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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예언 성취와 침례 “요한”과 우리의 사명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예언된, 기별의 전파를 중지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되어야만 하였다. 주님께서는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선지‘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말4:5)라고 말씀하셨다. 누군가가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나타나야 하며 그가 나타날 때에 사람들이,“그대는 너무나 지나치게 열성을 보인다.
그대는 정당한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지 않다. 내가 그대에게 기별을 전하는 방법을 가르치리라”고 말할는지 모른다.(1SM 412.2) 그분의 재림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행3:21)에 있을 것이니, 그 때에는 오랫동안 계속하여 온 악의 지배는 깨어지고,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 로다.”(계11:15).(Mar 21.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4:5,6.)(Mar 22.1) “예언은 성취되어야 한다.
주님은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말씀하신다. 누군가가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으로 와야 하며, 그가 나타날 때, 사람들은 그대는 너무 열렬하고, 그대는 적당하게 성경을 해석하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른다.”(TM 535 .3) 나는 돌이켜 그리스도의 초림이, 전파되던 때를 보았다. “요한”이 “엘리야”의 정신으로 예수를 위하여, 길을 예비하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요한”의 증언을 배척한 자들은, 예수의 교훈에서 아무 유익도 받지 못했다. 그의 강림을 예언한 기별을 거절하는 것은, 그분이 “메시야”이신 가장 힘 있는 증거를 받을 수 없게 하였다. 사단은 “요한”의 기별을 배척한 자들이 한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충동하였다. 이렇게 해서 저희는 ‘오순절’의 축복도 받을 수 없게 되고, 따라서 하늘성소로 나아가는 길을 깨닫지 못하게 된 것이다.(SR 386.1)
선지자의 말은 즉시 효과를 나타냈다. 처음에 재난에 대한 생각을 조롱하던 사람들도, 얼마 후에는 심각하게 반성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몇 달 후에 땅은 이슬이나 비를 받지 못하여, 건조해지고 식물은 시들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결코 줄어들 줄 모르던 시냇물이, 줄기 시작했고 개울들도 마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바알’의 권세를 신뢰하고, “엘리야”의 예언을 근거 없는 말로 젖혀 두도록 백성들에게 역설했다. 여전히 사제들은 비는 ‘바알’의 능력을 통해서 내린다고 주장하였다. “엘리야”의 하나님을 두려워 말며 그 말을 듣고 떨지 말라. 때를 따라 수확을 가져오고 인간과 짐승의 양식을 준비하는 분은 ‘바알’이라고 주장하였다.(PK 123.2)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주신 기별은 ‘이세벨’과, 그의 사제들과 ‘바알’과 ‘아스다롯’의 모든 추종자들로 하여금, 저희 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할 수 있으면, “엘리야”의 말도 거짓임을 밝혀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우상을 숭배하는 수백 명의 사제들의 보증에 반하여, “엘리야”의 예언은 홀로 섰다.
만일 선지자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바알’이 우로(雨露:이슬과 비)를 내려서 시냇물이 계속 흘러가게 하고, 식물이 무성하게 해서 이스라엘 왕으로 하여금, 계속 ‘바알’을 예배하게 한다면 백성들은, ‘바알’이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이다.(PK 124.1)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분의 백성에게, 가장 엄한 형벌을 내리고 계셨다. “엘리야”의 예언은, 무섭게 성취되어 가고 있었다.
삼년 동안 모든 성읍과 나라들을 차례로 뒤지며, 이 재난의 사자를 찾았다. 많은 통치자들은 ‘아합’의 명령에 따라 저희 영토 안에서는, 이상한 선지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체면상의 맹세를 하였다. 그러나 수색하는 일은 계속되었으니, 이는 ‘이세벨’과 ‘바알’의 선지자들이 앙심을 품고 “엘리야”를 몹시 미워하여 저희 힘이 미치는 한, 그를 잡으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는 여전히 오지 아니하였다.(PK 137.1)
함께 봉사하던 기간에 때때로 “엘리야”는, 흉악한 죄악을 신랄하게 견책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악한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을 때에, ‘아합’의 운명과 그의 집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예언한 것은 “엘리야”의 음성이었다. 그리고 ‘아하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합’이 죽은 후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 ‘에그론’의 신 ‘바알세불’에게로 향했을 때에, 다시 한 번 맹렬히 항의한 것도, “엘리야”의 음성이었다.(PK 224.2)
“엘리야”는 ‘갈멜산’에 온 이스라엘과 또한, ‘바알’의 모든 선지자들이 모이도록 요청한다. 선지자의 표정 속에 나타난 두려운 엄숙함을 통하여, 그가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배도한 이스라엘의 상태는 굳건한 행실, 엄격한 말, 지배적인 권위를 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와 기회에 맞도록 기별을 준비하신다.
때때로 그분께서는 그분의 성령을 그분의 기별자들에게, 주심으로 마치 그분의 기별자 “요한”이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마3:3)고 그랬던 것처럼 주야로 경고를 발하게 하신다. 그리고 또다시 의무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편에 선 자는 누구인가”(출32:26) 그는 우리 편에 설 지어다. 라고 외칠 행동의 사람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처한 다양한 형편에 따라, 그에 맞는 기별을 갖고 계실 것이다. (3T 279.1)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라고 먼저 경고하심 없이, 그의 백성에게 심판을 보내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들을 순종으로 돌이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하시며, 그들에게 회개할 충분한 기회를 주기 전까지는, 심판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지 않으신다.
사람의 진노는 하나님의 선지자의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그의 활동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하나님은 감옥의 벽을 뚫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하실 수 있었고 심지어 그들의 박해자들이, 그들의 영향을 제한하려고 노력하는 바로 그 수단을 통해서, 그분의 종들의 유용성을 증가시킬 수 있으시다.(4T 179.3)
불화와 분쟁 속에서, 광야로부터 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 음성은 깜짝 놀라게 하고 가혹하였으나, 희망이 가득 찬 음성이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 이 말은 새롭고도 이상한 능력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먼 미래에 있을, 사건으로 예언하였는데 여기서는 그, 사건이 가깝다고 선포되었다. “요한”의 이상한 외양은 청중들의 마음에 옛날의, 선지자들을 연상시켰다.
그의 태도와 의복은, “엘리야” 선지자와 비슷하였다. 그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국가적인 부패를 비난하고, 널리 퍼진 죄들을 견책하였다. 그의 말은 직설적이고 날카로우며 또한, 확신시키는 힘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난, 선지자 중 한 사람일 것이라고 믿었다. 나라 전체가 들끓었고 ,많은 무리가 광야로 모여들었다.(DA 104.3) “요한”은 친구들과 생애의, 쾌락들과 분리되었다.
약대의 털로 짠 그의 소박한 옷은, 유대의 제사장들과 일반 사람들의 사치와, 과시에 대한 끊임없는 견책이었다. 순수한 채소, 메뚜기[콩 종류]와 석청으로 된 그의 음식물은, 그 당시 도처에 편만했던 식욕의 방종과, 폭식에 견책이 되었다. 개혁의 큰 주제는 세상을 들끓게 해야 하고, 대중의 마음은 움직여져야 한다. 우상숭배와 폭식 그리고 의복과 다른 여러 가지 일에 있어서, 방종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절제는, 범사에 그 기별과 연관되어야 한다.(Mar 22.4)
구주의 제자들처럼 침례“요한”도, 그리스도의 왕국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예수께서 “다윗”의 보좌를, 취하시리라고 예기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구주께서 왕으로서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요한”은 당황하여 근심하게 되었다. 그는 주 앞에 길이 예비 되기 위해서는, 산과 언덕이 낮아지며 험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지가 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어야 한다고 백성들에게 선언해 왔었다.
그는 버렸어야 할 인간적인 자만과, 권력의 높은 지위들을 기대하였다. 그는 “메시야”를 그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시고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분으로 지적하였다. “요한”은 선지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에게 왔다. 그는 여호와께서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친히 드러내시기를 기대하였다.(DA 215.2)
“요한”의 사업이, “말라기” 선지자에 의하여 이미 예언되었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말4:5,6). 침례“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의인의 지혜로 돌이키기 위하여,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으로 나아갔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전할 거룩한 진리를 위탁받은, 말세에 사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오늘날 인자의 오심에 대하여 세상에 경고의 기별을, 전할 사람들도 “요한”이 실천했던 것과 같은 절제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Te 91.2) 나는 그리스도의 초림을, 외치는 일에 눈을 돌렸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예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요한”이 보냄을 받았다.
“요한”의 증거를 거절한 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에도, 유익을 얻지 못했다. 그분의 오심을 예언하는 기별을 반대함으로써, 그들은 그분이 “메시야”라는 강력한 증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사단은 “요한”의 기별을 거절한 자들을 계속 충동하여,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이끌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하늘성소로 들어갈 길을, 자기들에게 가르쳐 줄 “오순절” 날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입장을 자처했던 것이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유대인의 희생과 의식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셨다. 큰 희생이 치러지고 그것이 받아들여졌으며, “오순절” 날 내린 성령은 제자들의 마음을, 지상의 성소로부터 하늘성소로 향하게 하였다.
그 곳에서는 예수께서 자신의 속죄의 은사를, 제자들에게 베풀어 주기 위하여, 자기의 피를 가지고 중재하고 계신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캄캄한 암흑 가운데 있다. 그들은 구속의 경륜에 대하여 보존해 온, 모든 빛을 잃어버린 채 쓸데없는 의식과, 희생 제도를 신뢰하고 있었다. 하늘성소가 지상성소를 대신했다는 것을, 그들은 전혀 몰랐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룩한 처소에서 그리스도께서 행하고 계시는, 중재로 인한 은사를 받을 수 없었다.(EW 259.1)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의로운 사람들에게 필요 되는 극기와 겸손 그리고, 절제는 그들과 대조적으로 이 타락한 시대에 살면서, 방종하고 건강을 해치는 습관에 젖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손이 육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듯이, 건강개혁도 셋째천사의 기별과 그런 관계를 맺어야 함을 나타내셨다.(Mar 22.5)
우리는 안팎의 원수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특별히 위태한 시기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특별한 사업의 모든 일에, 방심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하늘 아버지의 특별한 도움 없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여기 있다”하고 대답하실 수 있게, 그대가 하나님을 찾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나를 찾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겸손하고 통회하는 자에게는, 그분의 권능과 은혜와 의가 주어질 것이다.(GW 421.3) 노소를 물론하고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특별히 임하여 계시는 곳을 어떻게 여겨야 할 것인지, 아래의 성경 말씀을 신중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하셨다.
또 “야곱”은 천사가 사다리 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이상을 본 후에 큰 소리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28:16,17)라고 하였다.(GW 178.4) “바울”은 영혼들을 십자가 아래로 인도하고자 노력하면서, 방탕한 자들을 직접 책망하거나 그들의 죄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흉악한지를 보이고자 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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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그는 그들 앞에 생애의 참 목적을 제시하였으며, 저희가 받아들일 것 같으면 세욕과 죄에서 그들을 끌어올려, 순결과 의로 인도할 거룩하신 교사의 교훈으로, 그들의 마음에 감명을 주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하다고 여김을 받을, 사람들이 얻어야 할 실제적인 경건과 성화를 강조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그들의 마음의 암흑을 꿰뚫어, 그들의 부도덕한 행습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불쾌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을 보기를 갈망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가르친 그의 교훈의 요지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이었다. 그는 그들의 가장 진지한 연구와 최고의 기쁨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놀라운 구원의 진리여야 함을 그들에게 보여 주고자 하였다.(AA 272.2)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생애를 살면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을 향하여, 사랑하는 제자가 행한 것과, 동일한 판단을 내릴 권리를 가졌다. 초대교회의 번영을 위협한 것들과 비슷한 죄악이, 이 마지막 시대에도 존재한다. 이 점에 대한 사도“요한”의 가르침은 주의 깊이 유의되어야 한다. “너희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부르짖음은 특별히 성화되었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부르짖고 있는 외침이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너무나 순결하여, 자복하지 않은 죄를 덮을 수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을, 사랑해야 하지만 죄악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역자들과 연합하면서, 이것을 사랑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이 영혼을 멸망시키는 오류들을 반대한 것처럼, 이 시대의 그분의 백성에게 의를 위하여 확고부동하게 서라고 요구하신다. (AA 554.3)
쉼이 가까워 오는 피곤한 발을 존중하라—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노인을 존경하라고 명하셨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16:31)고 하셨다. 백발은 싸워서 승리를 얻고 무거운 짐을 지고, 유혹에 저항한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피곤한 발을 쉬게 될 날이 가까워 옴을 말하고 또한, 오래지 아니하여 그 자리가 비게 될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실을 어린이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라. 그리하면 그들은 예의와 존경을 가지고, 노인의 길을 평탄하게 할 것이요 어린이들은,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레19:32)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함으로 그들의 젊은 생애에, 은혜와 미를 들여올 것이다.(CG 144.1)
많은 사람들이 다섯째 계명을 범하고 있다— 말세에는 자녀들의 불순종과 불경이 너무나 현저하여지므로,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그것을 경고하셨으며 또한, 그것은 종말이 가깝다는 한 징조이다. 그것은 사단이 젊은이의 마음을 거의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더 이상 존경하고 있지 않다. (AH 293.4)
하나님과 연결을 맺고 서 있다는 것을, 늘 실감하는 사람들은 식욕은 만족시키되, 소화기관에 해를 끼치는 음식물은 위에 넣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입는 부당한 습관에 빠짐으로써, 하나님의 소유물[우리의 몸과 마음]을 파손시키지 아니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협력하여 일하기 위하여서는, 이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인간기계[원칙적 설계]를 특별히 돌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유용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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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되려면 그들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두지 아니하면 안 된다.(CG 399.3)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이 식욕의 방종에서부터, 특별히 자극물과 마취제[발효식과 육식의 혼합물]의 사용으로부터, 그들의 자녀들을 지키기를 요구하신다. 그리스도인 부모의 식탁에는 조미료와 향료가 섞인, 식물이 결코 놓여 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위를 어떠한 남용으로부터라도 보존하고자 연구하여야 한다.(CG 405.1)
청결함은 중요하다— 목욕을 자주 하는 것은 매우 유익한 바, 밤에 잠자리에 눕기 바로 전이나, 아침에 기상할 때에 하면 특별히 그러하다. 어린이들을 목욕시켜서 그들의 몸이 빨갛게, 달아오르기까지 문지르는 데는 잠깐이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혈액을 피부 표면까지 이끌어주므로, 뇌의 부담을 덜어 준다. 그리하여 더러운 행습에 빠지려는, 경향이 적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불결한 몸과 단정하지 못하고, 떨어진 의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시기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그들과 함께 거하실 수 있도록 그들의 안팎이, 깨끗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해 주라.(CG 461.2)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도하고 축복하시는 의로운 자들에게, 요구되는 극기와 겸비와 절제가 이 타락해 가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사치스러우며 건강을 파괴하는 습관과 대조적으로, 백성들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손이 몸에 붙어 있는 것처럼, 건강개혁이 셋째천사의 기별과 밀접하게 연결된 것임을 보여주셨다. 이 중요한 주제를 등한히 하는 것처럼 육체와 도덕적 타락의, 큰 원인이 되는 것은 아무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식욕과 정욕에 방종하며 그들이 버리고 싶지 않은 ,죄스러운 방종들을 깨닫게 될까봐 빛에 대하여, 저들의 눈을 감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죄가 있다.(CD 71.3)
안식일은 유대인만을 위해서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분의 법을 선포하실 장소로 ‘팔레스타인’이 아닌 ‘시내사막’을 지목하신 사실만 보더라도 안식일은 전 인류를 위한 것이다. 십계명은 창조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 제도는 특별히 유대인에게만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준수하도록 하셨다.
안식일은 인간을 위해 제정되었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 속기 쉬운 지경에 처한 모든 이들은, 인간의 주장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LHU 53.4)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모든 행위와 생각과 동기의 근저에 놓여져 있는, 원칙이 여기 있으니 곧 육체적·정신적으로 전 존재를,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에 맡기는 것이다. 성화되지 않은 의지와 정욕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이것은 힘들고, 가혹하게 여겨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일은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은 예수님의 입으로부터, “떠나가라”는 가혹한 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에게 능력 주시는 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대들은 의지와 식욕과 정욕에, 탐닉하도록 촉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그대들의 본성 속에 심으신 것은, 높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이다.
그것들이 저속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대들에게 저주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대들이 이성과 양심의 지배에, 복종하기를 거절할 때 그렇게 된다. 절제와 극기는 그대들에게 낯선 체험이다. 시험이 그대들을 휩쓸어 버렸다. 성화되지 못한 정신은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위해, 마련하신 힘과 용기를 받는 일에 실패한다. 그대들은 안식을 모르며, 새로운 어떤 것, 마음을 만족시키고, 즐겁게 하고, 자극시킬 어떤 것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소유한다.
사단은 특별히 청년들의 상상력에 흥미를 던져 주고, 자극을 주는 유인물들을 갖고 있어서, 그들을 자기의 덫 속으로 붙들어 맨다. 그대들은 “오, 주님. 심령 깊은 곳에서 회심하게 하소서”라고, 열렬하게 탄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들은 다른 청년들에게, 선한 감화를 끼칠 수 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그대들의 온 영과 혼과 몸을, 거룩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한다.(LHU 262.4)
“노아”홍수 이전 사람들은 홍수가 일어나기 전에, 경고를 받았으나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노아”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의 기별을 조소했다. 그러한 세대 중에서도 의로운 이들이 살고 있었다. “노아”홍수로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에녹”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자기의 증언을 감당했다. 그리고 그는 오늘의 세상 형편을, 선지자의 눈으로 보았다.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슬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유다”는 이러한 “에녹”의 증언을 신자들을 위하여, 기록으로 남겨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LHU 371.3)
“마지막 시대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간을 신뢰하고 육적인 것을 무기로 삼아서는, 도무지 안전하지 못할 것을, 거듭 반복해서 보았다. 위대한 진리의 석수(石手:석공-성령)께서 하늘의 건물에 사용키 위해, 자르고 깎고 다듬을 거친 돌로서, 그들을 세상에서 취하셨다.
그들은 선지자의 책망과 경고와 훈계와 충고로 다듬어져, 거룩한 모본과 일치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여호와의 법도를 지킬 수 있도록 마음과 품성을 변화시키시는 것이, 바로 보혜사께서 하시는 구체적인 사업이다....” (LS 323.2)