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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카이나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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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메시아 유대인 강론 하늘에서 본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비교
하토브. 추천 0 조회 32 26.05.10 02:40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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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5.11 04:47

    첫댓글 인공위성에서 본 남한과 북한의 영상이 생각납니다!
    하나는 거의가 깜깜하고, 하나는 군데군데 환하고~

  • 작성자 26.05.12 13:09

    무슬림들의 조상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이단종교를 신흥종교로 만들어서 활동하다가 장사가 안되니까 쫓겨나서 메디나로 왔는데, 거기서 무위도식하며, 6개월을 지내다가 돈이 떨어지니까, 삼촌 함자를 통해서 약탈을 시작합니다. 메카 상인들이 메디나를 거쳐 지나가는 것을 알고 그들의 목에 화살을 쏘는 재주를 벌여서 첫 약탈에 성공한뒤로 계속 약탈 문화를 발전시키다가 메디나 자체를 외부병력 3천명을 빌려와 공격하여 메디나의 남자 900명을 살육하고 2천명의 여자와 아이들을 성노예, 노예들로 만들어 장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뒤로 다른 유대인 도시 카이바를 동일한 방법으로 정복하고, 다른 도시들을 성공적으로 약탈 방화 점령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뒤로 카이바에서 봤던 여자 자이나브를 다시 한번 만나고 잔뒤에 그녀가 요리해준 양고기를 먹고 독살될때에 알라에게 엄청 기도했지만 알라는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이후에 무슬림들은 약탈과 침략. 살육과 강탈이 주 산업이었지 어디에 들어가서 농사짓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농사지었다가는 약탈했던 그 전통을 알고 그들 스스로가 공격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약탈과 전쟁을 주 산업으로 삼은 것이고, 이스라엘 땅에서 농사를 지은 흔적을 별로 볼수 없었

  • 작성자 26.05.12 13:15

    @하토브.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들이 들어올 때에 주로 요르단으로 다수 들어갔습니다. 당시에는 요르단이 팔레스타인보다 더 살기 좋았고 터키도 요르단을 경유하는 철도를 건설하여 이스탄불에서부터 메카까지 철도를 건설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건설이 더 빠르고, 더 땅의 소출을 많게 하는 것을 보고 아랍인들이 주변에서 더 탐을 내기 시작하여 쳐들어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하기를 자기네가 수천년전부터 살던 땅에 유대인들이 갑자기 나타났다고 떠들면서 거꾸로 빼앗으려고 들어와서 하는 말이 자기네가 살던 땅을 유대인들이 와서 영국과 미국의 힘을 빌려 빼앗아갔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실상은 영국은 친 영국 정책을 폈습니다. 그것은 수에즈 운하를 지키는 것과 이라크 석유를 하이파까지안전하게 이송해오는 것이었는데, 둘다 아랍인들의 협조가 필수적이었으므로, 영국은 이스라엘 독립에 비협조적이었고 유대인 유입을 강제로 막는 한편, 아랍인 유입을 무제한 허용했습니다. 그 결과 인구 역전이 영국 위임통치기간에 일어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랍인들이 유대인들을 죽이는 헤브론 사태와 같은 살육이 자주 있으므로 유대인들은 하가나, 라는 민병대를 조직하고 팔마크 특공대를

  • 작성자 26.05.12 13:22

    @하토브. 조직하였습니다. 하가나와 팔마크는 이스라엘 국군의 모체가 되었으며 그들중에는 2차대전중 영국군에 가입하여 싸웠던 유대인 군인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하자마자 4시간만에 이집트는 선전포고 했고, 이스라엘군은 저항했지만, 군사력은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을 합친 아랍군사력의 1/100도 못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영국의 유명한 장군 몽고메리는 이스라엘은 2주 안에 멸종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5월 14일 독립선포후 벌어진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5월말까지 잘 싸웠는데, 죽기살기로 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랍군들의 최대의 문제들은 두가지, 하나는 자기네 연합군끼리 서로 총질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랍인 마을들이 유대인 마을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랍군들이 아랍마을들을 오인하여 포격하여 많은 사상자들이 나오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랍국가들은 긴급히 휴전하자고 이스라엘에 제안했고, 이스라엘은 동의했고, 그 기간에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 안에 있는 아랍인들을 가지지구와 서안지구로 몰아부쳤습니다. 그리고 그 이주 동안을 천금같은 귀한 시간으로 이스라엘은 무기들을 보충했는데 주로 체코슬로바키아

  • 작성자 26.05.12 13:29

    @하토브. 무기들이 들어왔습니다. 약 5천만 발의 총탄들이 실려와서 이스라엘은 크게 보충하였고, 2주후 전쟁이 재개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막강의 화력으로 더 잘싸웠으므로 또다시 한달 후에 아랍국가들은 휴전하자고 제안하여 또 휴전하였다가 재개했을 때 이스라엘은 더욱 더 강해져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듬해 1949년 2월말까지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항상 우위를 차지하며 승리를 계속했고, 그대로 3월에 휴전했는데, 영토가 이스라엘 땅의 55%에서 78%로 늘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이 팽창주의를 펼친 것이 아니라 이집트와 아랍국가들이 전쟁을 선포하여 이스라엘 땅을 팽창시켜준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만 피난가 있으면, 유대인들을 그땅에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멸종시키겠다는 아랍국가들의 약속을 믿고 가자와 서안지구로 피난했던 아랍인들은 그대로 주저앉아 피난 생활을 계속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피난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던 아랍인들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남아서 20만이던 수가 220만이 되었습니다. 그 아랍인들은 다른 이슬람국가로 절대로 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높은 소득과 자유와 민주주의와 인권과 여성평등과 번영을 누립니다. 대법원판사, 시장 국회의원도 아랍인들입니다

  • 26.05.13 00:18

    @하토브. 배우 '폴 뉴만'이 출연했던 영화, '영광의 탈출'을 통하여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준군사조직 '하가나'(온건파)와 '이르군'(강경파)의 역할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팔마크'는 (검색해 보니까) 또 '하가나' 산하의 특공대였군요. 많이 배웁니다.

  • 작성자 26.05.13 22:58

    @느디님 팔마크가 행했던 작전들중 하나는 팔레스타인 주둔 영국군 사령관 헤이븐 하스트 중장이 아랍여자와 동침하고 있을 때
    쳐들어가서 사살한후 사진들을 찍어서 영국에 보내면서 떠들지 말라, 떠들면 터뜨리겠다고 한 것과 킹 데이비드 호텔을
    영국군 장교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것을 알고 거기를 폭파시켜서 100명을 폭살한 사건 등입니다.
    영국은 아주 교활하게 친 아랍정책을 펼쳤는데 그것은 애틀리 총리의 노동당 정부때 일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영국 노동당은 지독한 반 이스라엘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 26.05.14 03:27

    @하토브. 킹 데이빗 호텔 폭파는 '이르군'쪽에서 한 것으로 아는데요~
    영화만 봐서 그런지요?

  • 작성자 26.05.14 06:11

    @느디님 아마 큰 구분은 없었을 것입니다. 벤 구리온이 그에 대하여 비난받는 것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마스가 벌이는 테러방식도 그것에서 배운 것이다. 하고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하마스나 헤즈볼라가 조선 독립군과 같다고 하는데, 조선 독립군이나 김구 선생에 대한 모독입니다.
    하마스나 헤즈볼라는 남의 땅에 살고 있는 남의 백성을 살육하는 것이고, 조선 땅을 침략하여 지배하고 있는 일본군과는 전혀 다릅니다. 헤즈볼라 하마스는 그들이 마치 오랫동안 살고 있었던 땅인 것처럼 세계를 속이고 있는데 실상은 유대인들이 먼저 살고 있었고 또 거기에 더해져서 번성하니까 그때야 들어와서 빼앗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알라는 그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었고요. 이스라엘 땅의 1천배 이상의 면적을 아랍인들이 갖고 있으며, 아무도 팔레스타인을 건국한 적이 없습니다. 아랍어 문자에 아예 P라는 알파벳 자체가 없습니다. 예루살렘을 성지라고 부르는데
    코란에 한번도 언급된적이 없습니다. 반면에 성경에는 예루살렘이 660번 이상 나옵니다. 팔레스타인이 있었다면 언제 누가 건국했거나 부족장이 되었는지도 제시 못합니다. 박물관에 가면 수류탄, 소총, 자폭벨트, 칼, 복면 로켓포 뿐입니다

  • 작성자 26.05.14 06:30

    @느디님 이르군에서 데이비드 호텔을 폭파했는데, 폭파전에 사전에 폭발물 설치를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장난 전화정도로 묵살했는 듯합니다.
    이르군이 호텔을 폭파한 것은 자기네를 범죄인화 한 문서들이 그곳에 있어서 그것을 폭파시키고자 함이었다는 것입니다.
    The King David bombing took place less than a month following Operation Agatha, a British round-up of some 2,700 officials of both the Jewish Agency and the Haganah, carried out on June 29, 1946. When the British police occupied Jewish Agency headquarters that day, they also confiscated large numbers of sensitive files.
    The Haganah leadership was under the impression – mistaken, it turned out – that the files had been taken to the King David Hotel,

  • 작성자 26.05.14 06:31

    @느디님 이르군에서 데이비드 호텔을 폭파했는데, 폭파전에 사전에 폭발물 설치를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장난 전화정도로 묵살했는 듯합니다.
    이르군이 호텔을 폭파한 것은 자기네를 범죄인화 한 문서들이 그곳에 있어서 그것을 폭파시키고자 함이었다는 것입니다.
    The King David bombing took place less than a month following Operation Agatha, a British round-up of some 2,700 officials of both the Jewish Agency and the Haganah, carried out on June 29, 1946. When the British police occupied Jewish Agency headquarters that day, they also confiscated large numbers of sensitive files.
    The Haganah leadership was under the impression – mistaken, it turned out – that the files had been taken to the King David Hotel,

  • 작성자 26.05.14 06:33

    @하토브.
    where both the British civilian government and its military leadership in Palestine were headquartered.

    https://www.haaretz.com/israel-news/2021-07-22/ty-article/this-day-in-jewish-history-irgun-blows-up-british-hq-at-jerusalems-king-david-hotel/0000017f-f5f9-ddde-abff-fdfd859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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