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춰버린 사막 고대도시 글·사진 박하선(www.photodragon.com)
 |
◇ 산에 사는 베두인 여인이 식구들이 먹을 저녁식사용 빵을 굽고 있다. 이들은 빵에 손수 만든 요구르트나 치즈를 곁들여 차와 함께 먹는다. |
 |
◇ 불 같은 사막길을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낙타는 사막에서 가장 편리한 이동 수단이다. |
 |
◇ 계곡 중간쯤에는 비잔틴 시절의 동굴들이 남아 있다. 그중 몇 개의 동굴을 로얄 톰이라고 부른다. 우른 톰에 석양이 비추고 있다. |
고대 세계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공간이다. 거친 사막의 암석지대에 불가사의하게 세워진 고대 도시 페트라. 한때 유럽 문명의 골간을 이룬 상서의 무대이자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던 이 도시는 이제 황량한 지구의 변방으로 전락했다. 남루한 베두인과 염소 떼가 잠시 머물 뿐인 잊혀진 도시 페트라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박하선시가 앵글에 담았다. <편집자주> |
한낮의 불 같은 태양이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다. 붉은 빛을 띤 사막의 산들이 그 엄청난 태양열에 녹아 내릴 듯 하얗게 빛나고 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모래밭을 걷는 노새나 낙타도 이 같은 날에는 견디기가 어려울 것이다. 여기는 중동의 한켠 요르단에 있는 페트라.
사막 속의 험악한 산들 곳곳에 고대 유적지가 산재해 있어 폭염 속에서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오전에 그리 많던 관광객들도 모두들 어디로 가고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나처럼 텅 빈 동굴을 하나 골라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일까. 아직도 볼거리는 많은데 어떻게 이 폭염을 헤쳐 나가야할지 뚜렷한 대책이 없다.
동굴 속에서 세상 몰라라 하고 한숨을 자고 나니 지친 몸이 한결 낫기는 하다. 하지만 작렬하는 태양 아래로 다시 선뜻 나서지를 못하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빌어먹을, 구경하기도 힘들구먼!”
이곳 페트라는 요르단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적지들의 규모나 아름다움이 대단해서 유네스코의 보존 문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이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잘 알려진 곳이 아니다. 하지만 꼭 생소한 곳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이미 페트라의 독특한 자연과 유적들과의 만남의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성배를 찾아서’ 편에서 주무대로 등장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페트라라는 말이다. 그럼 기억이 좀 되살아날까.
그러니까 영화 속의 신비의 성전이나 협곡들이 모두 사실 그대로 페트라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실 속에서도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해 묘한 기분을 맛보게 하는 곳이 바로 페트라이다.
이 장미빛 유적의 도시 페트라의 역사는 아주 깊다. 그 첫번째 주인은 기원전 13∼6세기에 번영을 누렸던 에돔(Edom)왕국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여호와나 마호메트 같은 유일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해와 달을 숭배하는 범신교도들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너희들은 어찌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느냐. 이 독수리 같은 놈들아. 바위틈에서 잡신을 믿지 말지어다’ 라고 호통친 적이 있다고 성서에 전해진다.
페트라의 영광을 일깨운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것은 기원전 6세기를 넘어서면서 요르단 지역을 지배하던 아랍족 나바티안들이 이곳으로 옮겨와 왕국을 이룩하면서부터다.
그러니까 로마제국 이전부터 나바티안들은 이곳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붉은빛 사암을 파서 독특한 왕궁과 동굴 주거를 만들어가며 왕국의 기반을 다져 갔던 것이다.
전성기 시절에는 다마스커스, 북아랍 뿐만 아니라 시나이 반도까지 그 세력을 손아귀에 넣어서 중국과 로마를 잇는 실크로드 선상의 무역로를 장악하여 엄청난 부를 누리기도 했다. 지금 이 페트라에 남아 있는 많은 유적지들 중에서 대다수가 이 나바티안 왕국 시절의 것이다.
지진으로 파괴되고 잊혀진 나바티안의 영광
하지만 이 왕국도 서기 106년 로마제국에 합병되어 아라비아 지역 로마제국의 일원이 되었고, 그 중심은 이곳 페트라가 되었던 것이다.
그후 4세기에 비잔틴 제국이 들어서면서 기독교 세력이 급속히 퍼져 나가 이곳 나바티안들은 세례를 받았고 많은 교회를 세웠으며, 페트라는 그 관할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 번영은 하루 아침에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강력한 지진이 엄습하여 페트라의 많은 것들을 파괴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후로 사실상 사람이 살지 않는 채 방치되고 있다가 7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밀고 들어오면서 이곳 페트라는 보잘 것 없는 조그마한 부락으로 전락하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1812년 열렬한 무슬림 학자로 위장한 스위스의 한 젊은 여행가가 이 지역을 여행하다가 이곳의 엄청난 유적들을 발견하게 되어 페트라는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실로 잠들어 있는지 천년만의 세월이다. 그 기간 동안 이곳 페트라는 오로지 아라비아 사막의 떠돌이인 베두인족들과 그들의 동물들 안식처가 되어 왔던 것이다.
일명 ‘장미빛 붉은 도시’라고도 불리고, <인디아나 존스>의 무대이기도 한 이곳 페트라를 보기 위해서는 거금 40달러나 되는 입장료를 지불해야만 한다.
이것은 3일 동안 구경할 수 있는 입장료이다. 워낙 범위가 넓고 볼거리가 많아서 하루, 이틀 가지고는 땀 흘리고 다리 아픈 것 말고는 아무 기억도 남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단체 관광객들은 한나절에 모든 것을 두루 섭렵하고 의기양양하게 떠나간다. 재주도 참 좋은 사람들이다.
3일째 되던 날에도 아침부터 태양은 불같이 내리 쬐고 있었다. 오늘도 시크(Siq) 라고 불리는 길다란 통로를 지나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늘은 정말 성배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말이다. 폭염을 차단하고 있어 그런 대로 시원한 이곳은 마치 불랙홀을 연상케 한다.
수십 미터 높이의 절벽과 절벽 사이의 비좁은 틈새가 2㎞나 이어진다. 이따금 말을 탄 소년들이 지나갈 뿐 바깥 세상은 절벽 위쪽 틈새로 보이는 조각난 하늘을 빼고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어제 저녁 무렵 모두가 빠져나간 뒤 혼자서 지친 몸으로 이 길을 걸어 나오자니 무섭기도 했었다.
신화와 죽음을 예찬한 알 카즈네 사원
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서 꿈을 꾸듯 걷다 보니 오늘도 역시 이 좁은 통로가 끝나는 틈새에서 분홍빛 보석이 찬란히 빛나고 있다.
페트라의 첫번째 놀라움을 안겨주는 알 카즈네 사원이다. 이 틈새에서 첫날부터 지금껏 수십 번은 쳐다보았을 법한데도 언제 보아도 싫지가 않은 멋들어진 풍경이다.
정말 저 속에 들어가면 무언가 신비스러운 것이 있을 법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래서 이 사원을 일명 ‘보고(寶庫)’ 라고도 부르고 있는 것일까.
이 사원은 기원전 1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고전적 헬레니즘 건축 양식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 나바티안 왕이었던 아레타스 3세의 무덤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훗날 이곳은 왕의 명성을 찬배하고 숭배하는 사원으로 쓰였던 것 같다고 학자들은 전한다. 거대한 바위벽을 깎아 만든 웅장하고 화려한 이 사원의 정면에는 몇 개의 둥근 기둥과 섬세한 조각상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모두가 나바티안들의 신화적인 내용과 죽음을 예찬한 것들이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 마치 누군가가 몽땅 쓸어간 것 처럼…. 그래, 이 속에 아무 것도 없었을 리가 없다.
이곳을 보고라고도 하지 않는가. 워낙 오랜 세월 동안 버려져 있었기 때문에 도굴꾼들의 손길을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 못했겠지만 사라진 것들 중에는 영화 속에서 나오는 성배와 같은 신비스러운 것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볼만하다. 이곳이 근세에 들어서도 도굴꾼들의 손길이 미쳤다는 것을 증명할 만한 것들이 사원 정면에 남아 있다. 무수한 총탄 구멍들이다.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이곳을 일컬어 보고라고 말하는데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슬람 도굴꾼들이 내부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이 사원의 정면 어딘가가 의심스러워 총탄으로 부숴 가면서 찾으려고 애를 썼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세월의 무게를 알 리 없는 낙타 한 마리가 이 문전에서 관광객들의 좋은 피사체가 되어주고 있다.
발길을 돌리는 곳마다 붉은 사암을 파서 만든 왕족이나 귀족들의 무덤, 교회, 아니면 나바티안들의 동굴 주거들이 눈에 띈다. 입구에는 한결같이 섬세한 조각이 되어 있다. 이런 곳들 역시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다.
단지 벽면의 바위 무늬들이 마치 썰어 놓은 연어의 살처럼 독특할 뿐이다. 또 공터에는 예전의 장터 흔적이 있고, 로마시대에 만든 돌기둥들이 길을 따라 뻗어 있는 곳도 있다.
이런 곳들을 찾아다니면서도 눈과 손은 따로 논다. 눈은 나바티안의 영광을 살피기에 정신없는 반면, 손은 몇 걸음마다 물병만을 찾는다. 지독히도 더운 곳이다.
페트라 최대 규모 에드 데이르 사원
확 트인 벌판에는 이글거리는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뚫고 꼬마들 몇이서 노새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저 벌판에 오래 있다가는 미이라가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레크로폴리스라는 야외극장에서 잠시 발길을 멈춘다. 로마 유적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이 건축물은 나바티안 왕국의 황금 시절에 지어진 것이다. 8,000명이 넘는 관객이 들어설 수 있는 규모이지만 역시 이곳을 엄습한 지진으로 파괴되어 세월의 무게만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이곳 페트라의 유적들 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은 에드 데이르라는 사원이다. 바윗길을 타고 돌면서 외롭게 고군분투해야만 만날 수 있는 곳이기에 단체객들은 별로 찾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분위기가 살아나는 멋진 곳이다.
생김새가 알 카즈네와 비슷하지만 규모로는 이곳 페트라의 최대 규모이다. 이곳 역시 처음에는 왕가의 무덤이었으나 4세기의 비잔틴 시대에 사원으로 사용하면서 성직자와 신도들의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고 한다.
사원 앞의 언덕 위에 올라 석양에 붉게 물들어 가는 사막의 산들을 바라본다. 저 밑 어딘가에서 베두인족들이 염소 떼를 몰고 있다.
오늘날 나바티안들은 사라지고 이곳의 주인들은 바로 그들이다. 곳곳에 비어 있는 동굴들은 그들의 좋은 안식처가 되고 있다.
바위를 파서 만든 집들이니 앞으로도 천년 묶기다. 그래서 옛 관습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옛 나바티안들의 생활을 그려볼 수가 있다. 황혼 빛에 물들어 가는 사원을 바라보면서 지난 시대의 영광을 떠올려 본다. 오늘날 이곳 페트라는 심오한 대자연의 불가사의뿐만 아니라 나바티안의 영광을 고증하고 있는 곳이다.
여행 정보 장밋빛 붉은 도시, 페트라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서남쪽으로 내려가면 수백년간 잠들어 있던 신비의 도시 페트라가 숨어 있다.
페트라는 기원전 유목 민족인 나바티안들이 사막 한가운데 암석지대에 세운 불가사의한 고대 도시다. 이 도시는 수십 미터의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절벽 사이로 난 좁은 협곡을 따라 2㎞ 가량을 들어가면 갑자기 웅장한 건물이 정면에 나타나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페트라의 대부분 건축물들은 거대한 암벽을 파서 만들어졌으며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현대 도시 못지 않게 갖추어져 있다. 사방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요새인 이 도시는 마치 지하에 구축된 지하 왕국이 연상될 만큼 신비롭다.
기원전 4세기 나바티안 족이 건설한 이 도시는 수많은 대상들이 거쳐가는 실크로드의 길목이자 상업의 요충지로 한때 크고 번창했었다.
서기 2세기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뒤에도 여전히 융성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중심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지고 대상 무역이 쇠퇴하고 지진으로 점차 폐허로 변해갔다.
7세기경 이슬람 세력이 요르단을 점령한 이후 여러 세기 동안 역사에서 지워졌다. 페트라에 대한 이야기가 옛 기록에 나오고 있지만 소멸한 많은 도시들이 그렇듯 이 도시의 위치도 잊혀졌다. 그러던 중 1812년 스위스의 젊은 탐험가 부르크하르트(Johann Louis Burckhardt)가 페트라를 발견했다.
그의 여행기가 출판되자 비로소 잊혀졌던 페트라의 존재가 세계에 알려졌다. 현대의 과학으로도 쉽게 설명하기 힘든 페트라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역사적 가치 때문에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가는 길국내에서 요르단까지 직항로는 없으며 방콕을 경유해 요르단 암만으로 가는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암만에서 약 40분 거리에 위치한 퀸 알리아(Queen Alia) 국제공항에는 세계 각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들이 정규 운항하고 있다. 요르단 주변 국가인 이집트나 이스라엘을 경유하는 경우 차로 이동이 가능하다. 암만에서 페트라까지는 차로 4시간 정도 걸리며 매일 정규적으로 오가는 버스가 있다.
일정쪾보통 국내에서 페트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성지 순례의 한 코스로 들리게 된다.
그럴 경우 페트라를 돌아보는 일정은 하루밖에 되지 못한다. 페트라의 유적 전체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2박 3일 정도 여유를 가져야 한다. 우선 하루는 시크, 알 카즈네, 원형극장 등을 둘러보고 다음날은 말을 타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원 에드 데이르까지 가는 것을 권한다.
비자쪾요르단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는 암만에서 발급 받을 수 있다. 유효기간 6개월 이상 남은 여권과 여권용 사진 한 장이 있어야 한다. 발급 수수료는 30일 단기비자가 미화 30달러이다.
숙소쪾페트라 유적지 내에서는 숙박을 할 수 없다. 며칠 동안 페트라를 돌아보려면 시크를 따라 나와 주변 그 여관촌을 이용해야 한다. 숙박비는 국내 여관비와 비슷하다.
음식쪾아랍 지역의 특성상 음식이 다양하지 않다.
주로 빵과 양고기로 만든 꼬치구이 시시커밥을 쉽게 사먹을 수 있다.
날씨쪾페트라를 여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는 10∼12월, 4∼6월이다. 요르단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은 평균기온이 32∼44℃로 매우 무덥고 겨울에는 비가 잦기 때문이다. 일교차가 큰 편으로 여름에 여행을 하더라도 스웨터나 파일 재킷 정도는 준비하는 것이 좋다.
가급적 관광객이 덜 몰리는 한산한 오전 중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페트라는 밤보다 낮이 훨씬 아름다운 도시이다.
복장쪾요르단을 여행할 경우 반바지, 짧은 치마, 소매 없는 티셔츠 등은 입지 않도록 한다. 특히 햇볕이 뜨거운 사막을 여행할 때는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타월이나 다른 천을 이용하여 머리를 감싸도록 한다.
주의사항쪾겨울을 빼놓고는 거의 더운 지역이므로 충분한 음료와 약간의 비상식량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또한 중동 관습상 여성들의 경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남자들과 눈을 마주친다거나 말을 거는 걸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사진촬영을 할 때는 사전 양해를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