 애가... 너무 슬퍼 보이더라구. 그래서 더 마음이 안 좋아.
호영 : .....
태주 : 나는 여자 마음 하난 정말 잘 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은수는 달라. 한 번도 맞아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하긴... (쓸쓸히 피식 웃는다) 처음부터 그랬다... 처음부터 항상 내 예상을 빗겨갔어. ... 예측이 안돼, 걘...
태주, 쓸쓸한 얼굴로 술을 마신다.
S#46. 은수네 오피스텔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실내.
은수,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인터컷>
태주 : 어떻게 아무렇지가 않아! 어떻게 네가 아무 상관도 없냐구!
은수 : !
태주 : 난 아니야. 그게 안돼, 난!
은수 : !
태주 : 아무렇지 않아지지가 않는다구.
은수, 준혁이 끼워진 팔찌를 본다. 팔찌를 만지작거리는데 눈물이 흐른다.
잠시 후, 문소리가 나면서 지수가 들어온다.
지수, 불을 켜고 은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지수 : 뭐야, 언제 왔어? 왜 불도 안 켜놓고 있냐?
은수 : (눈물을 훔치며) 넌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지수 : pc방. (은수를 보고) 어어? 너 울었어?
은수 : 아냐.
지수 : 뻔히 들키구서 거짓말 하는 건 뭐냐? 묻는 사람 황당하게.
은수 : 너 그렇게 자꾸 돌아다녀도 돼?
지수 : 자리 보전하고 누워 있는 것보단 나아. 천천히 조심조심 다니니까 걱정 말어.
은수 : ...넌 왜... 아프고 난리니? 안 아프면 얼마나 좋아.
지수 : 그게 아픈 사람한테 할 말이냐? 괜히 울고서 쪽팔리니까 내 핑계 대기는.
은수 : .....
지수 : 솔직히 말해 봐. 너, 그 아저씨 때문이지?
은수 : .....
지수 : 아무렇지도 않은 게 이상했어. 이래야 정상이지..... 내가 쫓아가서 막 패줄까? 방망이로 마구 두들겨주는 거야.
아냐, 결혼한다는 그 여자 찾아가서 깽판 놀까. 그렇게 나쁜 남자랑 뭣하러 결혼하냐고 훼방이라도 놓자구.
그 여자의 인생을 위해서라두.
은수 : (웃는다)
지수 : 그래두 안 풀리겠지?
은수 : (끄덕인다)
지수 : 그럼 어떡하지?
은수 : 미워. 너무너무 밉고 싫어. ...너무 미워서... 그래서 끊어지지가 않나 봐. 그게 무서워 난.
지수 : .....
은수 : 이러면 안되는데 절대 안되는데, 어느 순간 또 진창 속에 빠져 허우적댈 거 같아서 두려워.
지수 : .....
은수 : 이제 그거 정말 하기 싫거든. 정말 싫어. 어떡하든 빠져나가고 싶어.
지수 : .....(걱정스런 눈길로 은수를 본다)
S#47. 레스토랑 (다른 날, 밤)
은수와 준혁, 마주 앉아 있다.
준혁, 식사를 하다가 은수를 본다.
은수, 먹는 것이 영 시원치 않다.
준혁 : 맛 없어요?
은수 : 아뇨.
준혁 : 오늘 은수씨 얼굴이 별로 안 좋네.
은수 : 점심을 늦게 먹어서 그래요.
준혁 :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구요?
은수 : .....(준혁을 본다)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준혁 : !?
은수 :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거 아세요?
준혁 : 왜요?
은수 : 기댈 수 있는 가족도 있지만, 버겁고 떨쳐버리고 싶은 가족도 있거든요.
준혁 : ...은수씨 가족이 그래요?
은수 : 못된 생각이지만 가끔 그런 생각해요.
준혁 : 그래도 없다고 생각하면 미치겠죠?
은수 : ...(피식 웃는다)
준혁 : 원래 그런 거예요. 그래서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고 하는 거잖아요.
은수 : .....내가 만약 상무님 가족이 되면... 난 분명 버거운 쪽일 거예요.
준혁 : !
은수 : 그래도... 괜찮으세요?
준혁 : .....은수씨라면 아무리 버거워도 괜찮아요, 난.
은수 : (눈물이 핑 돈다) 저한텐 상무님이 기댈만한 여유가 없을지도 몰라요.
준혁 :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돼요.
은수 : 상무님 아프게 할 수도 있어요.
준혁 : ...감당할께요.
은수 : .....(눈물이 흐른다)
준혁 : 은수씨.
은수 :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눈 감고, 이 악물면... 그까짓 거 다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준혁 : .....
은수 : 그런데... 자꾸 흔들려요. ...이러다... 와르르 무너져서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거 같아 소름 끼치게... 무서워요.
준혁 : .....
은수 : 저 좀 살려 주세요...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준혁을 바라본다) 그 사람 좀 떼버려 주세요!
준혁 : !
S#48. 新 태주의 오피스텔
어두운 실내. 태주가 들어온다.
태주, 불을 켤 생각도 않고 자켓을 벗으며 소파에 다리를 쭉 펴고 앉는다.
텔레비전을 켠다. 멍하니 응시하다가 끈다.
괴로운 듯 머리를 소파 뒤로 젖힌 채 눈을 감는다.
S#49. 동, 오피스텔 건물 앞
택시에서 내리는 은수. 굳은 결심을 한 얼굴로 오피스텔로 들어간다.
S#50. 동, 태주 오피스텔
어두운 조명의 실내.
태주, 여전히 좀 전의 그 자세로 있다. 핸드폰이 진동한다.
태주, 무시하고 꿈쩍 않고 있다가 할 수 없이 핸드폰을 집어 든다. 액정을 보고 깜짝 놀란다. 은수다.
S#51. 동, 오피스텔 로비
은수, 로비 한 켠에 서 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태주가 나온다.
태주, 긴장한 얼굴로 은수에게 다가간다.
은수 : 이 시간에 나오라고 해서 미안해요.
태주 : 아냐.
은수 : 어제... 무작정 화만 냈던 거 미안해요.
태주 : 생각이 바뀐 거야? ...그래,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일단은 지수만...
은수 :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들인 거 같아요, 우리는.
태주 : !
은수 : 사람 인연 중에 그런 인연이 있다고 하잖아요.
태주 : ...무슨 말 하려는 거야?
은수 : 아예 만나지도 않았던 걸로 해요, 우리.
태주 : !
은수 : 그러니까 내 사정에 대해서도 모르고, 날 걱정할 이유도 없고, 나에 대해 죄책함을 느낄 것도 없어요.
태주 : 은수야.
은수 : 나 결혼해요.
태주 : !
은수 : 결혼할 거예요, 상무님이랑.
태주 : ! 그..그게 무슨 말이야?
은수 : 지금까지 내 인생 다 지워 버리고 새로 시작할 거예요.
태주 : !
은수 : 그러니까 강차장님도... 이제 나, 끊어요!
태주 : !
은수 : 그거 알려주려고 왔어요.
태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