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늦은 밤, 소설을 읽는 독서 모임 카톡방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멤버들이 수상의 기쁨과 작가의 작품에 대해 짧은 소견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카톡을 주고받다 보니 순간 느껴졌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다”라는 에머슨의 말뜻이.
같은 소설을 읽었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 이야기가 풍성해졌다. 아마 다른 카톡방에서도 한강 작가의 수상 기쁨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노벨 문학상은 우리가 모두 내심 기다리던 상이기 때문이다. 이웃한 일본과 중국은 이미 노벨 문학상을 받았기에 우리가 받지 못해 아쉬웠는데 그 아쉬움이 단번에 사라졌다.
한강은 섬세하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가진 작가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의 이름을 부르며 “역사적 트라우마와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면서도 시적인 소설”을 쓴 작가라고 소개했다. 이 짧은 한 줄 문장 속에 한강의 작품의 성격이 압축되어 있다. 서정적인 문장과 깊이 있는 세계 인식.
Han Kang. Ill. Niklas Elmehed © Nobel Prize Outreach, The official website of the Nobel Prize – NobelPrize.org
한강은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비극과 역사적 주제를 다루나, 그걸 섬세하고 시적인 문체에 담아서 전달한다. 2016년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는 육식으로 은유되는 인간의 잔인함과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다뤘고,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루며 상처받은 이들의 내면적 고통으로 시적으로 표현했다.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뭘까, 생각한다. 소설에서 동호는 겨우 열다섯 살 중학교 3학년이다. 1980년 갑자기 휩쓸려 들어간 사건 속에서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다. 정대는 시위대에 끼어 동호와 함께 행진하다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동호는 정대의 손을 놓고 도망쳤기에 죄책감에 시달린다.
소설은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일어났던 상황과 그 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간다. 절절하고 처절하다. 작가 역시 작업실에서 이 소설을 쓰면서 세 줄 쓰고 한 시간 울고, 아무것도 못 하고 몇 시간 정도 가만히 있다가 돌아오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가 그려낸 동호가 허구이나 실존했던 삶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동호라는 소년의 이미지는 야학 교사 박용준 선생님에게서 가져왔다. 한강은 항쟁의 마지막 날 5월 27일 새벽에 별세한 선생님의 일기를 보았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작가는 이 일기를 보며 동호라는 소년의 이미지를 떠올렸고 그게 소설이 되었다.
작가는 왜 『소년이 온다』를 썼고, 우리는 왜 이 책을 읽는 것일까?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작은 차이가 있지만, 그 작은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전 세계 소설은 거의 예외 없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나, 작가는 그 작은 차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간다. 한강은 늘 인간 내면의 고통과 상처를 다룬다.
작가 한강이 쓴 소설들은 여럿이다. 소설집이 3권이고, 장편만 해도 7권이나 되고, 동화도 썼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면, 그가 개인과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담긴 아픔이 느껴진다. 살아남길, 죽지 않길 바라는.
한강의 소설을 읽기 전엔 모르나 소설을 읽어 가면 곧 알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뭔지를. 고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남은 작은 삶의 아름다움을 붙잡고 사는 게 뭔지를. 작가는 처연한 삶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양심을 잃지 않고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온 힘 다해 버티는 사람을 그려낸다.
첫댓글 아프겠지만~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