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산행 2
한동안 바위에서 쉬고는 작대산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산등선 비탈을 내려서서 다시 한 번 경사 급한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나는 등산로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갔다. 숲은 졸참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림이었다. 삭은 나무 그루터기를 찾아 나섰다. 예상한 대로 내가 마음에 둔 영지버섯을 몇 개 주웠다. 자색 갓이 예쁘게 자란 영지였다. 영지버섯은 여름 산이 빚어내는 신비한 선물이다.
영지버섯을 찾아 나섰다가 또 다른 버섯을 발견했다. 삭은 나뭇가지에 목이버섯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목이를 한 송이 한 송이 따서 배낭에 담았다. 사람 귀처럼 생긴 목이는 말랑말랑했다. 산에 들어 영지버섯이나 말굽버섯은 주워봤으나 목이버섯 채집은 처음이다. 예전에 보긴 했어도 그냥 지나쳤다. 영지는 차를 끓여 먹는다만 목이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반찬으로 해 먹는다.
이제 등산로로 되돌아 와 산등선을 내려가 다시 비탈을 치올라갔다. 감계 갈림길에 안내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산비탈을 내려서면 감계마을이고 무릉산으로 건너가고 계속 나아가면 작대산 정상이라는 안내였다. 감계과 무동은 상전벽해가 되어갔다. 논밭과 언덕은 택지로 조성되어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었다. 개발되는 신도시 뒤로 마금산 온천과 백월산이고 낙동강이 흘렀다.
여름 내내 울어대던 매미소리는 가늘어지고 고추잠자리가 날았다. 작대산 정상을 향해 나아가다가 되돌아보니 창원컨트리클럽과 도청 주변 시가지 일부가 보였다. 정상에 이르도록 산행객은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정상에 세워 놓은 정자에 올라 사방을 두루 부감했다. 낙동강은 산을 휘감아 흐르고 칠서와 남지까지 보였다. 도시락으로 반나절을 걸으면서 소진된 에너지를 보충했다.
정상에서 더 나아가면 서봉이고 칠원 무기마을이다. 하산은 왔던 길을 되돌아감이 일반적이다. 나는 서봉으로도, 되돌아가지도 않았다. 북사면 희미한 비탈길로 내려섰다. 경사가 급한 길이라 나뭇가지를 붙잡아가면서 조심조심 걸었다. 산은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힘들다. 더더구나 나는 왼쪽 무릎이 시큰거려 무리해서 걸으면 안 된다. 산기슭은 함안 레이크힐스골프장이었다.
한 시간 남짓 걸려 비탈을 내려가니 임도가 나왔다. 무기에서 감계까지 작대산을 에워싸는 둘레 길이었다. 계곡에는 사방댐이 있는데 평소 대롱에만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간밤에 많이 내렸던 비로 아주 굵은 폭포수가 쏟아졌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겉옷을 훌훌 벗고 알탕(?)을 감행했다. 가는 여름의 묵은 땀방울까지 모두 씻어 내렸다. 그간 만난 산행객은 아무도 없었다.
계곡에서 임도로 올라와 감계마을을 향해 걸었다. 굽이굽이 모롱이를 돌아가는 길이었다. 길섶에는 쑥부쟁이가 통통히 살진 꽃망울을 달고 있었다. 구절초도 여름 뙤약볕을 잘 이겨 내고 가을이 깊어지길 기다렸다. 길 아래 골프장 잔디밭에선 캐디를 대동한 골퍼들이 웅성거렸다. 감계마을까지 가는 데 한 시간은 더 걸렸다. 신도시 아파트가 들어서는 택지를 지나 화천리에 닿았다.
온천장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녹색버스를 기다렸다. 마산 댓거리까지 가는 24번이 왔다. 창원역 앞에서 환승버스를 기다렸다. 문득 오일장이 어디일까 떠올렸다. 3일과 8일은 진해 경화장날이었다. 나는 용원으로 가는 757번을 타고 가다 진해 롯데마트 앞에서 내렸다. 귀갓길 동선이 꽤 길어졌다. 십 분 남짓 걸으니 경화장터에 도착했다. 파장 무렵이었다만 상인과 손님들로 붐볐다.
경화장터 ‘박장대포’에 들려 명태전을 안주하여 막걸리를 한 되 비웠다. 주인장과 인사를 나누어보니 그는 사립학교 전직 국어교사였고 아내는 지리교사였다. 내가 잘 아는 시인과 대학 동기동창이라고 했다. 교감인 친구 시인에게 연락하겠다는 것을 만류하고 배낭 속 영지를 두 개 건네주었다. 주점을 나와 해거름 파장에서 시장을 봤다. 부추, 양배추, 고구마, 배, 보로코리 등이었다. 12.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